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병호의 초콜릿
공병호 지음, 오금택 그림 / 21세기북스 / 2006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해병대에서 만난 중대 선임들 가운데 경제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상당히 많았다. 내가 아는 어떤 이는 희망도 없는 사람들이 그저 사업가라는 그야말로 막연한 장래 희망을 지니고 그저 위안으로 삼을 뿐이라고 일갈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보기에는 선임들이 알고 이야기하는 것에는 오랫동안 그들을 앓게 한 고민으로 이루어진 그늘이 너무도 짙게 배어 있었다. 그들은 실제로 이 험한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는데 필요한 방법이 담겨 있는 많은 책을 읽었고, 거기에서 이야기하는 많은 것을 나누고 토론했다.
 

나야 애당초 돈에는 그다지 관심이 크지 않아서, 경제학사나 경제학 이론 같은 말 그대로 이론 공부나 약간 했지, 그렇게 쓸모 있는 것들은 거의 몰랐다. 그러나 군대에 온 뒤 그들에게 뒤지기 싫어서 교양 경제학 서적을 읽기 시작했다. 가이아 이론을 좋아하는 나는 자연마저 단순한 재화 생산 도구일 뿐이라고 단정지어 버리는 경제학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도 사회과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그런 거부감 따위는 기꺼이 버려야 하기에 어쩔 수 없다 생각하고 손에 잡히는 대로 열심히 읽었다.

 

선임들이 읽는 책 제목은 꽤 섬뜩했다. 그 가운데 가장 섬뜩한 제목은 '먹어라, 그러지 않으면 먹힌다'였다. 그런 제목을 보면서 나는 다시 경제학이 얼마나 매정한지 떠올렸고, 그래도 제목이라도 좀 산뜻한 책을 읽고 싶었다. 그 때 이 책이 눈에 들어왔다.

 

제목이 듣기만 해도 군침이 도는 '초콜릿'이다. 열심히 먹고 이 험한 세상에서 적들에게 맞서 싸워 이기라는 뜻인지, 아니면 세상에서 살아남고자 발버둥치느라 지친 사람들에게 주는 위안이라는 뜻인지 어쩐지는 읽기 전에는 정확하게 알 수 없었다. 그런데 막상 읽어보니까 결국 첫 번째 짐작이 맞았다. 

 

그렇다고 해서 '10년 후 세계'와 같은 책처럼 오로지 상황을 철저하고 깊이 있게 분석하고 묘사하는데만 치중한 건 절대 아니다. 삶에는 때로는 쉬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한 것처럼 쉴새없이 치밀한 논리로 시시각각 세계 경제를 분석했던 그도, 이런 책에서는 작정하고 '초콜릿'이라는 제목을 붙이고 살아가면서 지친 사람들이 삶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는 방법도 꽤 많이 제시한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무한 경쟁은 인정머리라고는 하나도 없어서 사람이 절대 쉬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그 흐름에 무작정 몸을 맡겼다가는 사람이 지닐 수 있는 여유 따위는 겨자씨 한 줌만큼도 남아나지 않을 것이다. 통제할 수 없는 삶이라면 잠시 주변과 인연을 끊고 자기를 성찰하는 것이 좋다고 넌지시 권하는 모습이 왠지 모르게 매우 다정해 보인다. 내가 지금까지 생각했던 그런 공병호 씨와는 다른 모습이다.

 

한 사람이 자기 내면과 이야기하고 아버지가 아들에게 이야기하는 모습은 꽤 심각하면서도 정겹다. 그 이야기가 삽화 위에 풀어놓은 짧은 글로 다듬어져 책 속에 담겨 있다. 확실히 내용을 길게 풀어놓은 책보다는 훨씬 읽기 좋고, 메모나 밑줄치기도 쉽다. 그런 이야기 말고도 내 적은 내 안에 있으며,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기회라고 하는 등 매우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런 때는 세계 경제를 예리하게 진단하는 그를 지워버리고, 읽는이와 그저 편안하게 소통하고 싶어하는 공병호 씨를 만나는 것도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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