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의 생각 빈자의 생각
공병호 지음 / 해냄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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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복무하고 있는 해병대 제 1사단에서 우리집까지 가는데는 돈과 시간이 꽤 많이 들어간다. 처음으로 휴가를 나왔을 때 나는 도대체 어떻게 집에 가야 할 지 몰라서 쩔쩔맸다. 결국 어떻게 해서 집까지 찾아가기는 했지만 돈과 시간을 많이 날렸다는 생각이 들어서 찜찜한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특히 버스 안에 있는 동안 바깥 풍경이나 멍하게 바라보다가 정신을 잃고 잠들어 버리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드물다고 생각하는 나는, 버스 안에서 보내는 시간에 어떻게든지 책을 읽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아직 이병이라서(?) 책을 가지고 다닐 수가 없기 때문에, 서문을 통과한 뒤 책을 사는 수밖에 없었다.

 

포상 휴가 때 작정하고 포항시외버스정류장에 있는 서점에서 이 책을 샀다. 제목을 보니까 단숨에 모든 것은 자기가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결론이 눈에 쏙 들어왔다. 결론을 이미 파악한 뒤 사고 싶은 마음이 갑자기 사라지는 듯했다.

 

하지만 다른 책을 둘러보니까 마땅히 살 만한 책이 없었다. 그리고 '10년 후의 세계'를 읽은 뒤 공병호 박사가 과연 어떤 사람인지 정확하게 알아보려면 좀 더 많은 책을 읽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는 주저하지 않고 책을 집어들고 돈을 냈다. 비가 많이 내리는 고속도로를 시속 100km로 달리는 버스 안에서 부지런히 읽었다.

 

'10년 후의 세계'를 읽으면서도 이미 확실히 느꼈지만, 공병호 박사는 철저한 개인주의자이다.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라는 말을 철저하게 긍정하고 있다고 봐야 할 듯 하다. 그렇기에 이 책에서도 나에 관한 생각을 일단 먼저 풀어내고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나, 타인, 조직, 가정, 사회. 이 순서대로 그는 자기 주장을 전한다. 제목대로 부자(富者)는 어떻게 생각하며 빈자(貧者)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거침없이 썼다. 주장을 뒷받침하는 풍부한 사례를 그동안 그가 읽은 수많은 책, 그 가운데 주로 경영 전략을 다룬 책에서 뽑아냈다.

 

분명히 그가 하는 말은 상당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 누구나 빛을 보고 태어나지만 어떤 사람은 그 빛을 더욱 찬란하게 만들어 삶을 즐겁게 하고, 누구는 있던 빛마저 잃어버리고 끝이 보이지 않는 암담한 현실 속으로 떨어져 버린다. 그 차이는 바로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결론을 아주 쉽게 끌어낼 수 있다.

 

그리고 주목해야 할 점은 사람이 살아가는데는 반드시 일정한 경제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공병호 박사는 그 점을 강조하면서 일단 경제력을 지닌 주체가 되려면 철저한 개인주의자가 되어야 하고, 그 뒤에야 이타심 따위를 생각할 수 있으며 또한 그런 과정을 거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그렇기에 굳이 '부자와 빈자'라는 개념을 '생각'이라는 주제와 엮어서 이 책을 쓴 것이다.

 

친절하게도 그는 그저 철저한 개인주의자가 되어야 하는 까닭을 설명하는데만 그치지 않는다. 프리드리히 본 하이에크가 제시한 확장된 질서(Extended Order)라는 개념을 인용하여, 친밀한 집단과 친밀하지 않은 집단에 다른 원칙을 적용하여 욕을 먹지 않는 방법까지 설명한다. 그러면 개인주의자들이 넘쳐나는 세상에서도 서로 비난하지 않고 살 수 있으니, 그야말로 자본주의가 좇는 이상에 가까운 사회(?)라고 볼 수 있다. 그가 제시하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철저한 자유 경쟁체제이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라서 무시하고 넘어가기 쉽지만 막상 살다 보면 이미 뇌에 있는 배선에 접합된 생각을 바꾸기가 얼마나 쉽지 않은지 지지리도 뼈저리게 깨달을 수 있다. 그런데도 그런 깨달음은 순간에 그치고 고정관념과 편견과 아집에 얽매여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 널렸다.

 

물론 그런 한심한 사람들 속에 내가 있다. 한 때 자본주의를 부정하고 공병호 박사가 그토록 경계하는 사회주의에 깊이 빠졌으며,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자본주의를 비판한다는 명목 아래 자유민주주의마저 마음대로 난도질하면서 자제력을 잃었던 시절도 있다. 그렇기에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누워서 침뱉기나 다르지 않다.

 

내가 아직 부족하기에 한편으로는 겉표지와 책갈피만 훑어봐도 결론이 드러나는 책을 굳이 샀다. 이성을 흐리게 하는 것에서 좀 더 오랫동안 벗어날 수 있다면, 이 책 값인 12000원이 아니라 1억 2천만 원을 들여서라도 아낌없이 책을 사는 것 말고도 여러 가지 방법을 알아보겠다. 어쨌든 이 책을 사는데 쓴 돈 12000원은 아깝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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