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연 - The Banquet
영화
평점 :
상영종료


권력을 둘러싼 암투는 권력이라는 개념이 처음으로 생겨난 뒤 온 세상에서 끊이지 않고 일어났다. 그 암투는 왠지 모르게 물에서 생기는 소용돌이를 닮았다. 부드럽게 사람을 빨아들인 뒤 완전히 으깨버리는 무시무시한 소용돌이. 자기 의지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권력을 쥐고자, 얼마나 수많은 사람들이 암투라는 그 소용돌이에 자연스럽게 몸을 맡기고, 숨막히는 긴장 속에서 조금이라도 일이 잘못되면 휘몰아치는 피바람에 휩쓸려 목숨을 잃어야 했던가?
 

그 소용돌이도 온갖 조건에 따라서 각자 독특한 끔찍함과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본질은 같다고 할지라도 그런 것이 표현되는 방식은 정말 다양하기에, 다채로움이라는 단어에 생명이 있고 그렇기에 인류가 이룩한 것들이 아름다운 것이다.

 

어쨌든 이 영화에서는 그 암투가 벌어지는 무대가 드넓은 중국 땅에 세워진 강대한 통일 국가 가운데 하나인 당나라 궁궐 안이다. 중국 땅을 걸으며 온갖 것을 보면서 느낀 그 질릴 정도로 어마어마한 거대함은 이 영화에서도 유감없이 나타난다. 그 거대한 제국에서 정점에 있는 황제가 갑자기 죽음을 맞이하고, 그 동생인 리(유게 분)가 황위를 계승한다. 햄릿에서처럼 황제가 시해당했다고 모든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지만 물증이 없을 뿐이다.

 

졸지에 남편을 잃은 황후 완(장쯔이 분)과 태자 우루 안(다니엘 우 분)은 목숨을 위협받는 상황에 놓이는데, 완은 뜻밖에도 새황제를 모시겠다고 한다. 우루 안을 사랑했지만 선왕에게 간택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헤어져야 했던 그녀는 우루 안을 살리고자 돌이킬 수 없고 누구도 이해하기 힘든 선택을 한 것이다.

 

그렇지만 태자는 황후를 이해하지 못한다. 계속 이어지는 위협을 몇 번이고 넘기면서 태자는 복수심을 불태우고, 황후도 황제를 시해하고자 은밀하게 계략을 준비하면서 태자를 보호하느라 안간힘을 쓴다. 온갖 음모가 도사리고 있다가 마침내 리가 마련한 야연(!)에서 드러나면서 영화는 절정에 이른다. 

 

이 영화를 보면서 자꾸만 햄릿이 생각났다. 솔직히 중국판 햄릿이라고 봐도 좋을 정도로 내용이 비슷하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애정 관계가 '햄릿'보다 더 복잡하고, 주요 인물들이 죽는 순서가 다를 뿐이다. 사랑과 권력과 복수를 놓고 벌어지는 숨막히는 암투 속에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죽었다. 그 죽음마저 느린 영상과 선율로 사람들에게 아름다움을 주는 장치로 변해버렸다.

 

그 죽음을 마지막까지 피하는 듯했던 이는 바로 완이었다. 완이 보여준 연기는 정말 내 심장을 사정없이 쥐어짰다. 그녀가 보여주는 관능미는 지극히 일부분밖에 되지 않는다. 우루 안을 지키려고 발버둥치는 모습, 여자를 만족시킬 줄 안다면서 유게에게 기꺼이 벗은 몸을 맡기는 모습, 그 모든 것이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권력을 원하는 무서운 집념을 감추는 듯하면서도 살며시 드러내고 있었다. 하지만 완이 걸치고 있는 비단결 안에 숨어 있다가 완이 몸을 흔들자 살며시 드러난 매끄러운 가슴과 허리가 만드는 곡선처럼, 은밀하게 드러난 그것을 나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붉은 비단을 끌어내린 뒤 결국에는 그 비단을 끌어안고 절정에 이른 환희에 휩싸인 듯한 목소리를 내는 완을 찌른 이는 누구인가? 유게도 이르게 하지 못한 그 절정에 도달하게 한 그 권력은 그녀에게 결국 죽음을 선사했다. 하지만 그녀는 죽음을 인정할 수 없었고 가슴에 칼이 꽂혔는데도 뒤를 돌아본다. 그리고 나서 너무 놀라 안 그래도 고통 때문에 부릅뜬 눈을 더욱 크게 뜬다.

 

문득 나는 다시 한 번 자금성을 떠올렸다. 황제가 앉는 용상 위에 있는 쇠구슬이 생각났다. 황제로서 적합하지 않은 자가 황제 자리에 올라 용상에 앉으면 저절로 떨어져 그 자를 박살내 버린다는 그 끔찍한 쇠구슬. 그러나 그 쇠구슬에는 의지가 들어가 있지 않다. 가슴에 칼이 박힌 완은 힘겹게 뒤를 돌아보고 너무 놀라서 그저 손을 뻗어서 뭐라고 말을 하려고 하지만, 이미 죽음은 너무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완을 죽인 이는 누구인가?

 

완마저 죽인 칼이 물 속에 떨어지고 모든 이를 매혹하는 '내 모든 것 사랑에 바치네(我用所有報答愛)'가 흘러나오면서 영화는 끝난다. 완이 지은 일그러진 표정과 가슴을 쥐어짜는 듯한 음악이 절묘하게 어울리면서 그 전에 나온 모든 영상이 주는 메세지를 담아 정말 긴 여운을 남긴다. "완을 죽인 이는 과연 누구인가?"라는 결국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까지 덧붙이면 그야말로 자리에서 일어나기 힘들 정도로 묘한 기분에 휩싸이고 말 것이다.

 

편집이 좀 좋지 않았다는 평이 있기는 하지만 나는 그런 지적에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영화에 관한 지식이 워낙 부족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저 영화에 푹 빠져들어 정신이 하나도 없었고 그 기분을 언제까지나 간직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떤 결론을 내리기보다는 그저 사람을 홀리려고 작정한 듯한 음악과 영상에 흠뻑 취해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영화인 듯 하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더 하지요. 이런 아름다운 영화를 영화관에서 보게 해 주신 미영이 누나. 고맙습니다. 언제나 한없이 고맙기만 한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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