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정복한 남자 류비셰프
다닐 알렉산드로비치 그라닌 지음, 이상원.조금선 옮김 / 황소자리 / 200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부산대학교에 합격한 뒤 대학교 입학하기 전에 자기개발에 몰두하며 시간을 보내려고 나름대로 노력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석 달 동안 내가 한 일은 예상보다 훨씬 적었다. 남은 것은 많았지만 허전했다. 그동안 읽은 책 몇 십 권에서 얻은 정보, 내가 쓴 글 몇 십 편, 여행하면서 보고 듣고 느낀 것들. 여행 다니면서 찍은 천 장이 약간 넘는 사진. 공책 다섯 장에 적혀있는 영어 문장. 이게 다다. 석 달이면 아주 많은 시간이다. 그런데 나는 무엇을 하며 그 시간을 보냈는지 생각해 봐도 전혀 알 수 없었다. 단지 이 보잘것없는 결과를 내려고 내가 석 달 동안 열심히 살았는가? 곰곰이 생각해 보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흘려보낸 시간이 너무 많다. 내가 예전에 무슨 일을 했는지 전혀 알 수 없다. 뜬구름 흘러가듯이 보낸 시간은 절대 돌아오지 않고 나를 허무에 젖게 한다. 나만 그러는 건 아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덧없이 지나간 시간을 생각하며 헛되게 웃곤 한다. 시간은 정말 우리가 정복할 수 없는 걸까?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영원히 시간의 노예가 되어 살아야 할까? 나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믿었다. 그런데 우연히 내게 그 믿음을 아주 단단하게 굳히게 해 주는 계기가 찾아왔다. 그건 책 한 권, ‘시간을 정복한 남자, 류비셰프’였다.



대학교에 들어오기 전부터 나는 이 문제로 고민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흘러가는 시간을 내가 제대로 꿰뚫어보며 무슨 일이든지 정말 충실하게 해낼 수 있을까? 나름대로 숨 가쁘게 살아왔지만 수많은 시간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나는 그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 모른다. 헛되이 보낸 시간뿐만 아니라 내가 나름대로 열심히 일을 하면서 보낸 시간도 나는 제대로 모른다. 단지 일했다는 막연한 생각만 할 수 있을 뿐, 무엇을 어떻게 얼마나 이뤄냈는지 전혀 모른다. 그리고 일을 하는 사이사이에 사라진 시간도 전혀 알 수 없었다. 아주 불행한 일이다. 나는 이 책을 쓴 다닐 알렉산드로비치 그라닌이 책에서 밝힌 것처럼 나를 아주 잘 안다고 생각하며 19년을 살았지만, 사실은 아무 것도 모른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어느 날 중앙일보에 나온 한 서평을 읽고 나는 숨을 막을 정도로 거대한 전율에 떨었다. 그리고 부산에 가자마자 당장 그 책을 샀다. 열 번 넘게 그 책을 읽으면서 나는 끝없는 감동에 휩싸였다. 나중에 감동이 숭고함으로 바뀔 정도로 이 책을 읽고 내가 느낀 충격은 대단했다. 세상에는 이런 사람도 있었다. 내가 정말 본받아야 할 사람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 그는 시간을 정복했다고 정말 자신 있게 외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20세기 구소련에서 활동한 과학자 류비셰프다.



재미를 찾으려는 사람은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전혀 없다. 이 책을 읽으면서 류비세프에 대한 정보를 얻어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처음 몇십 쪽에는 작가가 류비셰프에 열광하는 사람들을 보고 놀란 이야기, 류비셰프를 주제로 책을 쓰려고 결심한 이야기, 그리고 류비셰프가 차츰 시간을 정복하는 과정이 나온다. 여기에서 작가는 주관을 되도록이면 집어넣지 않으면서 정보를 전달하는데 초점을 맞춘다. 이 책이 전달하려는 가장 중요한 정보가 드러나는 곳이고 우리가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 가운데 하나다.



저자는 이 책으로 결국은 류비셰프를 칭찬하고 있지만, 끊임없이 우리를 혼란스럽게 한다. 우리는 과연 그를 본받아야 하는가? 과연 그는 우리가 본받아야 할 이상에 가장 가까이 접근한 사람인가? 우리는 시간을 정복하려고 반드시 그가 쓴 방법을 따라가야 하는가? 작가는 책 전체에서 계속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면서 우리가 시간과 류비셰프, 나아가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생각하게 한다. 그것이 이 책이 훌륭하다고 내가 과감히 평가할 수 있는 까닭이다. 반성하지 않고 무턱대고 정보를 받아들이는 것은 위험하다. 어떤 정보라도 비판하고 되씹어 제대로 자기 것으로 만드는 과정을 거쳐야 바르게 정보를 습득했다고 볼 수 있다. 작가도 책에서 류비셰프가 학문성과를 많이 남긴 것을 높이 평가하지만, 그가 항상 이성 허무주의를 바탕으로 독창성을 잃지 않고 학문에 몰두했다는 사실을 더 높이 평가한다. 류비셰프는 절대 정보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철저하게 되씹고 그로써 독창성을 더욱 뚜렷하게 했다.



나는 열 번 넘게 책을 읽으면서 그가 사용한 시간 통계 방법을 내게 알맞게 적용하려고 애썼고, 마침내 2004년 4월에 내가 보낸 시간을 나름대로 결산할 수 있었다. 내가 살아온 시간을 이렇게 철저하게 기록하고 분석한 일은 처음이었다. 나는 시간을 결산하면서 내가 얼마나 헛되게 살고 있는지 알아차렸고 크게 실망했지만, 그만큼 큰 기쁨도 느낄 수 있었다. 나를 제대로 성찰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류비셰프는 단 1초도 빠뜨리지 않고 자기 삶에 투자했다. 그가 시간을 기록하면서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시간은 없었다. 자기가 살아온 시간을 끊임없이 기록하고 점검하면서 그는 자기를 더욱 잘 알게 되었고, 더욱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에 가까운 인격체로 거듭났다. 나를 제대로 아는 것. 그건 사람들에게 큰 기쁨을 주는 일 가운데 한 가지라고 나는 자신 있게 말한다. 그 기쁨을 느끼고 싶은 사람들에게 나는 이 책을 자신 있게 권한다. 

 

http://cyworld.nate.com/Lyubishev -> 더 많은 자료는 여기에 


댓글(2)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제로드™ 2013-08-19 1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리뷰 잘 보았습니다. 책을 읽으며 느낀 전율을 잘 활용하고 계신 모양이죠? ^^

lyubishev 2013-12-03 17:26   좋아요 0 | URL
예! 20대 내내 활용했습니다. 알라딘 서재를 거의 안 쓰다 보니까 댓글도 이제 봤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