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과학의 30가지 화제 - Blue Backs 28 아카데미서적 Blue Backs 블루백스 60
오하마 카즈유키 지음, 전영석 옮김 / 아카데미서적 / 199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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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예전에 다나카 고이치가 쓴 '일의 즐거움'을 읽고 독후감을 쓰면서, 일본에는 지금까지 노벨 과학상을 탄 사람이 여덟 명이나 될 정도로 기초과학이 튼튼하다고 말했다. 다나카 고이치도 회사에서 아무 걱정 없이 연구하는 즐거움에 푹 빠진 덕분에, 몇 번이고 실패한 끝에 단백질 질량 분석법을 발견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가 일본과 과학기술 전반을 견주어 볼 때 여전히 기술력이 낮은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삼성 휴대전화가 온 세상을 휩쓴다고 하지만, 가장 중요한 부품들은 일본에서 수입해야 한다. 우리나라가 '한강의 기적'이라는 경제 성장을 일굴 때 본받았던 곳도 일본이다. 식민지였다는 기억 때문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본이라고 하면 일단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지만, 분명히 일본은 배워야 할 점이 많은 나라이다. 배워야 할 점은 분명히 배워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지만원이나 조갑제 같은 극우 친일파가 되어서는 절대 안 될 것이다. 그들이 하는 주장은 일본을 비판하면서도 배울 것은 배우는 길이 아니라, 일제 시대에 일제에 빌붙어 기득권을 누렸던 사람들이 하는 추잡한 논리일 뿐이다.

 

어쨌든 일본에서 배워야 할 것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과학 기술이다. 세상에서 처음으로 고속철도를 건설하고, 일본 기업들이 온 세상에 앞서 가는 기술력을 자랑할 수 있는 까닭이 무엇일까? 두말할 필요도 없이 기초과학이 튼튼하기 때문이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일본에서 배워야 할 것은 뛰어난 응용과학 기술을 낳는 기초 과학 수준과 기초 과학을 지원하는 정책이다. 얼핏 보기에는 성과가 잘 드러나지 않지만, 결국은 국가 경쟁력을 근본에서부터 높이는데 큰 몫을 한다. 기초과학이 없는 응용과학은 말도 안 되는 소리이기 때문이다.

 

'당신들의 대한민국'을 읽은 뒤 미국, 일본, 독일과 같은 과학 강국을 더욱 경이롭게 바라보게 되었다. 박노자 교수는 우리나라 대학이 지니고 있는 문제점을 비판하면서, 소련이 미국과 과학 경쟁을 대등하게 벌일 수 있었던 까닭이 사회주의 체제에 있다고 주장했다. 그 주장을 곰곰이 검토해 보니까 상당히 설득력이 있었다.

 

사회주의 국가가 아닌 자본주의 국가에서 기초과학에 투자하는 일은 근본을 깨닫는 현명한 판단에서 나오는 대단한 인내심과 끈기가 필요하다. 기초과학 연구는 실용, 응용과학 연구와 견주어 볼 때 금방 성과가 나오지 않는 일이 흔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논리에 따르면 위험 부담이 크다면, 곧 투자해도 성과가 드러나지 않을 듯하면, 투자를 굳이 해야 할 까닭이 없다. 그런데도 과학 강국들은 기초과학 연구에 돈을 많이 투자한다. 언젠가는 결국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확실히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투자한 끝에 이들은 과학 강국으로서 이름을 날리면서 우수한 경쟁력을 마련하고, 지금도 기초과학에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회사가 어려울 때 가장 나중에 해고하는 인력이 연구원들이라는 사실만 봐도, 이런 나라들이 얼마나 기초과학 연구에 신경을 쓰는지 알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이런 과학 강국과는 아직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 많다. 응용과학에 투자하는 돈도 그다지 많은 편이 아니라는 평이 이공계 사람들 사이에서 나오니, 기초과학에는 얼마나 투자가 인색할 지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을 듯 하다. 이미 순수한 목적을 잃어버린 과학고등학교, 수많은 이공계 대학생들이 다시 수능을 쳐서 인기가 높은 의대, 약대, 사범대 따위 학과로 몰려가는 현실이 앞에서 말한 것들을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어느 나라든지 21세기 무한 경쟁 시대에서 살아남으려면 과학기술을 발달시켜야 한다고 역설할 줄은 안다. 그러나 그 역설을 얼마나 정책에 반영하는지는 나라마다 다르다. 미국이나 독일이야 원래 그렇다 쳐도, 나도 한국인이라서 그런지 일본이 잘 나가는 것을 보면 배알이 뒤틀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일본을 그토록 비난하면서 왜 일본을 따라잡으려는 움직임은 그토록 허술한 걸까? 내가 뭔가 착각하고 있는 건가? 차라리 내가 잘못 파악하고 있다고 화끈하게 비판해 주는 사람이 내 앞에 나타나면 속이 시원하겠다.

 

작은 책이라서 마음 편하게 읽으려고 했다. 그런데 예상했던 것보다 내용이 상당히 어려웠다. 어떤 부분에서는 정말 머리가 아예 정보를 받아들이지 못할 정도였다. 과학을 전공하는 사람이 아니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좀 있다고 지은이가 친절하게 덧붙였는데, 과연 정직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책 제목은 분명히 '현대 과학의 30가지 화제'인데, 막상 읽어보니까 일본은 과학기술 수준이 얼마나 발달했는지 밝히는 내용이었다. 부럽기도 하고 배가 아프기도 하고 기분이 이상했다. 19세기 말에 근대 문물을 받아들여 부국강병을 꿈꿨던 조선 지식인들이 외국 과학기술을 접할 때와 같은 마음가짐을 가져야 했지만, 사실 그러기가 참 어려웠다.

 

솔직히 나는 사범대학에 다니면서 임용고시를 준비하고 있는 주제에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도 의심스럽다. 그저 재미있어서 과학을 공부하는 사람과, 과학이라는 무기를 단련하여 최전선에서 살아남으려고 온 힘을 쏟고 있는 사람은 너무 차이가 많이 난다. 그들에게 힘을 실어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생각해 본 것이 이 책을 읽으면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이라고 생각한다. 억지로 다 읽기는 했지만, 내용은 이미 거의 다 까맣게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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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자는 영화에서 과학을 본다 (보급판 문고본)
정재승 지음 / 동아시아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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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에 입학한 뒤 나는 '생각기술'과 '시간을 정복한 남자, 류비셰프'에 깊이 빠져, 르네상스 정신에 걸맞은 지식인이라는, 어쩌면 대단히 황당한 목표를 세우고 목표를 이루는데 필요한 것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 당시에는 정신이 매우 불안했기에 그 때 써 놓은 글을 분석해 보면 고등학생 때보다도 더 앞뒤가 맞지 않고 논리도 허술했다. 목표를 이루기 전에 내가 그때까지 부족하나마 쌓았던 것들을 허물어야 했기에 그랬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목표를 세우다 보니까 과학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자연스레 생각했다. 일단 그때까지 나는 과학에 완전히 흥미를 잃고 있었다. 수능을 치려고 잠깐 과학 공부를 열심히 하기는 했지만, 고등학교 과학은 나한테는 이상할 정도로 재미가 없었다. 그래서 대학교에는 뭔가 다른 것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면서, 과감하게 교양물리학 수업을 신청했다.

 

교양물리학 수업인데도 진도를 따라잡기가 굉장히 힘들었다. 게다가 하필이면 수업 시간이 오후 1시라서 맨 앞에 앉았는데도 정신 없이 졸았다. 그러나 그 때 그 수업을 하셨던 안정근 교수님은 학생들이 무엇을 하든지 말든지 진도 나가는데만 열중하셔서, 교수님에게 별다른 지적을 받지는 않았다. 학점도 B+로 그럭저럭 잘 받았는데, 돌이켜 보면 한편으로는 참 고맙고 한편으로는 매우 죄송하다.

 

어쨌든 그 때 수업 교재로 쓰겠다고 교수님이 사라고 말씀하신 책 가운데 한 권이 바로 이 책이다. '물리 이야기'와 '시인을 위한 물리학'이라는 책도 주문하셨는데, '시인을 위한 물리학'은 아예 사지도 못했고 '물리 이야기'는 읽다가 머리가 너무 포기했다. 지금 읽어보면 내용은 별로 차이가 없는데도 그때는 희한하게도 '물리학자는 영화에서 과학을 본다'가 더 읽기 편했다.

 

그런 것이 바로 대중성인가 보다. 정재승이라는 물리학자가 왜 데이비드 보더니스와 같은 걸출한 대중 저술가로서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나오는지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만큼 일단 사람들 머릿속에 굉장히 어려운 것으로 박혀있는 '과학'을 쉽게 풀어내는 재주가 그에게는 있다는 뜻이다.

 

지금까지 교양 과학책을 나름대로 많이 봤지만, 그 가운데 정말 보통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을 만한 책은 별로 없었다. 내용 자체가 어려운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어려운 것이라도 요리하는 방법에 따라 사람들이 흥미롭게, 그리고 재미있게 읽을 수도 있다. 그건 당연히 책을 쓰는 사람 몫이다.

 

정재승 교수는 이 책을 쓰고자 사람들에게 친숙한 영화를 소재로 선택했다. 그런 덕분인지 책표지부터 예사롭지 않다. 인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물리학자 가운데 한 명인 알베르트 아인슈타인과, 명성이 아인슈타인과 마찬가지인 영화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가 이야기하고 있다. 아인슈타인이 스필버그에게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을까? 과학이 발견한 성과에 비추어 볼 때 스필버그가 만든 영화에 어떤 잘못이 있는지 아인슈타인이 밝히고 있는 것이 아닐까?

 

책을 읽어보면 내가 한 생각이 제법 설득력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영화를 고른 기준은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수많은 영화가 나와 있다. 그 많은 영화를 얼마나 봤느냐에 따라 이 책에서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이 달라질 듯 하다. 물론 영화가 얼마나 인기가 있었는가도 책을 쓸 때 작가가 충분히 고려했을 것이다. 그래야 사람들이 영화에서 봤던 장면을 떠올리면서 글을 더욱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어떤 것에 알맞은 상상은 머릿속에 그와 관련된 확실한 기억이 있어야 제대로 할 수 있는 법이다.

 

필자는 그 많은 영화에 나오는 것들이 과학으로 비추어 볼 때 어떤 문제가 있는지 낱낱이 밝힌다.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문제점만 따지는 것은 아니다. 영화를 보고 나름대로 느꼈던 것들도 다채롭게 적어 놓았으며, 문제점을 지적하면서도 앞으로 어떻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희망도 제시하고, 나름대로 사람들을 웃기려고 힘쓴 흔적도 남겼다. 너무 문제점만 파고들었다가는 글 쓰는 방식이 약간 독특할 뿐 어차피 지루하기는 똑같은 보통 과학책밖에 되지 않았을 것이다.

 

어쨌든 이 책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며 많은 성공을 거두었다. 앞으로도 이런 책이 많이 나와서 사람들이 과학에 좀 많은 관심을 가지도록 했으면 좋겠다. 그 관심을 토대로 과학을 진지하게 바라보는 토양을 기르고, 그 위에서 응용, 실용과학뿐만 아니라 기초과학도 매우 중요하다는 인식이 제대로 싹텄으면 좋겠다. 그러면 예비 과학도들도 희망을 품을 수 있고, 기초과학을 연구하는 과학자들도 신바람이 날 것이다.

 

진정한 과학 강국은 국민들이 과학을 깊고 올바르게 인식하고 있어야 하며, 그렇게 사회를 바꾸는데 이 책과 같은 재미있는 교양 과학책이 단단히 한몫을 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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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의 대한민국 1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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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7월에 '우리 역사 최전선'을 다 읽은 뒤, 나는 박노자라는 사람을 좀 더 알아보고 싶었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중앙일보와 동아일보만 읽었고 한겨레는 읽지 않았기 때문에 한겨레에 박노자 교수가 쓰는 글을 보지 못했다. 신문을 잘못 읽어서 건강한 보수가 아닌 나라에 해가 되는 수구파와 같은 생각만 하고 있었다. 중앙일보나 동아일보와 같은 수구 언론이 주장하는 바를 과감하게 반박하는 박노자 교수는 나에게 반발과 흥미를 한꺼번에 불러일으켰다. 이 사람이 하는 주장을 거침없이 반박해 주겠다고 마음먹었던 그때 그 모습을 생각해 보면, 한심하기 짝이 없다.
 

그러다가 2004년 9월에 몸짓을 하기 시작하면서 박노자 교수가 주장하는 바와 같은 노선을 걷고 있는 사람들과 같이 공부하고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수많은 토론과 논쟁을 거치면서 나는 그때까지 내가 쌓았던 것들을 나름대로 과감하게 허물면서, 우파에서 좌파로 조금씩 탈바꿈했다. 그리고 한겨레를 읽기 시작했고 박노자 교수가 쓴 글을 읽었다. 한결같이 한국에 대한 애정이 듬뿍 묻어나는 글이었다. 그 애정 덕분에 비판이 더욱 날카롭고 치밀했다. 노르웨이 국립 오슬로대학 한국학과 부교수로 재직하면서도, 언론에 글을 계속 싣는 그 정성이 대단하다고 느꼈다.

 

1년이 지난 뒤 사범대 학생회실에서 우연히 박노자 교수가 쓴 이 책을 봤다. 틈틈이 학생회실에 와서 읽다가, 귀찮고 소장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서 알라딘에서 샀다. 단숨에 읽으려고 했는데 예상보다 읽는데 시간이 꽤 걸렸다. 한겨레에 기고한 글에서 보여준 섬뜩할 정도로 예리하고 정확한 비판이 이 책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군사 문화, 군국주의, 영어 공용화, 타락한 종교……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진 뒤 굴곡이 매우 심한 일그러진 한국 사회가 보여주는 문제점을 가차없이 까발린다. 그가 직접 겪었던 것들과 그동안 공부한 인문학과 한국학 지식을 이용하여 비판을 멈출 줄 모른다. 그가 한국 사회에 빛이 되는 존재라는 찬사가 지나치지 않다는 것을 이 책을 알고서야 확실히 느꼈다. 토종 한국인으로서 부끄러울 지경이었다.

 

특히 군대에 가야 할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나에게는 특히 군사 문화에 관한 이야기가 심각하게 다가왔다. 특히 특전사로 복무하다가 제대한 학생이 군대 가기 전에 품었던 꿈을 완전히 잃어버린 이야기를 읽으면서 소름이 끼쳤다. 군대에 갔다 오면 그전에 공부한 것들은 다 잃어버린다고 하니, 지금까지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한 것이 안타까울 지경이다. 오죽하면 학군단에 지원한 까닭 가운데 한 가지가 공부를 계속 할 수 있다는 것이었을까. 

 

학군단에 떨어진 뒤 다른 방법을 찾아봤다. 카투사가 자유 시간도 많고 복무 기간도 2년으로 좋기는 하지만, 걸릴 확률이 낮은 데다가 주한 미군을 별로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기에 후보에서 뺐다. 공군이 편하고 말년에 공부하기 좋기는 하지만, 복무 기간이 3개월이나 더 길어서 역시 후보에서 뺐다. 그렇다고 해서 평범한 육군에 가기도 싫었다. 그래서 결국 특전사보다는 지원 자격도 덜 까다롭고 시험도 쉬운 해병대에 지원했다. 그러나 여전히 학군단에 미련이 남아 있고, 이 책 때문에 군대가 지니고 있는 좋지 않은 점에 더욱 주목하게 되었다. 그래도 이미 선택한 길이니 되도록 나에게 좋은 길로 이끌어 가는 수밖에 없다. 그것은 완전히 내 몫이다.

 

어쨌든 이 책이 내가 고민하던 여러 가지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해 준 것은 틀림없다. 이 책에서 물고 늘어진 것들은 평소에 내가 느끼던 것들이었다. 그래서 충분히 공감하고 가려운 곳을 긁는 듯한 시원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북한 바로 알기'는 매우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모든 내용이 맞다고 인정할 수는 없었다. 내가 지금은 왼쪽으로 기울어 있어서 이 사람이 하는 말이 무조건 옳다고 여기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모병제나 대체복무제에 관한 생각은 아직도 확실하지 않다. 특히 맨 마지막에 나오는 인종주의 문제의 근원을 파헤치는 내용에서는, 박노자 교수가 그토록 심혈을 기울여 연구하고 논쟁을 벌인 19세기말 한국사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알아볼 수 있다. 그런데 나는 '우리 역사 최전선'을 읽으면서 19세기말 한국사에 관한 논쟁에서는 허동현 교수가 주장하는 바에 약간 더 끌렸다.

 

보수파인 허동현 교수와 진보파인 박노자 교수가 나름대로 대립각을 세우는 형편이니, 어떤 문제에서는 허동현 교수를 지지하고 어떤 문제에서는 박노자 교수를 지지하는 나로서는 박노자 교수가 하는 말을 무조건 맞다고 받아들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아는 것이 없었으니 일단 읽고 내용을 기억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누가 말하든지 간에 그 안에 진실에 근거한 논리만이 있다면, 그 논리는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제임스 조이스가 '젊은 예술가의 초상'에서 말하는 미학 이론과 연관되어 있는 듯 하다. 그 방법은 편견에 빠지지 않고 순수하게 이성에 따른 논리와 사실로만 모든 것을 판단하려고 힘쓰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 생각에 따라 지금까지 나름대로 안간힘을 썼다. 부족하나마 그렇게 힘써가며 이 책을 읽은 결과는 매우 만족스러웠다. 순수하고도 논리정연한 한국 사회 비판을 읽으면서 가슴이 뜨끔했고, 그 속에 숨겨진 애정을 느끼면서 가슴은 한없이 따뜻해졌다.

 

이 책 제목대로 대한민국은 '당신들의 대한민국'이다. 일그러진 민족주의, 종교, 국가주의, 전근대 보수주의 따위를 넘어서지 못하고 다른 나라에서 온 존재뿐만 아니라, 같은 사회 구성원들끼리도 서로 시기하고 잡아먹고 싶어 안달이 났다. 다른 존재를 배척하는 '당신들의 대한민국'이 아닌 다른 존재를 감싸안는 '모든 이들의 대한민국'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대한민국에는 희망이 없다고 박노자 교수는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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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의 해부 - 사상문고 14
크레인.브린튼 / 문명사 / 198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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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사회 현상 가운데 한 가지가 '혁명(revolution)'이다. 혁명이 일어나서 그 전까지 변할 기미가 거의 보이지 않던 사회가 급작스레 변하여 온갖 현상들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각 혁명을 연구하는 것은 비교사회학에서 매우 중요하며, 내 생각이기는 하지만 사회학자들에게 훨씬 더 큰 즐거움을 줄 수 있다. 그저 안정된 사회에서 나타나는 것보다는 혁명이라는 소용돌이에 휘말린 세상에서 나타나는 것들이 훨씬 흥미롭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나름대로 진보 진영에 서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어떤 것이 변하는 것을 바람직하게 생각한다. 특히 혁명이라는 개념에는 더욱 애착이 간다. 사람들은 지금까지 혁명이라는 개념을 사회가 좀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발전하는 현상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내 애착이 바람직한 것이라는 위안을 얻을 수 있다. 

 

국어사전에는 혁명은 '어떤 분야에서 원래 있던 양식, 이념, 사상 따위를 근본에서부터 뒤집는 것'이라고 나와 있다. 정체된 사회를 격렬하게 변하도록 하는데 가장 큰 구실을 하는 혁명은 흔히 정치 제도가 변하는 일을 가리키기에, 정치학에서도 즐겨 다루는 개념이었다. 하지만 혁명 때문에 변하는 것들이 워낙 많아서 정치만 다루기에는 뭔가 부족하다. 그래서 대개 혁명을 연구할 때는 흔히 혁명이 일어난 원인을 정치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고찰한 뒤에, 혁명 때문에 근본에서부터 변한 정치를 파악하고, 그 결과 사회 전체가 어떻게 변했는지 서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국제정치체계를 연구할 때 고려해야 할 것 가운데 한 가지가 정치제도가 띠는 성격이라는 것은, 정치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볼 때 당연하다.

 

그런 생각을 크레인 브린튼이 쓴 '혁명의 해부(The Anatomy of Revolution)'에도 적용하면 무슨 결론이 나올까. 내가 보기에는 그는 세계사에서 정말 큰, 특히 정치에서 큰 파장을 일으켰던 혁명과, 그 파장에 주목하고 있는 듯 하다. 그 혁명에 관한 모든 것을 철저하게 설명하고 자기 주장을 곁들였다.

 

잡소리라고 볼 수도 있지만 옛날 학자들이 쓴 정치학, 철학 따위 고전을 읽다 보면 머리에 쥐가 나는 일이 흔하다. 짧지 않고 길게 늘어진 문장을 읽을 때는 웬만큼 집중하지 않으면, 나중에는 원래 주어가 무엇이었는지 까먹어 몇 줄 위를 다시 훑어봐야 하는 일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사람 집중력이라는 것이 한계가 있고, 게다가 나는 집중력이 그다지 좋지 않은 편이라서 이 책을 다 읽는데 무지 애먹었다.

 

그래도 박홍규가 옮긴 '오리엔탈리즘'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 1학년 때 아는 형님이 추천해 주셔서 샀는데, 서론도 다 읽지 못하고 집어치우고 말았다. 언젠가는 다시 도전하겠다고 벼르고 있었지만, 결국 1년 넘게 내 책꽂이에 처박혀 있다.

 

외국어 실력이 어느 정도 된다면 이상한 번역본보다는 차라리 깔끔한 원서를 보는 것이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가 아는 영어 단어가 겨우 1500개 정도밖에 안 되는 판에(미국인들이 대개 유창하게 쓰는 단어는 10000~13000개 정도라고 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알려진 영어 단어는 모두 12만 개 정도라고 한다), 이런 생각을 하는 자체가 웃기다는 생각도 했다.

 

어쨌든 대충 훑어보기도 하고 어떤 부분은 대단히 꼼꼼히 읽어보기도 하면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내가 파악한 것은 혁명은 정해진 규칙을 따른다는 것이었다. 그는 '경제적 위기', '지식인의 위반', '폭력일변도의 억압', '지배수단의 마비', '지배조직의 내부적 분열', '부정적 파탄', 이 여섯 가지 단계를 혁명이 거친다고 했다.

 

이 정률만 염두에 둬도 여러 가지 생각을 할 수 있다. 특히 내가 주목한 것은 마르크스가 주장한 공산주의 혁명이었다. 마르크스가 주장한 공산주의 혁명은 경제 위기가 아닌 자본주의에서 생산이 극대까지 치달았을 때 이루어진다고 한 점에서 '혁명의 정률'에 어긋난다. 결국 정률에 맞게 경제 위기가 닥친 러시아에서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났다. 하지만 문제는 공산주의 혁명이 러시아에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다 주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로마노프 왕조가 무너지고 새로운 인민민주주의를 내세운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섰다. 그러나 공산주의 정권이 통치한 소련은 결국 자본주의 진영에게 졌고 스스로 무너졌다.

 

바람직한 혁명이라는 것은 '혁명의 정률'을 거쳐 나타나는 사회가 어떤 모습을 띠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공산주의 혁명은 경제를 무너뜨리고 정치 제도마저 일당 독재로 유도해 버렸기에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경제와 민주주의를 살려 국민들에게 더욱 풍요로운 물질과 정치에 참여할 더욱 많은 권리를 보장해 주는 혁명만이, 살아남을 수 있고 올바른 혁명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전제 정치 제도 아래에 있던 영국이나 프랑스 따위 중세 유럽 국가에서는 혁명(revolution)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기만 해도 목이 날아갔다고 한다. 이런 사회를 혁명으로 갈아엎은 결과가 앞에서 설명한 기준을 만족한 덕분에, '영국 혁명'과 '프랑스 혁명'은 지금 훌륭한 혁명으로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기준은 권력을 쥔 몇몇 사람들이 아닌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정당한 권리가 주어지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긍정한다. 여러모로 부족한 점이 많기는 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민주주의가 뿌리내린 한국 사회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고맙게 생각하기에 더욱 그렇다. 독재자들이 권력을 휘둘렀던 우리나라에서도, 예전에는 '5.16 쿠데타'는 군사혁명으로, '4.19 혁명'과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은 폭동으로 간주되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자면, 혁명이라는 것은 흔히 좀 더 바람직한 민주주의 체제로 나아가 더욱 많은 국민들에게 정치에 참여할 권리가 주어지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정치에 참여할 권리는 삶에 직접, 또는 간접으로 영향을 미치는 모든 요소에 자기 뜻을 반영하는 주체가 되는 힘이다.

 

온 세상 사람들이 정치 주체가 되어 진정한 민주주의가 선 이치에 맞는 세상은, 안타깝지만 결코 현실이 될 수 없는 이상일 뿐이다. 그러나 이상은 이루어질 수 없다고 해서 바라보기만 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목표로 삼고 어떻게든지 가까워져야 할 대상이다. 혁명(revolution)이라는 단어가 원래는 순환(circulation)이라는 단어와 뜻이 통한다. 어원인 라틴어 'revolutio'가 규칙에 따라 움직이는 천체 운동 현상을 기술하는데 쓰인 단어라는 것을 봐도 혁명이 지닌 속성을 단숨에 파악할 수 있다. 이렇게 따져보면 '혁명의 정률'이라는 개념을 설정한 크레인 브린튼은 여러모로 타당한 분석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어쨌든 단어 자체가 뜻하듯이 혁명은 계속 이어질 것이며, '혁명의 해부'와 같은 저작도 계속 나타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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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 스펜서 존슨
스펜서 존슨 지음, 안진환 옮김 / 비즈니스북스 / 2006년 7월
평점 :
절판


하루에도 수 십 번씩 뒤바뀌는 감정 때문에 내가 그동안 얼마나 많은 힘과 시간을 헛되이 날려버렸는지는 계산하기조차 힘들다. 특히 군대에서는 감정이 더욱 격렬하게 뒤바뀌어서, 몸은 나름대로 편한데도 마음이 안정되지 않아 스트레스가 심하다. 군대에서 보낸 시간과 군대라는 조직 자체를 어떻게 판단하고 평가해야 할 지 오랫동안 고민했기 때문이다.

 

물론 군대에서 나는 많은 일을 해냈다. 그리고 병장이 된 지금 나에게 주어진 자유와 권리 속에서 내가 해낼 수 있는 일은 여전히 많다. 그것을 모두 모으면 전역할 때쯤 엄청난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돌이켜 보면 그 가운데 거의 모든 것이 군대에서 오지 않았다면 얻을 수 없는 것들이다. 이 모든 것을 내가 해낼 수 있도록 해 준 군대라는 조직에 나는 마땅히 고마워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러기는 쉽지 않다. 얻은 것만큼이나 잃어버리거나 나빠진 것도 많았다는 생각이 쉽게 가시지 않는다. 새로 싹을 틔우기 시작한 사랑을 포기해야 했고, 내가 그동안 벌여놓았던 일과 새로 시작하려고 했던 일도 접어야 했다. 많은 것이 부족했지만 나름대로 일이 잘 굴러가고 있었고, 새로 시작하려고 계획을 잘 짜 놓은 것들도 몇 가지 있었지만, 군대에 가기로 한 뒤 모든 것을 접고 그때까지 해 놓은 일을 잘 마무리하는 데만 힘써야 했다. 2005년 내내 의욕이 매우 좋았던 터라 더욱 안타깝다.

 

그런 것을 둘째로 쳐야 할 정도로 가장 심각한 문제도 있다. 원래 문제가 많았던 성격이 더욱 비틀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천부 인권에 따라 보장된 인권과 기본권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온갖 악습과 군대라서 어쩔 수 없다는 허울 좋은 불가피론이 너무 싫어서 선임들과 사사건건 충돌했고, 그 때문에 내가 지니고 있던 추악한 본성이 더욱 뚜렷하게 드러났다. 바깥에서 나름대로 자기 관리를 철저하게 하면서 성격을 조금씩이나마 다듬고 있었는데, 사납게 휘몰아치는 폭풍과도 같은 힘들고 자유롭지 못한 시간을 군대에서 보내면서 간신히 다듬은 것들이 모조리 헝클어져 버렸다.

 

또 한 가지 덧붙이자면, 거칠고 이해할 수 없는 모순투성이인 환경에 적응하면서, 나도 모르게 입에 험한 말이 붙고 신경질과 짜증이 늘어났다. 이병과 일병일 때 느꼈던 욕지기가 무엇 때문인지 절대 잊어버리지 않고, 상병과 병장일 때 그런 욕지기를 불러 일으키는 것들을 멀리 해야겠다고 몇 번이고 다짐해 놓고도, 막상 병장이 된 지금 내 모습과 행동을 분석해 보면 다짐한 대로 완벽하게 실천하고 있다고 볼 수는 없다.

 

일이야 바깥에서든 군대에서든 지금까지 해 온 대로 어떻게든지 해낼 수 있지만, 성격과 생각에 문제가 생겨 버린다면 일 자체는 아무 뜻이 없어져 버린다. 그래서 나는 내가 해낸 일에 상관없이 나를 이토록 심하게 뒤흔들어 놓고 성격과 생각을 삐뚤어지게 한 군대를 미워했다. 타는 목마름으로 자유와 내가 좋아했던 사람들을 그리워하면서, 온갖 부조리를 강요하는 싫은 선임들과 부딪치며 살도록 한 군대가 너무나도 싫었다. 

 

결국 나는 군대에서 행복하지 않았던 것이다. 심지어 병장이 된 지금도 행복하지는 않다. 항상 뭔가 빠진 느낌에 시달리고 있다. 따지고 보니까 사회에서나 군대에서나 행복하다는 느낌은 찾아볼 수 없었다. 보람이 있을지언정 행복은 없었다. 그런데 그 까닭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그토록 계획을 많이 세워서 그에 따라 일하고 그런 내 모습 자체에 만족하려고 애쓰고 내가 해낸 것들 되짚어 보며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정작 행복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군대에서 이 책 '행복'을 읽으면서, 나는 그 까닭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고 자책에 지치 자아를 달래주는 온갖 글을 읽으면서도 알지 못했던 까닭을, 하필이면 이 책을 읽고 나서야 깨달았는지는 알 수가 없다. 어쨌든 지금까지 너무 많은 욕심을 품고 자기를 너무 심하게 다그쳤던 나에게, 이 책을 쓴 스펜서 존슨은 그러지 마라고 부드럽게 충고했다. 자기를 소중하게 여길 줄 알아야, 결국 다른 사람들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행복해지는데 반드시 필요한 7가지 원칙을 살펴보자.

 

 

1. 자기 자신을 소중히 여기지 않으면 어떠한 일도 제대로 할 수 없고, 그 누구도 소중히 여길 수 없다. 자기를 너무 심각하게 바라보지 마라. 어리석음, 불완전함, 인간미를 즐겨라.

 

2. 다른 사람들이 나를 대우해 주기를 바라는 것처럼 나 자신을 소중하게 대해야 한다. 자기가 품은 이상이나 꿈을 기준으로 무언가가 부족하다는 생각은 버리고, 좋은 현실을 인정하며 거기에 감사하라. 'Need'에 감사하고 'Want'를 줄여라.

 

3. 결정을 내려야 할 때는 그것이 두려워서 내리는 결정인지 아니면 좋아서 내리는 결정인지 생각하라. 자기가 가진 것을 나누는 것은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증거이며, 그 덕분에 두려움이 없어진다.

 

4. 삶을 단순하게 만들어라. 아주 짧은 시간에도 상황을 대하는 마음가짐을 바꿀 수 있다. 그 짧은 시간 안에 하루 전체를 그리고 인생 전체를 바꿀 수도 있다.

 

5. 자기를 먼저 생각하는 것에 죄의식을 느끼지 마라. 자기 자신을 소중하게 여길수록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더 큰 애정을 갖는 사람이 될 수 있다.

 

6. 자기 자신만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라고 해서 끼니때마다 그것만 먹는 것과 같다. 다른 사람을 돕는 가장 훌륭한 방법은, 그들도 자기 자신을 더 소중하게 여기도록 격려하는 것이다. 그들이 그것을 실행하면, 그들 자신에 대해 더욱 만족할 뿐만 아니라 나를 대하는 태도도 달라진다.

 

7. 사랑받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랑을 주는 일이다. 내가 행복하고 걱정이 없어지면 다른 사람들을 따뜻하게 대할 수 있다.

 

 

이 7가지 원칙이 진리임을 인정하고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더욱 소중히 여기면, 우리는 마침내 서로를 더 배려할 수 있을 것이고, 그에 따라 세상은 더욱 살기 좋아지고 따뜻해질 것이다.

 

 

스펜서 존슨에 따르면 내 안에는 '최상의 자아'가 있다고 한다. '최상의 자아'는 자신에게 최선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내면 가운데 일부분이며 '직관하는 존재(The Intuitive)'이라고도 한다.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가운데 '최상의 자아'를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궁금하다.

 

이 책에 따르면 자기만 행복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이 아닌데, 이 세상을 바라보면 그런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화가 치밀어 오른다. 현실이 그러니 이 세상이 어떻게 살기 좋아질 수 있을까. 그 전에 일단 나부터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할 지 생각해 봐야겠다. 내가 진정으로 행복해지면 다른 사람들도 행복해질 수 있다고 분명히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군대에서 지독하게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하지만 그 스트레스는 오로지 군대 때문에 생긴다고만 할 수는 없다. 지금까지 워낙 오랫동안 나를 괴롭히고 너무나도 많은 것을 강요한 탓도 있다. 어쩌면 그것이 군대보다도 훨씬 더 오랫동안 나를 이렇게 행복에서 멀어지게 한 근본에 가까운 까닭일지도 모른다. 일이야 나름대로 꽤 많이 하지만, 거기에서 진정한 행복을 이끌어내지는 못했던 것이다.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하고 일에 파묻혀 수 십 해를 보낸 뒤, 나이가 지긋해져서야 후회하는 사람처럼 말이다.

 

나를 소중하게 여기자. 그렇다면 내 의지대로 보낸 시간도 소중하다. 군대에서 많은 제약에 시달리기는 하지만 그래도 어떻게든지 시간을 짜내서 내가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많은 일을 해냈고,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에서도 나름대로 뜻과 보람을 찾아냈다. 그렇기에 군대에서 보낸 시간은 결코 헛되이 보낸 시간이 아니다. 잃어버린 것이 많을지언정 군대가 아니었으면 얻어낼 수 없었을 그런 것들에 주목해야 한다. 잃는 것이 두려워서 얻는 것을 포기해 버린다면, 그 사람은 발전할 수 없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나에게는 '최상의 자아'가 있다. '최상의 자아'는 내가 군대에서 잃어버리거나 나빠진 것이, 사회에 나갔을 때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계속 경고하고 있다. 그렇기에 나는 남은 복무 기간 동안 삐뚤어진 내 성격과 생각을 다듬고자 힘들 것이다. 그리고 이 책에 나오는 7가지 법칙을 나에게 유리한 대로 비틀어서 해석하지 말고, 그대로 받아들여 진정으로 행복해지고자 힘쓸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군대가 지니고 있는 문제점을 비판하지 않고 군대를 무조건 긍정하겠다는 건 절대 아니다. 장점은 장점대로 받아들이는 것과 단점은 단점대로 비판하는 건 엄연히 다른 문제로서 따로 다루어야 한다. 그리고 이 책에 나오는 7가지 원칙이 지니고 있는 모호함과 그 때문에 적용 과정에서 생기는 문제점도 분명히 인식하고, 그 문제점에 휘말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곧 이 책은 내가 진정으로 행복해지는 방법을 찾는데 도움이 되기는 했지만, 완벽하다고 박수를 받을 만한 책은 아니다. 지나치게 논리만 따지려고 드는 태도가 '최상의 자아'오는 결국 서로 충돌한다 하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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