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보 활보 - 초보 장애인활동보조의 좌충우돌 분투기
정경미 지음 / 북드라망 / 2013년 4월
장바구니담기


S랑 같이 활동하면서 내가 얼마나 남의 말 듣기 싫어하는 신체인가를 알았다. S의 말에 따라 내가 S의 손발이 되어 움직이는 것. 이건 내가 다른 신체가 되는 변화이다. 오랫동안 한 번도 나 자신을 떠나 본 적이 없는 고집불통의 내 몸은 그 변화를 두려워한다. 어떻게든 S의 말을 안 듣고 피해 달아나려고 한다. 그게 청소든 뒷정리든... 커피 타 달라고 하는데 가스레인지를 닦고 있는 것. 이건 분명 딴청이다. 니 말을 안 들을 수는 없는 상황이긴 한데, 어떻게든 정면에서 부딪치는 건 피해 보고 싶다는 가련한 저항!-24쪽

H는 올해 마흔아홉 살이다. 그 나이면 일반적으로 결혼해서 애들 다 키우고 노년을 준비하는 시기이다. 그런데 H는 이 시기의 대부분을 장애인 보호 시설에서 살았다. 그러다 1년 반 전에 시설에서 나왔다. 사람들이 나이를 물을 때면 H는 농담처럼 "17개월 됐어요"라고 대답한다.
마흔아홉 살 난 신생아라니... 너무 늦게 태어난 것 같다. 하지만 이때의 출생을 생물학적 삶의 시작이 아니라 사회적 삶의 시작이라고 한다면, '자기의 삶'을 시작한 지 17개월이면 매우 이른 것도 같다. 노자는 백발이 성성한 나이 여든에 태어났다고 하지 않는가. 죽을 떄까지 이런 저런 세상의 틀 속에 갇혀 온전한 자기의 삶을 시작하지 못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H는 쉰을 바라보는 나이에, 혼자서는 누운 자리에서 일어나 앉을 수도 없는 몸으로 "내 힘으로 살겠다"며 지금까지 자신에게 익숙한 삶을 훌훌 털고 새로운 삶을 시작했으니 용기가 대단하다.-181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