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쉬운 마라톤 - 지식공작소 마라톤 2
데이브 쾰스 지음, 엄진현 옮김, 방선희 감수 / 지식공작소 / 2003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1. 1년전 마라톤을 혼자 시작하면서 많은 도움을 받은 책이다.  

2. 이 책은 3달 또는 4달 동안 충실하게 연습하면  

4시간 안에 42.195km를 무리없이 완주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3. 마라톤의 자세나 기본 장비(예를 들어 신발, T셔츠, 양말..) 에 대해서도 친절하고  

30km이상을 뛸때 수분이나 당분 섭취를 어떻게 할 것인지 알기쉽게 알려준다.  

4. 다만 경험에 의하면 이 책과 함께 제프 갤러웨이의 [마라톤, 나도 할 수 있다]라는 책을  

함께 읽으면 좋을 것 같다. 특히 과체중이나 50대 이상의 중년이라면 

제프 갤러웨이의 달리다가 잠시 걸으면서 체력을 가다듬고 다시 달리는 방식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특히 처음 2,3번의 완주에 대한 부담을 덜어줄 것이다.  

5. 나는 이 책과 제프 갤러웨이의 가르침을 따라 1년동안 풀코스를 15회 완주할 수 있었고 

3시간 대에 진입해서 서브3를 코앞에 두게 되었고  

지금은 울트라 마라톤을 즐기고 있다.  

1년 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을 나는 하고 있다.  

평생 단 한번이라도 풀코스를 완주했으면 하는 순진한 바램밖에 없었던 나는  

지금 울트라 마라토너가 되어있다.  

6. 아래는 최근 열린 충주호 울트라 100km대회 참가 수기와 2009 김제 지평선 마라톤 참가 수기이다.  

  

[충주호 100km 울트라 대회 참가기]
고통 속에서 완주의 의미를 터득하다. 
BlueSkyRunner 


1. 이제 반달 후면 자리를 옮기게 되지만

김제 가족사랑 요양병원에 작년 7월부터 근무하게 되면서

가까운 김제시민 운동장에서

 처음 달리기를 한 것이 마라토너가 된 계기였다.  

 

매일 3시 반에 일어나서 별 생각없이 달렸다.

생각지도 않게 마라톤에 소질이 있는 것인지

반달도 안되어 20km를 매일 무리없이 뛰었고

가끔은 주말에 40km를 뛰었다.

그래서 인지 10월 9일 처음 달린 마라톤 대회이자 첫 풀코스 대회에서도

조금 거리가 짧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2주후 동아마라톤에서 3시간 30분에 들어오고

점차 회복이 빨라져서

4주 연속 또는 5주 연속 풀코스를 달리게 되었고

다음날에도 멀쩡해서 10km정도는 몸을 풀게 되었다.  


2. 우연히 들어간 철의 노동자 심재덕님의 싸이트에서

울트라 마라톤이란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마라톤 대회에서 가끔 보던 티셔츠가 떠올랐다.

"3시간 이런 거 별로 재미없다.

12시간 하루, 여러날 ... 이렇게 미치도록 뛰어봤으면 좋겠다."

이런 면에서 울트라 마라톤을 보는 나는

그야말로 물만난 고기였다.  


3. 3월 29일 전주 울트라부터

또 2주후 청남대 울트라

한달후 천진암

한달후 북한강

바로 다음주 충주호  


적당한 피로감과 만족감

밤새워 한마리의 반딧불이 되어

지치도록 산하를 누비는 자유로움  

 

 

이번 충추호 울트라는

북한강 다음주에 곧이어 달린다는 면에서 도전적이었고

마라톤 입문 1년을 자축한다는 의미에서도 뜻깊은 행사였다.  


4. 30km까지는 선두였는데

심지어는 뒤에 사람이 없어서 500미터정도 되돌아가다가

2위주자와 함께 뛰기도 했을 정도였다.

천진암이나 북한강 같은 페이스만 유지해도

나는 100km까지 쉬지 않고 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30km가 지나면서 다리는 피로하지 않았는데

왼쪽 바깥쪽의 인대가 따끔따끔 아프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다리를 올릴 수가 없으니 종종걸음으로 바뀌었고

40km가 지나니 반대쪽 엉덩이에도 통증이 온다.

50km가 지나니 처음으로 포기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오르막에서는 왼쪽 다리를 질질 끄는 형국으로 변한다.  

 

5. 마이클 조던은 NBA 3연패 뒤에 농구에 흥미를 잃고

아버지가 피살을 당하는 고통 속에서 은퇴를 하고

마이너 리그 야구 선수로 지냈다.

그 당시 인터뷰에는 흥미로운 대목이 있다.  

"사람들은 제가 야구를 건성건성한다고 말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
농구선수로서 저는 처음부터 최고의 선수였고

쉽게 최고의 자리를 지킬 수 있었기에

언제나 내려다보는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손쉽게 정상까지 올라간 것이지요.

그렇지만 야구선수로서 저는 평범한 사람이고

아주 보잘것없는 기술일지라도

뼈를 깍는 훈련으로 조금씩 익혀나가야 합니다.

저는 이렇게 그동안 잊고 지낸 계단을 오르고 있는 것입니다."  


6. 나처럼 100km를 뛰고나서도

다음날 별무리없이 10km를 뛰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총격을 받은 사슴처럼 이렇게 비참하게 다리를 끄는 상황에서는

매 걸음이 수고롭고 모든 언덕이 커보이는 법이다.  


60km, 70km, 80km,90km

모든 표지판이 완주로서의 의미를 지녔고

나는 고통과 감격을 새롭게 맛보았다.

한걸음 뒤에 나는 땅에 주저앉아 앰브란스를 기다려야 할지 모르지만

나는 어리석다 생각되는 걸음과 뜀질을 반복했다.

나에겐 나에게 허용된 그만큼만의 달리기와 지친 걸음 그 뿐이었다.  

마음 속에서 절망은 점차 지워지고 평온함이 찾아왔다. 

아! 고통속에서 바라보는 충주호의 밤하늘은 아름다웠다.

쏟아질듯 총총한 별은 고통과 함께 밤새 좋은 친구가 되어주었다.   


7. 그리고 마지막에 다다라서 나는 깨달았다.

이런 대회를 진정 내가 뛰고 싶었다는 것을!

한 걸음 뒤를 생각지 않고

주어진 지금 이 한 걸음 한 걸음에 집중하고

오로지 헌신만으로 마지막까지 채워내야만 하는

진정한 완주의 순간을 살고싶었다는 것을!  


내가 피니쉬라인에서 울지못한 것은

아직도 인간으로서 채 성숙하지 못한 까닭이었다.

차라리 어린 아이처럼

펑펑 울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8. 이틀이 지난 지금도 왼쪽 무릎은 부풀어 있고

걷거나 다리를 들어올리기 힘든 상황이다.

지난 밤의 100km는 꿈과 같이 아련하게 느껴진다.

한달 뒤 서울 100마일 런을 참가하게 될까?

모르겠다.

그렇지만 전처럼 미친 듯이 뛰지는 않을 것이다.

이제 다시 뛴다면 아름다운 경치를 만나면 잠시 휴식을 취하고

사람 좋은 어른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도 즐기다 올 생각이다.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산과 들을

마치 걸림없는 바람처럼 거닐 생각이다.

작은 고개 큰 고개 모두를 간지럼을 피우듯 즐겁게 달릴 것이다.

이게 이 대회가 선사한 고통 끝의 낙인 셈이다. <쫑>

 

[2009년 10월 11일  김제 지평선 마라톤 완주기]

내가 달린 것은 삶의 지평선이었다.  


1. 이번 대회는 지난 6월 28일 충주호 100km 울트라 이후 석 달 반만의 달리기다. 열네 번째 풀코스 도전이다. 작년 7월 우연히 김제 시민 운동장을 달리면서 시작한 달리기는 끝없이 이어졌다. 100km 5번, 50km 1 번, 42Km 13번, 21km 2 번... 이러고 보면 2009 김제 지평선 대회는 풀코스 이상의 거리를 20번째 뛰는 각별한 대회이다. 특별히 달리기와 인연이 없던 내가 나홀로 마라톤 입문한지 1년 동안 42km이상을 20번을 달린다는 것이 스스로도 대단하게 느껴진다.  


그렇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하게 느껴지는 점이 있다. 부상 후 첫 재기전이자 처음 완주한 대회에 다시 한 번 도전한다는 데서 오는 아련한 무상감이랄까. 어찌될지 모르는 심란함이랄까 공포감이랄까. 그리고 가족사랑요양병원 가족들 앞에서 다시 뛴다는 부담감도 적지 않았다. 좋은 모습을 보이고 싶지만 지금은 예전의 팔팔한 내가 아니고 완주조차 버거운 처지다보니 답답했다. 충주호 울트라 이후 꼬박 한 달은 장경인대와 무릎의 통증으로 뛰기는 커녕 걷는 것조차 고역이었고 또 한 달은 5km이상 달리면 장딴지에 쥐가 나서 뛰기를 포기해야 했다. 그리고 넷째 푸리가 태어난 후 두 달은 그야말로 야단법석이었다. 김정연 병원장님의 초청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풀코스 복귀는 더 미뤄졌으리라. 그렇지만 부족하나마 다시 시작하는 열정이야말로 아마추어의 자세 아닐까?   

 

2. 충주호의 부상이 있기 전에는 지평선에서 싱글을 기록하리라 기대했다. 그렇지만 대회가 다가올수록 완주조차 멀어 보이는 것이 뼈저린 현실이었다. 왜냐하면 2주전까지도 10km뛰는 것조차 버거웠기 때문이다. 장딴지가 쥐가 나고 도대체 풀리질 않으니 아무리 용을 써도 10km이상을 달릴 수가 없다는 그 절망감! 20km가 그렇게 먼 거리라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독한 마음을 품고 마지막 주에 월요일 10km, 화요일 15km, 수요일 25km, 목요일 28km, 금요일 9km를 달렸다. 새벽 87km의 달리기는 점차 내 투지에 불을 당기고 완주의 희망을 다시 품게 하였다. 30km이상의 달리기는 못해보았지만 그리고 20km이후 급격히 체력이 떨어진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3시간 20분대에는 들어올 수 있으리라는 자신이 생겼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새벽 공기를 가르며 달리다 솟는 해를 보는 벅찬 느낌을 다시 찾게 되면서 생활에 활력이 생겼다. 나는 외쳤다. 나는 마라토너다. 나는 울트라 마라토너다. 다시 달린다. 미국을 횡단하는 그날 까지!  


3. 부상 후 재기를 꿈꾸면서 나는 배운다. 누구나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살 수는 없다는 것을! 누구나 자기가 치르고 싶은 대로 언제나 경기를 주도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이 손 안에는 매 순간 자신의 최선을 다하는 벅찬 선택은 남아있다. 이게 마라톤이 나에게 전해준 인생의 교훈이다.  


출발 신호가 울리고 10km를 43분에 가볍게 돌파하면서 잠시 3시간 10분대도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곧 장딴지의 통증이 시작되자 15km를 넘을 수 있는지조차 장담할 수가 없었다. 코스모스길이 끝나는 심포까지만 가자고 자신을 설득했다. ‘힘들어도 코스모스 구경을 하며 21km만 뛰고 앰블란스를 타자.’  2.5km마다 에어스프레이를 품어가며 절뚝거리다보니 20km지점에서 3시간 30분 페메에게 추월을 당했다. 통증은 가시지 않았지만 잰걸음으로 달리다보니 조금씩 조금씩 나갈 수는 있었다. 어차피 결과는 모르겠고 달릴 만큼만 달리자며 계속 달린다.  


4. 이번 경기를 통해 새삼 깨달은 것은 인생 선배님들이신 40대 후반 - 50대 분들의 마라톤에 대한 애정이었다. 사실 3시간 10분이나 20분대 주자들은 그래도 중급이상의 주자이기 때문에 큰 고통을 느끼지 않고 피니쉬 라인을 통과한다. 그렇지만 3시간 40분 - 4시간 20분 사이의 주자들은 어느 정도 경험과 주력은 있으나 지구력이 따르지 않는 단계이며 3시간 전후부터 시작된 저혈당 증세 때문에 1시간을 자신과 싸우다 피니쉬 라인을 통과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의 거친 숨소리와 처절한 고투를 오랜만에 지켜보며 새삼 마라톤의 정직함을 깨달았다.  


5. 또 하나 터득한 사실은 페이스 유지의 중요함이다. 얼핏 생각하면 중간에 걷는 것은 대회를 무성의하게 진행하는 것 같다. 앞서 달리는 주자와도 거리 차이가 많이 벌어지리라고 생각이 들지만 다섯 번 2분씩 걷는다고 해도 앞선 주자와 같은 페이스만 유지한다면 5분여 차이 밖에 나지 않는다. 중간에 쉬엄쉬엄 걷는 방법은 오히려 급격한 후반의 체력저하를 겪지 않기 때문에 후반전에 강하게 치고 나갈 수도 있는 대역전 드라마 방법이기도 하다. 반면 초반에 무리해서 치고 나가다가 페이스가 급속히 떨어지거나 중후반전에 저혈당으로 기세가 꺾여버리면 적게는 10여분 대체로 2-30분을 고통 속에서 날려 보내게 되고 심하면 부상을 입거나 완주조차 포기해야만 하는 경우도 생기게 된다. 
 

 

예를 들어 500km를 가는 운전여행을 생각해보자. 100km속력으로 가다가 3번 10분의 휴식을 취한다고 해도 5시간 30분의 여행이다. 쫒기지 않으면서도 적당한 시간에 들어간 셈이다. 반면 100km속력으로 가는데 시간당 10km씩 속력이 줄어든다고 생각해보자. 중간에 쉬지 않아도 무려 10시간이 걸린다. 페이스를 유지하지 못하면 이렇게 큰 차이가 난다.  이번에는 120km로 시작해서 한시간당 10km씩 속력이 줄어드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처음에는 100km 차와 큰 간격을 벌리며 앞서는 것 같다. 그렇지만 쉬지 않고 달려도 5시간 35분 정도가 걸린다. 페이스가 떨어진다면 첫 끝발이 개 끝발인 것이다. 끝으로 무리하게 150km속력으로 3시간쯤 달리다가 차가 고장나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다른 사람보다 2시간쯤 먼저 달린다고 기뻐하다가 50km를 남겨두고 여행을 접어야되는 경우이다.  

 

어쩌면 인생살이도 그런 거라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목표를 명확히 설정하고 우직하게 자신의 페이스를 지킨다면 며칠 몇 달 몇 년이 늦어질 수는 있을지는 모르지만 너무 늦지는 않게 목표에 안착하게 된다. 이렇게 황소걸음이 가장 확실하고 빠른 걸음이다. 그렇지만 무리한 투자나 지나친 의욕으로 첫 끝발이 개끝발이 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초년의 천재가 조그만 성취도 이루지 못하고 자초하는 일도 얼마나 많은가? 또 2, 30대에 수십억을 벌어놓고 10년도 안되어 탕진하거나 크게 빚더미에 오르는 사람이 또 누구인가? 도대체 어떻게 사는 것이 나은 것인가? 이렇게 나는 이번 마라톤에서 페이스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배웠다. 가다 못가면 쉬었다 가더라도 목표를 향해 쉬지 말고 담담하게 나가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6. 이번 대회에서 나는 심하게 오다리인 아저씨가 뒤뚱거리면서 뛰시는 것을 한참 따라갔다. 그분의 열정에는 말로는 표현 못할 숙연함이 있었다. 내 인생길도 부족하나마 저 분처럼 끊임없이 나아가는 그런 길이었으면 하며 달렸다.  


경기의 끝이 거의 다가왔다. 이제 기록은 내 것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완주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보니 작년의 소망이 떠올랐다. 작년 김제 지평선 마라톤을 끝내며 결심한 것이 있었다. 내년에는 마지막 두 고개를 쉬지 않고 뛰어넘겠다고 다짐했었다. 힘이 부치긴 했지만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마지막 페이스를 유지하고 너무 힘들지 않게 뛰어 넘었다. 문득 작년엔 저 고개에서 칠순 아버지가 뛰어오시며 완주를 독려해 주셨다는 사실이 떠올라 가슴이 저며 왔다. 뒤늦게 느끼는 부모님의 사랑!  


7. 3시간 39분! 어느 때보다 완주메달이 각별하게 느껴진다. 완주조차 꿈만 같았던 한 시간 전의 나는 벅찬 감격으로 완주메달을 목에 걸어본다. 그리고 절뚝거리며 대회장을 거닐다가 그늘에 앉아 소금기에 절은 얼굴을 생수로 씻어낸다. 나 자신이 자랑스럽다. 나는 나를 바라본다. 1년 전과 같이 푸른 경기복에 박힌 ‘울돌목 1597’-아직도 열두척의 배가 오히려 남아있다고 외치신 이순신 장군의 명량해전을 추억하는 마크이다.-, 그리고 어느새 닳아 경기화 밖으로 삐져나온 엄지발가락! 이렇게 내 마라톤 인생 1학년 졸업식이 끝나나 보다. 그래 오늘도 이렇게 힘들지만 그냥 좋은 날인 것이다. 나는 살아있고 하늘을 바라보며 다시 푸른 꿈을 꾼다. <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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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연못 2009-07-18 16: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고로 42.195km를 넘는 거리의 마라톤을 울트라 마라톤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치루어지는 대회는 100km대회입니다.
12- 15시간을 밤을 새워 달리게 됩니다.
그 다음은 100mile run이라고 160km를 달리는 대회인데 30시간 정도까지 달리게 됩니다.
100km를 5회이상 달리거나 100mile을 달린 사람에게는
동서 횡단(308km)이나 남북 종단(622km)대회에
참가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집니다.
4일 또는 7일을 달리게 됩니다.
뜻밖에도 울트라 마라톤 주자들의 평균 연령은 45-55세로
지난달 북한강대회나 충주호 대회 100km 최고령 참가자는
모두 70대 이셨습니다.(38년생)
200명 전후가 참가해서 150명 정도 완주하는 것을 보면
생각보다는 완주율도 높고 건강에도 큰 무리가 없는 대회입니다.
물론 어느 정도의 운동으로 기본 체력과 달리기 실력이 붙은 분들의 경우이겠지요.

하늘연못 2009-10-12 06: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09년 10월 11일 김제 지평선 마라톤을 완주함으로써 다시 마라톤을 시작했습니다.
충주호후 장경인대와 슬개골 손상으로 제대로 걷지 못했고
그후 1달동안은 5km 달리기도 힘들었고 다시 1달은 10km를 달리면 장딴지에 쥐가 났습니다. 가자미근 비복근의 통증이 사라지지 않아 10km이상을 뛰면 1주를 쉬어야 했습니다.
체중은 석달동안 8kg이 불더군요.
울트라 마라토너로서 저는 71km를 71일동안 달려야 한다는 미국 동서횡단이 꿈입니다.
제 인생은 인문학도로서 또 의사로서 네 아이의 아빠로서 많은 시간을 살지만
들개와도 같은 야성과
반디불로 변하는 육신의 자유를 만끽하는
울트라 러너로 지낼때 어느 순간보다 행복합니다.
5년 후 도전하게 될 대서양에서 태평양까지의 길을 생각하고
부상후 자리잡게된 마음 속의 공포를 바라보며 다시 런닝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처음 도전했던 김제 지평선 마라톤을
1년전과 같은 옷과 신발을 신고 참가했습니다.
옷에는 '1597 울돌목'이 적혀있고 신발은 닳아서 엄지발가락 부분이 터져있었습니다.
5km부터 비복근의 경련과 통증이 시작되었지만 굴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달린 길은 코스모스가 피어있는 삶의 지평선 길이었습니다.
어느때보다 고통스럽게 일궈낸 풀코스 완주였기에 영감도 희열도 충만했습니다.
외롭고 삶이 고단한 사람들께 꼭 마라톤을 권하고 싶습니다. <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