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와 기독교 사상은 기본적으로 서로 양립할 수 없는 것이었다. 로마의 사상은 현실에서의 명예로운 삶을 강조하지만 죽은 후의 내세나 구원에 대해서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는다. 그리스와 로마에는 수많은 신화가 존재하지만 지옥이나 천국 등 지상에서 인간이 한 일에 대한 상벌 관련 내용은 거의 없다. 신들의 세계를 믿지만 그곳은 인간 세상이나 크게 다르지 않은 모략과 협잡과 고통과 분란이 가득한 곳일 뿐이다. 사후의 보상 체계가 없는 이런 내세관에 의지해 삶을 버텨내려면 교육과 법, 시민으로서의 자부심, 다양한 계급을 만족시킬 사회 시스템이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이런 요소들이 조금만 약해지면 바로 흔들리게 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이승의 삶에 대한 상벌 기준을 분명히 하는 기독교는 과거에 비해 약해진 로마의 사상적 기초를 크게 흔들어놓을 수밖에 없었다.-60~61쪽
선과 악을 일도양단해서 구별하려는 경항은 전근대적인 관점이다. 인간성의 현실을 인식하고 중용을 좇아 균형을 취해 나가는 반성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자기도취에 의한 그릇된 선의 신념은 스스로의 중요성과 성취에 대한 과장을 통해 만들어지고 공고해진다. 이런 유아적인 도취는 냉엄한 현실에 마주쳐 스스로가 야기한 실수와 실패를 인정하고 배우며 성장해 나가는 과정에서 서서히 극복될 수 있는데 이는 개인/종족/문명/국가 차원에 함꼐 적용되는 진리다. 현대 미국의 가장 큰 문제는 일천한 역사로 말미암아 아직 이런 기회를 충분히 갖지 못했다는 점이다. 엄청난 부와 정치적 성공신화에서 비롯된 미국인의 낙관주의와 로맨티시즘, 영웅주의는 세상에 대한 그들의 무지와 더불어 스스로를 21세기의 철부지로 전락시키고 있다. 성숙할 기회를 갖지 못한 자아는 실패나 오류를 건강하게 받아들일 힘이 없기 때문에 작은 문제 앞에서도 두려움에 떨고 공격적으로 변하는 불안 상태를 유발하게 된다. 이것이 21세기 미국이 십자군을 운운하게 되는 배경이다.-130쪽
다만 혁명이라는 것은 실제로 이렇게 시작되고 전개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온갖 전설적인 혁명가의 영웅담에도 불구하고 권부와 국민이 실제로 그 명분의 기치하에 질서정연한 정면대결을 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어느 한쪽의 두려움에 의한 과도한 행동과 주위를 둘러싼 긴장감과 공포, 그리고 그 틈을 타서 움직이는 권력지향의 인물들과 이상주의의 열정과 충동에 의해 상황이 좌지우지되는 것이 혼란스러운 혁명 상황의 진실에 가깝다. 거기에 평소 같으면 별 문제도 없을 일이 일촉즉발의 긴장감 속에서 방아쇠로 작용하고 이어 수백, 수천명의 피를 뿌리면서 걷잡을 수없이 퍼져 나간다. 상황이 상황을 끌어나가고 피가 피를 부르며, 혁명 자체는 거대한 불덩이처럼 스스로 타오르게 되는 것이다.-250~251쪽
이런 일을 피할 수 없는 것은 혁명 자체가 그 자신의 열정과 피를 먹고사는 생물과 같아서 중앙에서 통제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고, 또 현실적으로 혁명을 수행하는 지역 단위의 말단 인력까지 지성과 전략, 신념으로 무장한 지식인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일반적으로 교육이나 의식수준이 중앙의 간부들에 비해 낮고 혁명의 열기, 감정과 권력의 유혹을 조절하고 자신의 공격성을 통제할 이성이나 자각을 갖고 있지 못하다. 그들이 이렇게 된 것은 그간 무의식 속에 숨겨져 있던 계급적 분노의 감정이 혁명의 명분이라는 필터를 거쳐 잔인함을 정당화시키는 기저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물론 우익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2000명의 사회주의자를 처치했다며 스스로를 백색 테러리스트로 불렀던 주먹 황제 김두한도 나라를 위한다는 명분이 있었기에 거리낌없이 학살을 저지를 수 있었다. 인간은 동물적인 공격성을 본능으로 품고 있기 때문에 누구나 언제나 이런 행동을 할 가능성에서 자유롭지 않다.-270~271쪽
그렇게 만든 세상에 슈퍼맨은 영원히 책임을 질 수 있을까. 신이 아닌 한 그도 나이가 들고 언젠가 죽는다면 이후에는 어떻게 될 것인가. 무엇보다도 인간의 판단과 결정의 권리, 합의를 통해 문제를 풀어나가는 합리적인 민주주의를 향한 문명의 노력은 더 이상 아무 의미도 없게 된다. 이렇게 우리는 자칭 구세주에 의해 본의 아니게 행복한 돼지로 변해버리는 것이다. 뜬금없이 슈퍼맨을 예로 든 것은 소명의식과 오만함 사이를 넘나드는 이른바 선한 힘의 부정적인 속성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다. 제 아무리 뛰어나다 한들 인간이나 인간이 만든 것은 결코 완벽할 수 없다. 어떤 개인도 체제도 계급도 인류의 구세주가 될 수 없고, 명분이 아무리 훌륭하더라도 그런 믿음을 갖는 순간 모든 것은 어긋나기 시작한다. 슈퍼맨은 존재할 수도 없지만 존재해서도 안 되는 것이다. 이런 것을 나는 '초인의 오류'라고 부른다. 세계 역사 곳곳에서 등장하는 이런 사람들, 이런 활동은 서로 달라 보이고 역사에서의 평가도 제각각이지만 기본적으로 공통적인 지점에 있다. 그 오류는 작게는 스스로의 몰락을 부채질하고 크게는 주변 사람에게 엄청난 고통을 지운다.-330쪽
이런 상황을 보면 제2차 세계대전의 불씨가 된 독일의 행보는 유럽 정복의 야욕보다는 제1차 세계대전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려는 노력으로 해석이 가능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오히려 처음에는 영국과 프랑스 역시 독일을 소련에 대한 방패막이로 삼고자 이런 움직임을 묵인했다. 하지만 독일이 소련과 불가침조약을 맺고 폴란드를 공격하자 화급히 태도를 바꾸어 3일 만에 선전포고를 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때까지 독일은 자신들과 관련 없는 땅을 공격하지 않았다. 나치 독일을 옹호하고자 하는 말은 아니다. 그들의 실제 목표가 제1차 세계대전 이전의 국토를 회복한 후 유럽 전체로 손을 뻗치려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개전과 그에 대한 독일의 책임 부분과 관련되어서는 승자의 편에서 기록되는 역사라는 일반 법칙이 일정 부분이나마 적용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당시 독일은 기존의 자기 땅을 되찾기 위한 국지전을 벌였고 실제 이 전쟁들이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어 제2차 세계대전으로 확대되게 한 계기는 그들을 서유럽 전선으로 끌어들인 영국과 프랑스였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기 때문이다.-424~425쪽
그들을 비판하면서도 한편 냉정하게 인식해야 할 것은 현실에서 순수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일부 개인이 그런 성향을 보일 수도 있지만 일정 규모를 넘어서는 집단에서는 불가능하다. 모든 조직적인 광기에는 그것을 합리화하는 명분이 있는 법이다. 나치 탄생의 본질은 악마 히틀러보다는 제1차 세계대전 패망에 따른 자존심 높은 게르만인의 절망에서 찾아야 한다. 이 절망에는 당시 유럽과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국제 정세와 전승국의 지나친 욕심이 상당 부분 배경으로 자리하고 있다. 한때의 신성로마제국이자 유럽의 정신적/물질적 리더였던 독일인에게 부가된 패전의 멍에는 너무나 컸고, 여기에 대한 피해의식이 나치를 낳은 측면이 적지 않다. -430쪽
순수악 개념은 철저히 중세적인 것이고 모든 것을 선과 악으로 일도양단하는 태도는 전형적인 가톨릭 도그마의 접근법이다. 악한 인간과 악한 행동은 존재하지만 그들을 순수한 악으로 단순화해서 보는 순간 우리는 그들과 전혀 다른 존재라는 착각에 빠져든다. 증오와 편견은 아직 우리 인간과 문명의 내부에 도사리고 있고, 이 감정들은 적절한 조건이 주어지면 언제든지 표출될 준비가 되어 있다.-431~4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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