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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
스펜서 존슨 지음, 형선호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고등학교 3학년 때 처음으로 제대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목표로 삼았던 육군사관학교에 지원했다가 1차 학과 시험에서 보기 좋게 낙방했다. 어느 대학교라도 가 보겠다고 계속 공부는 했지만, 가장 점수가 잘 나오던 한국어와 영어를 망치는 바람에 수능 점수가 형편없었다. 꼼짝없이 재수를 해야 할 판이었다. 대학 잘 갈 운은 지지리도 없는 것 같았지만, 다행히 부산대학교 영어교육과에 합격한 덕분에 그 해에 내가 문창고등학교에서 가장 좋은 대학교에 간 수험생이 되었다.
그 덕분에 문창고등학교 재단 이사장님을 뵈러 서울에 갈 수 있었다. 같이 올라간 친구들과 이사장님을 뵙고 강연을 듣고 여러 가지 중국 요리로 점심을 먹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선물로 책 한 권을 받았는데, 희한하게도 책 제목이 '선물'이었다. 그 당시에는 책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그 때 매우 유명했던 이 책을 그냥 시큰둥하게 받아들었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다른 친구들은 점촌에 도착한 뒤에 여고생 일행과 어떻게 놀지 생각하고 잡담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나는 이 책을 읽고 느낀 것을 정리하느라 말을 거의 하지 않았다. 다 읽는데 30분 정도밖에 안 걸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 노인과 한 젊은이가 겪은 일을 어느 회사 직원이 다른 직원에게 이야기해 주는 구조로 전체 이야기가 짜여 있다. 이야기가 주는 결론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옛날, 오늘날, 앞날 사이에 어떠한 관계를 정립하고 살아가는 것이 인생에 좋은지 알려준다. 책에 나온 그대로 써 보면 다음과 같다.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는가는 우리의 소명이 무엇인가에 따라 다르다.
행복해지고 성공하고 싶을 때 현재를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과거보다 나은 현재를 원할 때 과거에서 배움을 얻어야 한다.
현재보다 나은 미래를 원할 때 미래를 위한 계획을 세워야 한다.
우리가 소명을 갖고 일을 하고 살아갈 때
그리고 바로 지금 중요한 것에 집중하고 몰두할 때
우리는 더 잘 이끌고, 관리하고, 지원하고, 친구가 되고, 사랑할 수 있다.
대개 사람들은 바람직한 인생을 쉽게 말한다. 그리고 그렇게 살려면 필요한 조건도 아주 쉽게 이야기한다. 누구나 이 책에 나오는 노인과 젊은이처럼 삶을 꾸려 가는데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실제로 그런 조건을 지키면서 바람직한 삶을 살려고 힘쓰는 사람들은 그다지 많지 않다. 바람직한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은 단지 전자구름과 같은 흐릿하고 뿌연 이미지로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을 뿐이다. 그 이미지가 행동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나도 자기애와 자기를 개발하려는 의욕은 전혀 모자라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머릿속에 막연하게 남아 있었을 뿐 행동은 도무지 그렇지 않았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10여 년이나 되는 세월을 헛되이 보냈다. 다행히 10대 후반부터 몇 가지 계기가 찾아와 지금 이 정도나마 자기를 가꾸면서 살고 있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고등학교 3학년 때가 그립다. 물론 아쉬운 점이 많기는 하지만, 그나마 지금까지 가장 열심히 살았고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던 고등학교 3학년을 마친 뒤 읽었던 책이라서 그런지 여전히 기억 속에 뚜렷하게 남아 있다. 이 책을 다시 뒤적거리다 보면 예전으로 돌아가 그 때 내가 사람들에게 보여줬던 엄청난 능력이 살아나는 듯 하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당위론에 너무 치우쳤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는 것이다. 하긴 그렇게 따지면 자기 개발과 관련된 모든 책이 다 그렇다. 아무리 뚜렷하고 자세한 지침이 많이 있어도 결국 실천하는 건 자기 나름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