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의 대한민국 1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11년 4월
평점 :
절판


2004년 7월에 '우리 역사 최전선'을 다 읽은 뒤, 나는 박노자라는 사람을 좀 더 알아보고 싶었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중앙일보와 동아일보만 읽었고 한겨레는 읽지 않았기 때문에 한겨레에 박노자 교수가 쓰는 글을 보지 못했다. 신문을 잘못 읽어서 건강한 보수가 아닌 나라에 해가 되는 수구파와 같은 생각만 하고 있었다. 중앙일보나 동아일보와 같은 수구 언론이 주장하는 바를 과감하게 반박하는 박노자 교수는 나에게 반발과 흥미를 한꺼번에 불러일으켰다. 이 사람이 하는 주장을 거침없이 반박해 주겠다고 마음먹었던 그때 그 모습을 생각해 보면, 한심하기 짝이 없다.
 

그러다가 2004년 9월에 몸짓을 하기 시작하면서 박노자 교수가 주장하는 바와 같은 노선을 걷고 있는 사람들과 같이 공부하고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수많은 토론과 논쟁을 거치면서 나는 그때까지 내가 쌓았던 것들을 나름대로 과감하게 허물면서, 우파에서 좌파로 조금씩 탈바꿈했다. 그리고 한겨레를 읽기 시작했고 박노자 교수가 쓴 글을 읽었다. 한결같이 한국에 대한 애정이 듬뿍 묻어나는 글이었다. 그 애정 덕분에 비판이 더욱 날카롭고 치밀했다. 노르웨이 국립 오슬로대학 한국학과 부교수로 재직하면서도, 언론에 글을 계속 싣는 그 정성이 대단하다고 느꼈다.

 

1년이 지난 뒤 사범대 학생회실에서 우연히 박노자 교수가 쓴 이 책을 봤다. 틈틈이 학생회실에 와서 읽다가, 귀찮고 소장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서 알라딘에서 샀다. 단숨에 읽으려고 했는데 예상보다 읽는데 시간이 꽤 걸렸다. 한겨레에 기고한 글에서 보여준 섬뜩할 정도로 예리하고 정확한 비판이 이 책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군사 문화, 군국주의, 영어 공용화, 타락한 종교……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진 뒤 굴곡이 매우 심한 일그러진 한국 사회가 보여주는 문제점을 가차없이 까발린다. 그가 직접 겪었던 것들과 그동안 공부한 인문학과 한국학 지식을 이용하여 비판을 멈출 줄 모른다. 그가 한국 사회에 빛이 되는 존재라는 찬사가 지나치지 않다는 것을 이 책을 알고서야 확실히 느꼈다. 토종 한국인으로서 부끄러울 지경이었다.

 

특히 군대에 가야 할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나에게는 특히 군사 문화에 관한 이야기가 심각하게 다가왔다. 특히 특전사로 복무하다가 제대한 학생이 군대 가기 전에 품었던 꿈을 완전히 잃어버린 이야기를 읽으면서 소름이 끼쳤다. 군대에 갔다 오면 그전에 공부한 것들은 다 잃어버린다고 하니, 지금까지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한 것이 안타까울 지경이다. 오죽하면 학군단에 지원한 까닭 가운데 한 가지가 공부를 계속 할 수 있다는 것이었을까. 

 

학군단에 떨어진 뒤 다른 방법을 찾아봤다. 카투사가 자유 시간도 많고 복무 기간도 2년으로 좋기는 하지만, 걸릴 확률이 낮은 데다가 주한 미군을 별로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기에 후보에서 뺐다. 공군이 편하고 말년에 공부하기 좋기는 하지만, 복무 기간이 3개월이나 더 길어서 역시 후보에서 뺐다. 그렇다고 해서 평범한 육군에 가기도 싫었다. 그래서 결국 특전사보다는 지원 자격도 덜 까다롭고 시험도 쉬운 해병대에 지원했다. 그러나 여전히 학군단에 미련이 남아 있고, 이 책 때문에 군대가 지니고 있는 좋지 않은 점에 더욱 주목하게 되었다. 그래도 이미 선택한 길이니 되도록 나에게 좋은 길로 이끌어 가는 수밖에 없다. 그것은 완전히 내 몫이다.

 

어쨌든 이 책이 내가 고민하던 여러 가지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해 준 것은 틀림없다. 이 책에서 물고 늘어진 것들은 평소에 내가 느끼던 것들이었다. 그래서 충분히 공감하고 가려운 곳을 긁는 듯한 시원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북한 바로 알기'는 매우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모든 내용이 맞다고 인정할 수는 없었다. 내가 지금은 왼쪽으로 기울어 있어서 이 사람이 하는 말이 무조건 옳다고 여기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모병제나 대체복무제에 관한 생각은 아직도 확실하지 않다. 특히 맨 마지막에 나오는 인종주의 문제의 근원을 파헤치는 내용에서는, 박노자 교수가 그토록 심혈을 기울여 연구하고 논쟁을 벌인 19세기말 한국사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알아볼 수 있다. 그런데 나는 '우리 역사 최전선'을 읽으면서 19세기말 한국사에 관한 논쟁에서는 허동현 교수가 주장하는 바에 약간 더 끌렸다.

 

보수파인 허동현 교수와 진보파인 박노자 교수가 나름대로 대립각을 세우는 형편이니, 어떤 문제에서는 허동현 교수를 지지하고 어떤 문제에서는 박노자 교수를 지지하는 나로서는 박노자 교수가 하는 말을 무조건 맞다고 받아들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아는 것이 없었으니 일단 읽고 내용을 기억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누가 말하든지 간에 그 안에 진실에 근거한 논리만이 있다면, 그 논리는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제임스 조이스가 '젊은 예술가의 초상'에서 말하는 미학 이론과 연관되어 있는 듯 하다. 그 방법은 편견에 빠지지 않고 순수하게 이성에 따른 논리와 사실로만 모든 것을 판단하려고 힘쓰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 생각에 따라 지금까지 나름대로 안간힘을 썼다. 부족하나마 그렇게 힘써가며 이 책을 읽은 결과는 매우 만족스러웠다. 순수하고도 논리정연한 한국 사회 비판을 읽으면서 가슴이 뜨끔했고, 그 속에 숨겨진 애정을 느끼면서 가슴은 한없이 따뜻해졌다.

 

이 책 제목대로 대한민국은 '당신들의 대한민국'이다. 일그러진 민족주의, 종교, 국가주의, 전근대 보수주의 따위를 넘어서지 못하고 다른 나라에서 온 존재뿐만 아니라, 같은 사회 구성원들끼리도 서로 시기하고 잡아먹고 싶어 안달이 났다. 다른 존재를 배척하는 '당신들의 대한민국'이 아닌 다른 존재를 감싸안는 '모든 이들의 대한민국'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대한민국에는 희망이 없다고 박노자 교수는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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