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점 알바가 많아서 요샌 점점 리뷰보고 책사기도 힘들다. 응24에서 알라딘으로 넘어올 무렵엔 인문서 서평이 많아서 넘어온거였는데 이젠 여기든 저기든 실제로 읽어보지도 않고 별점이나 다는 알바들이 많아서 100자평류는 읽어보기 두렵다. 이 책도 서평이벤트 꽤 뿌렸던걸로 기억한다. 수공예 블로그 하시는 분이 쓴 글에 덜컥 낚여 사 보긴 했는데, 불친절한 책이다. 핀룸 위빙 기초라기보다는 저자가 판매하는 ˝리틀위버˝를 사용할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다른 공방에서 파는 핀룸을 사용했는데 핀 갯수가 달라 기초단계 따라하기도 벅찼다. 결국 유투브와 그 공방의 블로그 포스트를 따라하며 만들었다.위빙은 직조와 비슷한데 바늘로 핀 사이를 왔다갔다하며 엮는 거라 핀의 갯수가 달라지면 방향이나 순서가 달라진다. 핀을 대충 때려박는 건 아닐테고, 방향과 순서에 원칙이 있을텐데 이 책은 그런 설명이 없이 리틀위버를 기준으로 말 그대로 ˝따라하면˝ 되는 구성이다. 그러니 리틀위버가 없는 초심자는 이 책으로 뭘 할 수 없는 것이다.리틀위버는 너무 비싼데, 이 책을 산 이유였던 뒤쪽의 고급도안들은 1) 리틀위버가 있거나 2)핀룸위빙 숙련자라서 도안 혹은 완성본만 보고 구조를 이해하거나 둘 중 하나가 아니면 따라할 수 없다. 말 그대로 그림의 떡.특정 브랜드 장비를 써야 하니 입문서로 추천하기도 애매하고..하지만 그림의 떡이라도 도안이 이쁘긴 해서 언~젠가 위빙에 능숙해진다면 따라해보고 싶긴 하다.
부르주아가 왕을 거부하기 위해서는 왕의 권위를 정당화해주는 신부터 극복해야 했다. 다시 말해, 신의 역할을 대신해줄 만한 무엇인가를 찾아야 했던 것이다. 그리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부르주아는 인간의 `이성`으로 신의 역할을 완벽하게 대체했다.
대공황 당시 미국의 산업구조는 제조업 중심이었다. 다시 말해, 육체노동 중심의 산업구조였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 한국의 산업구조는 서비스업 중심이다. 한국 청년들은 더 이상 육체노동을 원하지 않는다. 이미 육체노동을 요구하는 중소기업의 공장들은 일손을 구하지 못하고 있다. 오늘날 한국에서 정부가 개입한 대규모의 공공사업이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개별 노동자의 이익으로 돌아가기보다는 기계화된 특정 기업의 이익만을 대변하게 될 것이다.
공산주의가 자본주의와 거래하지 않는 것이 뭐가 그리 큰일인가? 공산주의가 거래하지 않겠다고 하면, 다른 자본주의 국가들끼리 무역을 하면 되는 것 아닌가? 그것이 불가능한 이유는 자본주의의 특성에서 기인한다. 자본주의의 특성은 앞에서 논한 대로 공급이 수요보다 많다는 것이다. 수요를 늘리기 위한 방법은 무엇인가? 식민지다. 식민지는 공급과잉을 해소할 시장으로서 필요하기 때문이다. 시장 확보가 필수적인 자본주의의 입장에서는, 자본주의와 무역 거래를 하지 않는 공산주의 국가가 늘어난다는 것은 시장의 축소를 의미한다. 시장의 축소는 수요량의 감소를 의미하고 수요량의 감소는 자본주의의 생산 중단, 즉 공황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공산주의 국가의 존재 자체가 자본주의에 위협이 되는 것이다.
`국가`는 요청된다. 국가라는 개념은 신의 개념과 마찬가지로 지배를 정당화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그리고 특히 `애국`에 대한 강요는 지배자들을 편리하게 한다. 그래서 애국은 국가적 차원에서 장려되고 교육된다. 애국자와 국가유공자에 대한 보상과 기념 절차에 국가적 차원의 지원이 이루어지고, 사회는 이들을 지칭하는 어휘를 검열하고 교정한다. 반대로 애국과 거리가 먼 사람들에게는 공공연한 정치/사회적 압력이 가해지고, 이들을 지칭하는 어휘들에는 거칠고 모욕적이며 배타적인 언어들이 허용된다.
하지만 이렇게 후기 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가 동시에 진보로 분류된다는 언어적 문제는 한국 근현대의 비극을 만들어냈다.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 등의 후기 자본주의자들이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을 주장한다는 이유만으로 공산주의자나 빨갱이로 불리기도 한 것이다. 신자유주의를 옹호하고자 하는 개인과 집단에게는 정부의 개입을 주장한다는 면에서 실제로 후기 자본주의가 공산주의와 구분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사실 이러한 문제는 순수하게 언어적 혼란 때문에 발생한 문제만으로 보기는 힘들다. 후기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구분이 의도적으로 은폐된 면이 없지 않다. 자신의 재산과 기득권을 유지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어떠한 수단과 방법도 가리지 않고 신자유주의를 지켜내고자 하는 것 같다. 그런 집단은 자신의 기득권을 이용해서, 역사적인 맥락에서 한국인이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공산주의를 후기 자본주의와 함께 묶음으로써 대중들이 후기 자본주의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을 갖도록 유도하는 것처럼 보인다.
현실의 문제를 집요하게 파헤치지 않는 것, 정치적 사안의 심각성을 강조하지 않는 것은 중립이나 비정치적인 성향이 아니라, 현시르이 문제에 구조적으로 접근하지 않는 보수적인 세계관이다. 날카로운 풍자와 시사가 배제된 예능은 대중의 말초적 재미에만 초점을 맞춤으로써 실제의 현실에서 눈을 돌리게 만드는 정치적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비난의 대상이 되어야 할 것은 `체제` 자체가 아니라 `체제 선택의 합리성`이다. 사회 구성원 전체가 특정 권력의 의도적인 영향에서 벗어나 객관적 사실을 바탕으로 자신의 이익에 따라 경제체제를 선택했다면, 민주주의에서는 그것이 신자유주의든 사회주의든 비판할 수 없다. 다만 특정 집단에 의해 의도적으로 정보가 은폐되고 변형되어 대중들에게 주입된 채 대중들이 자신들의 현재 이익과 괴리된 체제를 선택한 것이라면, 그것이 신자유주의가 되었든 공산주의가 되었든 그 정보 은폐의 주체는 강력하게 비판받고 처벌받아야 한다. 왜냐하면 부도덕하며 비윤리적인 것은 특정한 경제 체제가 아니라, 특정 경제 체제가 선택되도록 의도적으로 작용하는 권력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