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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괜찮은 하루 (윈터에디션)
구작가 글.그림 / 예담 / 2015년 2월
평점 :
절판
평소에 에세이는 잘 보지 않는 편인데 이 책은 표지부터 눈길이 끌렸다. 다가오는 봄을 연상하게 만드는 산뜻한 색감이 좋았다. 귀를 쫑긋 세우고 있는 토실토실한 토끼도 마냥 귀여웠다. 저 토끼가 베니란다. 싸이월드 스킨숍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던 캐릭터라는데 나는 이제야 알았다. 개인매출 3위에 오를만큼 인기가 있었던 베니를 탄생시킨 구작가, 구경선의 이야기가 담겨있는 책이다.
처음에 제목만 보고서는 괜찮은 하루를 '그래도 이정도면 꽤 꽨찮아' 같은 의미로 받아들였다. 다 좋은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만큼이면 괜찮은 하루라고. 누구나 그런 날이 있다. 아니, 매일매일에 나름대로 후한 점수를 매겨줄 수 있기를 바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만만하고 긍정적인 시선으로 좋았던 점들을 바라보고 기억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의미의 '그래도 괜찮은 하루'였다.
토끼 하나로 개인매출 3위에까지 올랐다면 돈좀 벌었겠구나 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저렇게 인기있던 캐릭터를 나는 왜 몰랐었지, 나도 싸이월드 했었는데 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지은이는 이 영광스러운 과거가 내심 슬퍼지기도 하는 오늘을 맞이하고 있었다. 베니의 인기도, 개인전을 열었던 사실도, 해외로 선교활동을 펼치러 다녔던 일도 모두.
그녀는 두살때 열이 팔팔 끓어올랐던 날 이후 청력을 잃고 더이상 듣지 못하게 됐다. 듣지 못하기때문에 말도 쉽게 할 수 없었다. 그녀의 엄마는 성대의 울림을 손으로 느끼게 하고 입모양을 그려가며 같은 소리가 나오도록 연습을 시켰다. 겨우 입모양을 읽어내고 불분명한 발음이지만 말 할 수 있게 됐지만 학교를 다니는것도 쉽지 않았다. 한국애니메이션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직장을 제대로 다닐수도 없었다. 친구를 통해 알게된 스킨작가의 일도 9개월만에 겨우 심사 통과를 했다. 약 1년이 지나 지친 마음을 고스란히 표현한 스킨 <다 귀찮아>가 사랑을 받기 시작했다. 밋밋한 녹색 배경에 베니가 벌렁 드러누워버린 그림이었다. 이를 시작으로 그녀가 만들어낸 베니는 인기를 얻었고 개인전까지도 열었다. 하지만 작년 9월 망막색소변성증을 판정받고 말았다.
장애를 뛰어넘어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았고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게 됐는데 시력을 잃는다는건 너무 가혹하게 보였다. 그런데도 그녀는 마냥 주저앉아 원망에 빠져있지 않았다. 눈 진단 후 마지못해 갔던 선교활동지에서 어린 소년의 꿈이 사진작가라는 말을 듣고 그림을 그려주었는데 그 그림을 밥먹을때조차 손에 꼭 쥐고 가슴에 안는 모습을 보며 마음을 잡았다고 한다. 그 어린 소년에게 나도 고맙다고 인사하고 싶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지나온 날들을 풀어놓고 아직 볼 수 있으니 그동안 해보고 싶은 일들을 적은 버킷리스트를 소개한다. 하나 하나 실현해나가는 동안의 기적같고 기쁜 이야기를 들려준다. 시력이 없어져도 남아있는 것으로 할 수 있는것을 상상하면서 또다시 꿈을 꾼다. 그래서 행복하다고 말한다. 이런 사람에게 어떻게 미소짓지 않을 수 있을까. 병이 나아서 보이고 들리는 삶을 기도하는 그녀를 위해 함께 기도했다. 더 큰 기적을 맞이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