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재구성 - 글로벌 경제위기 제2막의 도래
김광수경제연구소 지음 / 더팩트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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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온 세상에서 못살겠다고 아우성이 터져나오고 있다. 3차 세계 대전은 벌어지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경제위기 안에서 마치 전쟁이 가져다 주는 공포와 불안만큼이나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자고 일어나면 자기가 사놓은 부동산 가치가 올라가 있고, 거리에는 경제 호황을 즐기는 사람들이 북적거리고, 언론에서는 연신 경기가 회복되고 경제성장이 잘 이루어지고 있다는 낙관론만 줄기차게 보도되던 그 시절은 결국 한 여름밤에 꾼 부질없는 꿈과도 같았던 것일까. 좋았던 시절이 분명히 있었기에 지금과 같은 엄청난 경제위기가 사람들에게는 더욱 큰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 충격은 사람들이 그동안 지니고 있었던 기존 정치권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에 불을 지펴 지금까지 정권을 잡아온 기존 정치세력은 갈아치워야 한다는 인식을 확산시켰고, 그 결과로 각국 정치계에서 기존 정치인들이 선거에서 패배하고 시민들이 정치에 직접 참여하고자 더욱 많이 힘쓰고 있다. 게다가 국제금융위기를 불러일으킨 주범으로 지목된 월가 금융기관들에 미국 국민들이 시위로써 직접 항의하고 그 움직임이 전 세계로 확산되면서, 앞으로 자본과 정치가 결탁한 20세기형 민주주의가 드러낸 한계에 정면으로 저항하는 움직임이 갈수록 거세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타나고 있다.

 

물론 전 세계에서 시민들이 직접 문제를 해결하고자 발벗고 나서고 있다는 점은 분명히 환영할 만한 일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시민들이 정치에 직접 참여하면서 대의 민주주의가 지닌 한계를 극복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이자 의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이 있다면, 사람들이 분노를 폭발시키고 행동에 나서는 동기에서 아직까지는 중요한 것이 빠졌다는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마이클 센델은 유명한 저서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미국인들이 월가에서 어마어마한 연봉을 챙기고 있는 금융인들에게 분노하는 까닭은, 미국인이 공산주의 사상에 경도되었기 때문은 당연히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99%'가 가지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가져가는 '1%'이 지닌 '탐욕' 그 자체를 문제로 삼고 있기 때문도 아니라고 지적했다. 만약 탐욕 그 자체를 문제로 삼고 있었다면 이미 '월가를 점령하라'와 같은 시위가 이미 여러 차례 나타나서 많은 사람들에게서 호응을 얻었어야 했는데, 실제로는 지금까지 전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마이클 센델은 미국인들은 '탐욕'보다는 '실패'에 더 강하게 분노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지금뿐만 아니라 오래 전부터 월가에서 그들 표현을 빌리자면 '금융 혁신'을 선도한 이들은 보통 사람들은 상상할 수조차 없는 연봉을 받으며 살았지만, 미국인들은 그들에게 아무런 문제 제기도 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런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금융업이 발전하면 사회 전체에 더욱 큰 부가 찾아올 것이라는 믿음이 미국 사회 전체에 만연해 있었고, 보통 사람들도 금융 파생상품 발달이 실물 경제에 불러일으킨 거품에 취해 있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로 집을 산 가난한 사람들은 자기들도 집이 생겼다는 '성공' 신화에 젖어 행복했고, 사 놓은 부동산 가격이 치솟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열광하면서 거리에서 소비를 즐겼다. '자산 효과'는 거품에서 비롯된 것인만큼 언젠가는 갚아야 하는 빚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잊고, 경기가 회복되고 생활이 윤택해지는 '성공' 신화에 젖었던 것이다.

 

하지만 신화가 신기루로 판명되는 데는, 다른 말로 하자면 '성공'이 '실패'로 뒤바뀌는 데는 그다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한 번 꺼지기 시작한 거품은 사람들이 그동안 누렸던 모든 번영과 부를 순식간에 날려버렸고, 사람들은 그 허탈함과 분노를 이기지 못했고 거리로 나와서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뭔가 바뀌어야 한다는 막연한 생각 말고는 사실 뚜렷한 목표의식이 없어 보인다. 실제로 탐욕스러운 금융자본에 반대한다는 명목으로 시위가 계속 벌어지고 있기는 하지만, 분명한 생각이 담긴 구호가 아닌 그저 분노를 쏟아내는 수준에 그치다 보니까 온갖 단체들이 언론을 타고자 시위대에 합류해 정체성이 모호해지고 있고, 그에 따라 시위대 안에서도 자기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고민하며 회의감에 빠져드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마이클 센델이 지적한 대로라면, 만약 이 위기가 겉으로 보기에 어느 정도 극복되기만 한다면 그들은 이렇게 우왕좌왕하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갈 준비가 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집으로 돌아가기 힘들 가능성이 높다. 이번 위기는 절대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으로, 곧 지금까지 각국 정부에서 재정적자를 무릅쓰고 경기부양을 추진하는 방식으로는 절대 극복할 수 없다. 시장경제 체제 안에서 자연스럽게 거품이 빠지도록 유도하고 그동안 허리띠를 최대한 졸라매서 빚을 갚아나가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각국 정부에서는 만약 긴축 재정 정책을 펴서 허리띠를 졸라매면 그만큼 정치 부담이 커지기 때문에, 실제로 지금까지 그랬듯이 어떻게든지 긴축 정책은 자제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그러면 앞으로 악성 인플레가 만연하면서 사람들은 더욱 살기 힘들어질 것이고, 사람들은 계속 되는 어려움 속에서 분노를 쏟아낼 수밖에 없다.

 

안타깝게도 마이클 센델이 지적한 것은 미국인들에게만 해당되는 것 같지는 않다. 정도 차이만 있을 뿐 전 세계가 금융 & 부동산 거품에 휩싸여 있었으며, 그 속에서 사람들은 거품이 불러일으키는 성공이 신기루에 불과하다는 점을 직시하지 못하는 착시 현상에 빠져 있었다. 경제를 공부한다면서 경제 기저를 있는 그대로 인식하려고 하지 않고, 그저 돈을 벌 수 있는 정보만을 찾아다니는 것이 경제 공부라는 터무니없는 생각에 빠져서, 재테크 서적 광풍을 불러일으켰으며 기존 정치권에서 저지르는 온갖 정책 실패에 본의든 그렇지 않든 제대로 책임을 묻지 않았다. 그 결과는 사람들을 참혹할 정도로 조여드는 경제위기로 나타나고 있다.

 

분명히 사람들은 이런 위기를 불러일으킨 권력과 자본을 가진 자들에게 분노하고 있다. 하지만 그 분노가 단순한 분노만으로 끝난다면 항상 지금까지 그랬듯이 역시 어쩔 수 없다는 냉소와 조롱거리만이 될 뿐이다. 사람들이 권력과 자본이 결탁해서 잘못된 정책을 양산한 20세기형 민주주의가 지닌 한계를 극복해야, 21세기 초부터 세계를 대혼란에 빠뜨리고 있는 이번 위기를 극복하고 지금까지 누적된 많은 모순을 해소할 단초를 마련할 수 있다. 그러려면 이번 금융위기가 도대체 왜 발생했는지를 명확하게 인식하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그 문제를 올바르게 이해해야 한다는 것은 기초 상식이다.

 

이번에 김광수경제연구소에서 새롭게 발간한 '위기의 재구성'이 지금과 같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현실을 명확하게 인식하는데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김광수경제연구소는 이미 국제 금융위기가 터진 2008년이 오기 전부터 경제보고서에서 금융위기 조짐을 계속 경고했는데, 2008년부터 그 경고가 현실이 되면서 탁월한 경제 분석 능력을 다시 한 번 입증했다. 그 탁월함이 이번에 발간한 '위기의 재구성'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전 세계를 충격과 공포 속으로 몰아넣고 있는 경제위기 본질은 결국 전 세계에서 넘쳐난 탐욕과 무지 때문이라는 사실을 다양한 사례를 들어서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있다. 그 탐욕과 무지가 극도로 활개를 쳤던 곳이 각국 부동산 시장이었으며, 실제로 지금 끊임없이 언론 보도를 타고 있는 유럽재정위기도 결국 유럽 부동산 시장 거품이 꺼지면서 거품을 기반으로 삼은 경제가 근본에서부터 무너지고, 기존 정치권에서 올바른 정책 능력을 함양하지 못해 끊임없는 정책 실패를 일삼았기 때문이라는 점을 유럽 각국 경제를 소개하면서 강조하고 있다. 이 말고도 금융위기가 벌어지는 메커니즘, 유럽재정위기에 불을 지핀 미국발 국제금융위기가 지닌 본질과 같이 세계경제를 이해하는데 필요한 핵심 지식도 풍성하게 곁들였다. 가장 주목할 만한 점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뗄 수 없는 관계에 놓여 있다는 점을 여러 가지 사례를 들어 흥미롭게 설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을 적극으로 추천하면서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점은, 경제 서적을 읽을 때는 제발 그 책에서 돈을 버는데 필요한 정보를 찾기보다 경제 전반 흐름과 그 본질을 이해하는데 훨씬 더 많은 공을 들이라는 것이다. 탐욕에 사로잡혀 돈을 좇으면 그때부터 이성이 흐릿해지기 시작하고 가치 판단에 혼란이 오면서 진실을 바라볼 수 없게 된다. 사실 재테크 열풍이 불 때 사람들은 경제 공부를 한다고 했지만, 실제로 그들은 경제 공부를 한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도움이 되는 경제 정보를 좇아다녔을 뿐이다. 그렇기에 스스로 경제 흐름을 읽고 판단하는 능력을 기르지 못했으며, 기존 정치권에서 일삼는 거짓말에도 쉽게 속아넘어가 실패한 경제 정책이 낳은 희생자로 전락한 것이다.

 

2006년에 다음에 개설한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도 2008년부터 회원 수가 급증하기 시작했는데, 앞에서 지적했듯이 사람들이 경제 지식을 습득하려고 한다면서 실제로는 포럼이나 공부방에 찾아와서 재테크에 필요한 정보를 달라고 요구하는 경우도 상당히 많았다.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 공부방은 재테크 상담을 하는 곳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이 경제와 사회 전반 문제를 분석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곳이라고 설명하면, 실망한 채 돌아간 뒤 다시는 나타나지 않는 사람들도 지금까지 많이 봤다. 이것이 엄연한 현실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 현실을 바꿔나가고자 지금까지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에서는 꾸준히 힘써 왔으며, 이에 공감하고 동참하는 사람들도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정말로 돈을 벌고 싶다면 탐욕에 찌들어 돈 되는 정보만 죽어라 좇아다니는 천민 자본주의에 찌든 작태를 그만두고, 올바른 경제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할 수 있도록 기존 정치권을 압박하거나 아니면 아예 새로운 인물들이 제대로 정치를 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제대로 된 경제 정책이 집행되어 국가 경제가 탄탄해지면 그만큼 국민들은 윤택한 삶을 누릴 수 있으며, 경제가 어려워도 국민 개개인이 버틸 수 있는 힘이 강해진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재테크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만약 앞으로도 탐욕과 무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무능력한 기존 정치권이 우리 삶을 좌지우지하도록 방치한다면, '위기의 재구성'은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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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부동산 시장 미래 - 부동산 패러다임 시프트
김광수경제연구소 지음 / 더팩트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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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부산저축은행 사태가 결국 많은 사람들이 예상했던 대로 온갖 비리가 드러나기는 했지만 주범은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수사가 흐지부지되려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아무 것도 모르고 자식들 대학 보내고 시집장가 보내는데 한 푼이라도 더 보태려고 평생 동안 모은 몇 억 원이 모인 예금을 부산저축은행 관계자들과 그들과 연루된 정치인들은 자기 배를 불리고자 함부로 굴려댔다. 사람들은 극도로 분노하면서 관련자를 강력하게 처벌하라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항상 그랬듯이 처벌은 제대로 이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예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분노를 넘어선 허탈한 냉소만을 뿜어냈고, 정치권은 피눈물을 흘리며 국회의사당 앞에서 시위를 벌이는 부산저축은행 사태 피해자들을 위로한답시고, 5000만 원이 넘는 피해액도 모두 구제할 수 있게 하는 예금자보호특별법을 제정하겠다고 나섰다.


언제까지 이와 같은 어처구니없는 현상이 우리나라에서 되풀이되어야 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이런 웃을 수 없는 촌극은 실제로는 시장경제 질서를 유지할 생각은 전혀 없으면서 자기들에게 유리하거나 필요할 때만 시장경제 논리를 들이대는 기득권 집단과, 그들이 강변하는 온갖 논리를 반박하는데 필요한 올바른 지식과 상황 인식 능력을 갖추지 못한 국민들이 만들어낸 합작품이다. 수 십 년 동안 대한민국 사회를 지배한 개발연대 패러다임을 주도한 토건 세력은 기득권을 유지하고자 21세기 지식정보화 사회에 필요한 패러다임 전환과 사회 구조 개편을 철저하게 틀어막았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정치 민주화뿐만 아니라 경제 민주화도 쟁취해 건전한 시장경제를 구현할 필요가 있었던 국민들도 껍데기뿐인 정치 민주화에만 만족했을 뿐만 아니라, 그 너머를 보지 못한 채 탐욕에 눈이 멀어 기득권을 혁파하기는커녕 그에 편승하고자 발버둥 쳤다는 것이다. 그 잘못된 욕망이 가장 첨예하게 얽히고설킨 곳이 바로 대한민국 부동산 시장이다. 그릇된 욕망이 폭주하면서 온 나라가 삭막하고 황량한 공사판으로 돌변했으며, 사람들은 땀 흘려 일해 버는 돈이 지닌 가치를 잊고 ‘재테크’라는 이름으로 포장한 부동산 한탕주의에 빠져들었고, 한국경제는 헤어날 수 없는 수렁으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대한민국 부동산 시장이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를 정확하게 이해하면, 그 때부터 대한민국을 지배하고 있는 토건 세력과 그를 둘러싼 온갖 추악한 실체가 눈에 보이기 시작하며, 얼핏 보기에는 아무 연관도 없어 보이는 온갖 시사 문제가 퍼즐이 끼워 맞춰지는 것처럼 연결 고리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부산저축은행 사태도 결국 크게 보면 부동산PF 대출 부실이 가장 큰 원인으로서 2007년부터 시작된 수도권 초고층 주상복합 아파트 거품이 꺼지기 시작하면서 이어진 연쇄 작용에 따른 당연한 결과이다. 시장 논리로 볼 때 수요가 감당할 수 있는 가격을 훨씬 더 뛰어넘는 부동산 가격에 낀 거품은 어떻게든지 빠질 수밖에 없으며, 그 거품이 불러일으킨 신기루에 눈이 뒤집혀 부동산 대출을 받아 시세차익을 실현하려고 한 수많은 사람들은 엄청난 고통을 겪게 될 수밖에 없다. 그들이 대한민국 부동산 시장이 움직이는 원리를 객관으로 공부하고 이해했다면 그런 비참한 현실을 맞이하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 부산저축은행 사태를 예로 들자면 국민들은 역시나 썩어빠질 대로 썩어빠진 정치권을 언론이 신나게 자극성 보도를 쏟아내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질타하느라 항상 그랬듯이 목에 핏대를 세우면서도, 정작 부산저축은행 사태가 벌어진 근본 원인인 부동산 문제를 올바르게 이해하는 데는 이상할 정도로 무관심하기 짝이 없다. 이와 같은 모순된 태도는 결국 온 국민들에게 자기도 모르게 깊이 뿌리내린 뒤틀린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다. 언론, 정치, 사법, 기업……그 어떤 이들도 기득권을 놓치지 않고자 ‘재테크’라는 미명으로 포장한 자기 정당화 논리를 철저하게 세뇌시켜 국민들이 진실을 알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언론은 부동산 광고에 목을 매고, 정치인들은 부동산 시장을 쥐락펴락하는 건설업계가 바치는 정치자금에 목을 매고, 그에 질세라 국민들은 세뇌된 논리를 줄기차게 재생산하며 자기실현 예언을 열렬하게 신봉했다.


하지만 21세기 첫 10년 동안 휘몰아쳤던 부동산 광풍이 잦아들고 부동산 거품이 꺼지고 있다. 탐욕에 눈이 먼 모든 사람들은 여전히 부동산 불패신화를 부르짖으며 진실을 외면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시장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아무도 없다는 진실이 갈수록 분명해지고 있다. 가계 부채 총액이 1000조 원을 넘어서고, 내수 시장은 갈수록 쪼그라들고 있으며, 400만이 넘는 사람들이 ‘하우스 푸어’가 되어 죽지 못해 산다고 한탄하고 있다. 그 10년 동안 대한민국에서 처음으로 외부 입김에서 자유로운 민간 싱크탱크로서 김광수경제연구소는 이미 그와 같은 사태를 예견했고 줄기차게 한국경제를 좀먹고 있는 부동산 거품을 경고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경고를 귀담아듣지 않았고 결국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서 곳곳에서 파열음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미 김광수경제연구소에서는 대한민국 부동산 시장을 올바르게 바라보는 방법을 알려주고자 2010년 10월에 ‘부동산 시장흐름 읽는 법’이라는 책을 출간한 적이 있다. 이번에 출간된 ‘대한민국 부동산 시장의 미래’라는 책은 그에 이은 두 번째 부동산 전문서적인 셈이다. 그런데 첫 번째 책과 다르게 제목부터 예사롭지 않다. 방법론이야 누구든지 체계를 갖춘 연구 방법과 그를 뒷받침하는 논리와 자료만 가지고 있으면 얼마든지 구축하고 설명할 수 있지만, 미래를 예측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사회과학에서 다루는 주제인 사회 현상은 간단하게 풀 수 있는 선형 방정식이 아니며, 그에 따라 미래를 예측하는데 필요한 방정식을 세운다고 하더라도 어떤 해가 도출될 지 알 수 없다.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김광수경제연구소에서 발간하는 자료에 담겨 있는 뚜렷한 문제의식과 해박한 분석 논리를 그 불확실성과 어려움을 근거로 삼아 혹독하게 비난했다. 부동산 문제는 결코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둥, 연구소에 틀어박혀서 자료나 들여다보는 연구자들은 현실 감각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는 둥, 심지어 책 팔아먹으려고 부동산 덕분에 유지되고 있는 한국경제 성장세를 깎아내리려는 몹쓸 집단이라는 둥, 별별 해괴한 비난을 뒤집어써야 했지만 김광수경제연구소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어차피 경제학자는 경제 현상이 발생하는 시장을 움직이는 기본 원칙에만 충실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일 것이다. 또 정직한 지식은 결국 빛을 보게 된다는 오래 됐지만 많은 사람들이 잊고 있었던 그런 평범한 진리를 남들과 다르게 굳건히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설사 그렇게 빛을 보게 된다고 한들 이미 모든 것이 돌이킬 수 없는 파탄에 이를 지경이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지난 몇 년 동안 김광수경제연구소에서 발간한 자료를 읽으면서 느꼈던 점은, 아무리 객관성을 유지하려고 해도 사태가 정말 나빠지기만 하는데 합리성을 띤 경고가 먹혀들지 않는 현실을 개탄하는 문체나 구성이 시간이 흐를수록 조금씩 더 자주 나타난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부동산 광풍이 멈추지 않는다면 같이 헤어날 수 없는 늪으로 한국경제가 이미 너무나도 깊이 빠져들어 대안이나 해결책 또한 사라지는 지경에 이를 것이라는 예측이 현실이 되지 않기를 김광수경제연구소에서는 바랐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이미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고 그 양상과 원인이 이 책 ‘대한민국 부동산 시장의 미래’에 명쾌하게 설명되어 있다. 대한민국 부동산 시장 현주소, 총체 부실에 빠진 저축은행, 매매가 하락과 전세가 상승, 전국 주택 시장 동향 분석, 해외 부동산 거품 붕괴 사례……


그렇다고 해서 흔히 사람들이 비난하듯이 절대 현상 설명과 비판만으로 이 책 내용은 끝나지 않는다. 어떻게 행동하라는 대안 지침까지 내려놓지는 않았지만, 일단 지금과 같은 위기 속에서 상황을 냉철하게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는 내용은 모든 사람들에게 유용하다. 아직까지도 부동산으로 떼돈을 벌 생각에 빠진 사람들은 올바른 현실을 파악할 수 있고, 실제로 살 집을 사려는 사람들은 여전히 판치고 있는 해괴한 부동산 구매와 투자 논리에 빠지지 않고, 더 나아가 모든 국민들이 대한민국이 지금 어떤 현실에 처해 있으며 21세기에 한국경제가 활로를 찾으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단초를 얻을 수 있다.


이 책은 김광수경제연구소에서 생산하는 경제 분석 자료인 경제시평에서 부동산 특집으로 근래 한두 달 안에 발간된 자료를 많이 포함하고 있다. 지금까지 김광수경제연구소에서 출판한 경제시평 모음집은 자료가 구독자들에게 제공된 뒤 적어도 반년이 넘어서야 출간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점에 비추어 볼 때, 매우 뜻밖이라고 볼 수 있다. 김광수경제연구소를 책장수라고 깎아내리는 사람들이야 돈이 궁하니까 그럴 것이라는 치졸한 비난을 일삼기에만 급급하겠지만, 막상 책을 펼쳐서 김광수 소장이 직접 쓴 ‘펴내는 글’만 읽어보더라도 그런 비난이 얼마나 저급한지를 깨닫게 될 것이다. 대한민국 부동산 시장이 맞이할 미래를 한국경제도 함께 맞닥뜨릴 것이며, 혼란과 격변이 지배하는 미래에서 살아남고 싶다면 반드시 이 책을 읽어봐야 한다. 그리고 예전에 출간한 ‘부동산 시장흐름 읽는 법’과 이 책을 함께 읽으면 내용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며, 더 나아가 이 책 내용이 나오는 경제시평을 구독하면서 한국경제, 더 나아가 세계경제를 이해하는 식견을 함양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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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
황석영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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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5월에 중앙아시아를 순방하고 있던 이명박 대통령을 따라간 황석영이 이명박 대통령과 무슨 이야기를 주고받았는지는 사실 잘 모른다. 그렇기에 진보진영을 이끄는 대표 문인 가운데 한 명이었던 그가 이명박 정부가 그토록 선전하는 중도실용정부를 긍정하면서 중앙아시아, 몽골, 만주와 관련된 원대한 구상을 늘어놓다가 변절 논란에 휩싸이는 모습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보고자 수많은 사람들이 쏟아내는 비판을 접했지만, 알면 알수록 더욱 헷갈렸다. 이명박 정부가 구상하는 동북아 정책과 자기가 세운 구상이 일치하다면서 거침없이 이명박 정부 예찬론을 펴는 황석영을 보면서 도대체 중앙아시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만 더욱 궁금해졌다. 이문열이 촛불 장난 너무 심하게 하면 손을 데인다는 궤변을 늘어놓으면서 대한민국 문학계에서 존경받는 문인 대열에서 아주 간단하게 탈락하더니, 이번에는 남북 화해와 평화 통일에 문학이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을 지금까지 활발하게 논의해 온 작가 황석영이 지금까지 잘한 것이라고는 눈 씻고도 찾아볼 수 없는 이명박 정부를 옹호하면서 끝없는 나락으로 굴러떨어졌다.

 

더욱 놀라운 것은 거기에 덧붙여서 '작가는 좌우를 넘나들 권리가 있다', '기억력이 나쁠수록 좋은 작가'와 같은 발언으로 지극한 후배 사랑을 보여준 김지하 시인까지 사람들을 충격으로 몰아넣었다는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갑작스럽게 서거하면서 정국이 휘몰아치는 소용돌이에 휩싸여 온통 혼란스러운 마당에, 이제는 민주주의 정신을 문학으로서 뒷받침하는 문인들마저 이 모양 이 꼴이라니! 아무리 많은 글을 읽어보더라도 이명박 정부 편을 든 황석영을 이해할 만한 단초조차 발견할 수 없었다. 도대체 이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미 황석영은 1993년에 발표한 '사람이 살고 있었네'에서 지난 세월 동안 반공 논리에 물들어 모든 이념 지평 자체가 일그러져 버린 대한민국에서 인식하던 '괴물'이 사는 북한이 아닌, '사람'이 사는 북한 모습을 생생하게 전달한 적이 있다. 이 책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에서는 그보다 더 나가서 북한이 어떻게 자력갱생 체제를 꾸려나가고 있는지뿐만 아니라, 남북 통일에 문학이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를 다루는 통일문학론과 그와 관련된 여러 깊은 논의를 보여준다. 북한 문학과 사상을 이해하려면 주체 사상과 유물론을 반드시 이해해야 하기에, 그와 관련된 논의 또한 빠뜨리지 않는다.

 

플라톤이 이데아를 강조하면서 문학 같은 예술은 저급한 것이라고 치부하며 시인들을 추방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사실 그 진정한 까닭은 그 또한 문학이 지닌 크나큰 힘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걸 돌이켜 볼 때, 지금까지 대한민국을 지배한 독재 권력이 황석영을 좋지 않게 바라본 까닭 또한 그와 유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여러 사람들이 지적했듯이 60년이 넘는 오랜 기간 동안 분단 체제를 겪으면서, 통일에 관한 인식 지평 또한 상당히 격렬하게 요동치고 있다. 북한이야 철저한 세뇌 교육으로써 인민들을 친미 제국주의를 숭상하는 남한 괴뢰 정권을 몰아내는 선봉에 설 혁명전사로서 필요한 정신 무장을 시킬 것이다. 하지만 남한은 북한과 견주었을 때 민주주의가 상당히 진척된 만큼, 이미 그런 세뇌 교육 따위는 절대 통하지 않는다. 이명박 정부가 반공 독재 시대로 돌아가고자 온갖 만행을 저지르고 있지만, 만만치 않은 저항에 부딪치고 있는 사실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지닌 그런 힘을 분명히 믿기에 황석영 또한 독재 정권에 맞서 한평생을 살아온 것이며, '펜은 칼보다 더 무섭다'라는 속담을 몸소 실천해 온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도대체 중앙아시아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기에 대한민국을 다시 철권으로 통치하려고 하는 이명박 대통령이 늘어놓는 말뿐인 구상에 황석영이 그토록 깊이 공감했다는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이명박은 황석영에게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에 나오는 것처럼 북한 사람들이 먹고 살 수 있게 '비핵개방 3000' 정책을 펼치면 된다고 하고, 황석영은 이명박에게 '신화는 없다' 마지막 장에 나오는 동북아 관련 정책 구상을 실현하는데 협력하겠다고 한 걸까? 두 사람이 쓴 두 책에 나오는 내용을 이번 일과 연관 지어 생각할 때 그런 결론을 얻을 수 있기는 하다.

 

하지만 나는 그런 결론을 내리면서도 황석영을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 황석영이 지금까지 여러 저서에서 밝힌 북한론과는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비핵개방 3000' 정책 자체가 모순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과연 몰랐을까? 황석영이 그토록 비판한 독재 정권과 이명박 정부는 정말 다르다고 느꼈을까? 순진한 민주주의 운동가들이 생각하듯이 1987년 6월 항쟁이 이끌어 낸 6.29 선언이 대한민국 민주주의 발전에 중요한 획을 그었고 지금까지도 일정한 성과를 거두었기에, 이제는 다시 민주주의보다 더 큰 문제인 경제 성장에 치중해야 한다는 논리에 굴복하고 만 걸까?

 

정신 없이 쏟아지는 비판을 바라보면서 이건 아니다 싶었는지 아니면 뒤늦게 정말 반성한 건지는 황석영 본인 말고는 아무도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어쨌든 그는 이명박 정부가 북한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핑계로 PSI 전면 참여를 선언하자, '중도실용'에 걸었던 실낱 같은 희망마저 사라졌다고 이명박 정부를 다시 강하게 비판했다. 하지만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고 해도 이미 때는 늦은 것 같다. 윤성이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진보와 보수가 같이 일할 수 없는 건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이것저것 따져볼 때 이명박 정부가 보수 세력이라는데 절대 동의할 수 없는 터라 그다지 와닿지 않는다. 대한민국에서 진정한 보수 또는 우파는 찾아볼 수 없었다.

 

뜬금없는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쓸 구상을 처음으로 한 건 2006년 8월이다. 그 때 나는 2006년 해병대 정훈퀴즈대회에서 1등을 차지해 해병대 대표로 해군본부 정훈퀴즈대회에 참가할 정도로 정훈 교육을 착실하게 받고 있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자유민주주의라는 기준을 잡고 남한과 북한을 견준 뒤, 이 책에서 북한을 서술하는 논조를 비판하려고 했다. 그런데 막상 구상만 해 놓고 까맣게 잊고 있다가, 무려 3년에 가까운 시간이 흐른 뒤 황석영이 언론에 떠들썩하게 보도되면서 이 책이 다시 떠올렸다. 그 바람에 처음에 한 구상과는 전혀 다른 내용을 이 글에 집어넣게 되었다. '여러모로' 씁쓸하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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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왜 촛불을 끄셨나요 - 폭력과 추방의 시대, 촛불의 민주주의를 다시 묻는다 당비의생각 2
당대비평 기획위원회 엮음 / 산책자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2008년 8월을 기점으로 그토록 뜨겁게 여름밤을 달궜던 촛불은 저물어 갔다. 그렇게 쇠잔한 촛불을 바라보면서 안타까움을 금하지 못하고 있던 어느 날, 부산대학교 총학생회실에 근저당 형님이 찾아오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제 2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있던 나는 전공 원서를 덮고 한달음에 총학생회실로 뛰어 내려갔다. 8월까지 이어졌던 촛불 예비군 활동이 거의 중단되었는지라 예전에 같이 활동하던 형님 또한 한동안 뵙지 못했기 때문이다.

 

총학생회실에 들어갔더니, 정림이 누나, 진성이 형, 혜원이 누나, 수성이 형과 같은 주요 간부들이 근저당 형님이 준비한 슬라이드를 보면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 때 근저당 형님은 일단 부산에 있는 대학교 총학생회를 결집시켜서 한계에 처한 촛불에 새로운 동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연대 활동을 전개하려는 소망을 품으신 터라, 매우 열성 있게 슬라이드에 담긴 촛불 투쟁 발전 이론을 설명하고 계셨다. 촛불 시위를 대하는 이명박 정부와 수구 세력을 바라보면서 매우 분개하며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하겠다고 결심한 분만이 보여주실 수 있는 열정 넘치는 모습에 저절로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그 때 근저당 형님이 설명하셨던 촛불 투쟁 발전 이론은 매우 논리정연했기에, 지금까지 100여 차례 벌어진 촛불 시위가 띠는 양상을 체계를 갖춰서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이 책 '그대는 왜 촛불을 끄셨나요'를 읽으면서 그 안에 담긴 온갖 분석이 지니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이해하는데도 유용했다. 그렇기에 일단 여기에 그 이론을 간략하게 설명한 뒤에, 그에 비추어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생각한 바를 제시하고자 한다.

 

* 이 이론에서 제시하는 시제(과거, 현재, 미래)는 내가 이 강의를 들었던 2008년 10월을 현재로 잡은 것이다.

 

 

1. '촛불 - 그 첫 번째 이야기(과거)' = 'Candlelight - Season 1(The Past)'

 

2009년 4월 15일에 교육과학기술부에서 학교 자율화 정책을 발표한 뒤, 놀랍게도 10대 여고생들이 처음으로 거리로 뛰쳐나와 목소리를 높였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이들이 누구보다도 더 당당하게 자기 의견을 거리에서 밝히는 모습을 본 시민들은 부끄러움을 느꼈다. 얼마 지나지 않아 2009년 4월 18일에 발표된 한미 쇠고기 졸속 협상 결과는 시민들을 경악 속으로 몰아넣었고, 이 정부가 지닌 문제점이 얼마나 심각한지 깨달은 시민들은 더는 10대들에게 부끄럽지 않고자 이명박 정부를 규탄하기 시작했다.

 

시민들이 벌이는 집회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광우병 괴담론'만을 설파하던 이명박 정부를 보면서, 시민들은 단순히 한미 쇠고기 협상 그 자체만 문제로 삼지 않고, 이명박 정부가 지니고 있는 근본 문제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촛불 집회는 갈수록 규모가 커졌고, 그 안에서 다뤄지는 주제 또한 매우 다양해졌다. 결국 청와대를 태울 기세로 타오르는 촛불 수 십 만 개 앞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형식으로라도 고개를 숙여야 했다.

 

하지만 다양한 주제를 포괄해서 이명박 정부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연대 조직을 구성하지 못하는 바람에, 온갖 논란만 촛불 안에서 거세져 촛불이 타오르는 동력을 떨어뜨렸다. 이뤄야 할 것은 많았지만 촛불만 들고 청와대로 계속 돌격한다고 해서, 아예 귀가 없는 듯한 이명박 정부가 달라질 것이 무엇이 있겠느냐는 회의론이 우세해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엠네스티 인권침해 감시단이 한국을 떠난 뒤 다시 반정부 세력을 격렬하게 탄압하기 시작하면서, 촛불 집회만으로는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는 의견이 더욱 강하게 제기되었다. 그렇게 촛불은 차츰 사그라들었다.

 

 

2. '촛불 - 그 두 번째 이야기(현재)' = 'Candlelight - Season 2(The Present)'

 

촛불 집회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들은, 촛불 집회가 사실상 실패로 돌아가자 그 까닭을 냉철하게 분석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이 무엇인지도 전망했다. 100만 명이나 모였는데도 그냥 고개 한 번 숙이고 권좌에서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는 이명박 대통령을 보면서, 사람들은 이명박 대통령을 끌어내리기보다는 이명박 대통령을 비호하는 한나라당과 친일 수구 세력이 권력을 잡지 못하도록 하는 좀 더 근본에 가까운 처방을 내려야 한다는데 의견을 모았다. 게다가 이명박 정권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촛불 집회에 관해 내놓는 의견을 분석한 뒤, 무작정 촛불만 들고 정권 퇴진을 외치지 말고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 지지율을 떨어뜨리고자 다양한 사업을 실시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그러면서 촛불 집회가 한창일 때 각자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던 이들이 지역별, 단체별, 분야별로 나누어져 온갖 강연회, 폼보드 전시회, 영상 상영, 바른언론운동, 자원 봉사, 교양/학습모임 운영, 전단지 배포, 1인 시위 따위 온갖 사업을 진행했다. 대한민국이 지니고 있는 온갖 모순에 관해 사람들이 깨달아야지, 자기 또한 수구 세력들이 벗겨먹고 부려먹을 현대판 노예 수준에 지나지 않으면서 자기를 봉으로 아는 수구 세력을 죽어라 지지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다시는 벌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렇게 다양한 사업을 전개하면서도, 틈틈이 열리는 온갖 집회에는 웬만하면 빠지지 않고 참석해 힘을 보탰다. 아무리 집회로는 한계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명박 정부에게 시민들이 여전히 저항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으로서 집회는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한 단체에서 주최하는 집회에 다양한 단체들이 모여서 한 목소리로 이명박 정부를 비판하는 것은, 몇 번이고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연대의식을 강조하는 좋은 효과를 냈다.

 

 

3. '촛불 - 그 세 번째 이야기(미래)' = 'Candlelight - Season 3(The Future)'

 

수많은 사람들이 각 지역과 분야에서 다양한 사업과 투쟁을 벌인 끝에, 이명박 정부가 지니고 있는 근본 문제와 그 심각성을 대한민국 국민 대부분이 깨닫게 된다. 그 뒤 초기 촛불 집회 때 드러난 문제점을 보완하는 작업이 대부분 끝나고, 사업과 집회가 조화를 이룬 새로운 촛불 동력으로서 아고라에서 그토록 꿈꾸던 거대한 집단 지성이 나타난다. 그 집단 지성은 대한민국에서 수구 세력이 더는 발을 붙이지 못하게 이명박 정권뿐만 아니라 그 존립 기반 자체까지 초토화시킨다.

 

 

지금까지 제시한 이 세 단계를 하나로 묶어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이명박 정부가 저지르는 실정 규탄하며 촛불 집회 시작 -> 이명박 정부와 수구 세력이 온갖 희한한 논리 들이대며 촛불 집회 탄압 -> 촛불 규모 확대 -> 촛불 집회 탄압이 더욱 거세짐 -> 촛불 규모 축소 -> 촛불 집회 한계와 좀 더 근본에 가까운 운동 방향 인식 -> 이명박 정부와 수구 세력 실체를 폭로하는 갖가지 사업 전개 -> 민주주의 의식 고양과 이명박 정부와 수구 세력 퇴진 분위기 조성 -> 예전과 다른 훨씬 더 이론으로든 결속력으로든 강하게 무장된 촛불 민주주의 운동 시작 -> 이명박 정부 퇴진 -> 한나라당과 뉴라이트로 대표되는 수구 세력 소멸 -> 정권 세대 교체와 진정한 민주주의 정부 수립

 

 

그러나 역시 현실은 이론과는 다르게 전개되었다. 위에서 설명한 틀을 갖다대자면 이미 '촛불 - 그 두 번째 이야기(현재)' = 'Candlelight - Season 2(The Past)'에서부터 문제가 생겼다고 봐야 한다.

 

예전에는 촛불 집회에 모인 그 자체만으로 아무리 지금까지 이념이 달랐다고 하더라도 어떻게든지 유기체처럼 움직일 수 있었다. 하지만 국민들에게 민주주의 의식을 일깨우고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이 어떤 실체를 띠는지 깨닫게 하려는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각 단체마다 자꾸만 문제가 생겼다. 사람들이 그토록 강조하던 새로운 민주주의 생명체로서 촛불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이 보여주던 그 유기성과 역동성, 그리고 그 덕분에 빛났던 개념들이 알게 모르게 사라지고 힘을 잃어버린 것이다.

 

사실 여기서부터 글을 쓰기가 극도로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다. 초기 촛불 집회에 수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논리로 그 뜻을 부여했다. '집단 또는 대중 지성', '웹 2.0에 기반한 민주주의', '지금까지 찾아보지 못한 새로운 지성체'……그렇게 찬양받던 촛불 집회가 사실상 막을 내린 뒤 이제는 냉철하게 비판받아야 할 처지에 이르면서, 예전에 우리가 자랑스럽게 여기던 그런 개념들 또한 그저 한 때만 유효했던 것이었다고만 단정하고 넘어갈 것이 아니라, 새롭게 비판받아야 하는 신세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대개 이런 논리를 제시하면 분명히 거부 반응을 보여주는 사람들이 있다. 예전에 잘못했던 것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설파하면, 옛날과 지금은 다르다든가 어떻다든가 온갖 희한한 논리를 들이대면서 그들이 믿었던 빛바랜 가치들을 떼어놓기 힘들어한다. 물론 나 또한 그런 면이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지만, 그런 면이 단순히 개인에게만 해를 끼치는 것과 다른 사람, 조직, 단체, 심지어 국가에도 해를 끼치는 건 분명히 차원이 다른 일이다. 그렇기에 내가 관련되어 있든 그렇지 않든 따질 것은 철저하게 따지고 넘어가야 한다. 특히 나와 연관되어 있는 것은 더욱 냉철하게 따져야 한다.

 

나는 지난 한 해 동안 민주주의를 살리고자 여러 단체에서 활동했다. 처음에는 혼자서 촛불 집회에 참가하다가 7월에 촛불 예비군에 들어갔고, 촛불 예비군이 활약할 공간을 잃어버린 뒤에는 부경 아고라에 몸을 담았다. 그 가운데 내가 가장 많은 신경을 쏟았던 곳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부경 아고라이다. 그 안에서 나는 전 촛불 예비군이었다는 까닭으로 처음부터 호응을 얻었고, 본격으로 부경 아고라 사업에 참여하면서부터는 그 안에서 활동하던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하지만 그 관계는 오래 가지 못했다.

 

인정하기 싫은 현실이지만, 분명히 촛불은 꺼졌다. 2008년과는 너무나도 다르게 지금 상황에서는 집회다운 집회를 찾아보기가 힘들다. 물론 집회가 아닌 사업으로 이명박 정부에 대항하는 추세를 모르는 건 아니지만, 그 사업 규모가 너무나도 초라해 보인다. 이명박 정부와 수구 세력을 몰아내고자 어떻게든지 힘을 합치고 연대하자는 목소리는 공허하기 짝이 없다. 여기저기에서 찢어진 단체들은 그저 민주주의 사업과는 전혀 상관없는 내부 문제 때문에 싸움만 일삼는다.

 

나 또한 그 싸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격렬한 논쟁을 벌였고, 그 결과는 항상 그다지 좋지 않았다. 그러다가 결국 부경 아고라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올해 7월에 우연히 다시 들어간 그 곳에서 나는 예전에 내가 주장했던 바를 다시 역설했지만, 예전과 마찬가지로 공허하기 짝이 없는 논쟁만 일삼아야 했다. 일은 제대로 해 보지도 못한 채 제풀에 지쳐서 부경 아고라에서 다시는 활동하지 않을 것이라고 스스로 선언하고 말았다.

 

부산에서 시민들이 주체가 되어 민주주의를 살리는 과업을 하는 곳이 부경 아고라와 부산희망촛불 말고는 찾아보기 힘든 데다가, 둘 다 나에게는 껄끄러운 곳이 되어버렸다. 곧 다시는 부산에서 촛불을 드는 사람들과는 사회 운동을 함께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 누구도 나를 비난하지 않는다고 사람들은 이야기했지만, 나는 그 말을 절대 믿지 않았다. 그토록 목소리를 높여도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는 교묘한 견제와 껄끄러움을 누구보다도 더 절실하게 부경 아고라에서 체험했다. 그 안에서 나는 더욱 옹졸해지고 초라해졌다.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결국 나는 촛불을 끄고 말았다. 그 뒤 이 책 '그대는 왜 촛불을 끄셨나요'를 읽으면서 지금까지 나와 이 사회에 엄청나게 큰 영향을 끼쳤던 촛불 집회에 관한 온갖 단상을 접했다. 촛불 집회가 다룬 주제는 매우 많았기에, 그 주제마다 한 사람씩 나서서 많은 비판을 가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조금씩 지쳤다. 책을 다 읽고 난 뒤에는 힘이 다 빠져버려서 멍하니 침대에 누워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토록 활기차고 모든 더러운 것을 쓸어버릴 것 같았던 촛불 집회 안에 그토록 많은 한계가 도사리고 있었다고 하니, 솔직히 그 안에서 그렇게 열심히 뛰어다녔던 사람으로서 믿을 수 없었다. 결국 대한민국은 그들 위에 있는 이명박 정부와 그 권력층이 계획하는 술책에 굴복하고 이리저리 끌려다닐 수밖에 없는 걸까.

 

흔히 글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 가운데 한 가지가 일관성이라고 한다. 하지만 자크 데리다는 모순과 불완전함이 글 자체에 반드시 나타나는 고유한 특성이라고 했다. 과연 자크 데리다가 한 말이 이 사회에도 적용되는 것일까. 우리가 상식이라고 믿었던 것들이 따지고 보니 결국 상식과는 거리가 먼 우리들만이 상식이라고 생각했을 뿐인 것들이었던가. 이 책에서 비판하는 촛불 집회가 지닌 문제점을 하나씩 이해하다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많이 든다.

 

대한민국에서 촛불을 들었던 시민들이 그랬다면, 부경 아고라에서 나는 어땠는가. 내가 상식 문제까지 거론하고 싶었을 정도로 이상한 쪽으로 이야기가 흘렀던 논쟁 사례를 여기에 일일이 들면서 비판하고 싶지는 않다고 이야기하는 내가 뭔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그 잘못을 알고 있기에 나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다고 단정하는 어처구니없는 짓을 저지르지는 않았을까.

 

노무현 전 대통령에 이어 김대중 전 대통령도 서거하면서, 고인들이 한평생 구현하고자 힘썼던 민주주의를 살리고자 다시 뭉쳐야 한다는 논리가 힘을 얻고 있다. 민주당에서는 이번에 서거한 두 전 대통령 영정을 같이 걸어놓으면서, 그동안 내부에서 벌어졌던 분란을 참회하는 듯한 인상을 풍겼다. 지금 상황에서는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에 대항할 수 있는 단 하나뿐인 정치 세력이 민주당인지라 응원해 줄 수밖에 없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이 갈등을 빚을 때 지금 민주당에서 지도부로 있는 의원들이 보여준 작태를 생각하면 결코 마음이 편하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민주당을 지지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들만이 권력 암투 현장에서 수구 세력을 막을 수 있는 단 하나뿐인 세력이기 때문이다. 결국 그렇게 따지면 부경 아고라 또한 마찬가지 아닐까. 나 또한 내가 가지고 있는, 결국 따지고 보면 옹졸하기 짝이 없기만 한 이 적개심을 버리고 부경 아고라에서 다시 활동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근근히 사업을 이어가고 있는 단체들 또한 예전에 어떤 일이 있었든 간에 연대해서 이명박 정부와 수구 세력과 맞서 싸워야 하지 않을까. 대운하 착공과 양산 재보선 선거가 40여 일밖에 남지 않은 지금 상황에서 연대가 지니는 중요성은 더욱 크지 않을까.

 

하지만 그런 고민을 한다 하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지금 상황에서는 결국 아무 것도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결국 나는 부경 아고라를 비판할 자격은 없었던 것 같다. 그랬기에 부경 아고라에서 나갈 것이면 부경 아고라에 관해서 왈가왈부하지 말라는 소리가 이곳저곳에서 들렸던 것이리라.

 

그래서 나는 결국 입을 닫았다. 그리고 정말로 촛불을 놓았다. 4기 카페지기를 뽑으려고 하는 부경 아고라는 예전에도 그랬듯이 '어떻게든지' 굴러갈 것이다. 그렇게 '어떻게든지' 유지될 부경 아고라에서 내가 지금까지 저지른 과오는 여전히 남아 있으며, 그런 과오를 인정하지 못하고 여전히 옹졸하게 버티고 있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더는 없다. 그 자괴감은 아마도 영원히 이어질 것이다. 아. 이런 내가 미친 듯이 싫다. 지금 이런 내가 밉다.

 

 

"그대는 왜 촛불을 끄셨나요."

 
"내가 촛불을 들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셨나요."


"내 생각을 관철시키려는 불 같은 성격과 독단만 있을 뿐, 어떤 일을 차근차근 해 나가는 의지 따위는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어느 조직에 들어가든지 해만 끼칠 뿐입니다."

 
"정말 촛불을 놓으실 건가요."


"언젠가는 다시 들 겁니다.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사람으로서, 촛불을 떠나서는 절대 살 수 없습니다. 어디에선가 분명히 일은 하고 있겠습니다. 꺼진 촛불은 어떻게든지 다시 살려야 합니다. 그럼 나중에 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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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파? 눈먼 돈, 대한민국 예산 - 256조 예산을 읽는 14가지 코드
정광모 지음 / 시대의창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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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면으로 가려고 80번 버스를 탔다. 80번 버스를 타고 부산대학교에서 서면 방향으로 조금만 가면 온천장이 나온다. 온천장 곳곳에서 보도 벽돌을 갈아끼우는 공사가 한창 이어지고 있었다. 공사 현장 주변에서는 돌가루가 펄펄 날렸고, 인부들은 땀을 흘리면서 열심히 벽돌을 나르다가 양푼이 비빔밥으로 점심을 먹었다. 돌을 자르는 기계가 시끄러운 소리를 냈고, 지나가는 사람들은 차와 부딪칠까봐 조심스럽게 인도와 차도 경계를 걸었다.
 

워낙 보도 벽돌 교체 공사를 자주 본 탓인지, 이제는 보기만 해도 짜증이 밀려온다. 하지만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해 보면, 그 짜증이 괜한 짜증이 아니라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여기에서 괜한 짜증이 아니라는 말은, 공사 때문에 시민들이 보도를 걸어갈 때 단순히 불편해서 불만을 쏟아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문제는 그 보도 벽돌 교체 공사를 그렇게 자주 볼 수밖에 없는 까닭에 있다.

 

왜 그렇게 보도 벽돌을 천편일률로 갈아끼우는 공사를 해마다 일정한 시기만 되면 밥 먹듯이 하는 걸까? 오세훈 서울특별시장처럼 최소한 여성용 굽 높은 구두 뒷굽이 끼이는 문제를 막고자 보도 벽돌 틈새를 아예 없애버리는 정도라면 그나마 시민들에게 호평을 받았을 것이다. 그런 최소한 심의도 없이 멀쩡한 벽돌을 갈아엎어 예산을 헛되이 쓰고 시민들을 불편하게 하는 한심한 작태는 도대체 왜 벌어지는 것일까?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를 해 보면 대부분 왜 그런 일이 일어나는지 알고 있는 듯하다. 분기마다 기획예산처에서 심의한 대로 각 행정 단체가 예산을 배정받는데, 예산 집행 실적에 따라 다음 분기에 배정될 예산 총액이 정해진다. 만약 예산 집행 실적이 저조해서 예산이 남았다면, 새로운 예산이 집행되기 전에 반드시 그 예산을 중앙 정부에 다시 돌려줘야 한다. 그리고 지난 분기보다 더 적은 예산을 배정받게 된다.

 

예산 집행 합리화 정책은 분명히 칭찬할 만하다. 하지만 그 정책이 의도하는 대로 정말 국가 발전과 시민 복지 향상에 필요한 정책만이 실행되고, 그 실행 계획이 이치에 맞게 짜여 예산이 절약되고 있는가?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렇지 않다. 위에서 이야기한 대로 보도 벽돌 교체 공사를 하고 그에 따라 예산을 배정하면, 분명히 예산은 집행된 것이다. 그렇기에 집행 실적 그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그 집행 내역이 얼마나 타당한 것인지 상부 기관에서는 따져보지도 않는다는 말인가? 예산 집행 결과 보고를 받는 상부 기관이 보통 시민들도 다 알고 있는 문제점을 하부 기관에서 올라오는 보고서를 보고 판단할 능력조차 없다는 것인가?

 

명백한 예산 낭비 사례는 기획예산처 자체 감찰단이나 감사원 같은 상부 기관에서 분명히 지적하는 게 원칙이다. 지적한 뒤에는 다음 분기 예산 편성 때 예산 총액에 반영하는 식으로 반드시 벌칙을 줘야 한다. 그렇게 남는 예산은 국가에 위급한 일이 생기거나 국가 재정 정책이 변동되면서 급히 더 많은 자금을 끌어와야 할 경우가 생길 때 요긴하게 활용할 수 있는 비상 국고로서 비축할 수도 있으며, 그 밖에도 여러 가지 방안을 마련해 유익하게 쓸 수 있다.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예산 낭비 방지 방안은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사실 경제에 관해서는 '경제학원론'도 제대로 모르는 거의 일자무식에 가깝기 때문에, 경제신문을 읽더라도 여전히 그 복잡한 내용을 명쾌하게 이해할 수 없다. 과학과 마찬가지로 경제도 주요 교양 서적과 주요 인터넷 경제 카페에 올라오는 게시물을 부지런히 읽을 뿐이다.

 

그런데 그 수많은 글 가운데 국가 예산과 관련된 내용은 그다지 많지 않다. 내가 자주 가는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은 내가 알고 있는 경제 관련 인터넷 사이트 가운데 가장 정확하고 수준 높은 토론이 이루어지는 곳으로 알고 있는데, 이 곳에서 가장 많은 게시물이 올라오는 '경제현안', '부동산정책'란에서는 예산과 관련된 게시물은 찾아보기 힘들다. 설사 게시물이 올라온다고 하더라도 국가 예산에 관해 세밀하게 파고든 게시물은 찾아보기 힘들다. 대개 언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혈세를 낭비하는' 온갖 전시 행정과 정책을 향한 여러 가지 지적과 비판을 담고 있을 뿐, 그 예산 기획과 집행 과정이 어떻게 이루어지며 그 문제점은 무엇인지 밀도 있게 포착한 게시물은 찾아보기 힘들었던 것 같다. 혹시 누군가가 자료를 제대로 찾아보지 않고 글을 쓴다고 실제 사례를 제시하면서 질타한다면 할 말이 없다만, 어쨌든 내가 읽어본 게시물 범위 안에서는 그렇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인터넷 서점에 이 책 '또 파? 눈 먼 돈 대한민국 예산'이 올라오자마자 나는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책을 사서 한 장씩 넘길 때마다 감탄이 저절로 나왔다. 흔히 언론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는 갖가지 예산 관련 비판을 몇 가지 주요 주제로 묶어서 그 핵심 논리에 자기 생각을 덧붙여서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솜씨며, 내가 지금까지 가장 궁금하게 여기고 있던 국가 예산과 관련된 온갖 구조 문제에 관해 저자 정광모가 정부에서 일한 경험을 토대로 명쾌하게 파헤친 논리력이며, 나무랄 것이 하나도 없다.

 

이 책에 나오는 여러 가지 내용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저자가 제시하는 '예산실명제'이다. 예산과 관련된 모든 정책 입안과 집행 과정에 실명을 기재한 사람이 책임을 지도록 하는 제도이다. 승객들에게 안전 운전과 친절한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운수업계에서 운행실명제를 실시하는 것과 같은 원리라고 볼 수 있다. 난폭운전을 하거나 승객에게 친절하지 않은 기사를 고발하고 싶으면 자기가 탄 버스 정보를 회사에 알려주고 문제를 지적하면 되는 것처럼, 예산안 계획과 집행에서 어떤 문제가 생겼다면 그 계획과 집행을 담당한 사람에게 책임을 물으면 되는 것이다.

 

이는 국가 예산을 기획하고 집행하는 고위 공무원 사회가 지니고 있는 온갖 병폐를 송두리째 개혁할 수 있는 매우 좋은 방안이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대한민국 공무원 사회가 지닌 막강한 권력이 보여줄 수밖에 없는 치부를 건드릴 수밖에 없는 것이기에, 그만큼 저항 또한 극렬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실제로 이 좋은 제안이 현실로 옮겨질 가능성을 짐작하기도 조심스럽다. 그렇기에 책을 읽으면서 감탄사를 연발하면서도 이 책에서 지적하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어떻게든지 개혁하려고 하지 않는 부패한 기득권 구조에 분개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특히 대한민국 예산을 좌지우지하는 고위 공무원 사회가 저지르는 작태를 고발한 CHAPTER 13~14를 읽다 보면, 체념하는 버릇을 지닌 사람들은 또다시 한숨만 푹푹 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실 내가 앞에서 이야기한 것보다도 더 심각하게 생각하는 문제는, 이렇게 값어치 있는 책이 주요 서점에서 그다지 많이 팔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항상 언론은 '혈세 낭비' 논란을 부추기고 사람들은 그에 분개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정작 그 혈세가 마구잡이로 쓰이는 실태와 그 까닭을 명민하게 분석해 놓은 자료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다. 그렇게 분개하면서도 막상 그런 현실 속에서도 사람들이 어떻게든지 콩고물을 챙겨먹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이 드는 걸 보면, 내가 대한민국에 얼마나 극심한 환멸을 느끼고 있는지 판단하기가 그다지 어렵지 않다.

 

하지만 나 또한 그렇게 화를 내면서도 결국 어쩔 수 없이 그 안에서 살아가는 대한민국 국민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어떻게든지 적응하면서 극히 어렵더라도 '점진적' 개혁을 해 나가는데 조금씩 보탬이 되어야 하는 게 사실이다. 사회 곳곳이 조금씩 바뀌어 나가는 희망찬 증거를 끊임없이 찾으면서, 이 책에 나오는 예산실명제가 실행되고 예산 기획과 집행 과정이 갈수록 투명성과 합리성을 더욱 많이 띠는 모습을 볼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리고 이 책 표지에 나오는 그림이 풍자하는 것처럼 제발 멀쩡한 보도 벽돌 좀 그만 파내고, 특히 이 미친 정부에서 추진하는 대운하 또한 첫 삽조차 뜨지 않기를 간곡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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