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콘다 - Anacon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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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따르면 뱀은 이브를 유혹하여 선악과를 먹게 해서 아담과 이브를 천국에 쫓아냈다. 성경뿐만 아니라 여러 종교 경전에서도 뱀이 신과 사람들에게 저지른 악행에 관한 기록을 볼 수 있다. 사람들이 뱀을 대할 때, 심지어 뱀이라는 말만 들었을 때 보여주는 거의 본능에 가까운 거부감과 공포를 종교학자들은 그런 온갖 기록을 근거로 삼아 설명하기도 한다. 하지만 생물학자들은 사람도 위험을 인지하고 경고하는 생화학 체계를 갖추고 있는 동물이기에, 뱀이 사람들에게 위험하다는 사실이 위험 경보 체계에 쓸모 있는 정보로 저장되었고 그 체계가 저절로 작동하는 것이라고, 철저하게 과학에 근거한 설명을 내놓는다.

 

설명하는 방법은 다르지만, 일단 종교학자들이나 생물학자들이나 뱀이 사람들에게 위험하고 두려운 존재라고 여기는 건 똑같다. 자기보다 훨씬 덩치가 큰 동물도 주저하지 않고 감아서 삼켜버리는 그 무지막지한 식성을 누가 역겹다고 느끼지 않을 수 있을까. 물론 모든 동물은 먹어야 살고 각자 습성과 조건에 알맞게 먹는 방법과 먹이가 각자 다르니, 뱀이 먹이를 먹는 게 역겹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어쩌면 이상한 것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사람들은 뱀을 싫어한다.

 

'권위의 법칙'에 따라 뱀이 클수록 그 거부감과 공포는 더욱 커진다. 작은 뱀이야 그냥 징그럽다고 하고 겁이 별로 없는 사람들은 귀엽게 느끼기까지 하지만, 사람을 꽉 조아서 죽일 수 있을 정도로 큰 뱀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누구든지 그런 큰 뱀을 실제로 보면 너무 놀라서 비명조차 지를 수 없을 것이다. 그런 뱀은 사람들이 많이 사는 도시에서는 전혀 볼 수가 없기에 더욱 그렇다. 전혀 예상하지 않은 상태에서 마주치는 공포는 예상했을 때보다 더욱 강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거대한 뱀은 지금까지 대개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무시무시한 괴물로 온갖 이야기에 등장했다. 동양에서보다는 서양에서 그런 경향이 더 잘 드러난다. 동양에서는 한국 전래동화에 '지성이와 감천이'라는 우리말 유래가 된 이야기가 있기도 하다. 하지만 서양에서는 뱀이 사람에게 도움을 주었다는 이야기를 찾아볼 수가 없다. 동서양 공통으로 나타나는 은밀한 곳에서 살다가 마을로 내려와 사람을 해치고, 처녀를 제물로 바치라고 강요하며 사람들을 괴롭히는 사악한 뱀 이야기만 있을 뿐이다. 기독교 전통이 깊은 서양에서 그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동서양에서 공통으로 신비로운 존재로 여겨지는 용은 뱀과 직접 연관되어 있다. 이 용이 동서양에서 어떻게 표현되는지 알아보면, 뱀을 바라보는 시각을 더욱 뚜렷하게 구분할 수 있다.

 

동양에서는 용이 대개 황제가 가진 권위를 상징하는 성스러운 존재로서 사람들에게서 존경과 숭배를 받고, 색깔도 대개 긍정과 젊음과 희망을 나타내는 청색이다. 용이 되지 못한 뱀을 이무기라고 부르며 용과는 다른 요물로서 확실히 구분하고 있는데, 이는 용에게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존경심을 뚜렷하게 드러내는 증거라고 볼 수 있다. 사람들을 해치는 몹쓸 뱀은 흔히 용이 되지 못한 화풀이를 사람들에게 하는 포악한 이무기로 나타난다. 곧 알에서 태어난 평범한 뱀이 수련을 거치면서 천 년을 묵으면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갈 수 있다는 기본 전제가 깔려 있다. 이는 용이 지닌 본성이 포악하지 않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인식은 뱀에도 어김없이 적용된다.

 

그러나 서양에는 이무기라는 개념이 없다. 용은 알에서 태어날 때부터 용이 지닌 특징을 그대로 띠고 있다. 거친 날개가 있고 날카로운 발톱이 있다. 곧 본성이 포악하여 사람들을 해치는 괴물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악마와 결탁하거나 악마에게 조종당해 사람들을 지옥으로 인도하고자 온갖 술책을 쓰는 사악한 존재로까지 묘사되기도 한다. 아더왕 전설이나 베어울프 전설 따위에서 볼 수 있는 용은 신하들을 잡아먹고 왕에게 저항하는 괴물이다. 이들은 대개 붉은 핏빛이거나 검다. 둘 다 피와 어둠과 부정을 뜻하며 악마를 대표하는 색깔이다. 포악한 용에 맞서 싸우는 용사들이나 마법사 이야기는 현대에까지 전해져 내려와 서양 영화에서 자주 인용되는 단골 주제이다.

 

웃긴 것은 결국 동서양 공통으로 뱀을 본떠 용을 상상해냈으면서도, 서양에서는 이무기라는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용은 용이고 뱀은 뱀이라는 식인데, 뱀은 성경에 나오듯이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사악한 존재이고 용은 뱀을 본뜬 존재이니 마찬가지로 사악하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영화에도 고스란히 드러나서, 괴물 영화 분야를 거의 독점하다시피 하는 외국 영화에서 뱀은 매우 좋은 주제거리가 되었다. 동정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초점 없는 눈동자로 공포에 떨고 있는 사람을 바라보며 끝이 갈라진 혓바닥을 날름거리는 뱀을 상상해 보자. 뱀은 꼼짝없이 얼어버린 사람을 그윽한 살의가 서린 눈으로 쳐다보더니, 순식간에 사람을 휘감아 뼈와 내장을 부수고 터뜨린 뒤 통째로 삼켜버린다. 서양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야말로 '악의 화신'이라고 할만하다.

 

그런 무시무시한 뱀을 대표하는 것들로 주로 동남아시아에 사는 비단구렁이나 보아, 아프리카와 서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에 폭넓게 분포하는 코브라, 그리고 중남미 정글에 사는 아나콘다가 있다. 이 영화는 제목 그대로 아나콘다를 주제로 삼았다. 그리고 거대한 아나콘다가 사람들을 습격하여 잡아먹는 무시무시한 장면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사람을 물어 흔들고 휘어 감고 조아서 삼키는 아나콘다는 누가 봐도 기가 질리게 만든다. 특히 아나콘다가 삼킨 사람이 뱃속에서 꽉 끼여 바깥으로 윤곽을 드러내는 장면이나, 새끼들에게 주고자 잡아먹은 사람을 토해내는 장면은 끔찍하기 짝이 없다.

 

시작할 때부터 정글 속에서 조난당한 배에서 절박하게 구조를 요청하는 사람을 아나콘다가 습격하면서 영화가 시작되는데, 교묘하게도 아나콘다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뱀을 수호신으로 섬긴다는 중남미 원시 부족을 찾아 주인공 일행이 아마존 정글로 들어가는데, 돈벌이에 눈이 멀어버린 악당 한 사람을 못 알아보고 배에 태우는 바람에 일이 꼬일 대로 꼬이기 시작한다. 아나콘다가 재규어를 잡아먹으며 앞으로 일어날 끔찍한 참상을 예고하고, 악당이 주인공 일행과 동행하면서 지름길을 안다며 특정한 지점으로 가도록 자꾸만 유인하면서 불길한 예감은 갈수록 커진다.

 

드디어 불길한 예감이 현실이 되어 주인공 일행 가운데 한 사람이 영화 맨 처음에 나왔던 조난당한 배를 수색하고 돌아가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고, 악당은 아나콘다를 잡아 돈벌이를 하겠다는 속셈을 거침없이 드러내며 주인공 일행을 위협한다. 설상가상으로 거기에 동조하는 사람까지 나오면서 주인공 일행은 울며 겨자 먹기로 아나콘다 사냥에 나선다. 마침내 상상을 뛰어넘는 거대한 아나콘다가 그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사람들은 원시 부족을 발견할 수 없을 것이라는 걱정은커녕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극심한 공포에 시달리게 된다. 시도 때도 없이 습격해 오는 아나콘다와 돈벌이에 눈이 먼 악당 사이에서 주인공 일행은 더는 나빠질 수 없는 상황에까지 이른다. 이들은 과연 어떻게 위기를 빠져나갈 것인가?

 

영화가 나름대로 괜찮아서 꽤 재미있게 봤는데, 엉뚱하게도 갑자기 그야말로 완벽한 배타성과 흑백논리를 보여주는 개신교도들이 떠올랐다. 임진왜란 때 조선 침략 선봉대를 이끈 고니시 유카나가가 독실한 기독교도였다고 해서 그를 괴롭힌 이순신이 하느님에게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이고, 그 죄인을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토록 존경하는 까닭을 이해할 수 없다는 정신나간 소리를 거침없이 해대는 이들이다. 내가 알기로 이런 독특한 견해를 지닌 이들이 이 영화를 보고 깨달을 수 있는 점을 담은 글을 쓴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아서 안타깝다. 그 평론을 볼 때 집중도 그다지 하지 않고 대충 봤고 그나마 본 지도 꽤 오래 되어서, 이제는 내가 본 것이 지금 기억하고 있는 그대로인지 아니면 다른 것을 보고 멋대로 상상한 것인지도 확실하지 않다. 어쨌든 내가 알고 있는 대로 써 보겠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이끌어내는 충분하기 때문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성경에 따르면 뱀은 사람과는 절대 타협할 수 없는 악한 존재이다. 그렇다면 과연 그런 악한 존재를 섬기는 원시 신앙을 지닌 이들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든 그렇지 않든 상관없이 반드시 회개해야 하는 이교도들이다. 그들에게 다가가는 이들에게는 반드시 악마가 접근하여 해를 끼친다. 주인공 일행이 중간에 태운 악당이 바로 악마가 보낸 전령이며, 전령에게 이끌린 그들은 아나콘다라는 악마에게 해를 입은 것이다. 악당이 애당초 아나콘다에게 주인공 일행을 끌고 가려고 접근했다는 사실은 그 증거로 인용된다.

 

아나콘다가 악당을 잡아먹어버린 것은, 어차피 악당은 악마가 보낸 전령이므로 그럴 수도 있다고 한다. 전령이 악마에게 먹이가 되는 것은 악마들이 지닌 습성으로 볼 때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나콘다는 처음에는 악당을 잡아먹을 생각이 없었고 악당이 묶어놓은 제물을 그냥 먹으려고 했는데, 그러면 악마라는 정체가 탄로날까봐 그것을 숨기고자 악당을 어쩔 수 없이 잡아먹어버린 것이라는 놀라운 해석을 내놓는다. 어차피 사람들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악마, 곧 아나콘다는 악당을 잡아먹은 뒤에도 쉽게 사람들을 잡아먹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개의치 않았는데, 어쩌다 보니까 예상 밖으로 사람들이 강하게 저항하면서 계획대로 일이 굴러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단정 지어 버린다. 하느님이 보살펴 주셨다는 이야기는 절대 꺼내지 않는다. 이교도를 찾아가는 불순한 무리들을 하느님이 지켜준다는 건 말도 안 되기 때문이다.

 

가장 기가 막힌 것은 선교사들이 그들에게 찾아갔다면 그들은 아나콘다를 만나는 봉변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논리이다. 설사 그들이 아나콘다를 만나 사투를 벌이다 죽는다 하더라도, 그 글을 쓴 이들은 그것을 순교로 여기며 찬양할 것이다. 선교라는 명목으로 온 세상에 피바람을 불러일으킨 제국주의를 생각하면서 나는 씁쓸한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결국 그들은 그 글에서마저 완벽한 배타성을 드러내고 있다. 자기들이 믿는 신을 믿지 않는 이교도들은 반드시 악마가 찾아와 피해를 입는다는 논리가 배여 있다.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이 그런 해석이 나오기를 의도했든 그러지 않았든, 정말 해석은 하기 나름이라는 사실을 그 글을 되새겨 보면서 확실히 느꼈다. 아마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감독이 자기도 모르게 그런 생각을 가지고 아나콘다를 소재로 삼아 이 영화를 만들었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감독은 그저 뱀이 보여주는 흉포함과 잔인함을 확실하게 드러내는데 온 신경을 쏟았다고 했으며, 그 말은 의심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나는 앞에서 풀어놓은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영화가 성공한 뒤 만들어진 '아나콘다 2'를 보면서, 나는 '아나콘다'를 보고 감상문을 쓸 때 했던 생각과 같은 범주에서 되새겨 볼거리를 찾을 수 있었다. 분명히 그냥 즐기려고 이 영화를 보다가 어쩌다가 이런 지경에까지 이르게 됐는지 이 글을 쓰면서도 이해할 수가 없다. 하지만 일단 생각이 났으니 마음대로 부지런히 써야겠다. 내가 이런다고 해서 혹시나 이 글을 읽은 사람들이 괜히 쓸데없는 생각에 빠지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그저 이런 공포 영화에서 느낄 수 있는 재미(?)만 확실하게 챙기면 그만이다. 그리고 쩍 벌어진 무시무시한 뱀 주둥이와 아무 감정 없이 그저 살기만 그윽한 눈동자를 내 눈으로 직접 보는 일은 없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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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기맨 - Boogeyman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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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 크게 발달한 요즘도 귀신 이야기는 사람들 관심에서 벗어날 줄 모른다. 비록 시간이 흐르면서 지구 온난화 때문에 갈수록 심해지는 더위를 몰아내는데 좋은 방법으로 전락해 버리기는 했지만, 그래도 귀신 같은 초자연 존재와 그 때문에 사람들이 느끼는 공포 같은 심리 현상을 진지하게 바라보는 이들도 분명히 많다. 과학과 심리학을 넘나드는 주제인 초자연 현상과 그 때문에 생기는 공포는 초과학이 나름대로 발달하기는 했어도 여전히 설명하기가 쉽지 않고, 호기심이 넘치는 사람들은 그 모호한 영역을 설명하고자 본능과도 같이 온갖 논리를 고안해 낸다.

 

귀신이라고 하면 유물론자들은 턱도 없는 믿음 때문에 쓸데없이 헛것을 보는 것이라고 코웃음을 치겠지만, 초자연 현상이 실제로 일어난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자료도 지금까지 꽤 많이 모여서 무작정 그렇게 단정 지어 버리기도 힘들다. 논리와 비논리를 넘나드는 모호한 영역에서 논쟁은 끝도 없이 이어진다. 그 논쟁 속에서 초자연 현상은 생명을 얻는다. 귀신도 그 속에 살아 있다. 논쟁에 목숨을 거는 이들을 비웃듯이 귀신들은 날 보란 듯이 나타나서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괴롭히며 심지어 목숨을 빼앗아가기도 하지만, 때로는 좋은 친구가 되거나 사람들을 돕기도 한다.

 

온갖 귀신 이야기가 사람들 사이에 떠돌아다니지만, 어디에 가든지 끈질기게 명맥을 이어오는 전통(?) 귀신 이야기가 있다. 한국과 일본에 검은 머리를 길게 늘어뜨려 얼굴을 가리고 하얀 소복을 입은 처녀귀신이 있고, 중국에 청나라 조정 대신들이 입는 정복(?)을 입고 신선한 피를 찾아다니는 강시가 있고, 홍콩에 기분 나쁘게 깔깔 웃어대며 사람들을 쫓아다니는 홍콩할매귀신이 있다. 그렇다면 서양에는 무엇이 있는가?

 

바로 이 영화에 나오는 부기맨(Boogey Man - Boogie로 생각하는 이들이 있을 수도 있는데, Boogie는 흑인을 나타내는 미국 속어이므로 괴물 이름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본다)이 있다. 프레데터처럼 손등에 칼을 찬(프레데터가 쓰는 주력 무기인 리스트 블레이드(Wrist Blade)와 거의 비슷하게 생겼다) 프레디와 항상 날이 피범벅인 큰 도끼를 들고 다니는 제이슨이 '프레디 대 제이슨(Freddy VS Jasson)'이라는 영화까지 만들어질 정도로 사람들 사이에서 유명하고 심지어 큰 인기를 끌기까지 했지만, 사실 부기맨 앞에서는 명함도 못 내민다. 매우 유명하고 나름대로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드라큘라와 좀비도 부기맨 앞에서는 아무 것도 아니다.

 

프레디, 제이슨, 드라큘라, 좀비 따위 모든 괴물들은 실체가 분명하며 따라서 죽일 방법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부기맨은 전혀 정체를 알 수 없다. 15세기에 켈트 족 전설에 처음으로 나타나는 부기맨은 서양에서 잔약한 살인마나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 때문에 사람들이 죽어나갈 때마다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기는 했지만, 그 정체는 결코 밝혀지지 않았다.

 

어린 주인공은 아버지가 들려주는 그 정체 모를 괴물 이야기 때문에 극심한 공포에 시달린다. 벽장 속에 아이를 가둔 아버지는 1에서 5까지 세고 아무 일이 없으면 귀신은 없는 거라면서 아이를 달래지만(?), 이미 극도로 공포에 질린 아이에게 그런 말이 제대로 통할 리가 없다. 아버지는 어릴 때 남은 기억은 평생 동안 사람들을 따라다닌다는 상식을 분명히 무시한다. 아이를 학대하는 건지 정말 담력을 키워주려는 건지 어떤 건지도 알 수 없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불을 끄고 잠에 빠지려던 아이는 뭔가 방 안에 있다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 그 예감은 아주 서서히 현실이 되어, 정체를 알 수 없는 시커먼 괴물이 아이가 누워있는 침대로 다가온다. 극도로 공포에 사로잡혀 이불을 뒤집어 쓴 아이에게 다가와 이불을 걷어낸 이는 아버지였다. 아이가 방 안에 무언가 있다고 말하자 아버지는 피식 웃으면서 귀신 이야기는 사람들이 꾸며낸 이야기일 뿐이라면서 구석구석을 직접 돌아다니고 헤집는다.

 

마지막으로 옷장에까지 들어갔다가 나와서 어깨를 으쓱하는 아버지. 그 순간 옷장 안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이 튀어나와 아버지를 옷장 안으로 끌고 들어간다. 너무 놀라서 비명도 지르지 못하는 아이 앞에 아버지가 옷장 안에서 갑자기 튀어나온다. 그러나 상체만 튀어나왔지 하체는 분명히 옷장 안에 있는 괴물에게 잡혀 있다. 천장과 바닥에 쉴 새 없이 내팽개쳐진 아버지는 극도로 심한 고통 때문에 나중에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비명이 멈추는 순간 아버지는 다시 옷장 안으로 끌려들어가 사라진다. 그 뒤 아이는 다시는 아버지를 볼 수 없었다.

 

아이는 그 끔찍한 경험을 사람들에게 이야기하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믿지 않는다. 15년이 지난 뒤 어엿한 직장인이 된 아이는 예쁜 여자 친구까지 두고 근심 걱정이 하나도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는 남들이 자기를 믿어주지 않는 현실이 원망스럽기만 하고, 아버지를 잡아간 괴물이 다시 나타날까봐 자기 혼자 두려워한다. 실제로 그가 사는 집에는 찬장과 여닫이문이 하나도 없다. 아버지를 잡아간 괴물이 찬장 안에서나 여닫이문으로 가려진 공간 안에서 불쑥 튀어나올까봐 그런 것이다. 그런 방법이 효과가 있었는지 괴물은 나타나지 않고, 그는 공포에 떨면서도 괴물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에 겨우 마음을 놓으며 그럭저럭 살았다.

 

그러나 아버지가 사라진 뒤 계속 상태가 좋지 않던 어머니가 더욱 안 좋아졌다는 소식을 삼촌에게서 들은 주인공은, 그토록 가기 싫어하던 옛날 집에 어쩔 수 없이 찾아간다. 그런데 주인공이 옛날 집에 가자마자 그가 걱정하던 대로, 정체를 감추고 있던 괴물이 다시 나타나 주인공과 절친한 이들을 잡아가기 시작한다. 그는 괴물을 막으려면 결국 자기가 나서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아버지가 괴물에게 잡혀갔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이상한 여자아이에게서 용기를 얻어 괴물에게 정면으로 맞선다. 마침내 괴물이 정체를 드러내면서 주인공과 사라진 사람들을 둘러싼 온갖 비밀이 하나 둘씩 밝혀지며 이야기는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치닫는다.

 

이 영화를 보면서 나는 군대에서 읽었던 스티븐 킹이 지은 '그것(IT)'을 떠올렸다. 거기에서 '그것'은 거대한 뱀 같은 괴물도 아니다. 모든 사람들이 지니고 있기 마련인 어린 시절에 느꼈던 원초 공포를 무엇보다도 뚜렷하게 되살리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어떤 것이다. 그 극렬한 공포에 사로잡힌 이들은 환상인지 현실인지 물리 현상과 초자연 현상을 구분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는 가운데 자기가 어릴 때 무서워했던 그것(!) 때문에 죽고 만다. 실체를 알 수 없고 밑도 끝도 없이 모호하기만 하니, 흉포한 공포 속에서 죽어간 사람들이 단말마를 맞이하기 직전에 '악령(Evil Spirit)'도 '괴물(Monster)'도 아닌 '그것(IT)'이라는 글자를 남긴 것이다.

 

여기에 나오는 부기맨도 결국 모호한 그것이 뚜렷하게 정체를 드러낸 것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감독은 부기맨이라는 괴기스러운 초자연 존재가 사람들에게 더욱 큰 공포를 선사할 수 있도록 세심한 부분에까지 나름대로 신경을 많이 썼다. 배경음악에 신경을 많이 쓰지는 않았는지 음악은 그다지 많이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그 대신 초중반에 느린 사건 진행 속에서 주인공이 부기맨을 느끼는 과정을 분명히 나타내고,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두려워하기 마련인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어두컴컴한 공간을 강조한다. 공간만 강조하면서 부기맨이 무엇인지 절대 정확하게 드러내지 않으면서 사람들만 사라지게 하다가, 주인공이 자기를 괴롭히는 괴물에게 맞서고자 다가가는 그 순간부터 부기맨을 갑자기 전면에 등장시키며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한다.

 

도대체 감독은 이 영화에서 무엇을 말하려고 한 걸까? 그저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원초 공포를 끌어내려고 한 걸까, 아니면 그 속에 무엇이 있는지 파헤치려고 한 걸까? 누구도 정확하게 밝혀내지는 못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는 영역인 무의식 그 속에 자기도 모르게 스며들어 버린 무시무시한 공포를 이끌어내면 부기맨과 같은 괴물이 현실로 나타나는 걸까?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환상일까?

 

감독은 그 모호한 경계를 넘나들며 우리가 모호함에 관하여 품고 있는 설명할 수 없는 두려움을 자꾸만 들쑤신다. 그런 시도는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적어도 일단 굳게 닫힌 찬장 안이나 침대 밑 같은 어두컴컴한 공간을 자꾸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덜덜 떨기 시작한 나 같은 사람들에게서는 말이다.

 

전설 속에서나 나오는 괴물이 현실로 나타나는 끔찍한 공포는 그 실체가 밝혀지지 않았기에 더욱 끔찍하다. 과연 주인공은 어떻게 실체를 알 수 없는 그 괴물에게 맞설까? 도저히 눈을 믿을 수 없게 만드는 그런 일을 버젓이 저지르고 다니는 놈에게 말이다. 그는 너무 두려워서 눈을 감은 채로 숫자를 센다. 그리고 골똘히 생각에 빠진다.

 

1, 2, 3, 4, 5. 1에서 5까지 다 셌어. 그런데도 귀신이 나를 끌고 가지 않았어. 그러면 아빠가 말한 대로 이제 아무 일이 없는 거야. 그렇다면 눈을 떠도 될까? 아니야. 나는 아빠 말도 믿을 수가 없어. 5까지 센 뒤에 아무 일이 없다고 해서 눈을 뜨는 바로 그 순간 부기맨은 괴성을 지르며 나를 끌고 가 잡아먹어 버리겠지. 나는 눈을 뜨지 않을 거야. 5를 넘길 거야. 그렇다면 6을 넘긴다면 어떻게 될까? 과연 어디까지 숫자를 세어야 내 앞에 있는 정체 모를 괴물이 사라질까?

 

그는 어느 순간 깨달았다. 숫자를 세는 자체가 아무 뜻이 없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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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연 - The Banquet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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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을 둘러싼 암투는 권력이라는 개념이 처음으로 생겨난 뒤 온 세상에서 끊이지 않고 일어났다. 그 암투는 왠지 모르게 물에서 생기는 소용돌이를 닮았다. 부드럽게 사람을 빨아들인 뒤 완전히 으깨버리는 무시무시한 소용돌이. 자기 의지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권력을 쥐고자, 얼마나 수많은 사람들이 암투라는 그 소용돌이에 자연스럽게 몸을 맡기고, 숨막히는 긴장 속에서 조금이라도 일이 잘못되면 휘몰아치는 피바람에 휩쓸려 목숨을 잃어야 했던가?
 

그 소용돌이도 온갖 조건에 따라서 각자 독특한 끔찍함과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본질은 같다고 할지라도 그런 것이 표현되는 방식은 정말 다양하기에, 다채로움이라는 단어에 생명이 있고 그렇기에 인류가 이룩한 것들이 아름다운 것이다.

 

어쨌든 이 영화에서는 그 암투가 벌어지는 무대가 드넓은 중국 땅에 세워진 강대한 통일 국가 가운데 하나인 당나라 궁궐 안이다. 중국 땅을 걸으며 온갖 것을 보면서 느낀 그 질릴 정도로 어마어마한 거대함은 이 영화에서도 유감없이 나타난다. 그 거대한 제국에서 정점에 있는 황제가 갑자기 죽음을 맞이하고, 그 동생인 리(유게 분)가 황위를 계승한다. 햄릿에서처럼 황제가 시해당했다고 모든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지만 물증이 없을 뿐이다.

 

졸지에 남편을 잃은 황후 완(장쯔이 분)과 태자 우루 안(다니엘 우 분)은 목숨을 위협받는 상황에 놓이는데, 완은 뜻밖에도 새황제를 모시겠다고 한다. 우루 안을 사랑했지만 선왕에게 간택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헤어져야 했던 그녀는 우루 안을 살리고자 돌이킬 수 없고 누구도 이해하기 힘든 선택을 한 것이다.

 

그렇지만 태자는 황후를 이해하지 못한다. 계속 이어지는 위협을 몇 번이고 넘기면서 태자는 복수심을 불태우고, 황후도 황제를 시해하고자 은밀하게 계략을 준비하면서 태자를 보호하느라 안간힘을 쓴다. 온갖 음모가 도사리고 있다가 마침내 리가 마련한 야연(!)에서 드러나면서 영화는 절정에 이른다. 

 

이 영화를 보면서 자꾸만 햄릿이 생각났다. 솔직히 중국판 햄릿이라고 봐도 좋을 정도로 내용이 비슷하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애정 관계가 '햄릿'보다 더 복잡하고, 주요 인물들이 죽는 순서가 다를 뿐이다. 사랑과 권력과 복수를 놓고 벌어지는 숨막히는 암투 속에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죽었다. 그 죽음마저 느린 영상과 선율로 사람들에게 아름다움을 주는 장치로 변해버렸다.

 

그 죽음을 마지막까지 피하는 듯했던 이는 바로 완이었다. 완이 보여준 연기는 정말 내 심장을 사정없이 쥐어짰다. 그녀가 보여주는 관능미는 지극히 일부분밖에 되지 않는다. 우루 안을 지키려고 발버둥치는 모습, 여자를 만족시킬 줄 안다면서 유게에게 기꺼이 벗은 몸을 맡기는 모습, 그 모든 것이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권력을 원하는 무서운 집념을 감추는 듯하면서도 살며시 드러내고 있었다. 하지만 완이 걸치고 있는 비단결 안에 숨어 있다가 완이 몸을 흔들자 살며시 드러난 매끄러운 가슴과 허리가 만드는 곡선처럼, 은밀하게 드러난 그것을 나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붉은 비단을 끌어내린 뒤 결국에는 그 비단을 끌어안고 절정에 이른 환희에 휩싸인 듯한 목소리를 내는 완을 찌른 이는 누구인가? 유게도 이르게 하지 못한 그 절정에 도달하게 한 그 권력은 그녀에게 결국 죽음을 선사했다. 하지만 그녀는 죽음을 인정할 수 없었고 가슴에 칼이 꽂혔는데도 뒤를 돌아본다. 그리고 나서 너무 놀라 안 그래도 고통 때문에 부릅뜬 눈을 더욱 크게 뜬다.

 

문득 나는 다시 한 번 자금성을 떠올렸다. 황제가 앉는 용상 위에 있는 쇠구슬이 생각났다. 황제로서 적합하지 않은 자가 황제 자리에 올라 용상에 앉으면 저절로 떨어져 그 자를 박살내 버린다는 그 끔찍한 쇠구슬. 그러나 그 쇠구슬에는 의지가 들어가 있지 않다. 가슴에 칼이 박힌 완은 힘겹게 뒤를 돌아보고 너무 놀라서 그저 손을 뻗어서 뭐라고 말을 하려고 하지만, 이미 죽음은 너무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완을 죽인 이는 누구인가?

 

완마저 죽인 칼이 물 속에 떨어지고 모든 이를 매혹하는 '내 모든 것 사랑에 바치네(我用所有報答愛)'가 흘러나오면서 영화는 끝난다. 완이 지은 일그러진 표정과 가슴을 쥐어짜는 듯한 음악이 절묘하게 어울리면서 그 전에 나온 모든 영상이 주는 메세지를 담아 정말 긴 여운을 남긴다. "완을 죽인 이는 과연 누구인가?"라는 결국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까지 덧붙이면 그야말로 자리에서 일어나기 힘들 정도로 묘한 기분에 휩싸이고 말 것이다.

 

편집이 좀 좋지 않았다는 평이 있기는 하지만 나는 그런 지적에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영화에 관한 지식이 워낙 부족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저 영화에 푹 빠져들어 정신이 하나도 없었고 그 기분을 언제까지나 간직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떤 결론을 내리기보다는 그저 사람을 홀리려고 작정한 듯한 음악과 영상에 흠뻑 취해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영화인 듯 하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더 하지요. 이런 아름다운 영화를 영화관에서 보게 해 주신 미영이 누나. 고맙습니다. 언제나 한없이 고맙기만 한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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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우 2 - Saw II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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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종료


'쏘우'를 본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영어 동아리 활동 시간에 속편을 볼 수 있었다. '쏘우'가 나온 뒤 열광하던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속편에 온통 관심을 쏟았다. 당연히 속편은 '쏘우 2'라는 제목으로 세상에 나왔다. 그토록 뜨거웠던 관심에 어긋나지 않고자 제작진이 심혈을 기울였다고 했다. 그렇게 공을 들여서 그런지 영화가 나온 뒤 그 반응은 수소폭탄이 터진 위력만큼이나 엄청났다.
 

일단 전편에서부터 그 치밀하고 천재와도 같은 잔인한 살인 장치를 선보인 직쏘가 처음부터 끈끈이주걱과도 같은 철투구로 한 남자를 죽인다. 머리에 백 개가 넘는 굵은 바늘이 박힌 남자는 그대로 자리에 쓰러지고 바닥에는 피가 흥건하게 고인다. 역시 남자에게는 살 방법이 있었지만 남자는 그 방법에 따르지 못했다. 그리고 그가 왜 심판(!)해야 할 대상이 됐는지도 직쏘는 분명히 그에게 말했다.

 

그 남자가 죽은 뒤 직쏘를 쫓던 형사 에릭 매튜스는 수사를 계속 하다가 그동안 장안을 공포에 떨게 한 직쏘를 뜻밖으로 쉽게 잡는다. 새하얗게 샌 머리에 그리 매섭지는 않지만 잔인한 천재성이 번뜩이는 눈빛을 지닌 직쏘는 자기를 겨누고 있는 총구와 자기를 금방이라도 갈가리 찢어놓을 듯한 험악한 눈빛을 보고도 섬뜩하다 싶을 정도로 태연하다.

 

에릭은 빨리 일을 끝내려고 하지만, 뜻밖에도 직쏘를 쉽게 잡은 것과는 반대로 일은 쉽게 끝나지 않았다. 이미 계획했다는 듯이, 직쏘는 에릭의 아들인 대니얼을 에릭이 누명을 씌워서 체포했던 범죄자 6명과 예전에 직쏘에게서 살아남았던 여자인 어맨다와 어떤 방에 가둬놓고 또 다른 심판을 내리려고 하고 있었다. 그 영상을 지켜보던 에릭은 아들이 죽으면 어쩌나 하는 부성애에 미쳐버릴 듯하다.

 

그런데 직쏘는 에릭에게 그 부성애가 진실인지를 묻는다. 난데없는 정곡을 찌르는 질문에 에릭은 갑자기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한다. 여기에서부터 영화가 던지는 정말 묵직한 생각거리를 담은 대화가 오고 가기 시작한다. 대충 기억나는 대로 들었던 원문을 우리말로 옮겨서 쓰면 다음과 같다(실제 대사와는 상당히 차이가 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사실 나는 이것을 가장 쓰고 싶었다).

 

 

직쏘 : 우선 내 소개부터 하지. 내 이름은 존이라네.

 

에릭 : 또한 직쏘라는 별명으로 잘 알려져 있기도 하지.

 

직쏘 : 글쎄. 나는 그런 별명을 스스로 붙인 일이 없는데.

 

에릭 : 어쨌든 내 아들 어디에 있어?

 

직쏘 : 진정하고 우리 게임이나 할까. 규칙은 간단해. 자네는 그냥 내 앞에 앉아서 이야기를 들어주기만 하면 돼. 규칙에 맞춰 게임을 잘해준다면 자네 아들을 무사히 보내주겠네. 모두 나가라고 하게.

 

에릭 : 좋아. 모두 나가게. 왜 나에게 이러는 거지?

 

직쏘 : 진정하게. 이제 한 번 이야기를 해 보자고. 한 번 생각해 보는게 어때? 자네는 아들을 사랑하는가?

 

에릭 : 그래.

 

직쏘 : 아닌 것 같은데? 자네는 왜 아들이 엄마에게 가겠다고 했을 때 어서 가라고 했지? 자네는 아들을 사랑하지 않는 건가?

 

에릭 : 아니야. 나는 내 아들을 정말 사랑해.

 

직쏘 : 거짓말 하지 말게. 아들이 죽을 때가 되어서야 용서하고 사랑한다고 말하는가? 역시 내가 옳다는 걸 자네가 증명하는군. 삶에 애착을 가지지 않는 자는 살 자격도 없다네.

 

에릭 : 그렇다고 그렇게 사람을 죽이는 것이 옳은 건가?

 

직쏘 : 나는 그들을 죽이지 않았어. 그들이 죽음을 선택했을 뿐이지.

 

에릭 : 권총을 쥐어주고 방아쇠를 당기도록 강요하는 것도 살인이야. 네놈이 살인자가 아니라면 도대체 뭐야?

 

직쏘 : 인간이 지닌 본성을 시험하는 사람이지. 모든 사람들은 욕심이 끝이 없어 만족할 줄 모르고 더 큰 쾌락을 찾아나서지. 그러다가 정작 삶 자체가 가장 큰 쾌락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지. 물 한 잔을 마시며 숨을 쉴 수 있다는 자체가 얼마나 즐겁고 소중한지 전혀 모른단 말이야.

 

나는 삶에 감사할 줄 모르는 어리석은 영혼들을 심판하는 구세주야. 자네 같이 증거를 조작하여 사람들을 감방에 처넣어 실적을 올리는데만 눈이 먼 사람들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에릭 : 헛소리는 집어치우는 게 좋겠네. 내 아들 어디에 있어?

 

직쏘 : 죽음을 선고받았을 때 그 기분을 아는가? 저 방 안에 있는 아들이 그 기분을 제대로 느끼고 있겠지. 나는 암 말기 환자라네. 암을 치료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아는가? 아직까지는 의학에서 방법을 찾을 수 있지. 바로 불멸이야. 인간에게도 불멸성은 있어. 바로 끝이 보이지 않는 생존 본능이지.

 

나는 암 말기 판정을 받은 뒤 차를 몰고 절벽에서 뛰어내렸어. 그런데 신기하게도 죽지 않았어. 배에 쇠파이프가 꽂히고 수도 없이 많은 상처에서 피가 흘렀는데도 죽지 않았어. 난 그때부터 인간이 지닌 본성을 시험하고 삶 자체가 얼마나 중요한지 일깨워주기로 마음먹었지.

 

멋지지 않은가? 요즘 같이 삶에 의욕이 없고 남을 이용하고 괴롭혀 쾌락과 만족을 얻는 쓰레기들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말이야. 나는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 구세주라고. 힘없는 열대어들에게 생존 본능을 일꺠우는 뱀장어와 같은 존재이지.

 

에릭 : 말도 안 되는 소리 집어쳐! 당장 내 아들 내놔!

 

 

아들과 같이 다니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처참하게 죽어가는 광경을 지켜본 에릭은 이성을 잃고 규칙을 어기고 직쏘를 마구 팬다. 하긴 죽는 방법도 정말 지독할 정도로 잔인하다. 누구는 억지로 문을 열려다가 강력한 권총에 머리가 통째로 날아가고, 누구는 가마에서 굽혀 죽고……그저 처참하다는 말밖에 쓸 수 없다. 그런 현장에 아들이 있다고 하니 어찌 에릭이 발광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어쨌든 에릭이 미쳐 날뛰자 직쏘는 아들이 있는 곳을 가르쳐 주겠다고 한다. 이성을 잃은 에릭은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은 채 차에 직쏘를 태우고 직쏘가 가르쳐 주는대로 마구 차를 몬다. 경찰들도 열심히 차를 몰아서 신호가 잡힌 곳으로 간다. 그러나 그들이 발견한 것은 아들이 아니었다. 에릭이 발견한 것도 아들이 아니었다. 그 뒤에 밝혀지는 엄청난 반전은 의견이 분분하기는 했지만 나에게는 전편만큼이나 큰 충격을 안겼다. 직쏘를 잡았다고 해서 끝이 아니라는 사실이 나를 그저 입을 다물지 못하게 했다.

 

 

"진정한 구원을 얻은 자는 구세주를 영원히 따르는 법이다."

 

 

전편과 한 치도 오차가 없이 이어지도록 하려고 시나리오 작가나 감독이나 무진장 애를 썼다는 것은 영화를 애써 관찰하지 않아도 저절로 알 수 있다. 빈틈없이 연결되어 매력이 넘치는 이야기 속에서 직쏘가 사람들에게 던지는 경고는 전편에서부터 울리더니, 속편에서는 아예 사이렌처럼 귀를 파고든다.

 

 

"삶을 당연한 것처럼 여기지 마라. 죽음이 선고된 뒤에 후회해도 소용없다."

 

 

직쏘가 에릭에게 말한 것처럼 그런 것이 어쩌면 정당하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삶에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차츰 늘어나고 그런 사람들 때문에 세상이 갈수록 혼란스러워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에게 심판이라는 이름으로 그토록 잔인한 선택을 요구하는 것은 과연 옳은 일일까.

 

좀 엉뚱한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이 영화를 본 뒤에 나는 죽음을 생각할 때마다 쏘우에 나오는 낄낄거리는 가면을 쓴 인형이 떠올라서 까무러칠 듯이 놀란다. 참 살 맛 안 난다는 생각을 할 때마다 내 목에 끈끈이주걱과 같은 철투구가 씌워져 내 머리를 박살낼 것 같아서 견딜 수가 없었다. 직쏘 같은 놈한테 붙들려 가지 않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를 보고 수많은 사람들이 직쏘와 같은 살인마가 실제로 있다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에 떨면서 자기 삶에 좀 더 애착을 가지고 열심히 산다면, 그것은 이 영화에서 기대할 수 있는 또다른 효과이다. 이미 나는 그런 효과 덕분에 꽤 큰 공포에 시달리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공포를 고맙게 여긴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고 실제로 따라하는 미치광이가 나타나지는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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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우 - Saw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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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돈 120만 달러(?)로 만든 영화가 무려 50배가 넘는 엄청난 수익을 올리면서 거대한 돌풍을 일으켰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대성공은 이 영화에 관련된 모든 인물에게 엄청난 수익을 가져다 주었다. 그만큼 이 영화가 지니고 있는 매력은 엄청나다. 예전에 봤던 적어도 나에게는 대단한 명작인 '큐브'만큼이나 나를 맹렬하게 뒤흔들었다.
 

두 남자, 아담과 고든은 각각 모퉁이에 쇠사슬로 발목이 묶인 채 어떤 방에 갇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왜 거기에 있는지도 모르며 곧 정체를 알 수 없는 범인에게서 청천벽력과 같은 사실을 듣는다. 고든은 오후 6시까지 아담을 죽이지 않으면 자기 가족이 죽는다는 끔찍한 경고를 듣는다. 그렇다고 아담이 호락호락 목숨을 내놓을 까닭은 전혀 없다.

 

그들이 주위를 둘러보니 일단 탈출에 쓸만한 도구는 톱(SAW)밖에 없다. 톱을 가지고 열심히 쇠사슬을 썰어보지만 단단한 쇠사슬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육두문자를 열심히 퍼붓고 톱을 내던진 뒤 그들은 도대체 어떻게 자기들이 그런 상황에 처했는지 생각해 본다. 그러면서 자기들이 어떤 큰 퍼즐을 맞추는 듯한 느낌을 받으면서, 그들은 차츰 범인이 제시한 단서를 찾아나가기 시작한다. 과연 그들은 무사히 살아남아서 그 방에서 탈출하여 가족을 구할 수 있을까?

 

우선 나를 끌어당긴 점은 살인마가 사람을 죽이는 방법이 정말 독특하다는 것이었다. 독특하기에 그만큼 사람들을 긴장시키며 공포에 몰아넣을 수 있다. 중간에 고든이 그동안 일어난 엽기 연쇄 살인 사건을 떠올리는 광경이 있는데, 두 눈 멀쩡하게 뜨고는 지켜보기가 힘들다. 지능이 뛰어난 살인마에게 느끼는 묘한 매력이 직쏘에게서는 엄청나게 진하게 풍겼다.

 

살인마 직쏘는 희생자들이 그냥 죽게 내버려두지 않았다. 어떻게든지 반드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남겼다. 희생자들은 살아남을 방법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방법을 얻어 살아남고자 그들은 극한에 내몰려야 했다. 다른 사람을 죽이든지 자기 일부분을 포기해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턱이 부서지고 온몸이 찢어지고 불타야 했다. 살고 싶으면 네 여자를 죽이라고 말하라고 강요하는 살인마가 나타나는 '세이 예스'와 같은 긴장과 공포를 안긴다. 그러나 '세이 예스'와는 견줄 수도 없는 끔찍한 살인 방법 때문에, 그 긴장과 공포는 몇 배로 커진다.

 

귀를 틀어막고 눈을 가리고 싶을 정도로 직쏘가 희생자들과 나에게 가져다 주는 소리 없는 공포는, 그들 발목을 완강하게 틀어쥔 쇠사슬처럼 나를 완전히 옭아매어 버렸다. 차츰 절망에 휩싸인 한 사람은 어떻게든지 살아남고자 결국 자기 발목을 자르는 엄청난 일을 저지른다. 자기 발목을 자기가 자르면서까지 살아남고자 발버둥치면서 그가 느껴야 했던 것은 무엇일까. 영화 마지막까지 이어지는 피 튀기는 영상과 끔찍한 비명소리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러나 절대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마지막에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엄청난 결말이 기다리고 있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 속에서 살아남고자 발버둥치는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죽어야 하는 운명임을 깨닫게 되면서 영화는 막을 내린다. '아이덴티티'와 '유주얼 서스펙트'에 버금가는 핵폭탄과 같은 충격을 안겼다. 영화가 끝난 뒤 나는 어두운 방 안에서 그저 멍하니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더 큰 충격을 가져다 준다는 'SAW 2'를 굉장한 두려움 속에서 그저 기대할 뿐이었다. 직쏘가 우리에게 선사하는 선물(?)이 무엇인지도 2편에서 진정한 정체를 드러낸다고 하니 더욱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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