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촌 언니와 서울에 전셋집을 얻어 함께 자취를 하기로 했다. 엄마 아빠와 함께 살던 집 방에서 내가 가져가야 할 물건들을 챙겼다. 당장 입을 옷과 노트북, mp3 같은 것을 넣고 나니 나머지 것들은 별로 중요하지 않게 느껴졌다.
완전히 배제되었던 것들은 다음과 같다. (언젠가 다시 볼 거라 생각하며) 중학생 때부터 모은 영화 잡지들, 공부하기 싫을 때마다 주고받은 학교 친구들과의 쪽지들, 중고장터에서 사 모은 VHS테이프들, 내가 찍힌, 찍은 사진들, 쓸데없이 모은 액세서리와 작은 장난감들.
언젠가 다시 본가로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마치 여행이나 캠핑을 떠나듯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물건만 챙겼다. 그때는 몰랐다. 내 방이 그 어설픈 독립 선언과 함께 사라지게 될 거라는 걸. 기숙사와 오피스텔, 수많은 자취집을 옮겨 다닐 동안 늘 그대로일 것 같았던 ‘내 방’은 이사를 거듭할 때마다 원래의 형태를 잃어버렸고 그렇게 10년이 지난 뒤, 나에게 남은 짐은 여행 캐리어 하나였다. 그것이 내 독립의 결과였던 것이다. <내 방>
나는 정말 신기한 지혜와 현명함이 나에게 저절로 주어질 거라 확신했다. 그래서 판단하고, 적응하고, 때로는 참아내는 능력을 기르지 않았다. 살다 보면 나에 대한 나의 믿음도 그냥 자연스럽게 깊어질 거라고 생각했다. 세상에 뿌려진 마취에 가까운 카피들은 나를 더 부추겼다. ‘나의 방식대로 간다.’ ‘나다운 게 가장 중요하지.’ ‘니가 하고 싶은 대로 해, 그게 정답이야.’(대부분 신발이나 청바지, 쭈쭈바 광고 카피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 왜 한 건지도 모를 말들을 내 인생에 덕지덕지 갖다 붙였다. 아무것도 훈련되지 않고 할 계획도 없는 자신을 향해서 계속 믿는다는 말을 반복하는 것은 정말 무서운 일이었다. ‘나는 나를 믿는다.’ 이 말 하나로 나는 내 모든 생각과 행동을 승인하고 스스로를 자주 속였다. <위대한 하루>
대학교에 다닐 때는 삼청동에 자주 갔다. 천장이 높은 미술관에 가서 큰 그림 앞에 서 있으면 아무 생각을 하지 않아도 뭔가 된 것만 같았다. (그럴 리 없지만) 멀리 보이는 북악산에서 내려온 것 같은 차갑고 가벼운 공기, 사람과 사람 사이의 넉넉한 거리, 웅장한 건축물들의 세련되고 약간은 비린 냄새. 머리를 비우고 오도카니 그 안에 서 있으면 몹시 허무했고 그래서 좋았다. 아트선재에서 독립영화를 보고 풍문여고 앞길을 따라 안국동을 걸으면 중학교 때 친구들이랑 했던 얘기들이 생각났다. "서울에 가야 된다. 일단. 무조건. 그거 말곤 답이 없다." 그 말이 떠오를 때마다 좌절하듯 생각했다. 진짜 답이 없었을까? <내가 죽게 될 도시>
언젠가부터 서울의 모든 곳이 파스를 떼어낸 자국처럼 얼얼하고 지저분하게 느껴졌다. 제일 좋아했던 사람과 소리를 지르며 싸웠던 일도, 면접에 떨어져서 15킬로미터를 걸었던 길도, 늘 생각만 해도 가슴이 아픈 친구와의 마지막 만남도, 내 20대를 통틀어 가장 사랑했던 친구와의 기억들도 다 서울 곳곳에 있다. 모든 서울의 공간이 실수와 안타까움과 이상한 욕망으로 채워지게 됐다. 서울이 싫었고, 그 감정들이 아물고 나니 어디든 지루했다. 관광객처럼 이곳을 동경하고 떠돌 때가 좋았는데. 나는 왜 여기 에 오게 된 걸까. <내가 죽게 될 도시>
과거의 나에게 고향이란 물이 없는 어항 같았다. 출세를 위해 준비하고 상경을 위해 대기하는, 오로지 밤늦은 시간의 학원 차와 학원 간판만이 에너지를 가진 멈춰진 공간. 나는 반짝이는 낚싯바늘을 하염없이 기다렸고, 결국 바다 같은 서울에 오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매일 더 깊은 곳으로 가라앉는 기분이 든다. 그래서 쓸데없이 그 어항에 물이 채워져 있었다면 어땠을까 가정해본다. 내가 어느 곳에 살고 있건 지겹고, 싫고, 떠나고 싶을 때 떠날 기회가 내 집 앞과, 내 회사 근처와, 내가 보는 텔레비전까지, 모든 곳에 있었더라면. 그 어항에서 자랐다면 나는 지금 무엇을 동경하고 어디에 있을까. <내가 죽게 될 도시>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기대지 않아야지, 다른 사람 이야기도 선을 긋고 들어야지, 이런 기준들을 계속 만들었다. 어떤 계기가 있어서라기보단 그냥 그게 어른스러운 건 줄 알았다. 감정적인 빚을 지지 않는 게 인간관계에서 제일 중요했다.
그래서 고민을 털어보라고 말하거나 공감을 잘 해주는 사람들을 믿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궁금한 게 있으면 지식 in을 쳐보면 됐다. 나랑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도 많고 평생 얼굴 안 볼 사람들이 아무렇게나 써준 답변도 내가 알아서 받아들이면 되니까. 그렇게 그러고 말면 그만이지 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인생이 걸린 고민을 듣고도 지식in 답변 수준으로 대하고 있었다. <안녕들 하시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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