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전화는 그냥 존재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휴대전화는 '그것을 통해서 응답해야 하는 의무'를 부과한다. 그것은 테크놀로지가 개인에게 부과하는 의무이고 정언명령이다. -p.47. 1장 휴대전화-소통 혹은 단절의 오브제
정보화된 환경은 노인들을 고립시킨다. 정보화된 사회가 유발하는 노인들의 소외감을 젊은 세대가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인간의 생활에는 '관성'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정보화된 환경에 적응한 사람은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게 된다. 나아가 그런 시스템이 합리적이라고 느끼게 된다. 그러므로 특별히 깊은 관심을 쏟지 않는 한 노인들의 소외감과 낭패감, 불합리함을 이해하기가 어렵다. 지금의 노인들은 다른 세대와 다른 특성을 갖고 있다. 그들은 사회가 정보화되기 이전에 젊었고, 정보화된 이후에 늙었다. 말하자면 중간에 '걸친 세대'다. 그들의 소외감도 이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p 68. 1장 휴대전화-소통 혹은 단절의 오브제
아날로그 기기도 편리함을 추구하는 것은 디지털 기기와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그 기술 수준이 인간의 감각을 배신하지는 않았다. 기기가 고장이 나면 사용자들이 스스로 고쳐 쓰는 경우도 많았다. 작동 과정과 원리가 관심을 기울이면 보통 사람도 이해할 수 있는 수준에 있었기 때문이다. 아날로그 기기를 사용하는 과정은 기기가 포함하고 있는 물리적/과학적 지식을 습득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아날로그 기기는 사용자의 이해와 통제를 허용한다. 그래서 내가 만든 것은 아니지만, 명실공히 '내 것'이라는 느낌이 강했다. (중략) 그러나 첨단 디지털 기기는 다르다. 디지털 기기들은 '내 것'이라는 느낌이 잘 들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디지털 기기들은 고도로 추상적인 개념에 기초해 있다. 일반인이 작동 과정과 원리를 이해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러므로 고장이 나도 손수 고칠 수 없다. 기술 전문가에게 맡기지 않으면 안 된다. 첨단 디지털 기기들은 소비할 권리만 부여할 뿐 사용자에게 지적 접근을 허락하지 않는다. -p.81. 2장 디지털-편리함의 잔혹한 이면
대중운동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정보의 연결'을 넘어 '몸의 연대'로 나아가야 한다. 몸의 연대는 친밀함과 지속성을 바탕으로 강한 유대감을 낳는다. 그것은 운동의 전략과 전술을 심도 있게 토론할 수 있는 기반이자, '약한 연결'과 '약한 연대'를 광범위하게 결집시키는 기반이다. 몸의 연대는 친밀함과 지속성을 낳고, 그것이 정치적 탄압을 극복하는 힘이 된다. 대중운동에서 군중의 존재는 중요하다. 그러나 몸의 연대로 이루어진 '동지'가 없으면, '군중' 역시 정치적 파괴력이 없다. -p.93. 2장 디지털-편리함의 잔혹한 이면
디지털 기기 조작은 '예'와 '아니오', 그리고 정해진 분류 항목 중 하나를 클릭하는 과정이 대부분이다. 그것은 '선택을 하지 않을 수 있는 선택'도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게 만든다. 디지털 기기 조작의 룰은 사용자가 만든 것이 아니다. 그 룰은 사용자가 순순히 따라야 할 것으로 일방적으로 강제된다. 또한 디지털은 새로운 기능, 새로운 디자인, 새로운 소프트웨어 프로그램, 새로운 정보에 열광하게 만든다. 그것은 '무엇을 어떻게 발명할 수 있는가'를 문제삼지, '왜 그것을 발명해야하는가'를 문제삼지 않는다. -p.125. 2장 디지털-편리함의 잔혹한 이면
예리하면서도 유연한 사고능력은 디지털 환경으로 인해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사람들은 정보 기기를 조작하느라 독서할 시간이 없다. 인쇄 매체에 대한 관심도 크게 줄었다. 정보 기기를 통해 지식과 정보를 습득하는 습관은 종이책에도 영향을 미쳤다. 종이책도 독자들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사진과 그림이 많아지고, 글씨가 커졌다. 어떤 주제에 대해 풍부한 논리와 근거를 동원해 깊이 있게, 자세히 해설하는 책보다는 단순히 주제를 간단히 말하는 책들이 많아졌다. 그로 인해 종이책을 읽어도 예전만큼 지력이 발전하지 않는 현상이 발생하게 되었다. -p.133. 2장 디지털-편리함의 잔혹한 이면
그러나 상류층의 만족이 관념적이라고 해서 가난한 사람들이 겪어야 하는 고통도 관념적인 것만은 아니다. 만족은 추상적이고 관념적이지만, 고통은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감내해야하는 배고픔과 질병, 육체적 고통은 현실적이다. 빈곤이 정신에 미치는 영향도 있을 것이다. 인간의 정신은 일반적으로 부의 축적으로 인한 기쁨을 축소시키는 경향이 있지만, 빈곤으로 인한 고통은 증대시키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자존감에 심각한 외상을 입은 빈자가 먹을 것이 남아 있더라도 죽어가거나, 자살하는 것을 흔히 본다. 이 역시 인간이 정신적 존재이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p.368. 6장 낭만없는 시대-인간적으로 산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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