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석의 낭만 미래 - 미래는 현재보다 더 살 만한 가치가 있는가 지식과 책임 총서
고종석 지음 / 곰 / 2013년 9월
품절


앞서 말했듯, 집단에 대한 공포가 있었으니까요. 더 정확히 말하면 이성을 잃은 집단의 광기에 대한 공포였겠지요. 아니, 그건 때로 이성의 광기에 대한 공포이기도 했어요. 좌파의 군중적 광기는 흔히 이성의 광기이기도 하니까요. 이성과 광기라는 말이 양립할 수 없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저는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과학의 광기, 과학자들의 광기,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발현되는 광기는 그리 드문 일이 아니죠. 마르크스 자신이 그의 사회주의 이론을 선구자들의 '유토피아적' 사회주의와 대립시켜 '과학적' 사회주의라고 부르기도 했고요. 그 시절 한국 신문에 보도되던 중국 문화대혁명의 홍위병들은 집단적 광기에 대한 제 공포를 더 강화했습니다.
[자유주의]-17~18쪽

자기가 동의하는 사상에 대해서야 마르크스주의자들도 파시스트들도 자유를 보장하지요. 자유주의자가 그들과 다른 점은 자신이 동의하지 않는 사상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것입니다. 공동체의 다수가 동의하지 않는 사상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뜻입니다. 그 사상의 공적 표현이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을 야기하지 않는 한 말이에요.
[국가보안법]-42쪽

지금 안철수 지지자들과 소위 친노 유권자들은 서로를 새누리당 지지자들보다 더 적대시할지도 모릅니다. 인격이 이념을 대체해버린 거예요. 정서가 이성을 대체했다고도 할 수 있겠죠.
그러니까 지금 한국 사회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이념의 과잉이 아닌 이념의 부족입니다. 유권자들이 이념에 따라 투표한다기보다 어떤 인격에 대한 호불호에 따라 투표한다는 거지요. 또 여기에는 박정희 집권 이래 한국 사회에서 작동하고 있는 영남패권주의가 강하게 개입돼 있다는 사실도 지적해야겠군요. 어떤 사람이 영남 출신이냐 아니냐는 그 사람이 어떤 이념을 갖고 있느냐보다 더 중요합니다. 그것은 부분적으로 호남 출신에 대해서도 할 수 있는 말이겠지요.
[이념의 갈등]-62~63쪽

통일은 좋은 일이지요. 그렇지만 설령 통일이 되지 않는다고 해도, 남과 북이 사이좋은 이웃나라로 지내는 것 역시 그것대로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통일이라는 가치는 평화라는 가치에 견주어 훨씬 보잘 것 없는 일이고, 심지어 복지라는 가치에 견주어도 대수롭지 않으니까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남북 관계를 세심하게 조율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 세심함에는 남한과 북한이 서로 다른 나라라는 인식이 전제되어야겠지요. 민족주의자들은 저의 이런 견해에 매우 비판적일 겁니다. 그러나 현실을 현실대로 인정하는 것이 어떨 때는 이상에 더 가깝게 가는 길이 되기도 합니다.
[북한과 통일]-72쪽

학생인권조례는 곧이곧대로 시행돼야 합니다. 저는 학생인권이 교권과 마찰을 일으킨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교권이 침해된다는 것은 학생이 교사에게 어떤 범죄에 해당하는 행위(예컨대 폭력이나 모욕 같은 거겠죠)를 저지르는 상황을 가리킬 때만 제한적으로 사용되는 표현이 돼야 합니다. 만약에 그런 상황이 벌어진다면, 그 학생을 법에 따라 처벌하면 됩니다. 요컨대 학생이라는 신분이 특권이 돼서도 안 되고, 보편적 인권의 박탈 내지는 제한 사유가 돼서도 안 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학생 인권]-1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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