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 17일, 29번째로 읽은 책.

 

이제 글을 좀 제대로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언제까지나 단편적인 인상비평들만 툭,툭 뱉어낼 수는 없었다. 누구는 읽은 만큼 쏟아진다는데, 왜 내 글은 머릿속에서만 떠돌아다닐 뿐 정제되어 활자가 되지 못하는가. 못하는 게 아니라 안하는 것이겠지. 그래서, 하자! 라고 결심했다.

하지만 요사이 보고 읽고 생각하는 것들은 전부 너무 지근한 사람들이 들락거리는 예전 블로그에 쓰기는 거북한 것들이라 다른 장소를 생각해봐야 했다. 그래서 일단 여기로 결정하고, 애정을 갖고 꾸려나갈 생각이다.

 

 


이런 생각을 굳혀준 것은 이 책, <여성주의적 유토피아, 그 대안적 미래>였다. 특히 여성주의 도서 리뷰가 정말 예전 블로그에 싣기 어려웠는데, 그 블로그는 어쩌다보니 엄마는 물론이거니와 애인의 아버지까지 들락거리게 되었기 떄문이다. 아무리 내가 뻔뻔하고 당당하다 할지라도, 이슈와 관련된 애인과 나 사이의 이야기나 여성주의적 관점 등을 훌훌 까면서 이야기하기는 힘들었다. 그러다보니 이사(혹은 두집살이)를 하게 되었다.


 

 초판이 나온지는 10년이 넘었고, 내가 산 지는 3년이 넘은 책인데 책장 속에서 썩히다가 이제야 읽게 되었다. 책세상문고 중에서 비교적 쉽게 훌훌 읽을 수 있는 축에 속했다. 한가한 날의 업무시간에 토막토막 읽어서 하루만에 다 읽어버릴 만큼.
 작년 어느 수업시간에 교수님이 10년전의 논문을 자료로 나눠주시면서 "지금 와서 읽으면 너무 낡은 글이지만.."하고 부끄러워하셨었는데, 10년전 비판한 한국의 위선적 성교육 실태가  여전히 우리들에게도 해당하고 있다는 걸 아시고는 "이 글이 현재성을 잃지 않았으니 좋아해야 하나, 아니면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는 것에 탄식해야 하나"라고 하시며 고민하던 게 생각난다. 이 글을 읽으니 나도 비슷한 기분이 들었다. 10년전의 사회비판을 담은 책에서 그다지 낡은 느낌이 들지 않았으니, 유효하지 않은 이야기를 읽느라 헛시간을 쓰지 않은 건 기분이 괜찮았지만 그건 여기가 여전히 암담한 사회라는 뜻이니 헛헛하더라.

 

저자는 정작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며 아쉬워하는데, 대안은 어느날 갑자기 거창한 것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삶속 깊숙이 녹아들어 당연하다고 여겨졌던 것을 하나씩 바꿔가는 것일테다. 결국, 내게 달려 있다는 것.

 

 

 

무엇보다도 성에 대해 보수적인 사회일수록 성은 결혼을 통해 합법화되는 경향이 강하다.

-p.108

 

 

 여성들이 가부장제로부터 상처를 덜 받으려면 가부장제가 끊임없이 재생산하고 있는 이데올로기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 우리 사회가 아직까지 여성들에게 집요하게 요구하는 소위 정절이나 순결이라는 가치, 현모양처와 같은 여성상은 현대 여성의 노동 및 생활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유령처럼 다라다니며 여성들을 괴롭히는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 이 이데올로기에 묶여 운신의 폭을 제한해왔던 기성세대와는 달리 신세대 여성들은 알맹이가 빠진 유행만을 좇을 것이 아니라 이 이데올로기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적 문화를 스스로 창조해나가야 할 것이다. 사실 사회에서 요구하는 틀을 벗어나 대안적인 문화를 창조해나간다는 것은 많은 용기와 노력을 필요로 한다. 대학가의 동거 문화가 결혼식을 올리지 않았고 아이만 없을 뿐 파트너 사이의 기존 남녀 권력관계를 그대로 재생산한다면 대안적인 문화로 기능한다고 볼 수 없다. 대안적인 기능을 갖지 못한 동거 문화에서 발생하는 피해자는 역시 여성일 확률이 높을 수밖에 없다.

-pp.113~114 제4장 한 페미니스트의 백일몽

 

 

책을 덮으며, "파트너 사이의 기존 남녀 권력관계를 그대로 재생산한다면 대안적 문화로 기능한다고 볼 수 없다."라는 말을 가슴에 새겨넣는다. 지금의 내가 늘 주의하고 유념해야 할 사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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