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에서 왕으로 - 국가, 그리고 야만의 탄생 - 카이에 소바주 2
나카자와 신이치 지음, 김옥희 옮김 / 동아시아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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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칭성 사회의 지혜가 실현시킨 균형은 절묘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뇌 안에 초월적인 '초인'의 씨가 뿌려져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 씨의 발육이 가능한 공간과 시간에 대해 엄격하게 제한을 가하고자 했습니다. 우리가 앞에서 들었던 예로 말한다면, 그것은 '겨울'이라는 시간과 제의가 행해지는 공간의 내부에 한정되어 있었습니다. 유동적 지성이 여는 '초인'에 대한 가능성은 여러 종류의 가면이 나타내는 '식인' 정령을 통해서 인간을 향해 입을 크게 벌린 채로 있습니다. 하지만 '겨울'의 종말과 함께 그 흥분된 시간과 공간은 자취를 감추도록 정해져 있었습니다.
이때 '식인'이 인간세계로 들여온 자연의 권력은 제의 기간 중에 인간세계를 초현실적인 예술적 흥분으로 가득 메운 후에는 세속적인 사회 안에 절대로 침입해서는 안 되도록 정해져 있었습니다. 권력은 정중한 대접을 받으며 다시 원래 자리인 숲 속으로 돌려보내지게 됩니다.-220쪽

마찬가지로 전사도 몸에 익힌 특별한 능력을 사회의 중심부에서는 발휘할 수 없었습니다. 전쟁의 리더는 특별한 전쟁의 시공간에서만 권력을 부여받은 자이며, 샤먼도 수장의 이성적 관리하에서만 초능력의 발휘가 가능합니다.
이처럼 대칭적 사회에서는, 인간은 이성의 표현인 '문화' 속에서 살아가는 동물이며, 권력은 이성을 초월하는 것으로서 '자연'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어야 했습니다. 그런 구조에서는 왕도 국가도 발생할 수 없습니다.
['식인'으로서의 왕]-220~221쪽

그때까지 대칭성 사회에서는 '문화'와 '자연'은 이질적인 원리로 간주되어 가능한 한 분리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연'의 것인 권력=능력을 사회의 내부로 들여온 왕이 존재하는 세계에서는, 이런 분리는 불가능해집니다. 왕 스스로가 '문화'와 '자연'의 이종교배에 의해 탄생했으며, 나라의 권력 역시 동일한 이종교배의 원리에 의해 구성되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이종교배에 의한 구성체에 부여된 이름이 바로 '문명'입니다.
야만은 여기서부터 발생합니다. 왕과 같은 존재를 허용한 순간부터, 인간은 마치 힘의 비밀을 '자연'으로부터 빼앗기라도 한 듯이, 그때까지 소중하게 여겨오던 경건한 마음가짐을 상실하고, 동물이나 식물도 단지 인간의 필요를 위해 존재하는 대상으로 보게 되겠지요.-229쪽

그러자 '자연'은 개발과 연구와 보호의 대상이 되고 맙니다. 그리고 동물이나 식물의 가축화가 이루어집니다. 심지어 곰마저도 더 이상 위대한 카무이(신)가 아니라, 위엄을 상실한 동물학상의 한 대상으로 왜소해지고 맙니다. 예전에는 동물의 특성으로 여겨졌던 탐욕이나 인색함이나 질투가 이제는 인간의 특성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 동안은 동물적 특성이 인간에게 나타나는 걸 '문화'가 억제해 왔는데, 이종교배가 이루어진 이 세계 안에서는 오히려 인간의 독점물처럼 되어 버립니다.-229~2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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