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가 보기에 초기 그리스 비극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디오니소스 신의 고통이었다. 그는 에우리피데스(Euripides) 이전까지 디오니소스가 계속해서 비극의 영웅으로 등장했으며 우리가 잘 아는 프로메테우스나 오이디푸스는 모두 본래의 영웅인 디오니소스의 가면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무대 위에서 디오니소스가 드러나는 양상을 이해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그는 실수를 범하고 고통받으며 그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분투하는 개인으로 제시되는데 그의 이런 시련은 꿈과 현상 세계의 해석자인 아폴론의 영향에서 기인한 것이다. 그러나 이 개인들은 사실 개별화의 고통을 겪는 영웅, 디오니소스일 뿐이다. 디오니소스는 어린 소년으로서 거인족 타이탄의 손에 의해 갈기갈기 찢기는 시련을 겪었을 뿐만 아니라 개별화라는 무시무시한 상황에 의해서도 또다시 갈기갈기 찢기는 존재이다. 그는 개별화로부터 고통받는다. 니체는 개별화야말로 모든 고통의 근원이자 본래적 원인이며 따라서 거부되어야 할 것이라고 덧붙인다. 

  이런 관점에서 본 세계는 한없이 심오하고 비관적인 것으로 이해된다. 존재하는 것은 오직 근본적으로 융합되어 있는 하나의 상태이며 개별성은 단지 눈에 보이는 현상으로서 악의 원인일 뿐이다. 예술은 개별화의 저주를 풀고 원초적인 융합 상태를 회복하기 위한 희망을 제시한다. 우리는 자연으로부터 소외되어 개인화되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 소외에 대한 인식이 우리를 끝없이 괴롭히기 때문에 삶의 고통에 노출된다. (개별화 = 소외)  

  니체는 디오니소스를 예수 그리스도 같은 인물로 재현하면서 <비극의 탄생> 전체를 통해 구원이라는 신학적 개념을 사용한다. 그러나 그가 <비극의 탄생>에서 제시하는 신정설(神正設)은 기독교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것이다. 그가 말하는 세계의 미학적 정당화는 세계의 원초적 토대에 대한 것이지 인간 존재에 대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스인들은 존재의 공포와 부조리를 잘 알고 또 느끼고 있었고 이런 인식으로부터 나온 강력한 필요에서 디오니소스와 아폴론이라는 두 신을 창조해냈다. 

 

- 키스 안셀 피어슨, 「HOW TO READ 니체」,24-25쪽 

세계는 대립되는 힘들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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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벤야민의 '정신산만(Distraction)'이라는 개념은 동시대 영화이론가였던 크라카우어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크라카우어는 「정신 산만의 숭배」(1926)에서 예술의 수용 방식과 연관해 이 개념을 처음으로 사용했다. 여기에서 크라카우어는 1920년대 중반 새롭게 등장한 베를린의 대형 영화관을 기존의 변두리 극장과 비교해 "영화궁전"이라고 칭한다. 호텔 로비와도 같이 화려한 외관을 지닌 새로운 대형 영화관이야말로 '정신 산만의 궁전'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영화궁전'의 내부 디자인뿐만 아니라 프로그램의 성격이 관람자의 주의를 주변적인 것으로 돌리게 함으로써 심연으로 침잠하지 못하게 만든다.  - 「정신 산만의 숭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정신 산만한 방식으로 드러나는 현실의 해부가 다른 한편으로 '도덕적 중요성'을 지닐 수 있음을 간파한다. 왜냐하면 눈부신 감각 인상들의 파편적인 연속 속에서 관객은 실제의 파편화된 현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크라카우어에 따르면, 영화는 자본주의의 현실 경험이 지닌 추상성과 파편성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낼 수 있는 매체다. 다시 말해 영화가 주는 혼잡함의 퍼레이드 속에서, 사회의 부조화에 대한 순간적인 감각이 전달될 수 있다는 것이다. 

 

  순수한 피상성 속에서, 관객은 스스로와 조우한다. 그 자신의 현실이 찬란한 감각 인상들의 파편화된 연속 속에서 폭로되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이 관람자들에게 숨겨진 채 남아 있다면, 그들은 그것을 공격할 수도 변화시킬 수도 없을 것이다. - 「정신 산만의 숭배」 

 

  그러나 실상 대부분의 예술에서는 잡다함과 파편성을 그대로 드러내기보다는, 예술적 조화와 통일성을 꾸며내 보여주는 것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크라카우어는 파편성의 진리로부터 도피하는 것이야말로 정화가 지닐 수 있는 잠재력을 잃어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말하자면, 부르주아 연극의 낡은 관습에 영화의 혁명적 잠재성이 종속됨으로써, 은폐된 현실의 파편들을 드러내고 일상적 존재의 예기치 않은 거처를 보여줄 수 있는 영화의 능력이 사라져버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이러한 부조화와 단편성을 숨기는 대신에, 그것을 드러낼 수 있는 일종의 '정신 산만'을 요청했다. 

  요컨대 정신 산만이란 "통제되지 않은 우리 세계의 무질서를 반영"한다. 따라서 자본주의 현실의 의미 없는 표면을 기록하는 영화는 그 표면의 모습이 단지 '임시적'이며 바람직한 모습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언제나 '다른 구성'이 가능하다는 것을 드러냄으로써 "역사적 기억을 벗어난 순간들의 새로운 배열"을 제공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크라카우어는 영화를 "메두사의 머리를 비출수 있는 아테나 여신의 방패"에 비유한다. 

 

  오직 영화만이 분명한 의미에서 자연에 거울을 비출 수 있으며, 만약 실제 삶에서 직접 마주 대한다면 우리를 돌로 굳어버리게 만들 그러한 사건들도 영화를 통해 반영할 수 있다. 영사막이 아테나 여신의 방패인 것이다. - 「영화 이론(Theory of Film: The Redemption of Physical Reality)」 

 

  물론 크라카우어도 영화가 주는 정신 산만이 대중에게 부정적인 효과를 끼칠 가능성을 간과하지는 않았다. 정신 산만은 그 정당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을 수동적으로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정신 산만에 중독된 동질적인 대도시 대중"을 생산한다. 왜냐하면 영화 속에서는 감각의 자극이 너무나 신속하게 교체되어버리므로, 그 자극들 사이에서 대중이 관조할 수 있는 여지가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영상이란 이면이 없는 표면 위의 움직임, 즉 순간적으로 사라져버리는 움직임의 연속일 뿐이며, 영상을 바라보는 주관의 의식은 일종의 유아적 과대망상 상태로 퇴행하여 꿈과 현실 사이에서 부유하고 있다고 진단하기도 했다. 특히 영화가 정신 산만한 지각 방식에 호소함으로써 관객을 무의식적으로 최면 상태에 빠지게 하고 그럼으로써 파시스트들의 정치적 목적에 악용될 가능성이 있음을 우려했다. 어두운 극장의 환경이 적절한 판단과 정신 활동을 위해 필요한 환경적 자료들을 자동적으로 빼앗아버린다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사실 때문에 영화의 옹호자와 비판자가 모두 영화라는 매체를 일종의 마약에 비유했던 것이다. 

- 신혜경,『벤야민&아도르노 : 대중문화의 기만 혹은 해방』p.g. 227~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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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출처: http://sooosleepy.wordpress.com/2011/02/13/%eb%ac%b4%ec%97%87%ec%9d%84-%ed%95%a0-%ea%b2%83%ec%9d%b8%ea%b0%80/ 

 

무엇을 할 것인가 

(존칭은 생략합니다) 

1

  잠에서 깨어나 습관대로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다가 그녀의 죽음에 대한 소식을 접했다. 여전히 반쯤은 잠에 취해 침대에 누워 있던 나를 사로잡은 것은 슬픔도 분노도 절망의 감정도 아니었다. 그것은 차라리 싸늘하고 단순한 명제에 가까웠다. 네가 하는 일이 너를 죽일지도 모른다. 아니 그것은 삼류영화에 등장할것 같은 낭만적이며 비현실적인 문장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런 낭만적이며 비현실적인 명제가 돌연 현실 그자체가 되는 상황에 맞닥뜨렸다. 아니 차라리 영화같다고 치부하며 외면하던 현실이 방문을 부수고 들이닥친 것에 가까웠다. 나는 그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차라리 웃을까 했다. 그럴수밖에 없었던 것이 객관화를 하기 불가능할만큼 그녀가 가깝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녀와 나는 둘 다 여자였고, 부유하지 않았고, 글을 쓰는 창작자였다. 같은 학교를 다녔고 같은 수업을 들었다. 방에서 나온 나는 어머니에게 소식을 전했다. 그러자 어머니가 말했다. ‘너도 이집에서 나가면 똑같이 될지도 몰라.’ 약간의 과장이 섞여 있었지만 부정할 수 없었다. 사실이었다. 정말이지 우리는 너무 가까이 있었다.

2

  십대 중반에서 이십대 초반 극단적으로 돈이 없었다. 사소한 감기에 걸려도 아픈게 문제가 아니라 진료비가 문제였고 생리가 다가오면 생리통이 걱정이 아니라 생리대를 살 돈이 걱정이었다. 돈을 벌고 싶어도 열여섯살 고등학교 중퇴생이 할 수 있는 일은 뻔했다. 뻔한 모든 일을 닥치는대로 했다. 시간당 천삼백원을 받고 식당 사장에게 성희롱을 당하며 일한적도 있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상황은 비슷했다. 아니 더 악화되었다. 왕복 네시간이 걸리는 통학시간과 많은 과제와 빡빡한 수업내용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그만두었기 때문이다. 한동안 지하철 차비를 치르면 점심을 굶어야 하고 점심을 먹으면 지하철에 무단승차해야 하는 상황이 지속되었다. 모든게 돈이었다. 연애는 커녕 친구를 만나기도 힘들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최악의 상황은 아니었다. 국립학교라 학비가 쌌고 학비를 대주고 밥을 주는 부모가 있었고 잠을 잘 방이 있었고 글을 쓸 컴퓨터가 있었다. 그런 최소한의 물적 기반이 없었다면 나는 에이포 열몇장씩 하는 긴 글을 무작정 써댈수가 없었을 것이다. 아니 그런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상황이 나아지게 된 것은 소설가로 데뷔를 하고 난 뒤였다. 난 무엇보다도 내가 돈을 벌게 된 것에 그러니까 내가 앞으로 굶어죽지 않을 가능성이 커진 사실에 기뻐했다. 소설가 타이틀을 얻었다는 사실보다 상금을 탔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더 중요했다. 육체노동으로 돈을 버는 것에 비하면 글을 쓰는 것은 쉬웠으니까. 확실히 숯불갈비집에서 열두시간동안 서빙을 하거나 화장품 공장에서 하루 아홉시간씩 화장품 뚜껑을 끼우는 것에 비하면 하루에 원고지 백장을 쓰는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내가 쓰고 싶은 걸 쓰는 거니까. 그리고 모두가 회피하는 단순노동과는 달리 소설이 잘팔리면 선망의 눈길을 받거나 유력일간지와 인터뷰를 하거나 사회명사가 될 가능성도 있었다.

3

  이런 삶의 궤적은 내가 예술학교와 예술계의 지배적인 분위기에 위화감을 갖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 나는 끝내 예술이 위대하다거나 고귀하다는 명제를 지지할 수가 없었다. 경제적 궁핍을 경험해본 나에게 그 명제는 너무 순진하게 느껴졌다. 아주 초기부터 창작에 필요한 물적기반을 확고하게 느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물론 나는 남들에 비하면 정말이지 운이 좋은 케이스여서 글을 쓰고 돈을 떼먹힌적도 없고 몇번의 지원금도 받을 수 있었고 비교적 ‘젊은’ ‘여자’라는 사실이 나의 궁핍함에 대한 사회적 비난의 강도를 약화시켜주었다. (물론 그것이 결국 나에게 더 커다란 제약으로 다가온다는 걸 안다)그래서 졸업하고 이년간 아슬아슬하게 전업작가의 길을걷고 있다. 하지만 내가 벌어들이는 돈은 내가 제대로 된 독립적인 삶을 살아가는데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많은 것을 포기하고 있다. 일년에 몇차례씩 말그대로 잔고가 0원으로 떨어지는 일이 벌어지고 앞으로 결혼을 하거나 애를 낳아 키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부모의 신세를 지고 있는 점이 스스로를 위축시킨다. 한가하게 이러고 있을때가 아니라 뭘 해서라도 돈을 벌어야한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는 운이 좋은 경우다. 그래서인가 가난의 지긋지긋함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은 타협할 생각이 없다. 그런데 이 말은 예술에 내 삶을 바치겠다는, 예술을 향한 낭만적인 도피로 오해되어서는 안된다.

  오히려 나는 위에 말한 것처럼 줄곧 정반대의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현실이, 물적조건이 예술보다 힘이 세고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예술학교 시절 내내 세련된 취향을 가진 동료 예술가지망생들에게 맞서 우스꽝스럽게 보일 정도로 지나치게 대중문화를 옹호했고 현대예술의 부르주아적인 성격에 원색적 비난을 퍼부었다. 삶과 문학 사이에서 회의하다가 결국 문학을 떠나버리는 극단적 선택을 한 문학가들을 옹호했다. 난 도무지 예술을 긍정할수가 없었다. 그것은 내가 글따위 세상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걸 팔아먹으며 살아가고 있다는 죄책감으로 이어졌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글이 아니라 좀 더 가치 있는 일, 예술이 아니라 평범한 노동을 해서 살아가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한편 바로 그렇기 때문에, 평범한 노동이 얼마나 고된지 스스로 경험을 해봤기 때문에, 더욱 나는 그런 일을 할 자신이 없었다. 나는 한편으로는 한여름 숨막히는 돈까스집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던 때로 돌아갈까 공포에 휩싸이며 거기에서 멀어지려고 애를 쓰고, 또 한편으로는 돈까스집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는 것을 제외한 모든 노동을 한가하고 배부른 일이라면서 비난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내 나는 극단적인 두 입장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며 이것 아니면 저것을 택하라고 스스로에게 양자택일을 강요했다. 이런 내 태도가 예술을 삶보다 위에 놓는 예술지상주의자들의 태도에 맞서 삶을 예술보다 위에 놓으며 예술을 폄하하는 일종의 반예술주의적 태도라는 걸, 결국 두 태도가 동전의 양면에 다름아니라는 걸 깨달은 것은 지난 여름의 일이었다. 나는 친구에게 위에 적은 나의 고민을 두서없이 털어놓고 있었다. 친구는 화가였고,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일을 하고 있었다. 가만히 내 말을 듣고 있던 친구가 말했다. 그런데 나는 그림을 그리는 것과 일을 하는 것이 같다고 생각해. 그 말을 듣고 나는 망치로 한대를 얻어맏은 느낌이었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유치한 관념에 사로잡혀있었던가 깨닫고 부끄러웠다. 그렇다. 나는 은연중에 예술과 노동을 분리한 다음 우열을 정하여 편가르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 글을 쓰는 것은 설거지를 하는 것에 비해 더 낫거나 더 못할 것이 없었던 것이다. 이것이 낫다 저것이 낫다하는 건 결국 사람들에 의해, 그러니까 사회적으로 결정되는 일이었던 것이다. 나는 바보같이 사회가 나에게 강요하는 편견에 사로잡혀 갈팡질팡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을 깨닫게 되고 나서 나는 비로소 내가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해서 부끄러움을 버릴 수가 있었다. 그리고 삶에 절망하여 예술로 도피하는 태도와, 예술에 절망하여 예술을 떠나버리는 태도 모두가 똑같이 극도로 낭만적인 태도라는 것을 비로소 이해할 수가 있었다.

  문제는 나 혼자 그것을 깨닫는 것으로는 부족했다는 것이다. 짧은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다시 나를 부끄럽고 도망치고 절망하게 만드는 현실에 부딪혔다. 중년의 여성청소부는 화장실에 숨어 음료수를 마시고 있었고, 식당 점원은 커튼에 가려진 부엌입구에 선 채로 꾸역꾸역 어묵을 먹고 있었다. 퉁명스러운 유럽 공항의 상점점원들과 달리 한국의 공항의 점원들은 지나치게 친절했다. 주인이 감시하는 씨씨티비가 달린 편의점에서 일해본적이 있는 나는 언제나 점원들의 친절함이 불편했다. 나는 의문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누가 당당하게 탁자에 앉아 어묵탕을 먹는 나와 주방에 숨어 어묵을 먹는 저 사람을 같다고 보겠는가? 누가 이런 광경에서 우열을 읽어내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우리 모두는 우리들의 의도와는 달리 끊임없이 분류되고 위치지어지고 있었다. 어떤 것은 천하고 어떤 것은 고귀하다. 어떤 것은 가치있는 일이고 어떤 것은 무가치한 일이다. 계속해서 우열을 가르는 사회구조가 존재하는 한 나 자신이 좀 더 선해지는 것과는 관계없이 차별적인 게임은 계속될 것이고 거기에 속해있는 나는 때와 장소에 따라 약자와 강자의 위치를 바꿔가며 누군가를 착취하거나 착취당하며 부끄러워하거나 절망할수밖에 없을거라는 것을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4

  인터넷에서 진행된 조영일과 김영하의 논쟁을 관심을 갖고 지켜 보고 있다. 그것은 단순히 비평가와 예술가의 논쟁이 아니라 언젠가부터 계속되어온, 그리고 앞으로도 끝나지 않을, 예술을 둘러싼 두가지 양립불가능한 입장간의 서로의 존재자체를 건 대립에 가까운 것이었다. 조영일의 입장은 예술을 사회적으로/역사적으로 형성되는 것으로 바라보는 것에 가깝고 김영하의 입장은 좀 더 예술의 순수성을 옹호하는 입장이다. 어떤 입장을 취하건 사실 그건 각자의 문제이고 비난할 일이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위에서 썼듯이 예술을 둘러싼 두 입장이 양립불가능하다는 것이고 따라서 논쟁은 필연적이다. 그리고 나의 입장은 조영일에 더 가깝다. 그 이유는 첫째로 위에 적었듯이 예술을 과잉되게 옹호하는 것은 과잉되게 폄하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현실을 왜곡되게 바라보는 태도인데 나는 예술가라면 더욱더 현실을 있는 그대로 투명하게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저렇게 예술의 순수성을 옹호하는 태도 자체가 하나의 입장에 불과한데 그것이 강력한 지배적인 이데올로기가 되어 이 시대의 예술과 예술가에게 오직 자신의 입장을 따르기를 강요하고 있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나는 문화예술영역에서의 포스트모더니즘 사조를 예술을 오직 예술의 자리에 머물기를 강요하는, 예술을 끝없이 낭만화하는 현대의 예술적 경향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예술의 가치를 극단적으로 옹호하는 입장의 기원은 독일의 낭만주의 운동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그것은 당시 독일의 상황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교육받은 일군의 젊은이들이 출현했지만 여러가지 여건으로 인해 현실사회에 진출할 통로가 차단되어 되어버린 당시 독일의 상황이 젊은이들을 절망하여 예술(문학)으로 도피하게 만들었다. 다른 모든 가능성이 차단되어 버렸으므로 그들은 더욱 더 예술을 향해 도피했고 예술을 낭만화하며 예술의 순수성을 옹호했다. 나는 같은 상황을 민주화 이후 환멸과 냉소가 지배적인 정서가 되어버린 한국의 구십년대 문학에서, 혹은 점점 더 귀여운 키치가 되거나 텅 비고 세련되어지기만 하는 당대 미술의 경향에서 발견한다. 예술이 오직 예술 자신만을 반복해서 호명하는 것은 그 예술이 속한 사회의 상황이 그만큼 막다른 곳에 닿았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다. 현실에서 가능성을 잃고 절망한 예술은 현실 저 너머로 눈을 돌린다. 사회적 자살자가 되어버린 예술가들은 현실과의 끈을 잃어버린다. 그들은 그들만의 아름답고 순수한, 따라서 더없이 자폐적이고 자멸적인 왕국으로 떠난다. 어쩌면 그것은 몹시 아름다울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은, 자멸과 절망을 향해 가는 지극히 아름다운 운동에 다름 아닌 무언가는 내가 예술에서 기대하고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하지만 예술에 관한 순수주의적 입장은 예술에 대한 여러 입장 중 하나에 불과하다. 위대한 예술이 탄생하는 수많은 배경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남아있는 많은 예술 작품들 중에 그 입장에 의해 탄생된 작품은 일부에 불과하다. 바흐는 왕과 교회를 위해서 작곡했다. 발자크와 도스토예프스키는 빚을 갚기 위해 썼다. 많은 위대한 화가들은 귀족과 부르주아의 청탁을 받고 그림을 그렸다. 소비에트 연합에서는 명백히 선동적 목적으로 위대한 영화가 만들어졌고, 반대로 미국에서는 명백히 상업적 목적으로 위대한 영화가 탄생했다. 물론 내가 예술가의 내밀한 예술혼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나는 위대한 예술이란 예술가의 내밀한 예술혼과 예술가가 처한 현실상황 사이의 긴장에서 촉발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정확히 초월적 욕망과 세속적 욕망의 경계에 위치한다. 예술이란 미학과 정치, 아름다움과 윤리, 부자가 되고 싶은 욕망과 시대를 초월한 위대한 예술을 만들어내고 싶은 욕망 사이의 투쟁의 장에 다름아니다. 이 양립불가능한 모순적인 욕망과 상황간의 투쟁을, 적대를, 긴장을 소거해버린 예술이 도착하게 되는 곳은 아마추어들의 소박한 자기위안이나 무미건조한 관제예술 혹은 더 없이 세련된 문화상품의 세계이다. 위에 적은 예들이 단지 그렇고 그런 국가나 자본의 꼭두각시 혹은 왕이나 교회의 선전물의 세계에서 위대한 예술의 세계로 도약한 것은 바로 예술가가 가진 현실적 제약조건과 본인의 예술적 야망 사이에서의 치열한 고민과 투쟁이 있었기 때문이다. 위대한 예술은 다른 모든 것에 대한 미적인 것의 무한한 승리를 뜻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미적인 것과 다른 것들 사이의 처절한 투쟁의 실패의 기록에 가깝다. 그리고 예술은 그 실패를 발판삼아 자신의 가능성의 범위를 확장해나간다. 그것이 우리가 예술의 역사에서 발견하게 되는 유일한 진실이다.

5

  그러니 무엇을 할 것인가. 내가 하는 것이 나를 죽일수도 있다는 절망적인 현실에 맞닥뜨린 우리 예술가들이 택해야 하는 길은 무엇인가. 예술로의 더 급진적인 도피,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쩔수 없이 종종 발생할 안타까운 희생에 대한 아름다운 애도인가? 더없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비명같이 탄생하게 될 예술의 가능성만이 남아있나? 우리에게 남은 길은 오직 그것뿐인가? 아니 그렇지 않다. 또 다시 말하지만 그것은 예술을 둘러싼 오직 하나의 입장에 굴복하는 것이다. 여전히 다른 선택지들이 남아 있다. 그 중 하나는 삶과 예술 모두를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이미 지난 세기, 버지니아 울프는 <자기만의 방>에서 예술가에게 필요한 것은 타오르는 예술혼 이전에 그 예술혼을 지속적으로 불태울 돈과 자기만의 방이라고 말한 적 있다. (물론 그것은 여성 예술가를 향해 쓴 것이지만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흔히 우울하고 예민한 여성예술가의 대명사로 불리는 그녀지만 이렇게 창작작업의 물적 기반에 대해서 냉철하게 인식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 예술가는 별난 종족이 아니다. 다른 모든 인간들처럼 먹고 살 돈이 필요하다. 이런 필요에 대한 요구가 예술을 천박하게 만들지 않는다. 버지니아 울프는 노골적으로 액수까지 제시하며(500파운드) 글을 쓰려면 돈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속물이었지만 동시에 위대한 소설가였다. 이 예를 우리에게 적용하면 이렇다. 국민소득이 이만불에 달한다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다가는 굶어죽을지도 모르는 이런 엉망진창인 이 사회에 대해 혹은 문화예술계의 말도 안되는 관행에 맞서 목소리를 높이고 투쟁한다고 해서 예술가들의 순수한 창작욕이 타락되거나 고갈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니 오히려 새로운 예술의 발판이 될 수도 있다. 지독한 절망만이 예술의 탄생요건은 아니다. 예술혼에 불타는 미친 예술가는 예술가에 대한 하나의 이미지일 뿐이다. 다른 예술은 가능하다. 패배가 아니라 승리에 대한, 환멸이 아니라 가능성에 대한 예술은 가능하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수많은 실패가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그 실패는 각자 골방에 갇혀 순수하고 자폐적으로 창작욕을 불태우는 식으로는 불가능하다. 지금 우리 예술가들에게 필요한 것은 더 강한, 절대 패배하지 않는 자의식이 아니라, 오히려 자의식 전체를 뒤흔드는 투쟁이다. 그 투쟁은 예술 안과 예술 밖에서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다. 왜 우리는 예술과 삶 둘 중에 하나만 택해야 하는가? 이건 삶에 예술을 저당잡히라는, 장사꾼이 되어 예술을 팔아먹으라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예술을 위해 삶을 희생하고, 혹은 살아남기 위해 예술혼을 팔아먹어야 하는 끔찍한 현실과 맞서싸워야 한다는 것이다. 삶과 예술 어느 것도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서 왜 예술가는 지금 당장 나서면 안되는가? 왜 예술가는 오직 예술가여야 하는가? 우리들이 예술가이기 전에 인간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자. 예술가는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나게 다른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동등하게 다르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자. 이런 소박한 진실에서, 그리고 이런 소박한 진실을 왜곡하는 것들과의 투쟁 속에서 위대한 예술이 탄생할 수 있음을 믿자. 내가 하는 것이 나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살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믿고 그것의 실현에 나서야 한다. 그것은 개인들 각자의 이미 패배가 정해진 외로운 싸움이 아니라 개인들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 연대를 통해 가능할 것이다. 그것을 해내는 것 그것만이 죽은 그녀에게 살아있는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최대한의 예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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