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적인 영화를 보고나면

항상 엔딩크레딧이 모두 올라갈때까지

지켜보는 사람들이 있다.

서점가에는 색다른 감동을 위한 책들이 여기저기 쌓이고

극장에는 \"감동의 물결\"을 위한 영화가 개봉된다.

인터넷에서는 감동적인 사연들이

많은 사람들을 찾고.

또 사람들은 그런 감동적인 사연을

찾을려고 든다.






그런 잦은 감동에 지루해하면서도

또다시

새로운 감동이 찾아서 눈길을 돌리는 모습들........



뻔한 감동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런 감동을 다시 느끼고자 하고


뻔한 사랑앞에 지루해하면서도

그런 사랑을 하고 싶어하는 모습들.....


그러나




삶의 냉정하고 차가운 아픔이 찾아왔을때

그런 의미없는 억지스러운 감동의 이야기들은

자신에게는 아무런 진실을 가져다주지 못한다.


거짓말과 과장스런 몸짓으로 삶의 감동을 이야기하는 모습은

차갑고 냉정한 삶을 치료해주지 않을것이다..



요즘의 그런

철없이 넘치는 감동의 이야기들은

너무나 가볍기에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은 더이상 의미를 갖지 못하는 것같다.





그러나

그런 흔하고 철없는 감동들이 아무런 의미를 가져다주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삶의 아픔앞에서 거짓말처럼 느껴질지라도

그런 감동을 찾아야 되는 이유가 있다.

어떠한 삶의 아픔에서

그 누군가를 증오하고 미워하는 불씨앞에서.

자신의 삶의 한쪽에서 발견되는 이야기들

아버지의 뒷모습.

어머니의 거친 주름

.그리고 지금까지 살아온 흔적들로 가득한 일기장에서

그렇게만 철없이 느껴졌던 감동을 발견했을때

자신의 삶속에서 그 감동을 만들어냈을때는

더이상 그 감동은 흔하고 철없는 감동이 아니다.

자신이 일군 삶안에서의 이야기를 통해

지금까지 다른곳에서만 느껴왔던 감동을 완성하게 된다면

그 감동은 더이상 거짓이 아니라 진실이 된다..

감동은 바로 그 감동자체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신의 삶속에서 그러한 감동을 찾으려고 할때

무엇보다 진실된 힘을 얻게 된다

감동 자체는 우리를 허황되게 하고 아무런 진실을 가져다 주지못하고

한 순간의 뭉클함으로 그치지만

그것이 삶안에서의 발견되어지고 또한 자신이 그 감동을 만들어나가려고 할때

우리가 마주치는 여러 감동적인 이야기들을

감동을 주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그 감동을 완성하려고 들때.

감동은 무엇보다 큰 삶의 힘이 되는것이다..

감동을 통해서

그 가슴뭉클한 사연들앞에서 자신을 발견하려고 들고

자신의 눈앞에서 읽혀지는

자신의 귀에서 들리는

자신의 입에서 느껴지는

감동들을

자신들의 삶에서 펼치려고 노력해주었면 한다.

언제나 불안하고  한쪽짜리 감동을 추구하지만 말고

한순간 느껴지는 감동을 살아가려고만 하지말고

그 느낌을 자신의 삶안에서 완성할려고 들때

차갑고. 각박한 세상속에서 자신이 얻으려고 하는 꿈을

감동을 통해서 얻게되고

우리 자신이 감동이 될수 있다.


이제부터는

앞으로 만나게 되는 감동이

때로는 너무나 허황될지라도

때로는 너무나 거짓말같이 느껴질지라도

\"살수 있다\"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라고 느끼며

감동하고 극장을 나서고 책을 덮길바란다.

\"어머니\"에 대한 감동적인 이야기를 읽고나서

자신의 어머니를 찾고.

\"공부\"에대한 감동적인 수기를 읽고나서

자신의 책상앞에서 그런 수기를 만들어 내려고 할때

당신은 또다른 사람에게 감동이 되어줄수 있을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에게는
자신이 가진 삶의 아픔이 너무 커서
어떠한 감동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세상에는 수많은 아픔이 있지만

감동을 감동이라고 하지못하고

슬픔을 슬픔이라고 이야기하지 못할때

그것이야말로 삶의 가장 큰 아픔이다.

아픈 삶. 고통스런 삶의 발자국이

너무 지쳐서 감동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 삶은 더욱 더 차가운 곳에 내몰리게 되고

작은 불씨앞에서도 상처받게되어
결국 검게 그을린채. 어두운 삶을 보내게 된다.



감동적인 이야기들.

감동적인 사연들.

당신의 편지에 당신의 일기장에서

당신의 아버지의 거친 손앞에서

건져올려지는 감동적인 이야기들

각박하고 힘든 세상속

그 차갑게만 굳어져가는 삶안에서

감동을 통해

끊임없이 자신을 적실때

삶은 살아가는 힘을 얻는다.

삶의 아픔은 그 힘을 통해 기쁨이 될수 있다.

차가운 성적표가 너무 날카로와서

우리의 마음이 그 따가운 불씨앞에서 검게 그을릴때

그런 그을림에도 불구하고 어느 마음한구석이 감동에 젖어있을때

그것을 이겨내고

자신이 만들어내는 감동은 무엇보다 삶을 살아갈때

소중한 재산이 되어줄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항상 감동에 젖어살수는 없을것이다

하지만

.너무나 짦게 그 감동이 메마른다고 할지라도

삶의 아픔에. 타지 않지 위해서

그검은 그을림에 모든것을 잃지 않기 위해서

자신이 마주치는 감동들을 통해
마음 한구석만은 적셔놓아두었으면 한다

그렇게 끊임없이 삶의 진솔한 이야기에서 나오는 감동을 통해

마음한구석을 적셔놓지 않으면

현실의 냉정함과 고난의 큰 불씨앞에서

쉽게 타올라

결국은 소중한 마음을 잃게 될지 모른다.





난 어딘가가 항상 젖어있으면 좋겠다.

그래서 난 오늘도 감동받고 싶다.

친구를.통해 어머니를 .통해

그리고 당신을.통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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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외롭다는 가면을 쓴다.

모두가 아프다는 가면을 쓴다.

울고 있는 가면과 웃고있는 가면이

화려한 무대위에서 티없이 교차한다.





외롭다 말하면서 외롭지 않은 것들.

아프다 말하면서 아프지 않은 것들.

너희들은 고통의 가면을 쓰고 이 곳을 수놓지만.

너희들은 가면을 벗은 순간 웃고 있다.


너희들의 언어는 이 잔치를 화려하게 수놓는,

너희들의 가면과 닮았다.





비진정성이. 진정성의 탈을 쓴채로.

여기저기 가짜 외로움과 가짜 아픔으로

자신의 청춘을 수놓는 가면무도회.




십자가에 박힌 예수의 피를 흘리려 들지 않는 자들이.

예수의 피를 팔고 있다. 이 더러운 가면무도회에서.







한마디의 말은 하려고 하면서. 한방울의 피를 흘리려하지 않는 자.

사랑을 이야기하면서 사랑을 하지 않는 자.


오직 폐허만이 가득한 사랑의 자리에 너희는 없다.



오직 화려한 궁전을 뒤로 한채로

\"나는 가난해\"라고 말하는 너희들.



고흐가 죽어간 그방에서

\"심오한 표정을 지어봐\"라고 말하는 너희들..









난 그런 너희들의 가면 무도회를 떠난다.

그 무도회장에서 끊임없이

소비되는 너희들의 언어.

너의 언어는 장식적 ,수사적 아름다움만 가득하다.맛없이


























































p/s 중요한것은 말의 껍질이 아니라. 말의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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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새벽 . 아무것도 모르고 잠든 딸아이의

얼굴에서 가만히 머리카락을 훔치다가,

미안하다는 읍조림과 함께

방문을 나서는 아버지.



방문을 닫는 소리에 눈물 가득한 눈망울로

잠든 척하고 있어야만 했던 딸.





사랑한다며, 그의 짓눌린 어깨에 두 팔을 올리고

그의 낡은 얼굴에, 작은 온기하나 전해주지 못한

자신의 용기없음에 그녀는

그날밤. 잠을 이루지 못했다.













우리는 알아야만 한다.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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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사랑하며 누군가를 질투하고 누군가를 증오하며

누군가를 싫어하며 누군가를 동정하고 누군가를 연민한다.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누군가를 애원하고 누군가를 미워하며

누군가를 가여워하며 누군가를 싫어하며 누군가를 좋아한다.

누군가를 돕고 누군가를 잊고 누군가를 잃고

누군가와 울고 누군가를 만나고 누군가와 헤어지며

누군가를 찾고 누군가와 깨지며 누군가를 아끼며,

누군가에 빠지고 누군가에 설레고

누군가를 죽이며 누군가를 살리고

누군가를 때리며 누군가를 껴안고

누군가를 이해하고 누군가를 오해하며

누군가에 복수하고 누군가를 멀리하며

누군가를 생각하고 누군가를 공유하며 누군가를 기억한다.

누군가를 버리고 누군가를 지우며 누군가에 도전하며

누군가를 망각하며 누군가는 소중하며 누군가는 죽어간다.

누군가를 아끼며 누군가를 피하고 누군가에게 고백하고

누군가에게 미치고 누군가에게 매달리고 누군가에게 버림받고

누군가와 대화하고 누군가에게 상처입고 누군가를 치유하며

누군가를 돌보고, 누군가를 정리하고 누군가에게 미안하고

누군가를 욕하고 누군가를 칭찬하고 누군가를 존경하며

누군가를 우대하고 누군가를 홀대하며

누군가를 찾아가고 누군가가 되고싶어 한다.



그리고 다시

누군가를 사랑하고 누군가와 살아가며 누군가옆에서 죽는다.





결국 우리는 우리 모두에게 있어서의 누군가이며,

동시에 누군가에게의 모두다.

우리가 부르는 것은 노래가 아니라, 언제나 누군歌며.

힘들때 찾아가는 것도 , 누군伽이며

언제나 걷고 싶은 거리는, 누군街다.

누군可와 누군假 사이에서 고민하며 결국은

누군家 곁에서 평생 살기도 한다.













그러나 사실

이 모든 누군가는 오직 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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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주 오래전 태초의 밤을 상상했다.

지상에 남겨진 자들이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드넒은 평원을 혼자 거닐던 어두운 밤을.
그때에는, 거리위의 가로등도, 밤을 밝히는 빛도 없어서
사람들은 자신의 옆에 있는 사람도 알아채지 못했다.

그렇게 어두운 밤을 해매다가, 어떤 사람은 차가운 바닥 위에 쓰러지듯 잠들고,
어떤 이들은, 함께 낮을 치르던 사람도 잃어버린채
밤 왠종일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며 어둠을 해맸다.

마치 조명이 꺼진 쇼윈도우 안에서, 눈물도 자기 손으로 닦지 못하는 마네킹처럼
태초의 밤에는, 네온사인의 화려함도,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수있는 수화기도 없다.

아무것도 없는,
세상에 있는 것은 오직, 나 와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뿐인 그 밤에,
사람이 자신을 위로할수 있는 방법은 오직 다른 "사람"뿐이었기에,
원시인들은 어떻게든 누군가를 찾아야만 했다.

어쩌면, 바로 지금.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속에서, 우리가 본능적으로 느끼는 두려움과 불안은
혼자 남겨지는 것에 몸부림 쳤던 원시의 사람들이,
우리에게 남기는 가장 절실한 시간의 흔적인지도 모른다.

그때 그들이 느낀 외로움의 증거가 지금의 나에게도 남아있어서,
지금의 나는 범인을 찾지 못해 초조해하는 형사처럼 아무도 없는 방을 살피고
누군가가 남긴 흔적을 계속 되내여 보고 있는 것이다




수십만년 전,
그 태초의 밤을 해매며, 아직 어떤 말도 배우지못한 원시인이
누군가를 찾기위해 처음으로 뱉어낸 소리가 울음소리였다는 사실을 알았을때,
20년전,탯줄이 끊기는 그 순간에, 내가 왜 그렇게 소리내어,간절히 울었는지를.
그리고 20여년이 흐른 지금에도, 밤이 되면 사람들은 왜 그토록 간절히 우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 '아무도 울지 않는 밤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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