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서가 자신을 제어하는 기술을 다룬다면, 인문학은 자신을 스스로 깊이 들여다보는 힘을 기르게 한다. 둘 다 내부를 향하지만, 자신을 제어해서 사회적으로 인정받으려는 욕망(자기 계발)과 사회적 관계 때문에 자아를 상실하는 상황에서 자기 성찰을 강화하려는 욕망(인문학)사이의 차이는 심오하다. 그것이 어느 순간 처세술로 전환될 수 있다는 사실은 인문학적 실천이 누구를 향해 열려 있어야 하는지 다시 생각하게 한다. [인문학의 가면을 쓴 자기계발학]-29쪽
사람들은 현실을 이성적으로 분석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세상의 부조리를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은 많다. 그러나 그 부조리를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세상과 싸우는 것은 아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이용해 세상의 부조리를 심화시킨다. 문제는 앎이 아니라, 삶이다. 앎이 삶과 더불어 가려면 세상을 받아들이는 태도로서 감수성을 깊이 생각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이 감수성의 변화에 기반해 주류적 관점이나 문화, 이미 조직된 체계를 거부하고 '이탈'을 감내해야 약소자의 주체성은 형성된다. [대안을 찾는 대안]-43쪽
번역의 가치보다 원전의 가치만을 강조하는 사회는 후진 학문 사회다. 학문의 종속적 풍토가 번역의 가치를 다시 설정하는 일로 극복되지 않는다면 관성이 된 해외 유학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한국 학문의 취약한 토대와 자생성은 번역과 관련이 있다. 한국 학문은 번역을 통해서도, 자기 자신의 문제 설정을 통해서도 주체적 학문 체계를 형성하지 못했다. 한 사회 공동체가 학문이 자생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려면 자국어로 된 학문 체계를 형성해야 한다. 한국 근대 학문은 120여 년에 이르는 서구 유학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데도 종속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번역 권력]-127쪽
1990년대 소수자 운동은 '성 정치와 정체성의 정치'에 기반을 두고 영향력을 확장해나갔다. 성적 소수자 운동에서 시작한 성 정치 운동은 페미니즘 운동과 결합해 급진주의적 성격을 띠었다. 더불어 정체성의 정치는 장애인, 청소년, 성매매 여성, 수형자 등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사회적 잉여들'과 실천적으로 결합했다. 성과 정체성의 정치에 입각한 소수자의 권리 선언은 최소한의 인간적 권리마저 짓밟힌 현실을 폭로했다. 문제는 이런 인정 투쟁이 다수자의 관용에 의존하는 방향으로 전개됐다는 데 있다. 자기 자신을 스스로 소수자로 규정한 개별적 주체는 '보편적 인간'으로 인정받기를 원했다. 대자아에 자신을 동일시하는 이런 투쟁은 결국 권력을 지닌 지배 계층의 관용이 허용하는 범위에서만 성공할 수 있을 뿐이다. 이런 인정 투쟁은 일종의 권력 배분에 국한되는 양상을 보이면서 왜곡됐다. 분배할 수 있는 권력의 양을 한정하면서 권력을 지닌 지배 계층은 소수자 사이의 투쟁을 유도하는 양상을 보이기도 했다. [약소자와 유력자]-3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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