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알라딘도서팀 > [역사책이야기]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에서 무엇을 읽으십니까?

"지키자! 고구려 300년 역사", "중국과의 역사전쟁", "대중국 사이버 공격에 나서자" ...

인터넷에서 '고구려사 왜곡'을 검색하니 이같은 문구들이 쫙 올라옵니다. 아시다시피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을 둘러싼 반응들입니다. (이른바 '동북공정 프로젝트'에 대한 구구한 설명은 이미 인터넷에 충분하게 올랐으니 생략하겠습니다.)

ED 역시 대부분의 반응처럼 황당하고, 화나고... 예, 좀 솔직하게 표현하자면 "이것들이 누구를 물로 보고, 니들 한 번 붙어볼래?" 하는 생각부터 들었습니다. 앉아있자니 속에서 뜨거운 것이 불끈불끈 솟아오르더군요. 으으윽...

그런데요, '어떻게 요놈들을 혼내줘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하면 할수록 머릿속이 복잡해지더니 이제는 지끈지끈 아프기까지 합니다. 부지런하게는 아니더라도 그간 읽어온 '국가주의', '국사' 에 관련한 성찰을 담고 있는 책들 때문입니다.

책으로 읽을때는 "그렇지, 그렇지 국가는 상상의 공동체지, 국사는 그 상상의 공동체를 엮는 정치적 기획이지, 민족사를 넘어선, 국가 단위를 넘어선 연대가 중요한거지... 국가라는 틀을 넘어 생각해보자." 하는 생각에 구구절절 "옳소, 옳아요!"를 외쳤습니다만, 정작 현실의 문제에 부닥치고 보니 그 논의들이 공감을 얻기란, 설득력을 얻기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새삼 실감 나더군요.

사실 생각해보면 일본의 수정주의 역사교과서를 둘러싸고 한국,중국,일본이 벌인 역사 논쟁이나,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문제 모두 어느 일방이 역사적 진실을 규명해 왜곡된 역사를 바로 잡는다는 식의 실증적 방법으로 완전하게 해소될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저마다의 국가에 저마다의 '실증'에 의거한 저마다의 '역사'가 있을 것 아니겠습니까?) (아, 물론 '실증'조차 제대로 안 해온 것이 문제이기는 합니다.)

한,중,일의 역사 문제는 이미 텍스트 실증을 넘어서서 존재합니다. 북한의 핵주권이 일본의 재군비를 정당화하고, 일본의 우경화가 다시 남한,북한과 중국의 민족주의를 자극하고, 중화주의가 다시 일본과 남,북한을 자극하는 연쇄적인 '정치적 고리'의 틀. 그 정치적 지형에 역사 논쟁의 핵심이 있을 것이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보면, <국가의 신화를 넘어서>에서 임지현 교수가 말하듯, 한국, 중국, 일본은 확실히 '적대적 공생관계'에 있습니다.  이들 3개국 모두 국가권력이 만든 민족주의 역사의식이 시민사회의 역사의식을 규율하는, 마침내는 '국가' 권력이 강제하지 않아도 밑으로부터의 자발적인 호응과 지지를 얻어내는 헤게모니를 생산하고 있다는 점에서요. (임지현. 본문 27쪽)

그런가하면 2004년 3월에 나왔던 <아웃사이더 18>호에는 "고구려는 고구려다."라는 특집이 실린 적이 있습니다. 역사문화연구소의 임기환씨와 박노자씨가 나눈 테마대담을 다시 읽어보니 차분하게 생각해볼 내용들이 눈에 띕니다.

 "오늘의 중국 민족주의자들이 근대적 개념을 과거에 투영하여 고구려를 '소수 지방 정권'과 같은 언어로 서술하는 것은 물론 역사학에서 있을 수 없는 오류임이 분명하지만, 그때의 역사에다 오늘날 '한민족'의 개념을 투영시키는 것도 억지가 아닐까? 고구려는 그냥 "고구려'로 보고, 근대적인 민족주의적 수사를 붙이지 않을게 좋을 까하는 생각말입니다." (<아웃사이더> 편집자주)

라는 지금 상황에서 보면 다소 과감한 편집자주만 읽어도, 감이 팍 오듯이... 고구려사의 실증적 규명문제 보다는 '국사' 구성에 얽힌 정치적 기획, 동아시아 각국의 공격적 민족주의의 문제에 대해 다루고 있는 글입니다. 이 글의 전문을 소개하기는 어렵고요, 대신 ED가 읽으면서 무릎을 탁! 쳤던 부분을 적어보겠습니다.

단기적으로는 외교대응의 문제, 학술적 사실규명의 문제부터, 장기적으로는 '국가' 단위의 절대성에 대한 문제제기까지 논의되어야 할 주제가 많습니다만, 현재의 시점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아래에서 박노자씨가 언급하는 지점인 듯다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해봅니다.

박노자 : 지금 우리의 언론을 보면 "고구려는 우리 역사다." 이렇게 상당히 감정적 발언을 많이 하는데 실제로 진짜 위헝함 것은 정치적인 차원에서 이북 지역에 대한 영유권 확립의 담론적인 표현이라는 것일 겁니다. 우리가 제대로 대응을 하려면 아마 민족 감정을 유발하는 것보다 우리도 통일문제에 대비를 하고 여러 차원에서 북한과의 공동체 만들기에 박차를 가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본문 131쪽) 

 - 알라딘 김현주 (realsea@alad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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