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연애할 때 - 칼럼니스트 임경선의 엄마-딸-나의 이야기
임경선 지음 / 마음산책 / 2012년 7월
품절


친구의 자식은 일종의 시어머니 같은 존재인가 보다. 잘 지내야 한다는 강박을 주는 몬스터. 친구의 사랑과 관심과 시간을 뺏어가는 몬스터. 기혼과 미혼 사이에는 말이 안 통하기 시작하는 원인으로 작용하는 몬스터.
입장을 바꿔 생각해도 긴장될 것 같다. 괜히 막 때마다 옷 선물 해줘야 할 것 같고 같이 놀아줘야 할 것 같고. 친구, 그것도 가장 친한 친구의 자식 앞에서는 완전히 비굴해지는 것이다. 그런데 뭐 아이가 언제 그런 어른들의 감정 노동에 신경 썼는가. 일부러 '여시 짓'하는 것도, 냉담한 것도 아니고 그냥 있는 그대로 상대를 받아들이는 자연스러운 존재일 뿐이다.-83쪽

'남들은 다 제대로 잘하고 있는데...' '다들 그래' '무조건 이래야만 해' 같은 생각에 휘둘리면 아이를 키우는 일은 너무나 고통스러워지고, 그러다 아이가 행복해지기 전에 엄마가 불행해진다. 엄마가 불행한 것보단 불완전한 게 백배 낫다. 단, 그렇게 불완전한 엄마임에도 이 세상에서 나만큼 내 아이를 챙기고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누가 뭐래도 아이에겐 '내 엄마'가 가장 완전한 엄마인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그 기적 같은 아이의 확신을 있는 그대로 행복하게 받아들이면 된다.-100쪽

처음 보는 어른이 아이에게 "어서 인사해야지"라며 어른에 대한 예절을 몸소 강요하는 것도 좋아 보이진 않는다. 얘가 당신을 언제 알았다고. 나이 먹은 게 자연스레 벼슬이 되거나 반말을 할 권리를 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의무적으로 어른을 공경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아이가 자기에게 제대로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고 엄마인 나를 힐끗 노려보는 것이 마치 집안에서 밥상머리 교육, 예절 교육은 어떻게 시켰냐는 눈초리다.
더 몹쓸 짓은 "이거 줄 테니까 어서 인사해봐"라며 미끼를 던지는 것. 남들 앞에서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시키면서, 굴복시키기 위해 값싼 미끼를 던지다니. 그런 어른들은 나부터가 어른 취급 안 하고 싶다. 인간 됨됨이는 나이순이 아니다. 어른은 어린이 위에 서 있는, 더 낫고 높은 존재가 아니다. 존경심은 자연스럽고 자발적으로 이루어진 친밀감 이후에 비로소 오는 것이다.-136쪽

'있는 그대로 나를 인정해줘'라고 말할 수 있기 위해 있는 그대로의 너는 계속 부단히 노력하는 너여야만 한다는 것. 일견 자유분방한 듯 보이는 그 엄마들은 실은 고지식할 정도로 냉철한 엄마들이었다.-173쪽

나는 결코 아이에게 "네가 나의 꿈이고 희망이고 미래야. 너의 꿈이 나의 꿈이지"같은 말을 하고 싶지 않다. 언젠가 그 말이 "내가 너 때문에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아?"라는 말로 바뀔까 봐 두렵기 때문이다.
엄마는 소비하는 사람일 뿐 아니라 생산해내는 사람임을 아이가 자연스럽게 알았으면 좋겠다. 엄마가 자신의 꿈을 찾아 생생하게 살고 있는 어깨를 보여주면 아이는 자연스럽게 꿈꾸는 사람의 샘플을 보게 되고, 꿈을 어떤 가시적인 형태로 실천하는 방법을 자연스레 터득하리라 본다. 그것은 약간의 용기와 끈질긴 인내심의 문제니까. 아이에게 '엄마는 충족된 인생을 살기 위해 지금 이걸 하고 있어'라며 즐겁게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나라면 인내하는 모습보다 힘내고 노력하는 엄마의 모습이 더 자랑스러울 테니까.-183~184쪽

내가 남편을 가장 '내 가족'이라는 운명 공동체로 의식했던 것은 결혼식장이 아닌 엄마의 장례식장에서였다. 얼마 전까지도 우리는 남남이었지만 이제 서로에게 소속되어 있음을 깊이 느꼈다. 멍하니 장례식장 입구에서 돈 봉투를 받으며 사위 처신을 하던 그와, 시뻘건 육개장 그릇을 나르다가 눈이 마주쳤을 때 나는 우리 두 사람 중 누군가는 상대의 죽음을 지켜보고 책임지는 역할을 하리라는 것을 알았다.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사랑하겠노라고 맹세하는 것은 상대의 삶과 죽음을 좋든 싫든 '관리'해야 하는 것을 의미했다.-2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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