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기 전엔 몰랐던 것들 - 가장 절실하지만 한 번도 배우지 못했던 일의 경제학
류동민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3년 5월
구판절판


그야말로 기발하고 창조적인 인문학적, 예술적 상상력이나 기존의 모든 권위를 끝까지 의심해보는 사회과학, 자연과학의 물음을 요구하는 공부가 아니라 이미 정리된 형태로 주어진 지식 체계를 빨리 익히고 그 체계가 요구하는 정답을 찾아내는 공부에 가까울수록 퀴리 부인처럼 흡수력이 왕성한 두뇌를 갖추는 것에 못지 않게 얼마나 체제 순응적인 특성을 갖추고 있느냐도 중요해진다. 체제 순응적이란 말은 사회 구성원들이 외적으로 강제되는 여러 가지 규칙이나 제한 등을 곧이곧대로 고분고분하게 따른다는 뜻이다.-29쪽

공장이나 회사의 규격화된 노동에 적응을 잘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자본주의 사회의 노동자가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이며 학교 교육으로써 길러지리라고 기대되는 미덕이다. 바로 노동자를 훈육(discipline)하는 것, 즉 길들이는 것이다. 징병제가 실시되는 한국 사회에서 군대가 이러한 능력을 극단적인 형태로 양성하는 공간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속된 말로 '까라면 까', 생각하고 판단하는 기능을 조직의 윗선에 맡겨버린 채 자신은 정해진 대로 움직이고 행동하는 이른바 '구상과 실행의 분리'는 그렇게 이루어진다. 비판적 사고를 키우기 힘든 주입식 교육, 객관식 문제를 통한 줄을 세우는 교육, 자신의 적성이나 흥미에 상관없이 '전투'능력을 키워야 하는 군대, 이 모든 것은 하나의 거대한 시스템이 되어 지루함을 잘 참을 수 있도록 길들여진 노동력을 양성하는 중요한 기능을 수행한다. -33~34쪽

더욱이 교육은 동시에 그 사회를 지배하는 신념 체계를 받아들이도록 하는 이데올로기적 기능도 수행한다. 알튀세르가 말하는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로서의 역할이다. 잘 길들 준비가 되어 있는 노동력을 만들어내는 것, 그것이야말로 지배 계급이 사회를 자기 입맛에 맞도록 유지할 수 있는 관건이 된다.-34쪽

예를 들어 1960년대에는 순수 인문학을 공부했건 회계학을 공부했건 대학을 졸업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꽤 높은 수준의 학벌자본으로 간주되었다. 더구나 대학 졸업자가 취업할 수 있는 좋은 일자리도 생각처럼 많지는 않았다. 약간 모순적이지만 '인텔리 백수'가 되더라도 상대적으로는 그다지 잃은 게 없는 것일 수도 있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지금은 '좋은' 일자리와 그렇지 못한 일자리의 격차가 매우 크다. 더욱이 대학 졸업자가 충분히 많다. 말하자면 노동시장에서 공급이 과잉 상태다.그렇기 때문에 같은 대학 졸업자 중에서도 '성능'이 뛰어난 노동을 고르려는 수요자의 의도가 먹혀들 수 있다.-78쪽

사실 조직의 논리에 순응하는 것이야말로 개개인으로는 모두 좋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조직이나 제도 전체적으로는 어이없이 불합리한 결과를 가져오는 중요한 원인이기도 하다. 역사적으로도 국가 전체가 광기에 휩싸여 움직일 때 그저 묵묵하게 자기 맡은 일만 하는 이들이 모여 전쟁이나 대량학살의 비극적인 결과를 낳은 예는 일일이 지적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가족의 일원, 출신 지역의 일원, 국가의 일원으로 불릴 때 그 부름에 일일이 정당성을 따져 거절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더구나 그것이 먹고사는 문제와 관련되어 거절은 곧 먹고사는 길이 막힌다는 의미일 때, 우리는 쉽게 생계형 순응자가 될 수밖에 없다. 대통령이건 회장이건 권력자의 옳지 못한 지시에 당당하게 맞섰다가 오히려 패기를 높이 평가받아 출세하는 젊은이 이야기는 미니시리즈 드라마에나 나오는 판타지에 불과하다.-83쪽

임금이 생계비라는 측면보다는 그때그때 일한 대가라는 관점이 강화하는 흐름은 고용의 형태가 유연해진다는 사실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내일 자를지도 모를 노동자에게 생계비라는 개념으로 임금을 지불하고 싶은 고용주는 없기 때문이다. 의도하건 하지 않았건 이러한 관점의 변화는 강력한 이데올로기적 효과를 갖기도 한다. 그때그때 한 일에 대해 그때그때 대가를 지불하였으므로 갑자기 해고를 하더라도 도덕적 부채감을 가질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고용 형태를 유연화하는 것과 임금에 대한 관점의 변화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강화하는, 말하자면 아귀가 잘 맞아 떨어지는 제도 형태인 셈이다.-124~125쪽

임금이 그때그때의 노동에 대한 그때그때의 보상이라는 원칙이 강화되는 것과는 오히려 반대로 노동 계약은 주어진 시간 동안 주어진 장소에서 일하는 것이라는 전통적 원리는 무너져버린다. 이탈리아의 마르크스주의 철학자 안토니오 네그리가 말하는 '사회적 공장'이라는 개념은 바로 이러한 현실을 지적한다. 자본은 이제 작업장 안에서의 시간뿐만 아니라 생활 속의 시간, 개인적 삶의 시간까지도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131쪽

월급에서 근로소득세나 의료보험료를 비롯한 각종 공제 금액이 먼저 빠져나가고 남은 돈만 내 손에 들어오듯이 명목상으로는 내 월급이지만 내 자유의지와 무관하게 빠져나가는 '노동력 재생산 비용'은 없을까? 원인과 결과가 뒤바뀌어 소비 지출이 먼저 설정되고 이를 충족하지 못하면 노동력 재생산이 불가능하게 된 것은 아닐까? 여가를 즐기며 소비하기 위해 일을 하는 것일까, 아니면 일하기 위해 소비해야 하고 다시 그 소비를 충당하기 위해 일해야 하는 것일까?
이러한 질문의 답은 명확하다. 이미 개인의 자발적 의지로 통제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 사회구조적으로 강제되는 지출이 정해져 있다. 이것이 바로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우리 삶이 그다지 풍요로워진 느낌이 들지 않는 이유이자 그 생활을 현상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끊임없이 돈을 벌고 일을 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가 되었다.-168쪽

모든 고용된노동은 어느 정도 감정노동의 요소를 포함한다. 시쳇말로 이렇게 말하지 않는가. "남의 돈 먹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사실 노동으로서 만들어지기 위한 가장 중요한 전제조건이라 할 '지루함을 참아내기', 체제에 순응적으로 되기 자체에 이미 엄청난 감정노동의 요소가 담겨져 있다. 그러므로 감정노동과 그렇지 않은 노동을 구분하는 일은 어쩌면 작위적일 수도 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일이라는 본질에 있어서는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노동시장의 조건이 노동자에게 어려워질수록 감정노동의 정도는 심해진다. 해고 위협이 상존하는 상황, 상사나 경영자에게 잘 보여야만 정규직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있는 상황에서 감정노동의 강도는 세질 수밖에 없다.-176쪽

그럴듯해 보이는 연구원에게도 어김없이 감정노동은 필요했다. 사소한 예를 하나 들자면 매주 화제가 되고 있는 책이나 영자 신문 경제 기사 따위를 모아 회장님이 승용차 안에서 쉽게 읽을 수 있도록 글자 크기는 14포인트로 키우고 한눈에 내용 파악이 가능하도록 요점 정리하듯 보고서를 만드는 일이었다.-187쪽

모두가 CEO가 되기만을 꿈꾸지만 현실은 노동자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노동자라는 정체성을 소비자라는 정체성이 종종 압도한다. 자영업자의 문제는 개인사업자, 프리랜서의 형식으로 존재하는 비정규직 노동의 문제다. 이러한 점은 물리학적 원자들의 세계처럼 노동이 실종되고 사람이 사라진, 가치판단을 배제하는 경제학에 의해 이론적으로 합리화되는 동시에 현실적인 경향으로서 강화되고 있다.-236쪽

비록 일거에 구조를 바꿀 수 있는 방법을 알지 못하고 더구나 그 방법을 찾아낼 전망조차 없다 하더라도 먼저 개인적 차원에서부터 노력할 수밖에 없다. 의지적 낙관이 필요한 지점이 바로 여기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면 정말로 불가능하다. 한두 사람이라도 새로운 꿈을 꾸는 것을 포기하지 않을 때, 언젠가는 그 꿈들이 모여 현실로 이루어질 수 있다.-240쪽

일반적으로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발전하면서 경제적 거래가 가지는 인적 속성은 점점 희미해지고 물적 속성 사이의 관계, 계약관계 그 자체가 중요한 의미를 가지게 된다. 이제 사람 대 사람의 관계보다는 물 대 물, 성문화한 명시적 조항들로 규정할 수 있는 계약만이 문제가 되는 세상으로 변화한다. 앞서 '관계에서 거래로'라고 말한 변화다. 이에 더해 이제 '일' 자체가 익명화한다. 그것이 무엇이건 이름을 잃는다는 것은 환원할 수 없는 개별성의 공간이 사라진다는 것을 뜻한다. 'ㅇㅇ아빠'에서 'ㅇㅇ호 아저씨'로, 그리고 다시 '출입카드 소지자'로의 변화다.-265쪽

스스로 가치도, 믿을 만한 근거도 없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그런 글을 쓴다. 기사 내용과 별 상관이 없어 온갖 악플이 달리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선정적인 제목을 달아 기사를 내보낸다. 돈이 되기 때문이다. 돈이 되기 때문에, 그것이 밥값을 하는 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떄로 우리는 자신의 의지나 신념, 보람과 기쁨 따위는 묻어둔 채 체념 속에서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므로 어쩌면 우리가 자신의 일에서 보람을 찾고 타인의 일에 대해 배려할 수 있으려면 적극적으로 무엇무엇을 하는 것 못지 않게 소극적으로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생각해보는 것으로부터 출발하는 편이 현실적일지도 모른다. 물론 개인이 애쓴다고 해서 이러한 일을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구조를 깨뜨릴 수는 없다. 그렇지만 아무도 깨려 노력하지 않는다면 결국 그 구조는 그대로 유지되며 강화될 것이다.-27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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