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들 1
이정규 지음 / 밝은세상 / 2000년 11월
평점 :
절판


나는 학군단에 떨어지기 전만 하더라도 해병대에 관하여 전혀 진지하게 생각해 보지 않았다.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운동을 제대로 하기 시작하여 지금은 건강하고 몸도 좋다는 말을 주위에서 심심찮게 듣기는 한다. 그래도 해병대를 가기에는 내 능력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해병대에는 체력이 무지막지하게 좋고 무술 단증이 몇 개씩 있는 사람들이나 가는 줄 알았다.

 

젓가락을 던져 송판을 뚫고, 웬만한 건물은 도마뱀붙이처럼 벽으로 오르내릴 수 있고, 주먹으로 벽돌 두 장은 한 번에 부수며, 나무에 못을 손으로 박을 수 있고, 고무 타이어를 각 발목에 하나씩 매고 1500m를 전속력으로 달릴 수 있고, 10km를 쉬지 않고 헤엄칠 수 있다. 해병대를 나온 사람들은 전부 그럴 수 있는 줄 알았다.

 

특히 UDT, 제 707 공수특전단 따위 특수부대를 나온 사람들에 관해서는 보통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막연한 두려움과 호기심을 한꺼번에 느꼈다. 그리고 그들을 부러하면서 탄식했다. 무술과 힘에 관심이 많은 친구들뿐만 아니라 보통 남자들끼리 모여서 이야기를 할 때 특수부대 이야기가 나오면, 사람들은 그들이 지닌 능력을 부러워하면서 자기는 언제 그렇게 될 수 있을지 모른다고 탄식했다.

 

그런데 주위에서 나는 특수부대에 가도 충분히 버틸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갈수록 많아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며칠 전, 곧 2005년 9월 29일에 해병대 면접을 보고 왔는데, 거기에 온 사람들을 보고 나는 좀 놀랐다. 내가 생각하던 바에 딱 들어맞는 지원자는 단 한 명밖에 없었다. 물론 오전에 온 사람들도 있겠지만, 어쨌든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 간신히 체력 검정을 통과하는 사람들도 부지기수였다. 단증이 하나라도 있는 사람도 그다지 많지 않았다.

 

고등학교 내신도 그럭저럭 괜찮은 편이고, 체력에도 다른 사람들과 견주어 볼 때 그다지 큰 문제는 없으니, 별 일 없으면 합격할 것 같다. 어쨌든 나도 해병대원이 될 것이다. 일반병으로 지원했는데 나름대로 특수부대라고 볼 수 있는 해병대 수색대에 뽑힐 지는 아직 모른다. 가능성은 어느 경우에나 있다.

 

해병대 일반병뿐만 아니라 특수부대원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갈수록 커지자, 나는 특수부대와 훈련에 관하여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이는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전사로 태어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죽음에 대한 공포도 혹독한 훈련을 받으면서 깨끗하게 없앨 수 있을 것이다. 나도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엄청나게 키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장점도 있지만 주위 사람들이 말하는 단점도 무시할 수 없다. 위험하고 혹독한 훈련 때문에 사람이 변하기 쉽다는 지적이 가장 많다. 그러면 나는 내 의지로 버티면서 그러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런 걱정도 아주 무시할 수는 없다. 내 성격과 내가 지금까지 했던 행동을 고려해 볼 때 그럴 가능성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 말고도 내가 소설에 나오는 것처럼 특수부대원이 되어 사선을 넘나들고 싶은 마음은 거의 없다는 까닭도 있다. 물론 사람들이 흔히 알고 있는 것처럼 요즘은 그 정도로 위험하지는 않다고 한다. 그러나 내가 읽은 소설에서는 특수부대는 죽으면 아까울 정도로 뛰어난 살인 기계를 만드는 곳이다. 특수부대원들에게 동정은 쥐꼬리만큼도 없다. 오로지 임무를 완수하고 적을 죽여야 한다는 생각뿐이다. 소설과 현실은 차이가 큰 법이지만, 기본 속성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기에 걱정할 수밖에 없다. 죽는 문제는 둘째로 치고, 사람 성격 따위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 집단 속에서 한 사람이 변하지 않고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의심스럽기도 하다. 

 

그렇다면 내가 하는 걱정에 영향을 준 소설은 무엇인가? 지금까지 내가 읽은 특수부대에 관한 소설은 다섯 권이다. 이정규가 쓴 '돼지들 1,2권', 백동호가 쓴 '실미도 1,2권', 이수광이 쓴 '충정의 섬, 실미도'. 백동호가 쓴 소설은 실제로 실미도에서 살아남은 강인찬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를 담고 있어서 좋기는 하지만, 자서전인지 실미도 이야기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라서 별로였다. 차라리 '충정의 섬, 실미도'와 지금 독후감을 쓰고 있는 '돼지들'이 훨씬 더 나았다.

 

친형 민수를 찾는 CIA 한국지부 요원 민호. 그는 고아원에서 갑자기 사라진 형을 전혀 잊은 일이 없다. 그는 수소문 끝에 형에 관하여 알 수 있는 기록을 발견한다. 그 기록 끝에 민수는 사형당했다고 나오지만, 실제로 그는 사형당한 것이 아니라 특수부대원으로 뽑혀 혹독한 훈련을 받았다.

 

그 뒤 사선을 몇 번 넘나들며 임무를 수행하다가, 연인인 은영이 자기를 죽인 남한에게 복수하려는 의지로 북한에 넘어가 특수부대원이 된 것을 알고 절망한다. 은영도 민수가 죽지 않고 남한 특수부대원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결국 두 연인은 전장에서 만나지만 둘 다 살아남는다. 얼마 뒤 민호를 납치하러 남한에 파견된 은영은 민수를 빼다박은 민호를 납치하는데 주저하다가, 상부에 배신자로 낙인이 찍혀 심하게 고문을 당한다. 그 뒤 은영은 나중에 북한에 임무를 수행하러 온 민수를 만나 함께 중국으로 탈출한다.

 

북한에서 탈출한 핵물리학자를 보호하라는 임무를 각각 상부에서 받은 민호와 민수는 중국에서 만나 잠시나마 혈육을 만난 기쁨을 마음껏 누리지만, 갑자기 들이닥친 북한 특수부대원 금수산 1, 2호 때문에 위기에 몰린다. 그러나 그들은 죽을 고비를 넘기며 임무를 완수하고, 은영과 민수를 위해 민호는 황금의 다이아몬드 지역에 보금자리를 마련해 주면서 이야기가 끝난다.

 

다시 한 번 이 소설을 생각해 본다. 고아원에서 원장을 죽이고 도망친 뒤 민수가 겪었던 고난, 민수와 은영이 사랑하는 이야기, 남한과 북한의 공작원 훈련소 이야기, 기계 같은 북한 공작원 금수산 1호 이야기 따위가 다채롭게 그려져 있다. 그런 이야기들은 매우 재미있게 읽었다. 그러나 내가 소설 속의 민수처럼 훈련을 이겨낼 수 있을지 의심을 하니, 갑자기 한숨이 저절로 나온다. 어쩌면 그만큼 내가 나약하다는 뜻이니 자기를 탓해야 할 것이다. 지금 군대 문제를 걱정하는 까닭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혹독한 훈련을 두려워한다면 그것은 내가 잘못된 것이지, 결코 훈련 과정이 잘못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오직 그 까닭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어느 부대에 가든지 크게 신경 쓰지는 않겠다. 그러나 소설에 나오는 민수처럼 북한군과 싸워야 할 일은 절대로 벌어져서는 안 될 것이다. 내 한 목숨도 소중하지만, 내가 총을 들고 북한으로 가야 한다는 것은, 지금까지 통일을 위해 남한과 북한이 쌓아온 모든 것이 순식간에 무너지는 것이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 소설 배경이 1970년대이니 지금과는 상황이 확실히 다르다. '돼지들'에서 나오는 모든 이야기들이 소설에서나 나타나기를 기원하며, 나는 제 1015기 해병대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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