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콘다 - Anaconda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성경'에 따르면 뱀은 이브를 유혹하여 선악과를 먹게 해서 아담과 이브를 천국에 쫓아냈다. 성경뿐만 아니라 여러 종교 경전에서도 뱀이 신과 사람들에게 저지른 악행에 관한 기록을 볼 수 있다. 사람들이 뱀을 대할 때, 심지어 뱀이라는 말만 들었을 때 보여주는 거의 본능에 가까운 거부감과 공포를 종교학자들은 그런 온갖 기록을 근거로 삼아 설명하기도 한다. 하지만 생물학자들은 사람도 위험을 인지하고 경고하는 생화학 체계를 갖추고 있는 동물이기에, 뱀이 사람들에게 위험하다는 사실이 위험 경보 체계에 쓸모 있는 정보로 저장되었고 그 체계가 저절로 작동하는 것이라고, 철저하게 과학에 근거한 설명을 내놓는다.

 

설명하는 방법은 다르지만, 일단 종교학자들이나 생물학자들이나 뱀이 사람들에게 위험하고 두려운 존재라고 여기는 건 똑같다. 자기보다 훨씬 덩치가 큰 동물도 주저하지 않고 감아서 삼켜버리는 그 무지막지한 식성을 누가 역겹다고 느끼지 않을 수 있을까. 물론 모든 동물은 먹어야 살고 각자 습성과 조건에 알맞게 먹는 방법과 먹이가 각자 다르니, 뱀이 먹이를 먹는 게 역겹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어쩌면 이상한 것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사람들은 뱀을 싫어한다.

 

'권위의 법칙'에 따라 뱀이 클수록 그 거부감과 공포는 더욱 커진다. 작은 뱀이야 그냥 징그럽다고 하고 겁이 별로 없는 사람들은 귀엽게 느끼기까지 하지만, 사람을 꽉 조아서 죽일 수 있을 정도로 큰 뱀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누구든지 그런 큰 뱀을 실제로 보면 너무 놀라서 비명조차 지를 수 없을 것이다. 그런 뱀은 사람들이 많이 사는 도시에서는 전혀 볼 수가 없기에 더욱 그렇다. 전혀 예상하지 않은 상태에서 마주치는 공포는 예상했을 때보다 더욱 강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거대한 뱀은 지금까지 대개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무시무시한 괴물로 온갖 이야기에 등장했다. 동양에서보다는 서양에서 그런 경향이 더 잘 드러난다. 동양에서는 한국 전래동화에 '지성이와 감천이'라는 우리말 유래가 된 이야기가 있기도 하다. 하지만 서양에서는 뱀이 사람에게 도움을 주었다는 이야기를 찾아볼 수가 없다. 동서양 공통으로 나타나는 은밀한 곳에서 살다가 마을로 내려와 사람을 해치고, 처녀를 제물로 바치라고 강요하며 사람들을 괴롭히는 사악한 뱀 이야기만 있을 뿐이다. 기독교 전통이 깊은 서양에서 그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동서양에서 공통으로 신비로운 존재로 여겨지는 용은 뱀과 직접 연관되어 있다. 이 용이 동서양에서 어떻게 표현되는지 알아보면, 뱀을 바라보는 시각을 더욱 뚜렷하게 구분할 수 있다.

 

동양에서는 용이 대개 황제가 가진 권위를 상징하는 성스러운 존재로서 사람들에게서 존경과 숭배를 받고, 색깔도 대개 긍정과 젊음과 희망을 나타내는 청색이다. 용이 되지 못한 뱀을 이무기라고 부르며 용과는 다른 요물로서 확실히 구분하고 있는데, 이는 용에게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존경심을 뚜렷하게 드러내는 증거라고 볼 수 있다. 사람들을 해치는 몹쓸 뱀은 흔히 용이 되지 못한 화풀이를 사람들에게 하는 포악한 이무기로 나타난다. 곧 알에서 태어난 평범한 뱀이 수련을 거치면서 천 년을 묵으면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갈 수 있다는 기본 전제가 깔려 있다. 이는 용이 지닌 본성이 포악하지 않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인식은 뱀에도 어김없이 적용된다.

 

그러나 서양에는 이무기라는 개념이 없다. 용은 알에서 태어날 때부터 용이 지닌 특징을 그대로 띠고 있다. 거친 날개가 있고 날카로운 발톱이 있다. 곧 본성이 포악하여 사람들을 해치는 괴물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악마와 결탁하거나 악마에게 조종당해 사람들을 지옥으로 인도하고자 온갖 술책을 쓰는 사악한 존재로까지 묘사되기도 한다. 아더왕 전설이나 베어울프 전설 따위에서 볼 수 있는 용은 신하들을 잡아먹고 왕에게 저항하는 괴물이다. 이들은 대개 붉은 핏빛이거나 검다. 둘 다 피와 어둠과 부정을 뜻하며 악마를 대표하는 색깔이다. 포악한 용에 맞서 싸우는 용사들이나 마법사 이야기는 현대에까지 전해져 내려와 서양 영화에서 자주 인용되는 단골 주제이다.

 

웃긴 것은 결국 동서양 공통으로 뱀을 본떠 용을 상상해냈으면서도, 서양에서는 이무기라는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용은 용이고 뱀은 뱀이라는 식인데, 뱀은 성경에 나오듯이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사악한 존재이고 용은 뱀을 본뜬 존재이니 마찬가지로 사악하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영화에도 고스란히 드러나서, 괴물 영화 분야를 거의 독점하다시피 하는 외국 영화에서 뱀은 매우 좋은 주제거리가 되었다. 동정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초점 없는 눈동자로 공포에 떨고 있는 사람을 바라보며 끝이 갈라진 혓바닥을 날름거리는 뱀을 상상해 보자. 뱀은 꼼짝없이 얼어버린 사람을 그윽한 살의가 서린 눈으로 쳐다보더니, 순식간에 사람을 휘감아 뼈와 내장을 부수고 터뜨린 뒤 통째로 삼켜버린다. 서양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야말로 '악의 화신'이라고 할만하다.

 

그런 무시무시한 뱀을 대표하는 것들로 주로 동남아시아에 사는 비단구렁이나 보아, 아프리카와 서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에 폭넓게 분포하는 코브라, 그리고 중남미 정글에 사는 아나콘다가 있다. 이 영화는 제목 그대로 아나콘다를 주제로 삼았다. 그리고 거대한 아나콘다가 사람들을 습격하여 잡아먹는 무시무시한 장면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사람을 물어 흔들고 휘어 감고 조아서 삼키는 아나콘다는 누가 봐도 기가 질리게 만든다. 특히 아나콘다가 삼킨 사람이 뱃속에서 꽉 끼여 바깥으로 윤곽을 드러내는 장면이나, 새끼들에게 주고자 잡아먹은 사람을 토해내는 장면은 끔찍하기 짝이 없다.

 

시작할 때부터 정글 속에서 조난당한 배에서 절박하게 구조를 요청하는 사람을 아나콘다가 습격하면서 영화가 시작되는데, 교묘하게도 아나콘다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뱀을 수호신으로 섬긴다는 중남미 원시 부족을 찾아 주인공 일행이 아마존 정글로 들어가는데, 돈벌이에 눈이 멀어버린 악당 한 사람을 못 알아보고 배에 태우는 바람에 일이 꼬일 대로 꼬이기 시작한다. 아나콘다가 재규어를 잡아먹으며 앞으로 일어날 끔찍한 참상을 예고하고, 악당이 주인공 일행과 동행하면서 지름길을 안다며 특정한 지점으로 가도록 자꾸만 유인하면서 불길한 예감은 갈수록 커진다.

 

드디어 불길한 예감이 현실이 되어 주인공 일행 가운데 한 사람이 영화 맨 처음에 나왔던 조난당한 배를 수색하고 돌아가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고, 악당은 아나콘다를 잡아 돈벌이를 하겠다는 속셈을 거침없이 드러내며 주인공 일행을 위협한다. 설상가상으로 거기에 동조하는 사람까지 나오면서 주인공 일행은 울며 겨자 먹기로 아나콘다 사냥에 나선다. 마침내 상상을 뛰어넘는 거대한 아나콘다가 그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사람들은 원시 부족을 발견할 수 없을 것이라는 걱정은커녕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극심한 공포에 시달리게 된다. 시도 때도 없이 습격해 오는 아나콘다와 돈벌이에 눈이 먼 악당 사이에서 주인공 일행은 더는 나빠질 수 없는 상황에까지 이른다. 이들은 과연 어떻게 위기를 빠져나갈 것인가?

 

영화가 나름대로 괜찮아서 꽤 재미있게 봤는데, 엉뚱하게도 갑자기 그야말로 완벽한 배타성과 흑백논리를 보여주는 개신교도들이 떠올랐다. 임진왜란 때 조선 침략 선봉대를 이끈 고니시 유카나가가 독실한 기독교도였다고 해서 그를 괴롭힌 이순신이 하느님에게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이고, 그 죄인을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토록 존경하는 까닭을 이해할 수 없다는 정신나간 소리를 거침없이 해대는 이들이다. 내가 알기로 이런 독특한 견해를 지닌 이들이 이 영화를 보고 깨달을 수 있는 점을 담은 글을 쓴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아서 안타깝다. 그 평론을 볼 때 집중도 그다지 하지 않고 대충 봤고 그나마 본 지도 꽤 오래 되어서, 이제는 내가 본 것이 지금 기억하고 있는 그대로인지 아니면 다른 것을 보고 멋대로 상상한 것인지도 확실하지 않다. 어쨌든 내가 알고 있는 대로 써 보겠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이끌어내는 충분하기 때문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성경에 따르면 뱀은 사람과는 절대 타협할 수 없는 악한 존재이다. 그렇다면 과연 그런 악한 존재를 섬기는 원시 신앙을 지닌 이들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든 그렇지 않든 상관없이 반드시 회개해야 하는 이교도들이다. 그들에게 다가가는 이들에게는 반드시 악마가 접근하여 해를 끼친다. 주인공 일행이 중간에 태운 악당이 바로 악마가 보낸 전령이며, 전령에게 이끌린 그들은 아나콘다라는 악마에게 해를 입은 것이다. 악당이 애당초 아나콘다에게 주인공 일행을 끌고 가려고 접근했다는 사실은 그 증거로 인용된다.

 

아나콘다가 악당을 잡아먹어버린 것은, 어차피 악당은 악마가 보낸 전령이므로 그럴 수도 있다고 한다. 전령이 악마에게 먹이가 되는 것은 악마들이 지닌 습성으로 볼 때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나콘다는 처음에는 악당을 잡아먹을 생각이 없었고 악당이 묶어놓은 제물을 그냥 먹으려고 했는데, 그러면 악마라는 정체가 탄로날까봐 그것을 숨기고자 악당을 어쩔 수 없이 잡아먹어버린 것이라는 놀라운 해석을 내놓는다. 어차피 사람들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악마, 곧 아나콘다는 악당을 잡아먹은 뒤에도 쉽게 사람들을 잡아먹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개의치 않았는데, 어쩌다 보니까 예상 밖으로 사람들이 강하게 저항하면서 계획대로 일이 굴러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단정 지어 버린다. 하느님이 보살펴 주셨다는 이야기는 절대 꺼내지 않는다. 이교도를 찾아가는 불순한 무리들을 하느님이 지켜준다는 건 말도 안 되기 때문이다.

 

가장 기가 막힌 것은 선교사들이 그들에게 찾아갔다면 그들은 아나콘다를 만나는 봉변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논리이다. 설사 그들이 아나콘다를 만나 사투를 벌이다 죽는다 하더라도, 그 글을 쓴 이들은 그것을 순교로 여기며 찬양할 것이다. 선교라는 명목으로 온 세상에 피바람을 불러일으킨 제국주의를 생각하면서 나는 씁쓸한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결국 그들은 그 글에서마저 완벽한 배타성을 드러내고 있다. 자기들이 믿는 신을 믿지 않는 이교도들은 반드시 악마가 찾아와 피해를 입는다는 논리가 배여 있다.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이 그런 해석이 나오기를 의도했든 그러지 않았든, 정말 해석은 하기 나름이라는 사실을 그 글을 되새겨 보면서 확실히 느꼈다. 아마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감독이 자기도 모르게 그런 생각을 가지고 아나콘다를 소재로 삼아 이 영화를 만들었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감독은 그저 뱀이 보여주는 흉포함과 잔인함을 확실하게 드러내는데 온 신경을 쏟았다고 했으며, 그 말은 의심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나는 앞에서 풀어놓은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영화가 성공한 뒤 만들어진 '아나콘다 2'를 보면서, 나는 '아나콘다'를 보고 감상문을 쓸 때 했던 생각과 같은 범주에서 되새겨 볼거리를 찾을 수 있었다. 분명히 그냥 즐기려고 이 영화를 보다가 어쩌다가 이런 지경에까지 이르게 됐는지 이 글을 쓰면서도 이해할 수가 없다. 하지만 일단 생각이 났으니 마음대로 부지런히 써야겠다. 내가 이런다고 해서 혹시나 이 글을 읽은 사람들이 괜히 쓸데없는 생각에 빠지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그저 이런 공포 영화에서 느낄 수 있는 재미(?)만 확실하게 챙기면 그만이다. 그리고 쩍 벌어진 무시무시한 뱀 주둥이와 아무 감정 없이 그저 살기만 그윽한 눈동자를 내 눈으로 직접 보는 일은 없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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