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기맨 - Boogeyman
영화
평점 :
상영종료


과학이 크게 발달한 요즘도 귀신 이야기는 사람들 관심에서 벗어날 줄 모른다. 비록 시간이 흐르면서 지구 온난화 때문에 갈수록 심해지는 더위를 몰아내는데 좋은 방법으로 전락해 버리기는 했지만, 그래도 귀신 같은 초자연 존재와 그 때문에 사람들이 느끼는 공포 같은 심리 현상을 진지하게 바라보는 이들도 분명히 많다. 과학과 심리학을 넘나드는 주제인 초자연 현상과 그 때문에 생기는 공포는 초과학이 나름대로 발달하기는 했어도 여전히 설명하기가 쉽지 않고, 호기심이 넘치는 사람들은 그 모호한 영역을 설명하고자 본능과도 같이 온갖 논리를 고안해 낸다.

 

귀신이라고 하면 유물론자들은 턱도 없는 믿음 때문에 쓸데없이 헛것을 보는 것이라고 코웃음을 치겠지만, 초자연 현상이 실제로 일어난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자료도 지금까지 꽤 많이 모여서 무작정 그렇게 단정 지어 버리기도 힘들다. 논리와 비논리를 넘나드는 모호한 영역에서 논쟁은 끝도 없이 이어진다. 그 논쟁 속에서 초자연 현상은 생명을 얻는다. 귀신도 그 속에 살아 있다. 논쟁에 목숨을 거는 이들을 비웃듯이 귀신들은 날 보란 듯이 나타나서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괴롭히며 심지어 목숨을 빼앗아가기도 하지만, 때로는 좋은 친구가 되거나 사람들을 돕기도 한다.

 

온갖 귀신 이야기가 사람들 사이에 떠돌아다니지만, 어디에 가든지 끈질기게 명맥을 이어오는 전통(?) 귀신 이야기가 있다. 한국과 일본에 검은 머리를 길게 늘어뜨려 얼굴을 가리고 하얀 소복을 입은 처녀귀신이 있고, 중국에 청나라 조정 대신들이 입는 정복(?)을 입고 신선한 피를 찾아다니는 강시가 있고, 홍콩에 기분 나쁘게 깔깔 웃어대며 사람들을 쫓아다니는 홍콩할매귀신이 있다. 그렇다면 서양에는 무엇이 있는가?

 

바로 이 영화에 나오는 부기맨(Boogey Man - Boogie로 생각하는 이들이 있을 수도 있는데, Boogie는 흑인을 나타내는 미국 속어이므로 괴물 이름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본다)이 있다. 프레데터처럼 손등에 칼을 찬(프레데터가 쓰는 주력 무기인 리스트 블레이드(Wrist Blade)와 거의 비슷하게 생겼다) 프레디와 항상 날이 피범벅인 큰 도끼를 들고 다니는 제이슨이 '프레디 대 제이슨(Freddy VS Jasson)'이라는 영화까지 만들어질 정도로 사람들 사이에서 유명하고 심지어 큰 인기를 끌기까지 했지만, 사실 부기맨 앞에서는 명함도 못 내민다. 매우 유명하고 나름대로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드라큘라와 좀비도 부기맨 앞에서는 아무 것도 아니다.

 

프레디, 제이슨, 드라큘라, 좀비 따위 모든 괴물들은 실체가 분명하며 따라서 죽일 방법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부기맨은 전혀 정체를 알 수 없다. 15세기에 켈트 족 전설에 처음으로 나타나는 부기맨은 서양에서 잔약한 살인마나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 때문에 사람들이 죽어나갈 때마다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기는 했지만, 그 정체는 결코 밝혀지지 않았다.

 

어린 주인공은 아버지가 들려주는 그 정체 모를 괴물 이야기 때문에 극심한 공포에 시달린다. 벽장 속에 아이를 가둔 아버지는 1에서 5까지 세고 아무 일이 없으면 귀신은 없는 거라면서 아이를 달래지만(?), 이미 극도로 공포에 질린 아이에게 그런 말이 제대로 통할 리가 없다. 아버지는 어릴 때 남은 기억은 평생 동안 사람들을 따라다닌다는 상식을 분명히 무시한다. 아이를 학대하는 건지 정말 담력을 키워주려는 건지 어떤 건지도 알 수 없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불을 끄고 잠에 빠지려던 아이는 뭔가 방 안에 있다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 그 예감은 아주 서서히 현실이 되어, 정체를 알 수 없는 시커먼 괴물이 아이가 누워있는 침대로 다가온다. 극도로 공포에 사로잡혀 이불을 뒤집어 쓴 아이에게 다가와 이불을 걷어낸 이는 아버지였다. 아이가 방 안에 무언가 있다고 말하자 아버지는 피식 웃으면서 귀신 이야기는 사람들이 꾸며낸 이야기일 뿐이라면서 구석구석을 직접 돌아다니고 헤집는다.

 

마지막으로 옷장에까지 들어갔다가 나와서 어깨를 으쓱하는 아버지. 그 순간 옷장 안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이 튀어나와 아버지를 옷장 안으로 끌고 들어간다. 너무 놀라서 비명도 지르지 못하는 아이 앞에 아버지가 옷장 안에서 갑자기 튀어나온다. 그러나 상체만 튀어나왔지 하체는 분명히 옷장 안에 있는 괴물에게 잡혀 있다. 천장과 바닥에 쉴 새 없이 내팽개쳐진 아버지는 극도로 심한 고통 때문에 나중에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비명이 멈추는 순간 아버지는 다시 옷장 안으로 끌려들어가 사라진다. 그 뒤 아이는 다시는 아버지를 볼 수 없었다.

 

아이는 그 끔찍한 경험을 사람들에게 이야기하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믿지 않는다. 15년이 지난 뒤 어엿한 직장인이 된 아이는 예쁜 여자 친구까지 두고 근심 걱정이 하나도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는 남들이 자기를 믿어주지 않는 현실이 원망스럽기만 하고, 아버지를 잡아간 괴물이 다시 나타날까봐 자기 혼자 두려워한다. 실제로 그가 사는 집에는 찬장과 여닫이문이 하나도 없다. 아버지를 잡아간 괴물이 찬장 안에서나 여닫이문으로 가려진 공간 안에서 불쑥 튀어나올까봐 그런 것이다. 그런 방법이 효과가 있었는지 괴물은 나타나지 않고, 그는 공포에 떨면서도 괴물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에 겨우 마음을 놓으며 그럭저럭 살았다.

 

그러나 아버지가 사라진 뒤 계속 상태가 좋지 않던 어머니가 더욱 안 좋아졌다는 소식을 삼촌에게서 들은 주인공은, 그토록 가기 싫어하던 옛날 집에 어쩔 수 없이 찾아간다. 그런데 주인공이 옛날 집에 가자마자 그가 걱정하던 대로, 정체를 감추고 있던 괴물이 다시 나타나 주인공과 절친한 이들을 잡아가기 시작한다. 그는 괴물을 막으려면 결국 자기가 나서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아버지가 괴물에게 잡혀갔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이상한 여자아이에게서 용기를 얻어 괴물에게 정면으로 맞선다. 마침내 괴물이 정체를 드러내면서 주인공과 사라진 사람들을 둘러싼 온갖 비밀이 하나 둘씩 밝혀지며 이야기는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치닫는다.

 

이 영화를 보면서 나는 군대에서 읽었던 스티븐 킹이 지은 '그것(IT)'을 떠올렸다. 거기에서 '그것'은 거대한 뱀 같은 괴물도 아니다. 모든 사람들이 지니고 있기 마련인 어린 시절에 느꼈던 원초 공포를 무엇보다도 뚜렷하게 되살리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어떤 것이다. 그 극렬한 공포에 사로잡힌 이들은 환상인지 현실인지 물리 현상과 초자연 현상을 구분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는 가운데 자기가 어릴 때 무서워했던 그것(!) 때문에 죽고 만다. 실체를 알 수 없고 밑도 끝도 없이 모호하기만 하니, 흉포한 공포 속에서 죽어간 사람들이 단말마를 맞이하기 직전에 '악령(Evil Spirit)'도 '괴물(Monster)'도 아닌 '그것(IT)'이라는 글자를 남긴 것이다.

 

여기에 나오는 부기맨도 결국 모호한 그것이 뚜렷하게 정체를 드러낸 것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감독은 부기맨이라는 괴기스러운 초자연 존재가 사람들에게 더욱 큰 공포를 선사할 수 있도록 세심한 부분에까지 나름대로 신경을 많이 썼다. 배경음악에 신경을 많이 쓰지는 않았는지 음악은 그다지 많이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그 대신 초중반에 느린 사건 진행 속에서 주인공이 부기맨을 느끼는 과정을 분명히 나타내고,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두려워하기 마련인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어두컴컴한 공간을 강조한다. 공간만 강조하면서 부기맨이 무엇인지 절대 정확하게 드러내지 않으면서 사람들만 사라지게 하다가, 주인공이 자기를 괴롭히는 괴물에게 맞서고자 다가가는 그 순간부터 부기맨을 갑자기 전면에 등장시키며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한다.

 

도대체 감독은 이 영화에서 무엇을 말하려고 한 걸까? 그저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원초 공포를 끌어내려고 한 걸까, 아니면 그 속에 무엇이 있는지 파헤치려고 한 걸까? 누구도 정확하게 밝혀내지는 못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는 영역인 무의식 그 속에 자기도 모르게 스며들어 버린 무시무시한 공포를 이끌어내면 부기맨과 같은 괴물이 현실로 나타나는 걸까?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환상일까?

 

감독은 그 모호한 경계를 넘나들며 우리가 모호함에 관하여 품고 있는 설명할 수 없는 두려움을 자꾸만 들쑤신다. 그런 시도는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적어도 일단 굳게 닫힌 찬장 안이나 침대 밑 같은 어두컴컴한 공간을 자꾸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덜덜 떨기 시작한 나 같은 사람들에게서는 말이다.

 

전설 속에서나 나오는 괴물이 현실로 나타나는 끔찍한 공포는 그 실체가 밝혀지지 않았기에 더욱 끔찍하다. 과연 주인공은 어떻게 실체를 알 수 없는 그 괴물에게 맞설까? 도저히 눈을 믿을 수 없게 만드는 그런 일을 버젓이 저지르고 다니는 놈에게 말이다. 그는 너무 두려워서 눈을 감은 채로 숫자를 센다. 그리고 골똘히 생각에 빠진다.

 

1, 2, 3, 4, 5. 1에서 5까지 다 셌어. 그런데도 귀신이 나를 끌고 가지 않았어. 그러면 아빠가 말한 대로 이제 아무 일이 없는 거야. 그렇다면 눈을 떠도 될까? 아니야. 나는 아빠 말도 믿을 수가 없어. 5까지 센 뒤에 아무 일이 없다고 해서 눈을 뜨는 바로 그 순간 부기맨은 괴성을 지르며 나를 끌고 가 잡아먹어 버리겠지. 나는 눈을 뜨지 않을 거야. 5를 넘길 거야. 그렇다면 6을 넘긴다면 어떻게 될까? 과연 어디까지 숫자를 세어야 내 앞에 있는 정체 모를 괴물이 사라질까?

 

그는 어느 순간 깨달았다. 숫자를 세는 자체가 아무 뜻이 없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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