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오만 것들에 다 속고 있다‘는 인식은 결국 냉소주의로 부를 수 있을 거다. 냉소주의는 늘 자신과 타자에 대한 기만을 대동한다. 세상이 다 나를 속이는데 나라고 남을 속이면 안 된다는 법 이 어디 있는가? 또, 내가 남을 속이는데 다시 내가 나를 속이면 안된다는 법은 또 어디에 있나. 냉소주의자의 어법은 그래서 ‘진정한무엇은 있다‘와 ‘진정한 무엇은 없다 사이를 불규칙하게 오고 간다. 진정한 무엇은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주장하고 싶은 것은 ‘지금 여기에는 없다‘는 거다. 그래서 ‘진정한 무엇‘을 찾을 때까지 우리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을 믿을 수 없다. ‘진정한 무엇은 없다‘는 사람들이 말하고 싶은 건 원래부터 믿을 건 아무것도 없으니 우리는 모두를 대상으로 기만행위를 할 수 있다는 거다.
p.12. 책머리에

이런 형태의 열등감을 해소하는 방식은 어떤 면에서 두 가지로나누어볼 수 있다. 하나는 ‘냉소‘ 하는 것이다. 자신을 냉소적인 사람으로 규정하면서 남들의 잘난 능력을 일부러 평가해주지 않는 캐릭터를 고수하는 것이다. 여기에 필요한 건 그들의 잘난 능력을 평가할 수 있는 자가 자신의 ‘공정한 잣대‘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시하는 것이다. 그래야 자기보다 잘난 사람을 시기하는 치졸한 사람으로 인식되지 않는다. 즉, 여기서 ‘나‘는 어찌됐건 ‘잘난 사람‘ 이고 이 방식은 내가 실제 잘난 사람이 되는 것보다 훨씬 효율적이다.
 열등감을 해소하는 두 번째 방식은 ‘열광‘ 하는 것이다. 잘난 사람의 우수한 능력을 적극적인 태도로 받아들이면서 그들의 존재자체에 열광하고, 그들과 대비되는 ‘못난‘ 존재들에 대해서는 적대적 태도로 일관하는 것 말이다. 이들은 잘난 사람의 능력을 동일 시할 수 있는 인간관계의 틀 안으로 몸을 던지고 그 안에서 되도록 오랫동안 머문다. 때로는 못난 존재들에 대한 적대감이 혐오의 형태로 발산되기도 한다. 여기서의 ‘나‘는 ‘잘난 사람들의 하나‘이며, 이 역시 잘난 사람들의 일원이 되기 위한 효율성 추구의 결과이다. 이러한 두 태도의 충돌은 한국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종종 발견 되는 바다.
pp. 84-85. 2_인터넷 시대의 새로운 현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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