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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미치 앨봄 지음, 공경희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2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루게릭 병'이라는 무서운 병을 내가 처음 안 때는 중학교 3학년 때였다. '시간의 역사' 따위 위대한 저서를 남긴 가장 위대한 현대 물리학자 가운데 한 명인 스티븐 호킹 박사에 관한 이야기를 읽었다. 거기에서 스티븐 호킹 박사가 '루게릭 병'에 걸린 뒤에도 계속 연구에 정진했다는 이야기를 읽고 어느 정도 감명받았던 기억이 난다. 얼마 뒤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를 읽었는데 거기에도 머리가 좋아지는 방법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서 스티븐 호킹 박사 이야기가 잠깐 나온다. 그는 대학 공책 한 권 분량 계산이 들어가는 방정식을 암산으로 거뜬히 푼다고 한다. 나도 나중에 그럴 수 있을 정도로 두뇌 훈련을 꾸준히 하겠다고 잠시나마 마음을 먹었지만, 실제로 훈련을 하지는 않았다.
사실 대학교에 들어온 뒤 병에 걸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는 그것을 극복하고 자기가 하던 일을 계속하거나 다른 일을 해내는 과정에 주목했다. 모자란 것이 하나도 없으면서도 그토록 시간을 헛되이 보내고 많은 것들을 놓치는 내 모습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대로 가다가는 정말 대학교에서 아무 것도 제대로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쨌든 시간이 흐르면서 내가 지니고 있는 부족한 점을 보완하고 나쁜 점을 어느 정도 극복하는데 성공했다. 그 성공을 바탕으로 더욱 많은 책을 읽고 더욱 많은 글을 쓰는데 힘을 쏟았다. 자기 안락과 절대 타협하지 않는 사람을 꿈꿨다. 죽음을 눈 앞에 두고서도 몸이 조금 회복되자 바로 연구를 계속하여 정의론을 국제 관계 차원으로 확대하여 적용한 '만민법'을 발간한 존 롤스 같은 학자를 본받으려고 힘썼다. 하지만 그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사실 집에 갔다가 책꽂이에 있는 아무 책이나 뒤적거리다가 제목이 끌려서 읽었다. 이 책에 관해 원래 알고 있던 것은 하나도 없었기에 처음에는 학구열에 불타는 한 교수 이야기인줄 알았다. 나는 책표지에 있는 글자도 제대로 훑어보지 않고 바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몇 분 뒤, 착각은 완전히 깨졌다.
내 생각대로라면 이 책에 나오는 모리 교수는 반드시 생명을 앗아가는 무서운 병에 걸린 뒤에도 끝까지 학구열을 불태우다 결국 큰 성과를 하나 남기고 죽는 인물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는 루게릭 병에 걸린 뒤 연구를 그만둔다. 공부를 완전히 그만두고 그는 삶을 더욱 많이 즐기기 시작한다.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관찰하고 사소한 것들이 얼마나 큰 뜻을 지니고 있는지 깨닫는다. 몸에서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부분이 더욱 많아지고 죽음이 가까워질수록, 모리는 세상이 보여주는 아름다움을 더욱 많이 느낀다.
모리에게 가르침을 받으며 공부했던 한 제자가 그런 그를 지켜본다. 열심히 일하면서 돈은 분명히 많이 벌었고 나름대로 성공했지만, 뭔가 빠진 것 같은 허전한 느낌에 시달린다. 그는 바쁜 삶 속에서 까맣게 잊고 있었던 은사인 모리 교수를 다시 만나면서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는다. 현대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지만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할 수 있는 진리인 그것. 더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안타까운 것은 단 한 가지뿐이다. 감정을 제거해야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나는 컴퓨터가 보여주는 효율에 주목한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미친 짓을 내가 기꺼이 하려고 한 까닭은 지나친 나머지 나를 망친 자애와 합리론이였다. 나는 모리가 말하는 것을 제대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고, 책을 읽을 때도 그다지 큰 감명이 없었다. 독후감을 쓰는 것이 아무런 뜻이 없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단지 나에게 이런 문제가 있다는 것만 인식하고 그것을 고치려고 힘쓸 동기를 줬다는 사실로 만족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