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스트레스 - 행복은 어떻게 현대의 신화가 되었나
탁석산 지음 / 창비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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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바깥에는 문화/환경 등 시대조건이 있다. 시대조건은 개인의 내면에 깊이 영향을 끼친다. 내가 고려시대에 살았다면 나의 내면 풍경은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달랐을 것이다. 행복은 특히 시대의 산물이기에 더욱더 시대조건을 살필 수밖에 없다. 나는 공리주의, 민주주의, 개인주의, 시장주의가 행복의 시대조건이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이런 시대조건이 행복이라는 개념을 만들고 확대시켰는가, 그리고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쳤고 끼치고있는가를 탐구하지 않고는 행복이라는 개념을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03 행복이라는 이상한 개념]-61~62쪽

자신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감정과 함께 평등은 또다른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개인이 무력하거나 무가치하다는 감정이다. 예전에는 기술자연맹 같은 길드가 있었다. 어떤 개인도 개인으로 인정되지 않았고 어떤 집안의 누구 혹은 어느 지방의 누구 아니면 어떤 계급의 누구였다. 계급제도와 신분제도안에서 같은 계급에 속하는 사람들은 그 이유만으로도 서로를 도왔다.
하지만 민주사회에서는 모두가 평등한 개인이기에 홀로 모든 것에 맞서야만 한다. 그렇게 될 경우 개인은 무력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무력감은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하는지에 신경쓰도록, 즉 여론에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만든다.
[05 민주주의의 함정]-83쪽

우리는 지금 기부에만 신경쓰고 있다. 즉 기부를 받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기부를 하면 그 사람에게 당연히 도움이 될 것이고, 도움이 된다면 고마워할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막연함을 세심한 배려로 바꾸지 않으면 기부는 양극화의 갈등을 더 악화시킬 수 있다. 기부를 받는 사람이 더 자존심이 상하고, 상한 자존심이 적대감으로 변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염려는 마르셀 모스도 하고 있다. "자선은 그것을 받는 사람에게는 더욱 마음의 상처를 입히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도덕적인 노력은 부유한 '보시가'의 무의식적이며 모욕적인 후원을 없애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말한다.
[07 시장이 삼킨 행복]-134쪽

벤섬이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외치는 순간 최대 다수가 아닌 사람, 즉 소수자들의 행복은 무가치한 것이 되고 말았다. '행복'을 제대로 정의내리지 못한 것이다. 게다가 공리주의가 행복을 저울에 올려놓는 순간 행복은 그저 쾌락이라는 고깃덩어리가 되고 말았다. 정신적 쾌락이든 육체적 쾌락이든 한가지 기준으로 측정될 수 없음에도 측정 가능하다고 주장함으로써 세상에는 계량된 행복만이 남게 되었다.
그런데 이것이 공리주의가 안고 있는 문제의 전부가 아니라는 데 그 심각성이 있다. 우리가 놓치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공리주의가 행복 추구를 유일한 도덕적 기초로 삼는다는 점이다. 공리주의는 인간의 존엄성, 삶의 의미 등은 고려의 대상에 넣지 않는다. 행복을 전면에 내세우고 그것이 도덕의 기초라고 선언하는 순간, 더 귀중하고 큰 가치는 시야에서 사라지게 된다. 인간이 정신적이든 육체적이든 쾌락을 추구하고 고통을 피하려는 것을 도덕의 기초로 삼고 산다는 것이 용납되는가? 쾌락과 고통으로 인생이 환원된다는 의미인가?
[08 인간은 단순하지 않다]-140쪽

이소노미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는 평등을 천부적인 것으로 여겨 방치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다는 말은 이제 말에 그치고 있다. 인위적 노력에 의해 제도적으로 평등이 획득되며 평등이 인간의 내재적 특성이라기보다는 사회적 속성이라는 것에 다시 한번 주목해야 한다. 헌법이 보장하고 학교 교육이 민주주의의 평등을 가르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외롭고 소외되면서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사회가 평등해야 한다.
[09 평등 없이 행복 없다]-1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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