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과학의 30가지 화제 - Blue Backs 28 아카데미서적 Blue Backs 블루백스 60
오하마 카즈유키 지음, 전영석 옮김 / 아카데미서적 / 1998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예전에 다나카 고이치가 쓴 '일의 즐거움'을 읽고 독후감을 쓰면서, 일본에는 지금까지 노벨 과학상을 탄 사람이 여덟 명이나 될 정도로 기초과학이 튼튼하다고 말했다. 다나카 고이치도 회사에서 아무 걱정 없이 연구하는 즐거움에 푹 빠진 덕분에, 몇 번이고 실패한 끝에 단백질 질량 분석법을 발견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가 일본과 과학기술 전반을 견주어 볼 때 여전히 기술력이 낮은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삼성 휴대전화가 온 세상을 휩쓴다고 하지만, 가장 중요한 부품들은 일본에서 수입해야 한다. 우리나라가 '한강의 기적'이라는 경제 성장을 일굴 때 본받았던 곳도 일본이다. 식민지였다는 기억 때문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본이라고 하면 일단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지만, 분명히 일본은 배워야 할 점이 많은 나라이다. 배워야 할 점은 분명히 배워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지만원이나 조갑제 같은 극우 친일파가 되어서는 절대 안 될 것이다. 그들이 하는 주장은 일본을 비판하면서도 배울 것은 배우는 길이 아니라, 일제 시대에 일제에 빌붙어 기득권을 누렸던 사람들이 하는 추잡한 논리일 뿐이다.

 

어쨌든 일본에서 배워야 할 것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과학 기술이다. 세상에서 처음으로 고속철도를 건설하고, 일본 기업들이 온 세상에 앞서 가는 기술력을 자랑할 수 있는 까닭이 무엇일까? 두말할 필요도 없이 기초과학이 튼튼하기 때문이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일본에서 배워야 할 것은 뛰어난 응용과학 기술을 낳는 기초 과학 수준과 기초 과학을 지원하는 정책이다. 얼핏 보기에는 성과가 잘 드러나지 않지만, 결국은 국가 경쟁력을 근본에서부터 높이는데 큰 몫을 한다. 기초과학이 없는 응용과학은 말도 안 되는 소리이기 때문이다.

 

'당신들의 대한민국'을 읽은 뒤 미국, 일본, 독일과 같은 과학 강국을 더욱 경이롭게 바라보게 되었다. 박노자 교수는 우리나라 대학이 지니고 있는 문제점을 비판하면서, 소련이 미국과 과학 경쟁을 대등하게 벌일 수 있었던 까닭이 사회주의 체제에 있다고 주장했다. 그 주장을 곰곰이 검토해 보니까 상당히 설득력이 있었다.

 

사회주의 국가가 아닌 자본주의 국가에서 기초과학에 투자하는 일은 근본을 깨닫는 현명한 판단에서 나오는 대단한 인내심과 끈기가 필요하다. 기초과학 연구는 실용, 응용과학 연구와 견주어 볼 때 금방 성과가 나오지 않는 일이 흔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논리에 따르면 위험 부담이 크다면, 곧 투자해도 성과가 드러나지 않을 듯하면, 투자를 굳이 해야 할 까닭이 없다. 그런데도 과학 강국들은 기초과학 연구에 돈을 많이 투자한다. 언젠가는 결국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확실히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투자한 끝에 이들은 과학 강국으로서 이름을 날리면서 우수한 경쟁력을 마련하고, 지금도 기초과학에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회사가 어려울 때 가장 나중에 해고하는 인력이 연구원들이라는 사실만 봐도, 이런 나라들이 얼마나 기초과학 연구에 신경을 쓰는지 알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이런 과학 강국과는 아직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 많다. 응용과학에 투자하는 돈도 그다지 많은 편이 아니라는 평이 이공계 사람들 사이에서 나오니, 기초과학에는 얼마나 투자가 인색할 지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을 듯 하다. 이미 순수한 목적을 잃어버린 과학고등학교, 수많은 이공계 대학생들이 다시 수능을 쳐서 인기가 높은 의대, 약대, 사범대 따위 학과로 몰려가는 현실이 앞에서 말한 것들을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어느 나라든지 21세기 무한 경쟁 시대에서 살아남으려면 과학기술을 발달시켜야 한다고 역설할 줄은 안다. 그러나 그 역설을 얼마나 정책에 반영하는지는 나라마다 다르다. 미국이나 독일이야 원래 그렇다 쳐도, 나도 한국인이라서 그런지 일본이 잘 나가는 것을 보면 배알이 뒤틀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일본을 그토록 비난하면서 왜 일본을 따라잡으려는 움직임은 그토록 허술한 걸까? 내가 뭔가 착각하고 있는 건가? 차라리 내가 잘못 파악하고 있다고 화끈하게 비판해 주는 사람이 내 앞에 나타나면 속이 시원하겠다.

 

작은 책이라서 마음 편하게 읽으려고 했다. 그런데 예상했던 것보다 내용이 상당히 어려웠다. 어떤 부분에서는 정말 머리가 아예 정보를 받아들이지 못할 정도였다. 과학을 전공하는 사람이 아니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좀 있다고 지은이가 친절하게 덧붙였는데, 과연 정직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책 제목은 분명히 '현대 과학의 30가지 화제'인데, 막상 읽어보니까 일본은 과학기술 수준이 얼마나 발달했는지 밝히는 내용이었다. 부럽기도 하고 배가 아프기도 하고 기분이 이상했다. 19세기 말에 근대 문물을 받아들여 부국강병을 꿈꿨던 조선 지식인들이 외국 과학기술을 접할 때와 같은 마음가짐을 가져야 했지만, 사실 그러기가 참 어려웠다.

 

솔직히 나는 사범대학에 다니면서 임용고시를 준비하고 있는 주제에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도 의심스럽다. 그저 재미있어서 과학을 공부하는 사람과, 과학이라는 무기를 단련하여 최전선에서 살아남으려고 온 힘을 쏟고 있는 사람은 너무 차이가 많이 난다. 그들에게 힘을 실어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생각해 본 것이 이 책을 읽으면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이라고 생각한다. 억지로 다 읽기는 했지만, 내용은 이미 거의 다 까맣게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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