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도 필요 없고 자살도 필요 없다. 29만 원짜리 수표를 든 전두환 포스터를 만들어도 그는 아파하지 않는다. 그를 아프게 만드는 것은 현실에 존재하는 숨은 재산을, 현실적으로 추징하는 것 뿐이다. 풍자와 자살은 저항의 스타일이다. 문제는 전두환은 더 이상 저항의 대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2013년의 한국 행정부와 사법부에게 전두환은 숨은 재산을 추징할 범죄자다. 그러므로 다시, 풍자도 필요 없고 자살도 필요 없다. 선한 권력이 제대로 작동하면 된다. 국세청과 검찰, 경찰이 움직이도록 시민들이 강제해야 한다. [전두환과 재산]-36쪽
전두환과 신군부는 그 무엇과도 투쟁하지 않았다. 당시 역사책과 회고록을 아무리 찾아봐도, 사익 외에 '신군부가 왜 군부 권력을 접수했는지'에 대한 설명을 찾기 어렵다. 전두환은 자신의 권력 행사를 가로막는 모든 것과 투쟁했을 뿐이다. '나세르-박정희-전두환'으로 이어지는 쿠데타의 반복 과정에서, 진보적 성격은 점점 희미해지고 날것으로서 권력의 기술만 남는 모습을 본다. 그러므로 김종필이 감히 나세르와 케말 파샤를 언급한 것은, 이집트와 터키의 국민에 대한 모욕이다. [한국 쿠데타의 선배 나세르]-80쪽
어떤 마음가짐이 이런 하극상을 가능하게 했을까. 육사 11기와 17기의 회고록을 읽고 그들을 인터뷰할수록 한 가지가 뚜렷이 보였다. 엘리트주의다. 그것은 진보나 보수 같은 이념 지향과 무관했다. 육사 11기는 최초의 4년제 정규 육사라는 엘리트 의식으로 충만했다. 17기의 엘리트 의식은 더 심했다. (중략) 육사 8기는 1948년 입교해 22주의 단기 교육을 받고 임관했다. 6.25 전쟁에 초급장교로 참전했다가 숱하게 죽었다. 육사 11기들은 전쟁이 한창일 때 전선에 나가는 대신 교육을 받은 세대다. 육사 11기가 '우리는 엘리트다'라고 외친다면 육사 8기는 '우리가 피 흘려 남한을 지켰다'라고 받아칠 만하다. 그러나 김종필 같은 육사 8기생도 전두환과 노태우에겐 '단기 육사 졸업생'에 불과했다. [전두환과 육사, 하극상의 역사]-92~93쪽
쿠데타의 기억은 여전히 육사 주위를 검은 안개처럼 떠돈다. 전두환에게 '우로봐'하는 생도들이 김오랑 기념비를 보고 '우로봐'할 기회가 여전히 없다. 육사에는 아직, 검은 안개가 있다. [전두환과 육사, 하극상의 역사]-97쪽
최규하 대통령과 행정부가 키를 쥐고 있었다. 최규하는 적극적 부작위(不作爲)'로 쿠데타를 도왔다. 지금까지 역사 서술은 최규하 대통령을 우유부단한 피해자로 묘사해왔다. 내가 읽은 자료 속의 최규하는 전두환의 적극적 협조자였다. 형법 18조는 '부작위범'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위험의 발생을 방지할 의무가 있거나 자기의 행위로 인하여 위험 발생의 원인을 야기한 자가 그 위험 발생을 방지하지 아니한 때에는 그 발생된 결과에 의하여 처벌한다.' 최규하는 피해자가 아니라 부작위범이다.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자. [쿠데타는 왜 진압되지 않았나]-1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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