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병호의 초콜릿
공병호 지음, 오금택 그림 / 21세기북스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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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내가 해병대에서 만난 중대 선임들 가운데 경제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상당히 많았다. 내가 아는 어떤 이는 희망도 없는 사람들이 그저 사업가라는 그야말로 막연한 장래 희망을 지니고 그저 위안으로 삼을 뿐이라고 일갈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보기에는 선임들이 알고 이야기하는 것에는 오랫동안 그들을 앓게 한 고민으로 이루어진 그늘이 너무도 짙게 배어 있었다. 그들은 실제로 이 험한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는데 필요한 방법이 담겨 있는 많은 책을 읽었고, 거기에서 이야기하는 많은 것을 나누고 토론했다.
 

나야 애당초 돈에는 그다지 관심이 크지 않아서, 경제학사나 경제학 이론 같은 말 그대로 이론 공부나 약간 했지, 그렇게 쓸모 있는 것들은 거의 몰랐다. 그러나 군대에 온 뒤 그들에게 뒤지기 싫어서 교양 경제학 서적을 읽기 시작했다. 가이아 이론을 좋아하는 나는 자연마저 단순한 재화 생산 도구일 뿐이라고 단정지어 버리는 경제학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도 사회과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그런 거부감 따위는 기꺼이 버려야 하기에 어쩔 수 없다 생각하고 손에 잡히는 대로 열심히 읽었다.

 

선임들이 읽는 책 제목은 꽤 섬뜩했다. 그 가운데 가장 섬뜩한 제목은 '먹어라, 그러지 않으면 먹힌다'였다. 그런 제목을 보면서 나는 다시 경제학이 얼마나 매정한지 떠올렸고, 그래도 제목이라도 좀 산뜻한 책을 읽고 싶었다. 그 때 이 책이 눈에 들어왔다.

 

제목이 듣기만 해도 군침이 도는 '초콜릿'이다. 열심히 먹고 이 험한 세상에서 적들에게 맞서 싸워 이기라는 뜻인지, 아니면 세상에서 살아남고자 발버둥치느라 지친 사람들에게 주는 위안이라는 뜻인지 어쩐지는 읽기 전에는 정확하게 알 수 없었다. 그런데 막상 읽어보니까 결국 첫 번째 짐작이 맞았다. 

 

그렇다고 해서 '10년 후 세계'와 같은 책처럼 오로지 상황을 철저하고 깊이 있게 분석하고 묘사하는데만 치중한 건 절대 아니다. 삶에는 때로는 쉬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한 것처럼 쉴새없이 치밀한 논리로 시시각각 세계 경제를 분석했던 그도, 이런 책에서는 작정하고 '초콜릿'이라는 제목을 붙이고 살아가면서 지친 사람들이 삶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는 방법도 꽤 많이 제시한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무한 경쟁은 인정머리라고는 하나도 없어서 사람이 절대 쉬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그 흐름에 무작정 몸을 맡겼다가는 사람이 지닐 수 있는 여유 따위는 겨자씨 한 줌만큼도 남아나지 않을 것이다. 통제할 수 없는 삶이라면 잠시 주변과 인연을 끊고 자기를 성찰하는 것이 좋다고 넌지시 권하는 모습이 왠지 모르게 매우 다정해 보인다. 내가 지금까지 생각했던 그런 공병호 씨와는 다른 모습이다.

 

한 사람이 자기 내면과 이야기하고 아버지가 아들에게 이야기하는 모습은 꽤 심각하면서도 정겹다. 그 이야기가 삽화 위에 풀어놓은 짧은 글로 다듬어져 책 속에 담겨 있다. 확실히 내용을 길게 풀어놓은 책보다는 훨씬 읽기 좋고, 메모나 밑줄치기도 쉽다. 그런 이야기 말고도 내 적은 내 안에 있으며,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기회라고 하는 등 매우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런 때는 세계 경제를 예리하게 진단하는 그를 지워버리고, 읽는이와 그저 편안하게 소통하고 싶어하는 공병호 씨를 만나는 것도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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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만이 그답을 알고 있다
나까지마 가오루 지음, 이송희 옮김 / 학원사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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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은 수수께끼로 이루어졌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만큼, 사람들이 모르는 것은 너무 많다. 그래서 사람들은 항상 묻고 그 답을 찾으려고 힘쓴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말한다. 문제가 있으면 반드시 답이 있기 마련이라고.

 

그러나 그 말은 전혀 맞지 않다. 우리가 분명하고 속시원한 대답을 줄 수 없는 질문이 그렇지 않은 질문보다 훨씬 많다. 굳이 여기에서 아무리 답을 짜내려고 발버둥쳐도, 결국은 두 손을 들고 마는 현대과학이 보여주는 한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사람이라는 존재 자체가 자기에게 닥치는 수많은 의문을 해결하지 못해, 어느 정도는 그 문제를 무시하여 세상과 타협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면서 살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런 답할 수 없는 수많은 물음은 무시하고, 일단 답을 줄 수라도 있는 궁금한 점이나 생각해 보자. 그런데 답할 수 있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끝인가? 답이 있다 하더라도 반드시 한 가지로 고정되지 않으니 그것 또한 골치 아픈 일이다. 자연 현상이 아니라 사람이 모여서 만들어진 사회와 문명이 돌아가면서 생기는 궁금증이 모두 그렇지 않은가?

 

흔히 그런 질문은 자연과학이 아닌 사회과학이 다룬다. 항상 동전의 양면과 같은 속성이 있어서 접근하는 사람을 곤란하게 하는 그런 물음. 잘못된 답이 나오면 사회에 엄청난 혼란과 재앙을 불러 일으킬 수 있는 그런 물음. 그렇다고 해서 한 쪽이 절대 틀렸다고 볼 수도 없는 그런 물음.

 

그런 물음도 제쳐두고 각자 지닌 독특한 인생관이나 가치관 따위에 따라서 답이 달라지는 물음을 생각해 보자. 내가 읽은 '당신만이 그 답을 알고 있다'에서 지은이가 읽는이에게 묻는 것은 바로 그런 것이다. 그리고 단순히 예 또는 아니오, 이 대답만으로 끝낼 수 있는 질문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지은이가 원했던 것은 그런 단순한 대답은 아닌 듯 하다. 그 질문에 관하여 좀 더 자세히 말하고 싶은 욕구를 지은이는 이 책에 마음껏 풀어버렸다. 자기가 어떻게 했다는 말은 없으며 그 질문에 자기가 스스로 대답하지도 않았다. 그냥 자기는 이렇게 생각한다고 말하고 넌지시 이렇게 해 보면 어떻겠냐고 말한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성의없어 보이고 어떻게 보면 읽는이를 꼼꼼하게 배려한 것처럼 보인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 지 알 수 없지만, 나는 책은 모름지기 읽는이가 생각할 수 있게 해야 좋은 책이라고 생각하기에 지은이가 나 같은 이에게 신경을 썼다고 믿고 싶다. 무조건 정보만 꽉꽉 채워서 내보내는 신문 기사 같은 글은 가끔씩 사람을 국으로 보는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으니, 그런 때 이런 글을 읽으면 마음에 쏙 든다.

 

그런데 마음에 드는 것은 둘째로 치고, 뭔가 약간 이상하다. 이런 책에서 이미 관심이 멀어진 뒤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인생에 관한 평범한 생각이나 깨달음을 전달하는 책은 이제 너무 지겹다. 그런데 왜 또 이런 책을 읽고 이런 글을 쓰고 있을까?

 

답을 얻어내는 데는 몇 분 걸리지 않았다. 책을 쓴 나까지마 가오루라는 사람이 사회에서 절대 무시할 수 없는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기에, 이 책이 지니고 있는 가치가 더욱 커지고 내용이 설득력을 더욱 강하게 띤다. 애당초 그렇지 않았다면 이 책이 그토록 유명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역시 사람은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여 사회에서 인정받아야, 자기가 하는 말 또한 사회에서 인정받을 수 있다. 나름대로 글 쓰는데 미쳐 있는 나도 언젠가 책을 내 보려고 마음먹고 있는데, 일단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낸 뒤 스스로 삶을 꾸려갈 능력부터 키워야겠다. 그래야 사람들이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알아줄 테니까 말이다. 책으로 짭짤한 수입을 올리려는 허황한 생각만 하기보다는, 오랜만에 내가 상당한 관심을 쏟고 있는 통사론 공부나 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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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1
조창인 지음 / 세상의아침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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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는 이제 사랑을 다룬 작품에는 질렸고, 내가 쓰는 글에 사랑을 굳이 다루고 싶지도 않다. 원래 남자와 여자는 하나였는데 제우스가 그 무지막지한 괴물이 신들을 괴롭힐까봐 겁이 나서 벼락을 내려 괴물을 두 쪽으로 쪼개버렸다는 그런 황당한 이야기도 이제는 듣고 싶지 않다. 노래에서든 소설에서든 지겹도록 우려먹는 그 한 가지 주제에 질려버렸다. 그래서 요즘에는 책을 읽을 때도 웬만하면 사랑을 다룬 소설은 읽지 않으려고 한다. 노래야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책은 분명히 온갖 주제를 다루고 있기에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그러나 '가시고기'에서 이미 찡한 느낌을 받았던 나는 노드중대 쉼터에 있는 책꽂이에서 여러 가지 책을 유심히 살펴보다가 조창인이 썼다는 그 까닭 하나만으로 주저하지 않고 책을 뽑아들고 말았다. 그리고 천천히 읽어내려갔다. 다 읽은 뒤에는 '가시고기'를 읽었을 때 느낀 것과 약간 다르기는 하지만, 사랑만이 줄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한 감동과 슬픔에 휩싸였다.

 

상대가 없으면 정말 못 살 정도로 서로 사랑하는 남자와 여자가 있다. 남자는 어쩔 수 없는 사정 때문에 사랑하는 여자를 남겨두고 스코틀랜드 애든버러로 유학을 떠난다. 열심히 공부한 남자는 외과 수술에서 세계 최고 권위자가 된다. 굉장한 성공을 손에 거머쥔 남자는 여자와 행복한 삶을 꿈꾸지만, 정작 여자는 무서운 불치병에 걸려 죽어가고 있었다. 남자는 여자를 살리고자 발버둥쳤지만 그가 정작 자기가 지닌 의술로는 여자를 살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철저하게 사람을 궁지로 몰아넣는 작가가 얄밉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말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진우와 해연 사이에 벌어지는 일은 너무 끔찍하다.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줘도 아깝지 않을 정도로 사랑하는 이가 죽어가는데 정작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진우가 느끼는 모든 것을 생각해 본다. 상심, 고통, 절망……말이 삼라만상을 표현하는데 얼마나 한계가 있는 것인지 제대로 느낀다. 

 

게다가 작가는 의사만이 느끼는 그 번민을 이용하여 진우가 느끼는 온갖 감정을 독자들이 더욱 확실하게 받아들이게 한다. 죄인에게 판결을 내리는 판사도 아니면서, 하루에도 몇 번이고 사람들에게 사형 선고를 해야 하는 그 기분이 어떨까? 환자들이 도대체 무슨 죄가 있기에 자기에게 사형 선고를 받고 세상을 등져야 하는가? 일이 고될 때는 생명을 살리는 일이 천직이라는 사명감으로서 버텨야 하는 이들에게, 죽어가는 환자를 자기가 살리지 못한다고 실토해야 한다는 현실은 죽음보다 더 싫을 것이다.

 

의사들이 힘들고 괴로울 때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앞에서 말한 그런 온갖 고민에 휩싸여 방황한다고 한다. 생명을 정의하는 다섯 가지 방법 따위는 필요없다. 삶과 죽음을 나누는 경계는 여전히 모호하며 그런 주제마저 파고든다면 의사는 쓸데없이 더욱 힘들어지기만 할 뿐이다. 자기가 배운 지식과 현실 사이에 나타나는 괴리를 더욱 분명히 느낄수록 마음 안에서 상처가 더욱 쓰리고 커질 뿐이다.

 

진우도 의사이다. 그런데 진우가 치료할 수 없다고 인정해야 하는 환자가 자기가 정말 사랑하는 해연이다. 무슨 말이 필요할까?

 

자기 전공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병리학 논문을 쓰면서까지 해연을 살리고자 발버둥치지만, 결국 해연은 진우에게 사랑해서 행복했다는 말을 남기고 눈을 감는다. 죽기 전에 진우와 해연이 결혼식을 올리는 장면을 읽으면서 '기억 속으로 걷기'가 저절로 생각났다. 

 

그렇게 해연은 진우를 버리고 다른 세상으로 떠났다. 그러나 진우에게서 그녀가 완전히 떠난 것은 절대 아니었다. 그녀는 실명 위기에 처한 진우의 왼쪽 눈을 살리고자 자기 눈을 기꺼이 기증했다. 수술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완벽하게 성공했고 진우는 다시 의사로서 활동할 수 있게 되었다. 그로써 해연은 진우 안에서 다시 태어나 영원히 그와 함께 있게 되었다. 그들 둘 사이에 꽃피었던 아름다운 사랑은 진우가 소망원을 운영하면서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나 더욱 아름답게 빛났다. 서글픔과 감동이 서로를 휘감으면서 심장을 정통으로 파고들었고, 곧바로 피에 섞여 온몸으로 퍼졌다.

 

우주를 정복하겠다고 큰소리치면서 무시무시한 속력으로 발전하고 있는 현대과학도 사랑이 보여주는 기적과도 같은 일은 전혀 설명하지 못한다. 과학자들은 종교나 사랑 같은 것들은 과학이 다룰 영역에서 벗어나 있다고 말하지만, 왠지 모르게 너무 궁색해 보인다. 과학에 열광하는 나라서 그런지 저절로 그런 생각이 잠시 떠올랐다. 그러나 곧 온몸을 휘감은 가슴을 미치도록 저리게 하는 사랑만이 가져다 주는 애틋한 감정에 다시 온몸을 다시 맡기면서, 다른 생각은 아무 것도 나지 않았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심지어 그 무섭다는 해병대 선임이 부르는 소리마저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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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고기 - 양장본
조창인 지음 / 밝은세상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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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책을 지금처럼 작정하고 읽지는 않던 시절에, 내가 즐겨 읽었던 책은 집에 있는 큰 책꽂이에 있는 소설책이었다. 지금은 시간이 나면 어떤 책이라도 반드시 읽어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 사로잡혀 있기에 그런 소설책은 언제 읽어야 한다는 계획이 이미 세워져 있다. 그런 식으로 책을 읽으면 아무래도 아무 생각 없이 책을 읽을 때보다는 편안하게 책을 즐기기가 좀 어렵다. 그래서 아무런 생각이 없던 그 때가 그리워지는 순간이 분명히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어쨌든 그 때 '돼지들', '나도 때론 포르노그래피의 주인공이 되고 싶다', '진달래꽃 피거든', '여자는 죽어야 한다', '제 3의 정사' 따위 여러 가지 소설을 읽었다. 그런데 지금 그 내용을 기억해서 독후감을 쓰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런데 이 '가시고기'라는 책은 희한하게도 앞에서 말한 책 가운데 읽은지 가장 오래되었는데도 그 때 마음이 움직였던 흔적이 매우 뚜렷하게 남아 있어서 독후감을 쓰기가 쉽다. 훗날 군대에서 '첫사랑'을 읽으면서 두 작품을 견주다 보니까, 내 안에 남아있던 그 흔적이 다시 어떤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 반응을 표현하고 싶어서 나는 지금 부지런히 손가락을 놀리고 있다.

 

'첫사랑'에서는 남녀 사이에서 나타나는 사랑을 다룬 작가는, 이 작품에서는 그야말로 진정한 사랑이라고 할 수 있는 내리사랑인 부성애를 다루고 있다. 제목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새끼에게 위험이 닥치면 새끼를 입 안에 넣어 보호한다는 고기가 바로 가시고기라는 사실만 알면 말이다.

 

아무리 많은 보험 상품에 가입한다 하더라도 병을 고칠 방법이 없거나 완치를 보장할 수 없다면 희망을 찾기 힘들다. 그 반대도 성립한다. 그런데 주인공인 아버지에게는 희망이 아예 없어 보였다. 아이 병원비를 대느라 가정 재정 형편은 파탄에 이르렀으며, 막대한 돈을 써도 아이는 갈수록 숨통을 거세게 조이는 백혈병 때문에 저승사자에게 더욱 가까이 느끼며 무서워한다.

 

직장 후배이면서 주인공을 사랑하는 여진희를 포함한 여러 사람들이 주인공을 도우려고 하지만, 이런저런 사정 때문에 도움을 주기는 너무 어렵다. 특히 여진희는 주인공을 가장 많이 도우면서도 주인공을 사랑하기에 아이에게만 신경을 쓰고 있는 주인공을 더욱 괴롭게 하고 자기도 힘들어한다. 자기는 물론 그런 결과를 원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아이, 아버지, 여진희. 세 사람 모두 희망을 찾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 쇠약해졌다.

 

끔찍한 백혈병에서 가련한 아이를 구할 수 있는 단 한 가지 방법은 골수 이식뿐이지만 골수 이식은 이식 대상자뿐만 아니라 이식 희망자에게도 엄청난 고통을 안기는 따위 여러 가지 문제가 있기에 골수를 기증할 사람을 찾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천신만고 끝에 한 일본 여자가 골수를 기증하겠다고 나서 아이를 살릴 길이 열린다.

 

다행히 수술은 성공하고 아이는 눈에 띄게 건강을 되찾는다. 그러나 작가는 비정하게도 '첫사랑'에서처럼 한 사람을 죽게 했다. '첫사랑'에서는 병에 걸린 여자가 죽지만, '가시고기'에서는 안타깝게도 아이 대신 아버지가 죽는다. 책을 읽어보면 왜 그런지 정확하게 알 수 있지만, 나는 그냥 아버지가 내리사랑을 쏟느라 모든 힘을 써버린 탓이라고 생각하고 넘기고 싶다. 아버지가 묻힌 묘 앞에 서 있는 비석을 만지면서 아빠 어디 갔냐고 여진희에게 묻는 아이는, 아버지가 자기에게 베풀었던 사랑을 먹고 자기가 살아서 땅을 딛고 있다는 사실을 과연 알고 있을까.

 

갑자기 요즘따라 표가 나게 나이가 들어보이는 아버지가 생각났다. 예전에는 신경을 덜 써서 그런지 느끼지 못했는데, 군대에 들어간 뒤 이상하게도 아버지 얼굴이 빠르게 변하는 듯해서 겁이 난다. 아버지께서 말없이 나에게 베푸셨던 사랑을 생각해 보면 더욱 그렇다. 생각이 떠오른 김에 기회가 된다면 빨리 아버지를 찾아뵈어야겠다. 소주잔이든 맥주잔이든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술을 주고받으면서 그동안 쌓였던 말을 원없이 털어놓아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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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의 생각 빈자의 생각
공병호 지음 / 해냄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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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복무하고 있는 해병대 제 1사단에서 우리집까지 가는데는 돈과 시간이 꽤 많이 들어간다. 처음으로 휴가를 나왔을 때 나는 도대체 어떻게 집에 가야 할 지 몰라서 쩔쩔맸다. 결국 어떻게 해서 집까지 찾아가기는 했지만 돈과 시간을 많이 날렸다는 생각이 들어서 찜찜한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특히 버스 안에 있는 동안 바깥 풍경이나 멍하게 바라보다가 정신을 잃고 잠들어 버리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드물다고 생각하는 나는, 버스 안에서 보내는 시간에 어떻게든지 책을 읽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아직 이병이라서(?) 책을 가지고 다닐 수가 없기 때문에, 서문을 통과한 뒤 책을 사는 수밖에 없었다.

 

포상 휴가 때 작정하고 포항시외버스정류장에 있는 서점에서 이 책을 샀다. 제목을 보니까 단숨에 모든 것은 자기가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결론이 눈에 쏙 들어왔다. 결론을 이미 파악한 뒤 사고 싶은 마음이 갑자기 사라지는 듯했다.

 

하지만 다른 책을 둘러보니까 마땅히 살 만한 책이 없었다. 그리고 '10년 후의 세계'를 읽은 뒤 공병호 박사가 과연 어떤 사람인지 정확하게 알아보려면 좀 더 많은 책을 읽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는 주저하지 않고 책을 집어들고 돈을 냈다. 비가 많이 내리는 고속도로를 시속 100km로 달리는 버스 안에서 부지런히 읽었다.

 

'10년 후의 세계'를 읽으면서도 이미 확실히 느꼈지만, 공병호 박사는 철저한 개인주의자이다.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라는 말을 철저하게 긍정하고 있다고 봐야 할 듯 하다. 그렇기에 이 책에서도 나에 관한 생각을 일단 먼저 풀어내고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나, 타인, 조직, 가정, 사회. 이 순서대로 그는 자기 주장을 전한다. 제목대로 부자(富者)는 어떻게 생각하며 빈자(貧者)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거침없이 썼다. 주장을 뒷받침하는 풍부한 사례를 그동안 그가 읽은 수많은 책, 그 가운데 주로 경영 전략을 다룬 책에서 뽑아냈다.

 

분명히 그가 하는 말은 상당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 누구나 빛을 보고 태어나지만 어떤 사람은 그 빛을 더욱 찬란하게 만들어 삶을 즐겁게 하고, 누구는 있던 빛마저 잃어버리고 끝이 보이지 않는 암담한 현실 속으로 떨어져 버린다. 그 차이는 바로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결론을 아주 쉽게 끌어낼 수 있다.

 

그리고 주목해야 할 점은 사람이 살아가는데는 반드시 일정한 경제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공병호 박사는 그 점을 강조하면서 일단 경제력을 지닌 주체가 되려면 철저한 개인주의자가 되어야 하고, 그 뒤에야 이타심 따위를 생각할 수 있으며 또한 그런 과정을 거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그렇기에 굳이 '부자와 빈자'라는 개념을 '생각'이라는 주제와 엮어서 이 책을 쓴 것이다.

 

친절하게도 그는 그저 철저한 개인주의자가 되어야 하는 까닭을 설명하는데만 그치지 않는다. 프리드리히 본 하이에크가 제시한 확장된 질서(Extended Order)라는 개념을 인용하여, 친밀한 집단과 친밀하지 않은 집단에 다른 원칙을 적용하여 욕을 먹지 않는 방법까지 설명한다. 그러면 개인주의자들이 넘쳐나는 세상에서도 서로 비난하지 않고 살 수 있으니, 그야말로 자본주의가 좇는 이상에 가까운 사회(?)라고 볼 수 있다. 그가 제시하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철저한 자유 경쟁체제이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라서 무시하고 넘어가기 쉽지만 막상 살다 보면 이미 뇌에 있는 배선에 접합된 생각을 바꾸기가 얼마나 쉽지 않은지 지지리도 뼈저리게 깨달을 수 있다. 그런데도 그런 깨달음은 순간에 그치고 고정관념과 편견과 아집에 얽매여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 널렸다.

 

물론 그런 한심한 사람들 속에 내가 있다. 한 때 자본주의를 부정하고 공병호 박사가 그토록 경계하는 사회주의에 깊이 빠졌으며,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자본주의를 비판한다는 명목 아래 자유민주주의마저 마음대로 난도질하면서 자제력을 잃었던 시절도 있다. 그렇기에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누워서 침뱉기나 다르지 않다.

 

내가 아직 부족하기에 한편으로는 겉표지와 책갈피만 훑어봐도 결론이 드러나는 책을 굳이 샀다. 이성을 흐리게 하는 것에서 좀 더 오랫동안 벗어날 수 있다면, 이 책 값인 12000원이 아니라 1억 2천만 원을 들여서라도 아낌없이 책을 사는 것 말고도 여러 가지 방법을 알아보겠다. 어쨌든 이 책을 사는데 쓴 돈 12000원은 아깝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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