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의 해부 - 사상문고 14
크레인.브린튼 / 문명사 / 198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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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사회학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사회 현상 가운데 한 가지가 '혁명(revolution)'이다. 혁명이 일어나서 그 전까지 변할 기미가 거의 보이지 않던 사회가 급작스레 변하여 온갖 현상들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각 혁명을 연구하는 것은 비교사회학에서 매우 중요하며, 내 생각이기는 하지만 사회학자들에게 훨씬 더 큰 즐거움을 줄 수 있다. 그저 안정된 사회에서 나타나는 것보다는 혁명이라는 소용돌이에 휘말린 세상에서 나타나는 것들이 훨씬 흥미롭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나름대로 진보 진영에 서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어떤 것이 변하는 것을 바람직하게 생각한다. 특히 혁명이라는 개념에는 더욱 애착이 간다. 사람들은 지금까지 혁명이라는 개념을 사회가 좀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발전하는 현상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내 애착이 바람직한 것이라는 위안을 얻을 수 있다. 

 

국어사전에는 혁명은 '어떤 분야에서 원래 있던 양식, 이념, 사상 따위를 근본에서부터 뒤집는 것'이라고 나와 있다. 정체된 사회를 격렬하게 변하도록 하는데 가장 큰 구실을 하는 혁명은 흔히 정치 제도가 변하는 일을 가리키기에, 정치학에서도 즐겨 다루는 개념이었다. 하지만 혁명 때문에 변하는 것들이 워낙 많아서 정치만 다루기에는 뭔가 부족하다. 그래서 대개 혁명을 연구할 때는 흔히 혁명이 일어난 원인을 정치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고찰한 뒤에, 혁명 때문에 근본에서부터 변한 정치를 파악하고, 그 결과 사회 전체가 어떻게 변했는지 서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국제정치체계를 연구할 때 고려해야 할 것 가운데 한 가지가 정치제도가 띠는 성격이라는 것은, 정치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볼 때 당연하다.

 

그런 생각을 크레인 브린튼이 쓴 '혁명의 해부(The Anatomy of Revolution)'에도 적용하면 무슨 결론이 나올까. 내가 보기에는 그는 세계사에서 정말 큰, 특히 정치에서 큰 파장을 일으켰던 혁명과, 그 파장에 주목하고 있는 듯 하다. 그 혁명에 관한 모든 것을 철저하게 설명하고 자기 주장을 곁들였다.

 

잡소리라고 볼 수도 있지만 옛날 학자들이 쓴 정치학, 철학 따위 고전을 읽다 보면 머리에 쥐가 나는 일이 흔하다. 짧지 않고 길게 늘어진 문장을 읽을 때는 웬만큼 집중하지 않으면, 나중에는 원래 주어가 무엇이었는지 까먹어 몇 줄 위를 다시 훑어봐야 하는 일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사람 집중력이라는 것이 한계가 있고, 게다가 나는 집중력이 그다지 좋지 않은 편이라서 이 책을 다 읽는데 무지 애먹었다.

 

그래도 박홍규가 옮긴 '오리엔탈리즘'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 1학년 때 아는 형님이 추천해 주셔서 샀는데, 서론도 다 읽지 못하고 집어치우고 말았다. 언젠가는 다시 도전하겠다고 벼르고 있었지만, 결국 1년 넘게 내 책꽂이에 처박혀 있다.

 

외국어 실력이 어느 정도 된다면 이상한 번역본보다는 차라리 깔끔한 원서를 보는 것이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가 아는 영어 단어가 겨우 1500개 정도밖에 안 되는 판에(미국인들이 대개 유창하게 쓰는 단어는 10000~13000개 정도라고 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알려진 영어 단어는 모두 12만 개 정도라고 한다), 이런 생각을 하는 자체가 웃기다는 생각도 했다.

 

어쨌든 대충 훑어보기도 하고 어떤 부분은 대단히 꼼꼼히 읽어보기도 하면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내가 파악한 것은 혁명은 정해진 규칙을 따른다는 것이었다. 그는 '경제적 위기', '지식인의 위반', '폭력일변도의 억압', '지배수단의 마비', '지배조직의 내부적 분열', '부정적 파탄', 이 여섯 가지 단계를 혁명이 거친다고 했다.

 

이 정률만 염두에 둬도 여러 가지 생각을 할 수 있다. 특히 내가 주목한 것은 마르크스가 주장한 공산주의 혁명이었다. 마르크스가 주장한 공산주의 혁명은 경제 위기가 아닌 자본주의에서 생산이 극대까지 치달았을 때 이루어진다고 한 점에서 '혁명의 정률'에 어긋난다. 결국 정률에 맞게 경제 위기가 닥친 러시아에서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났다. 하지만 문제는 공산주의 혁명이 러시아에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다 주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로마노프 왕조가 무너지고 새로운 인민민주주의를 내세운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섰다. 그러나 공산주의 정권이 통치한 소련은 결국 자본주의 진영에게 졌고 스스로 무너졌다.

 

바람직한 혁명이라는 것은 '혁명의 정률'을 거쳐 나타나는 사회가 어떤 모습을 띠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공산주의 혁명은 경제를 무너뜨리고 정치 제도마저 일당 독재로 유도해 버렸기에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경제와 민주주의를 살려 국민들에게 더욱 풍요로운 물질과 정치에 참여할 더욱 많은 권리를 보장해 주는 혁명만이, 살아남을 수 있고 올바른 혁명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전제 정치 제도 아래에 있던 영국이나 프랑스 따위 중세 유럽 국가에서는 혁명(revolution)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기만 해도 목이 날아갔다고 한다. 이런 사회를 혁명으로 갈아엎은 결과가 앞에서 설명한 기준을 만족한 덕분에, '영국 혁명'과 '프랑스 혁명'은 지금 훌륭한 혁명으로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기준은 권력을 쥔 몇몇 사람들이 아닌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정당한 권리가 주어지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긍정한다. 여러모로 부족한 점이 많기는 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민주주의가 뿌리내린 한국 사회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고맙게 생각하기에 더욱 그렇다. 독재자들이 권력을 휘둘렀던 우리나라에서도, 예전에는 '5.16 쿠데타'는 군사혁명으로, '4.19 혁명'과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은 폭동으로 간주되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자면, 혁명이라는 것은 흔히 좀 더 바람직한 민주주의 체제로 나아가 더욱 많은 국민들에게 정치에 참여할 권리가 주어지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정치에 참여할 권리는 삶에 직접, 또는 간접으로 영향을 미치는 모든 요소에 자기 뜻을 반영하는 주체가 되는 힘이다.

 

온 세상 사람들이 정치 주체가 되어 진정한 민주주의가 선 이치에 맞는 세상은, 안타깝지만 결코 현실이 될 수 없는 이상일 뿐이다. 그러나 이상은 이루어질 수 없다고 해서 바라보기만 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목표로 삼고 어떻게든지 가까워져야 할 대상이다. 혁명(revolution)이라는 단어가 원래는 순환(circulation)이라는 단어와 뜻이 통한다. 어원인 라틴어 'revolutio'가 규칙에 따라 움직이는 천체 운동 현상을 기술하는데 쓰인 단어라는 것을 봐도 혁명이 지닌 속성을 단숨에 파악할 수 있다. 이렇게 따져보면 '혁명의 정률'이라는 개념을 설정한 크레인 브린튼은 여러모로 타당한 분석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어쨌든 단어 자체가 뜻하듯이 혁명은 계속 이어질 것이며, '혁명의 해부'와 같은 저작도 계속 나타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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