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문제가 제 삶에 왈칵 달려드는 때를 사람들은 간간이 겪는다. 누군가를 간절히 사랑할 때, 어쩔 수 없이 떠나보낼 때, 누군가 자신을 해코지할 때, 한없이 증오할 때, 사람들은 가슴이 저리거나 치가 떨리거나 심장이 북받친다. 바로 그때, 사람들은 사무치게 글이 쓰고 싶어진다. 살면서 누구나 한두 번쯤 겪는 그런 밤이면 명치에서 토악질처럼 글이 솟구쳐 오른다. 뭇 사람들은 이런 일을 평생 몇 번만 겪는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은 이런 일을 거의 매일 겪는다. 그들은 세상의 모든 것과 사랑하고 실연하며, 투쟁하고 갈등한다. 타자로 인해 자아가 매일 뒤흔들린다. 그들은 매일 토악질하며 글을 쓴다. 이 대목에 이르러 글은 ‘자아’를 넘어서는 ‘타자’의 문제다. 글쓰기는 타자에 대한 감응의 표현이다. 좋은 글을 쓰려면 삼라만상을 향한 감성의 더듬이를 벼려야 한다. 주변의 이웃, 그들을 엮는 관계에 민감하게 감응해야 글을 쓸 수 있다. 안수찬 / 기사 쓰기-35쪽
고매한 자아를 갖추지 못했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한다면, 무조건 끊어 쳐라. 간단하고 빠르게 좋은 글을 쓰는 방법이다. 문장을 끊어 치지 않으면, 손가락이 글을 지배한다. 커서의 압박에 시달리다보면, 손이 가는 대로 글을 쓰는 일이 생긴다. 일단 길어진 문장은 제 관성으로 더 장황한 글을 만든다. 장황한 글에서 생각과 느낌은 흩어지고 희미해진다. 결국 나의 글은 내 뜻과 상관없이 산으로 가 버린다. 안수찬 / 기사 쓰기-38쪽
세상은 변했고 그 변한 세상을 살아가는 아이들도 변했다. 올바름의 가치가 변했고, 착한 사람으로 사는 것이 어리석은 일이라 여겨지는 세상이 되었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어린이문학과 청소년문학은 약한 이의 편에 서야 한다고 믿는다.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것이 문학의 역할이라면 그 아이들이 서 있는 현실을 바로 보게 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한다. 김중미 / 동화 쓰기 -139쪽
현재 우리나라의 대학에서는 대학 평가와 성과급이라는 채찍으로 교수에게 끊임없이 논문 쓰기를 요구한다. 끊임없이 땅을 파헤치고 집을 짓는 토건업자처럼, 죄다 새로운 이론만 만들기를 요구한다. 그러나 모든 교수들이 새로운 이론을 만들고 다듬을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연구 결과를 학생들에게 잘 가르치고 일반인들에게 알리는 교수도 필요한 것이다. 동료 학자를 대상으로 하는 논문을 쓰는 교수도 있어야 하고, 일반인을 위한 책을 쓰는 교수도 있어야 한다. 그리고 강의만 하는 교수도 있어야 한다. 모두 필요한 역할이므로 각자의 취향과 능력에 따라 선택할 뿐이다. 대학 때 은사님 중 한 분은 서구 지식 수입상이 아니라 지식 생산자가 되겠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지식 수입상을 꼭 창피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지식 생산자도 있어야 하고, 지식 수입상도 있어야 한다. 그리고 정치인 유시민이 왕년에 자쳐했던 '지식 소매상'도 있어야 한다. -최훈 / 철학글 쓰기-143-144쪽
상투적인 비문과 저자의 허영심이 묻어난 전문미술서에서 괴리감을 느낀 독자들이 품질을 보장할 수 없는 미술교양서에 눈을 돌리게 되고, 동시대 미술과 동시대 독자 사이의 멀어진 거리감은 악순환처럼 되풀이된다. 내가 생각하는 비평의 급선무 과제는 제대로 된 미술 교육 자료다. -반이정 / 미술평론 쓰기-177쪽
그러니 평소에, 젊을 때, 아니 어릴 때부터 책 많이 읽고, 세상 경험 많이 하고.... 이런 공자님 말씀은 생략하고, 내 경험에 비추어 몇 마디 덧붙인다면 이런 거다. 나는 세계관은 지식의 문제라기보다 성정의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그렇다면 관점도 남에게서 배우는 게 아니라ㅡ가끔은 배우기도 하겠지만ㅡ자기 성정 안에 있는 걸 발견해나가는 게 아닐까. 사람의 관점이 다 같은 것처럼 보여도 조금씩 다를 때가 많다. 문제는 그게 어떻게 다른지 스스로도 설명을 못 하니까 남들과 같다고 생각해버리는 것이다. 남들과 같다고 여기고 거기에 묻어가지 않고, 그 미세한 차이를 세밀하게 들여다보는 습관을 들이는 게 중요하다. -임범 / 칼럼 쓰기-2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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