청춘표류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박연정 옮김 / 예문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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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내가 지니고 있는 몇 가지 모순 가운데 가장 심각한 것은, 사람으로서 절대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항상 절대자가 되고 싶다는 소원을 품고 있다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그런 모순을 품고 있었으니, 나도 꽤나 괴짜였던 셈이다. 물론 다른 아이들도 경쟁심에서 나오는 그 정도 소원은 품고 있었다는 반론이 들어올 수도 있지만 말이다.
 

어쨌든 더욱 어이가 없는 것은 그 절대자가 무엇인지도 정확하게 모른다. 뭔가 막연하게 내 머릿속에 자리잡고 있기는 한데, 문제는 너무 막연하고 자주 바뀐다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에게 절대자라는 것은 어느 누구도 감히 따라갈 수 없는 실력을 가진 존재였다. 그랬기에 온갖 분야에 손을 대면서 어디에서든지 정상에 오르고 싶어했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만한 집중력도 없었고 용기도 없었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아직도 너무 모자라다. 사람이라면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면서 그저 편안하게 살기에는 나보다 훨씬 앞서 가는 수많은 사람들과 견주어 본 내 모습이 너무 초라하다. 그렇다고 내가 꿈을 정확하게 정한 것도 아니고, 그 꿈을 이루는데 필요한 과정을 적절하게 거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지나간 시간 자체가 후회라는 말이 나에게 딱 들어맞았다. 얼마 살지 않았지만 내가 쓴 시간을 순간이 아닌 전체로서 바라보면 항상 후회하고 항상 방황했다.

 

다치바나 다카시라는 인물이 쓴 책이라면 나에게 어떤 해답을 반드시 가져다 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에 나는 빌려봐도 아무 문제가 없을 이 책을 그냥 사 버렸다. 사실 이 책을 쓴 사람이 내게 미친 영향 말고도 '청춘표류'라는 말에서 설명하기 힘든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젊을 때 방황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성공으로 가는데 필요한 밑천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그는 나를 위로해 주고 있었다. 넓은 바다 이곳저곳을 정처없이 헤매고 다니는 것도 필요하다는 독특한 '현대 교양론'을 제시한 그는 여기에서도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여기에 나오는 사람들은 보통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성공한 사람은 아니다. 훌륭한 대학을 나와서 대기업에 들어가 승진 가도를 달린다. 그러면서 국가 경제에서 중추로서 활약하고 부모님에게도 효도한다. 그런 것이 아닌 진정한 성공이다. 남이 뭐라고 하든 말든 자기가 만족하고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는 그런 성공이다. 그들도 자기가 원하는 것을 찾기까지는 정말 심하게 방황했다. 그토록 방황하고 고생한 끝에 자기가 무엇을 정말 원하는지 알고, 일단 그것을 찾으면 목숨 걸고 매달리며 정상에 우뚝 서는 그 날만 꿈꾸며 달린다. 실패할 수 있다는 생각은 할 겨를도 없다.

 

다치바나 다카시는 요즘 젊은이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안전하고 편한 것만 찾고, 사회 분위기에 따라 이리저리 끌려다니고, 실패할 가능성이 있는 선택은 아예 하지도 못하는 기회주의자들이라고 비난한다. 나이만 젊은 축에 들지 정신은 벌써 늙은이 같은 이름만 청춘이 아니라, 미친 듯이 방황도 해 보고 진정으로 자기 삶을 사랑하고 원하는 것에 목숨을 걸 정도로 의욕이 있는 진정한 청춘을 그는 이 책에서 밝히고 있다.

 

나도 지금까지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나름대로 목표를 세웠다. 하지만 부끄럽게도 나도 다치바나 다카시가 비난하는 그런 기회주의자였다. 진작 정말 중요한 때에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세상과 용감하게 맞서려고 하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존경하는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 지는 뚜렷하다. 방황만 한다고 해서 모든 것이 다 풀리는 것은 아니다. 길은 닦으면서 걷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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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전사 비룡소 걸작선 28
로즈마리 셧클리프 지음, 찰스 키핑 그림, 이지연 옮김 / 비룡소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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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리집에는 나름대로 책이 제법 많다. 부모님께서는 내가 책을 많이 읽기를 바랐는지 어린이들이 읽을 만한 책을 제법 많이 사 놓으셨다. 그 기대를 충분히 만족시켰는지는 모르지만, 나름대로 책을 많이 읽었다. 그 책들은 내가 어릴 때는 거실 책꽂이에 당당하게 꽂혀 있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지금은 베란다인지 무엇인지 구분할 수 없는 뒷방에 처박혀 있다.

 

나는 나이가 어느 정도 든 뒤에도 가끔씩 그 방에 들어가서 책을 뒤적거렸다. 난방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 겨울에는 무진장 추웠지만, 여름에는 제법 서늘해서 책을 읽기에 딱 좋았다. 어렸을 때 읽은 책 말고도 부모님께서 읽으셨던 책이 제법 있었는데, 나는 그 쪽을 주로 뒤적거렸다. 그러다가 제목에서 강한 인상을 받고, 책꽂이에서 바로 뽑아 읽은 책이 '태양의 전사'이다. 책을 읽어보니 부모님께서 읽으려고 사 놓으신 것이라기보다는, 어린 나를 위한 것이었는데 내가 안 읽었던 것 같았다.

 

주인공인 드렘은 한 쪽 팔을 못 쓴다. 어느 날 그는 할아버지가 전사가 될 희망이 없어 보이는 자기를 손자로 인정하지 않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는다. 드렘은 한 팔을 못 쓰지만 당당하게 전사로 살았던 태로어를 찾아가서 창 던지기를 연습하라는 권유를 받는다. 창술을 열심히 익힌 드렘은 전사 자격 시험인 늑대 사냥에 처음에는 실패하고 친구인 보트릭스가 규율을 어기면서까지 늑대를 죽여 간신히 살아남는다. 결국 드렘은 양치기로 살아가려고 집을 나오지만, 나중에 양을 공격하려는 늑대 무리를 이끄는 회색 늑대를 죽여 당당한 전사가 되고, 할아버지에게도 제대로 인정을 받는다.

 

좋은 친구와 피우는 우정(보트릭스), 소년만이 할 수 있는 풋풋한 사랑(브라이), 훌륭한 스승이면서 길잡이에게서 배우는 많은 것(태로어)……이 모든 것들이 책을 읽는 나를 즐겁게 했다. 추악한 음모 따위는 이 소설에서 발을 붙여야 할 필요가 없었다. 남들보다 조건은 좋지 않지만 떳떳하게 멋진 전사가 되고 싶어하는 드렘을 보면서 저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드렘을 그런 모습으로 잘 그려낸 로즈마리 서트클리프에게도 고맙다고 한 마디 하고 싶다. 다시 소년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하지만 마냥 기분이 좋을 수는 없었다. 나는 얼마나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는 사람인가? 나에게 부족한 것이 있는가? 박사 학위와 안정된 직장도 있는데 도저히 생각할 시간을 낼 수 없다고 한탄하는 학자에게 류비셰프는 어떤 경고를 내렸는가? 이런 반성을 언제까지 되풀이해야 하는가? 이제는 끝낼 때도 되지 않았는가?

 

게다가 이야기가 진행되는 배경을 생각하다가 그 생각이 쓸데없이 발전하는 바람에 더욱 열이 뻗쳤다. 한 마디로 청동기 시대에서 철기 시대로 넘어가는 시대인 남아메리카이다. 태양신을 믿으며 철로 만든 칼이 최신식 무기인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 때는 부족끼리 싸우기는 했지만, 무자비한 제국주의 세력 아래 짓눌렸을 때와 견주어 보면 훨씬 더 평화로운 시기였다고 생각한다. 드렘은 전사가 되고 브라이와 결혼한 뒤, 가정과 나라를 지키려고 거대한 제국주의에 맞서 싸워야 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몇 십 세대에 걸쳐 찬란하고 독특한 문명을 이룩한 드렘의 후손들은, 진정으로 야만스러운 서양 제국주의에 제물이 되어야 했다.

 

탐욕과 우월감에 물든 제국주의자들에게 태양신 따위는 없었다. 오로지 하느님만이 전지전능한 신이고, 그를 섬기는 자기들이 세운 문명이야말로 인류가 본받아야 할 바람직한 것이었다. 자기와 다른 것들은 모두 천하고 가치 없는 것, 심지어 세상에 해를 끼치는 것으로서 사라져야 했다. 원주민들을 학살하고 찬란한 고대 문명을 철저하게 파괴한 제국주의자들은 아직도 그 위세를 자랑하며 세계를 어지럽히고 있다. 그들을 막는데 나는 얼마나 힘쓰고 있는가? 왜 이런 즐거운 소설을 보면서도 이런 생각을 해야 하는가? 이런 내가 어리석은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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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
스펜서 존슨 지음, 형선호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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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등학교 3학년 때 처음으로 제대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목표로 삼았던 육군사관학교에 지원했다가 1차 학과 시험에서 보기 좋게 낙방했다. 어느 대학교라도 가 보겠다고 계속 공부는 했지만, 가장 점수가 잘 나오던 한국어와 영어를 망치는 바람에 수능 점수가 형편없었다. 꼼짝없이 재수를 해야 할 판이었다. 대학 잘 갈 운은 지지리도 없는 것 같았지만, 다행히 부산대학교 영어교육과에 합격한 덕분에 그 해에 내가 문창고등학교에서 가장 좋은 대학교에 간 수험생이 되었다.


그 덕분에 문창고등학교 재단 이사장님을 뵈러 서울에 갈 수 있었다. 같이 올라간 친구들과 이사장님을 뵙고 강연을 듣고 여러 가지 중국 요리로 점심을 먹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선물로 책 한 권을 받았는데, 희한하게도 책 제목이 '선물'이었다. 그 당시에는 책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그 때 매우 유명했던 이 책을 그냥 시큰둥하게 받아들었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다른 친구들은 점촌에 도착한 뒤에 여고생 일행과 어떻게 놀지 생각하고 잡담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나는 이 책을 읽고 느낀 것을 정리하느라 말을 거의 하지 않았다. 다 읽는데 30분 정도밖에 안 걸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 노인과 한 젊은이가 겪은 일을 어느 회사 직원이 다른 직원에게 이야기해 주는 구조로 전체 이야기가 짜여 있다. 이야기가 주는 결론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옛날, 오늘날, 앞날 사이에 어떠한 관계를 정립하고 살아가는 것이 인생에 좋은지 알려준다. 책에 나온 그대로 써 보면 다음과 같다.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는가는 우리의 소명이 무엇인가에 따라 다르다.


행복해지고 성공하고 싶을 때 현재를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과거보다 나은 현재를 원할 때 과거에서 배움을 얻어야 한다.


현재보다 나은 미래를 원할 때 미래를 위한 계획을 세워야 한다.


우리가 소명을 갖고 일을 하고 살아갈 때


그리고 바로 지금 중요한 것에 집중하고 몰두할 때


우리는 더 잘 이끌고, 관리하고, 지원하고, 친구가 되고, 사랑할 수 있다.

 

 

대개 사람들은 바람직한 인생을 쉽게 말한다. 그리고 그렇게 살려면 필요한 조건도 아주 쉽게 이야기한다. 누구나 이 책에 나오는 노인과 젊은이처럼 삶을 꾸려 가는데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실제로 그런 조건을 지키면서 바람직한 삶을 살려고 힘쓰는 사람들은 그다지 많지 않다. 바람직한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은 단지 전자구름과 같은 흐릿하고 뿌연 이미지로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을 뿐이다. 그 이미지가 행동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나도 자기애와 자기를 개발하려는 의욕은 전혀 모자라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머릿속에 막연하게 남아 있었을 뿐 행동은 도무지 그렇지 않았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10여 년이나 되는 세월을 헛되이 보냈다. 다행히 10대 후반부터 몇 가지 계기가 찾아와 지금 이 정도나마 자기를 가꾸면서 살고 있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고등학교 3학년 때가 그립다. 물론 아쉬운 점이 많기는 하지만, 그나마 지금까지 가장 열심히 살았고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던 고등학교 3학년을 마친 뒤 읽었던 책이라서 그런지 여전히 기억 속에 뚜렷하게 남아 있다. 이 책을 다시 뒤적거리다 보면 예전으로 돌아가 그 때 내가 사람들에게 보여줬던 엄청난 능력이 살아나는 듯 하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당위론에 너무 치우쳤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는 것이다. 하긴 그렇게 따지면 자기 개발과 관련된 모든 책이 다 그렇다. 아무리 뚜렷하고 자세한 지침이 많이 있어도 결국 실천하는 건 자기 나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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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미치 앨봄 지음, 공경희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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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게릭 병'이라는 무서운 병을 내가 처음 안 때는 중학교 3학년 때였다. '시간의 역사' 따위 위대한 저서를 남긴 가장 위대한 현대 물리학자 가운데 한 명인 스티븐 호킹 박사에 관한 이야기를 읽었다. 거기에서 스티븐 호킹 박사가 '루게릭 병'에 걸린 뒤에도 계속 연구에 정진했다는 이야기를 읽고 어느 정도 감명받았던 기억이 난다. 얼마 뒤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를 읽었는데 거기에도 머리가 좋아지는 방법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서 스티븐 호킹 박사 이야기가 잠깐 나온다. 그는 대학 공책 한 권 분량 계산이 들어가는 방정식을 암산으로 거뜬히 푼다고 한다. 나도 나중에 그럴 수 있을 정도로 두뇌 훈련을 꾸준히 하겠다고 잠시나마 마음을 먹었지만, 실제로 훈련을 하지는 않았다.

 

사실 대학교에 들어온 뒤 병에 걸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는 그것을 극복하고 자기가 하던 일을 계속하거나 다른 일을 해내는 과정에 주목했다. 모자란 것이 하나도 없으면서도 그토록 시간을 헛되이 보내고 많은 것들을 놓치는 내 모습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대로 가다가는 정말 대학교에서 아무 것도 제대로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쨌든 시간이 흐르면서 내가 지니고 있는 부족한 점을 보완하고 나쁜 점을 어느 정도 극복하는데 성공했다. 그 성공을 바탕으로 더욱 많은 책을 읽고 더욱 많은 글을 쓰는데 힘을 쏟았다. 자기 안락과 절대 타협하지 않는 사람을 꿈꿨다. 죽음을 눈 앞에 두고서도 몸이 조금 회복되자 바로 연구를 계속하여 정의론을 국제 관계 차원으로 확대하여 적용한 '만민법'을 발간한 존 롤스 같은 학자를 본받으려고 힘썼다. 하지만 그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사실 집에 갔다가 책꽂이에 있는 아무 책이나 뒤적거리다가 제목이 끌려서 읽었다. 이 책에 관해 원래 알고 있던 것은 하나도 없었기에 처음에는 학구열에 불타는 한 교수 이야기인줄 알았다. 나는 책표지에 있는 글자도 제대로 훑어보지 않고 바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몇 분 뒤, 착각은 완전히 깨졌다.

 

내 생각대로라면 이 책에 나오는 모리 교수는 반드시 생명을 앗아가는 무서운 병에 걸린 뒤에도 끝까지 학구열을 불태우다 결국 큰 성과를 하나 남기고 죽는 인물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는 루게릭 병에 걸린 뒤 연구를 그만둔다. 공부를 완전히 그만두고 그는 삶을 더욱 많이 즐기기 시작한다.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관찰하고 사소한 것들이 얼마나 큰 뜻을 지니고 있는지 깨닫는다. 몸에서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부분이 더욱 많아지고 죽음이 가까워질수록, 모리는 세상이 보여주는 아름다움을 더욱 많이 느낀다.

 

모리에게 가르침을 받으며 공부했던 한 제자가 그런 그를 지켜본다. 열심히 일하면서 돈은 분명히 많이 벌었고 나름대로 성공했지만, 뭔가 빠진 것 같은 허전한 느낌에 시달린다. 그는 바쁜 삶 속에서 까맣게 잊고 있었던 은사인 모리 교수를 다시 만나면서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는다. 현대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지만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할 수 있는 진리인 그것. 더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안타까운 것은 단 한 가지뿐이다. 감정을 제거해야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나는 컴퓨터가 보여주는 효율에 주목한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미친 짓을 내가 기꺼이 하려고 한 까닭은 지나친 나머지 나를 망친 자애와 합리론이였다. 나는 모리가 말하는 것을 제대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고, 책을 읽을 때도 그다지 큰 감명이 없었다. 독후감을 쓰는 것이 아무런 뜻이 없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단지 나에게 이런 문제가 있다는 것만 인식하고 그것을 고치려고 힘쓸 동기를 줬다는 사실로 만족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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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들 1
이정규 지음 / 밝은세상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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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학군단에 떨어지기 전만 하더라도 해병대에 관하여 전혀 진지하게 생각해 보지 않았다.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운동을 제대로 하기 시작하여 지금은 건강하고 몸도 좋다는 말을 주위에서 심심찮게 듣기는 한다. 그래도 해병대를 가기에는 내 능력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해병대에는 체력이 무지막지하게 좋고 무술 단증이 몇 개씩 있는 사람들이나 가는 줄 알았다.

 

젓가락을 던져 송판을 뚫고, 웬만한 건물은 도마뱀붙이처럼 벽으로 오르내릴 수 있고, 주먹으로 벽돌 두 장은 한 번에 부수며, 나무에 못을 손으로 박을 수 있고, 고무 타이어를 각 발목에 하나씩 매고 1500m를 전속력으로 달릴 수 있고, 10km를 쉬지 않고 헤엄칠 수 있다. 해병대를 나온 사람들은 전부 그럴 수 있는 줄 알았다.

 

특히 UDT, 제 707 공수특전단 따위 특수부대를 나온 사람들에 관해서는 보통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막연한 두려움과 호기심을 한꺼번에 느꼈다. 그리고 그들을 부러하면서 탄식했다. 무술과 힘에 관심이 많은 친구들뿐만 아니라 보통 남자들끼리 모여서 이야기를 할 때 특수부대 이야기가 나오면, 사람들은 그들이 지닌 능력을 부러워하면서 자기는 언제 그렇게 될 수 있을지 모른다고 탄식했다.

 

그런데 주위에서 나는 특수부대에 가도 충분히 버틸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갈수록 많아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며칠 전, 곧 2005년 9월 29일에 해병대 면접을 보고 왔는데, 거기에 온 사람들을 보고 나는 좀 놀랐다. 내가 생각하던 바에 딱 들어맞는 지원자는 단 한 명밖에 없었다. 물론 오전에 온 사람들도 있겠지만, 어쨌든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 간신히 체력 검정을 통과하는 사람들도 부지기수였다. 단증이 하나라도 있는 사람도 그다지 많지 않았다.

 

고등학교 내신도 그럭저럭 괜찮은 편이고, 체력에도 다른 사람들과 견주어 볼 때 그다지 큰 문제는 없으니, 별 일 없으면 합격할 것 같다. 어쨌든 나도 해병대원이 될 것이다. 일반병으로 지원했는데 나름대로 특수부대라고 볼 수 있는 해병대 수색대에 뽑힐 지는 아직 모른다. 가능성은 어느 경우에나 있다.

 

해병대 일반병뿐만 아니라 특수부대원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갈수록 커지자, 나는 특수부대와 훈련에 관하여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이는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전사로 태어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죽음에 대한 공포도 혹독한 훈련을 받으면서 깨끗하게 없앨 수 있을 것이다. 나도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엄청나게 키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장점도 있지만 주위 사람들이 말하는 단점도 무시할 수 없다. 위험하고 혹독한 훈련 때문에 사람이 변하기 쉽다는 지적이 가장 많다. 그러면 나는 내 의지로 버티면서 그러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런 걱정도 아주 무시할 수는 없다. 내 성격과 내가 지금까지 했던 행동을 고려해 볼 때 그럴 가능성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 말고도 내가 소설에 나오는 것처럼 특수부대원이 되어 사선을 넘나들고 싶은 마음은 거의 없다는 까닭도 있다. 물론 사람들이 흔히 알고 있는 것처럼 요즘은 그 정도로 위험하지는 않다고 한다. 그러나 내가 읽은 소설에서는 특수부대는 죽으면 아까울 정도로 뛰어난 살인 기계를 만드는 곳이다. 특수부대원들에게 동정은 쥐꼬리만큼도 없다. 오로지 임무를 완수하고 적을 죽여야 한다는 생각뿐이다. 소설과 현실은 차이가 큰 법이지만, 기본 속성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기에 걱정할 수밖에 없다. 죽는 문제는 둘째로 치고, 사람 성격 따위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 집단 속에서 한 사람이 변하지 않고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의심스럽기도 하다. 

 

그렇다면 내가 하는 걱정에 영향을 준 소설은 무엇인가? 지금까지 내가 읽은 특수부대에 관한 소설은 다섯 권이다. 이정규가 쓴 '돼지들 1,2권', 백동호가 쓴 '실미도 1,2권', 이수광이 쓴 '충정의 섬, 실미도'. 백동호가 쓴 소설은 실제로 실미도에서 살아남은 강인찬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를 담고 있어서 좋기는 하지만, 자서전인지 실미도 이야기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라서 별로였다. 차라리 '충정의 섬, 실미도'와 지금 독후감을 쓰고 있는 '돼지들'이 훨씬 더 나았다.

 

친형 민수를 찾는 CIA 한국지부 요원 민호. 그는 고아원에서 갑자기 사라진 형을 전혀 잊은 일이 없다. 그는 수소문 끝에 형에 관하여 알 수 있는 기록을 발견한다. 그 기록 끝에 민수는 사형당했다고 나오지만, 실제로 그는 사형당한 것이 아니라 특수부대원으로 뽑혀 혹독한 훈련을 받았다.

 

그 뒤 사선을 몇 번 넘나들며 임무를 수행하다가, 연인인 은영이 자기를 죽인 남한에게 복수하려는 의지로 북한에 넘어가 특수부대원이 된 것을 알고 절망한다. 은영도 민수가 죽지 않고 남한 특수부대원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결국 두 연인은 전장에서 만나지만 둘 다 살아남는다. 얼마 뒤 민호를 납치하러 남한에 파견된 은영은 민수를 빼다박은 민호를 납치하는데 주저하다가, 상부에 배신자로 낙인이 찍혀 심하게 고문을 당한다. 그 뒤 은영은 나중에 북한에 임무를 수행하러 온 민수를 만나 함께 중국으로 탈출한다.

 

북한에서 탈출한 핵물리학자를 보호하라는 임무를 각각 상부에서 받은 민호와 민수는 중국에서 만나 잠시나마 혈육을 만난 기쁨을 마음껏 누리지만, 갑자기 들이닥친 북한 특수부대원 금수산 1, 2호 때문에 위기에 몰린다. 그러나 그들은 죽을 고비를 넘기며 임무를 완수하고, 은영과 민수를 위해 민호는 황금의 다이아몬드 지역에 보금자리를 마련해 주면서 이야기가 끝난다.

 

다시 한 번 이 소설을 생각해 본다. 고아원에서 원장을 죽이고 도망친 뒤 민수가 겪었던 고난, 민수와 은영이 사랑하는 이야기, 남한과 북한의 공작원 훈련소 이야기, 기계 같은 북한 공작원 금수산 1호 이야기 따위가 다채롭게 그려져 있다. 그런 이야기들은 매우 재미있게 읽었다. 그러나 내가 소설 속의 민수처럼 훈련을 이겨낼 수 있을지 의심을 하니, 갑자기 한숨이 저절로 나온다. 어쩌면 그만큼 내가 나약하다는 뜻이니 자기를 탓해야 할 것이다. 지금 군대 문제를 걱정하는 까닭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혹독한 훈련을 두려워한다면 그것은 내가 잘못된 것이지, 결코 훈련 과정이 잘못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오직 그 까닭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어느 부대에 가든지 크게 신경 쓰지는 않겠다. 그러나 소설에 나오는 민수처럼 북한군과 싸워야 할 일은 절대로 벌어져서는 안 될 것이다. 내 한 목숨도 소중하지만, 내가 총을 들고 북한으로 가야 한다는 것은, 지금까지 통일을 위해 남한과 북한이 쌓아온 모든 것이 순식간에 무너지는 것이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 소설 배경이 1970년대이니 지금과는 상황이 확실히 다르다. '돼지들'에서 나오는 모든 이야기들이 소설에서나 나타나기를 기원하며, 나는 제 1015기 해병대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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