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은 책은 전부 리뷰를 써야지! 라는 결심은 실천할 수 없는 공약이라는 걸 최근 체감했다.. ㅜ_ㅠ

 

 

 자궁쪽이 좋지 않은 집안 내력이 있어서 어느 페이지에선 두려워 하고 어느 페이지에선 낄낄거리며 읽은 책. 금방 읽어버릴 것 같았는데 읽을수록 내 자궁을 생각하게 되어 기분이 안좋아졌기 때문에 읽는 데 시간이 조금 걸렸다.

 

엄마한테도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집에 보낼 다른 책들과 함께 포장해두었다. 이런 책은 엄마와 함께 읽어줘야 한다.

 

 

 

 

 


#1.

우리 집 모계 식구들이 다 자궁에 크고작은 병이 있었고, 나만 해도 몇 해 전에 난소에 큰 물혹이 생겨 수술을 했었다. 이후로 산부인과를 들락거리면서 자주 검진받고 있고, 지금은 깨끗하긴 하지만.

그리고  엄마는 자궁근종때문에 젊은 나이에 자궁을 들어냈는데, 이 대목에선 섬뜩해지면서 엄마가 생각나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성의 몸에 대한, 특히 자궁과 난소에 대한 수술이나 호르몬 요법은 지나치게 공격적이다. 쓸모가 없어졌기 때문에 잘라내도 된다거나 놓아두면 문제만 일으키니까 그냥 떼어내는 것이 낫다거나 어차피 또 배를 여느니 한 번에 잘라버리면 뒤탈이 없다는 이유 등이다. 훗날 자궁에 암이 생길까봐 없애버린다면 왜 전립선이나 고환 등은 암이 생길지도 모르는데 놔두는 건가.– 96쪽

 

그때 난 초등학생이었고, 내가 충격받는다는 이유로 주변의 어른들은 엄마가 암이라는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다. 그냥 물혹을 떼어내는 것이라고 했었다. 중학교 들어가고 나서야 엄마가 '왜 그걸 몰랐지?'하는 투로 덤덤하게 암이었다고 얘기해주시던 기억이 난다.
이후로 엄마는 오래도록 병원에 다녔고, 일반적이었다면 10년정도 후에 겪었을 갱년기 증상을 40대 초반에 겪게 되었다. 얼굴이 홧홧 달아오르고 머리에 열이 오르는 것때문에 심하게 고생하셨다.그때 우리가 병원에서, 꼭 자궁을 들어내야 하나요, 라는 질문을 했던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주위에서도 별로 충격받지 않았던 걸 보면 그땐 자녀가 있는 기혼여성이 자궁에 문제가 생기면 자궁을 적출하는 것이 꽤 보편적이었던 것일지도... 생각해보니 내가 수술할 땐 '임신 가능성에는 아무 영향이 없다'라는 이야기를 했다. 배려와 같은 그 무신경함이 이 에피소드의 재밌는 점인듯.

 

#2.

한국 남자들이 생리를 한다면 아마 월경주기마다 몸조리한다고 미역국만 먹었겠나. 용봉탕에 곰발바닥에 먼 나라 원정까지 몸보신에 극성을 부렸을 것 같다. 월경 잘하는 남자 뽑기 대회도 열고 꽃미남이나 근육맨들이 나와서 '피가 곱네 어쩌네' 자기 월경 자랑하는 토크쇼를 했을 것이다. 서로 생리대 광고 찍겠다고 경쟁이 치열할 것이니 여자들의 '아무도 모르라고'와는 정반대의 일이 벌어지지 않겠는가.– 56-57쪽

이 이야기는 작년에 여성주의 수업에서 내가 했던 얘기랑 매우 흡사한 맥락을 갖고 있어서 깜짝 놀랐다. 난 "남성이 생리를 했다면 '예쁜 생리혈 자랑대회'가 있지 않았을까"라고 했다. 생리량이 정력의 상징이 된다거나 할 수도 있고. 여튼 지금의 정력과 유사한 의미로 생산력과 남성미의 상징이 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했었다. 그 생각이 나서 인용.

 

#3.

피임에 실패한 사람을 미개인 보듯 하거나 지저분한 죄인처럼 다루지 말라. 여성에게는 존중받을 권리와 함께 유산을 비난받지 않을 권리도 있다.– 149쪽

 

이건 얼마전 읽었던 [나 낙태했어]와 관련하여 생각해볼만한 지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