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 / 물론이죠. 다만 저는 지금까지의 부패방지 대책이 실패한 이유가 적발, 처벌을 부패방지와 동일시하는 태도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저도 법률가지만 법률적 제재 만능주의가 가지는 함정이 잇다고 봐요. 막스 베버는 적발이나 처벌이 범죄억제 기능을 발휘하려면 공식적, 사법적 처벌에 앞서 우선 공동체의 비난이나 따돌림 같은 사회적 처벌 풍토가 있어야 된다고 했어요. 법률적 처벌은 시간도 오래 걸리고 적용이 엄격하여 제재의 효과를 내기 어려운 반면 직능단체의 자격 박탈, 기업의 해고, 협회의 퇴출 강튼 제재는 즉각적이고 해당 개인의 생존권을 박탈하는 효과를 내거든요.-88쪽
김영란 / 선출되지 않은 권력은 '나는 왜 선출되지 않았는데 권력을 가지게 됐을까?'를 늘 고민하고 깊이 사유해야 한다는 의미로 저는 받아들여요. 그래서 대법관일 때 늘 고민했어요. 사법부가 선출되지 않은 권력으로 구성되는 이유는 뭘까? 견제와 균형 원칙이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원리 중 하나라 한다면,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선출된 권력을 견제하라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선출된 권력은 다수에 의해 뽑힌 거잖아요. 그렇다면 선출되지 않은 권력은 소외된 소수를 위해 존재하는 것 아닐까, 저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선출된 권력 위에서 군림하려 들면 반드시 문제가 복잡해져요. 그러나 선출되지 않은 권력의 역할은 필요하다고 봐요. 모든 것을 다 다수결로 해버리고 나면 까딱하다가는 우중정치로 가도 통제할 수 없거든요.-171쪽
김두식 / 한국사회의 뿌리 깊은 보수성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처벌 위주의 보수적인 분위기에서 예컨대 성폭력 범죄의 형량만 계속 올라가잖아요. 국회의원들도 모두가 찬성하는 데다 그 누구도 반대하지 않으니까 만만한 거리 범죄의 처벌만 강화되는 거죠. 여기에 검사장 선거까지 들어오면 미국이 그렇듯이 선거 있을 때마다 법집행 의지를 과도하게 보여주고자 하는 현상이 일어날 수 있어요. 재선을 노리는 주지사나 주 법무장관이 마구 사형집행을 하는 것처럼 말이죠. 자칫하면 보수일변도, 처벌일변도에다가 초강경 입장을 가진 사람들만 계속 당선돼 우리 사법 시스템 전체가 더욱 경직될 수도 있어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자기 사건을 과대포장하고 잘 엮으려는 의지가 더더욱 강해지는 거죠.-204~20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