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바다는 깊어 끝을 알 수 없었다.
아무리 물살을 짓혀 나가도 검푸른 하늘과 바다는 구별되지 않았고,
하늘에 빼곡한 별들과 점점히 흩어진 고깃배의 불빛이 구분되지 않았다.
시간은 맞바람처럼 와서 담배만 태워먹고 사라지고
상념은 갑판에 고여 쉽게 흩어지지 않았다.
온갖 자질구레한 인생들이 파도처럼 몰려왔고
배에서 뛰어내려 생을 마감한 어느 소설가의 이야기와,
생리혈이 묻은 천 조각을 아무도 모르게 폭폭 삶는 어느 소녀의 이야기와.
내 보잘것 없는 짧은 인생의 이야기가
그녀의 기척을 지우는지도 모르고
나는 장승처럼 오래 서 있었다.
어느새 내 옆으로 다가온 그녀는
몽유병 환자냐, 쓸모없는 놈아 투덜거리면서
내 귀에 이어폰 한 짝을 꽃아넣었는데
마침 나오는 노래가 Bob dylan의 Knockin' On Heavens Door.
아, 그때 바람에 헝클어진 그녀의 머리를 쓸던 내 손이 조금 떨린 것도,
엄지 손가락이 제 멋대로 그녀의 아랫 입술을 스쳐 더듬은 것도
그래서 그날 조금 종류가 다른 불면에 시달린 것도.
사실은 그 지독한 음치 가수의 이 노래 때문이었던거다.
맹세코 그녀와는 한번도 자지 않았는데,
그건 내 인생에서 가장 잘 한 일 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