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하는 기타, 천일의 노래 - 빅토르 하라와 누에바 깐시온
배윤경 지음 / 이후 / 200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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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게바라를 추모하는 영상에서 그의 노래를 처음 들었다. "comandante Che Guevara"를 부르던 그의 기타는 격정적인 춤이었고, 추모를 담은 그의 노래는 사랑에 벅찬 고백이었다. 우리의 추모곡과는 전혀 다른 추모의 노래, 속도감 때문에 경쾌함 마저 감돌던 그의 노래를 들으면서, 가보지 못한 남미의 바람과 영상에서 보던 푸른 바다를 보았다. 

’산티아고에 비는 내리고’였던가? 화면에 비가 내리던 영상 속에서 만난 칠레 혁명. 1973년 거리를 피로 물들이며 칠레 민중들의 민주화에 대한 기대와 꿈, 그리고 천일의 짧은 실현을 짓밟는 군화와 총탄 속에 빅토르 하라도 있었다. 

<노동하는 기타, 천일의 노래>는 빅토르 하라의 작은 평전이다. 산티아고의 변두리 가난한 마을에서 태어나 노동하는 엄마의 품에서 칠레의 민요와 남미의 선율과 리듬을 익힌 빅토르 하라. 유판키와 메르세데스 소사가 시작한 남미의 노래운동인 누에바깐시온의 과정에서 비올레타 빠라의 노래를 듣고 누에바깐시온에 참여한 절열의 사람이며 가수였던 빅토르 하라는 칠레와 깊었으나 짧은 사랑을 하고 독재자의 총에 생을 마감했다. 가수였지만 혁명하는 가수로 살겠다는 그의 선택이 아옌데 대통령이 게엄군에게 포위되던 날 군인들에게 둘러쌓인 국립대학으로 이끌었다. 조국을 사랑한 그에게 그의 노래를 사랑하는 것으로 답했던 민중들이 보는 가운데 ’Venceremos’를 함께 부르며 스러진 것이다.


Venceremos!!벤세레모스!
 

Desde el hondo crisol de la patria 조국의 깊은 시련으로부터
se levanta el clamor popular, 민중의 외침이 일어나네
ya se anuncia la nueva alborada 이미 새로운 여명이 밝아와
todo Chile comience a cantar. 모든 칠레가 노래 부르기 시작하네
Recordando al soldado valiente 불멸케 하는 모범을 보여준
cuyo ejempla lo hiciera inmortal 한 용맹한 군인을 기억하며
enfrentemos primero la muerte, 우리는 죽음에 맞서
traicionar a la patria, jamas! 결코 조국을 저버리지 않으리
 
(후렴)
Venceremos, venceremos, 우리는 승리하리라, 우리는 승리하리라
mil cadenas habra que romper. 수많은 사슬은 끊어지고,
Venceremos, venceremos, 우리는 승리하리라, 우리는 승리하리라
la miseria sabremos vencer. 우리는 비극을 이겨내리라
 
Campesinos, soldatos y mineros, 농부들, 군인들, 광부들
la mujer de la patria tambien 그리고 이 땅의 모든 여성과
Estudiantes, empleados, obreros, 학생, 노동자들이여
cumpliremos con nuestro deber. 우리는 반드시 이룩할 것이다
Sembraremos las tierras de gloria, 영광의 땅에 씨를 뿌리자
socialista sera el porvenir, 사회주의의 미래가 열린다
todos juntos seremos la historia; 모두 함께 역사를 만들어 가자
a cumplir, a cumplir, a cumplir! 이룩하자, 이룩하자, 이룩하자

천일의 시간, 3년의 아옌데 집권 시절 노래로 저항하던 이들이 비단 빅토르 하라만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독재자 피토체트의 군화발은 수많은 누에바깐시온의 음악과 음반, 마스터 음반까지르 모두 없애버렸다. 요행 영국 국적을 가진 빅토르 하라의 부인 조안 하라가 구데타의 소용돌이에서 빅토르 하라의 마스터 음반을 숨겨 칠레를 빠져나온 까닭에 그의 노래는 남아 지금까지 전해지며 세계의 가슴을 울리고, 공감을 부르며 살게 되었다.

짧은 생을 살았지만, 남미의 민요를 찾아 전국을 다니며 민요를 체취하고, 연극과 연출을 연구하고 작품을 무대에 올리기도 했던  ’예술가’로서의  삶의 방식은 깊은 시사를 던진다. 그의 예술이 꽃 피운 것은 시와 노래에서였지만, 그 노래와 시가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게 한 토양은 경계없이 변화하는 그의 삶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예술에 대한 환상과 편견은 기이한 행동을 해야 예술가라는 잘못된 인식을 퍼뜨리곤 한다. 하지만 예술가의 참된 면모란 기이한 행동과 무조건적인 이탈이 아니라 빅토르 하라와 같은 넓고 깊은 세상에 대한 사랑과 사람에 대한 탐미가 아닐까 생각한다. 어떤 편견도 내세우지 않고, 어떤 강제와 억압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눈과 귀로 세상과 사람들을 향하고, 그에 깃든 삶과 사랑을 노래하는 것이야말로 예쑬가가 품어야할 풍모라 여기기에 빅토르하라의 삶에서 더욱 깊은 인상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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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다 칼로 & 디에고 리베라 다빈치 art 18
J.M.G. 르 클레지오 지음, 신성림 옮김 / 다빈치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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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추와 다리, 어깨, 목, 어는 한 곳 부서지지 않은 뼈가 없는 사람의 고통이란 상상하기 어렵다. 프리다 칼로는 영화 <프리다>와 다큐를 통해 만나왔지만 이처럼 그의 생을 깊이 이해하게 하는 매체는 못 만났다. 고통을 숙명처럼 끌어 안고, 그 자신의 존재 이유를 그림으로 그려나가던 이. 말 그대로 존재 이유 하나로 사랑을 하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고...

어느 것 하나 전투가 아닌 것 없던, 아름다운 사람 프리다 칼로.

때로 사람은 참 잔인하다. 그 누군가의 고통을 안타까워하면서 동시에 숭배한다는 것 말이다. 처절하게 바닥 끝으로 떨어질 때 내뱉는 단발마의 외침같은 예술을 더 사랑하고 추앙하다니말이다. 아니 어쩌면 예술이 더 잔혹한지도 모르겠다. 사람이 견뎌낼 수 있는 고통의 임계점에 이르러서야 꽃을 피워주니 말이다.  

아르테미시아처럼 인간으로서 감당하기 어려운 곳으로 끌고가 '유디트'를 그리게 만들고, 가슴에 지닌 사랑을 모두 토해내게 한 다음에야 까미유 끌로델의 숭고하고 아름다운 조각상을 만들게 하고, 육신과 삶과 사랑을 벼랑에 떨어뜨리고 나서야 프리다 칼로의 그림 세계를 허용하니 정말 잔인한 일 아닌가? 게다가 그도 모자라 깨어지고 추락하는 동안에도 그 헤아릴길 없는 두려움과 고통을 안은 채로 화폭을 붙들게 하니 말이다.

<프리다 칼로 & 디에고 리베라>는 서로에게 삶 그자체였던 연인이며, 부부 화가 칼로와 리베라의 삶과 작품을 생생하게 펼쳐낸다. 책은 물론 남미 벽화운동의 선봉이었던 디에고 리베라, 원주민의 거친 삶 속에 담긴 풍요와 따뜻함을 화폭에 옮길 줄 알았던 사람.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것을 보면 온 몸을 다 던져 사랑하고, 아름다운 세계를 만나면 도서관에서건, 전시장에서건, 공장에서건, 거리에서건 붙박혀 빠져들어 탐미하고 화폭에 옮겨내던 천성부터 화가였던 디에고 리베라의 작품세계를 쉽고 자상하게 담고 있다. 

허나, 청결한 열정으로 혁명과 사람과, 자연들에 사랑을 쏟으며, 부서진 몸을 안고 화폭과 싸우던 프리다 칼로의 삶이 <프리다 칼로 & 디에고 리베라>를 뒤덮는 것처럼 느껴졌다. 작품 수나 스케일이나, 명성을 두고 보더라도 리베라에 뒤 서던 그녀의 삶과 그림이 너무도 강렬했기 때문이다.

프리다 칼로의 아픔이 깊고 클 수록 그가 그려낸 작품은 눈부시게 아름답다. 뒤에 오는 사람들에게 그 치명적인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마치 수많은 사람들이 위로받고 행복해지라고 재단에 바쳐진 생명체가 만들어 뿌리는 빛을 보는 듯 하다. 남미를 사랑하고, 라틴 문화를 흠모했던 두 화가의 굴절된 삶이 빚은 그림들은 하나같이 절절한 이야기와 시대를 담는다. 

책을 읽고 그림을 만나는 시간 무척 행복했다. 더 좋은 건 책장을 넘길 때마다 두 사람이 내게 끝없이 퍼붓는 질문에 대답해가는 과정이었다. 결국 라틴 미술의 한 획을 그어낸 두 예술가를 담은 <프리다 칼로 & 디에고 리베라> 가 던지는 강렬한 메세지는 두고 두고 내 가슴을 울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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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의 비밀 - 아리스토텔레스와 영화
마이클 티어노 지음, 김윤철 옮김 / 아우라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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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리우드 영화의 흥행 10대 법칙이 있다.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이를테면 이런 거다.
 "범세계적인 관심을 끌 수 있는 주제를 개발하라. 가장 중요한 것은 심각한 문제나 현실인식을 요구하는 관객들은 무조건 버리는 일이다. 그렇다고 너무 유치하게 묘사해서 그들의 자존심을 건드려선 안 된다. 영화에서 제기된 문제나 사건은 반드시 풀어줘라.."
’상업성, 대중과의 영합, 무엇이 됐든 돈이 된다면...’  뭐 이런 거 빼면 동의 못할 일도 아니다. 아니, 어쩌면 깊이는 부족한 책 고상한 척 하다가 이도 저도 아닌 볼품 없는 작품을 낳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선택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명세기’ 작가라면, 눈에 ’흥행’이란 불을 켜고 상업성이 밝히는 불빛을 따라 작품을 하는 건 영 꺼림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가 쓰는 작품이 어떤 영역과 장르의 것일지라도 말이다. 

<스토리텔링의 비밀>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서 주요하게 다루는 창작의 원칙과 원리를 헐리우드의 영화의 사례에 적용하여 서술하고 있다. 불후의 고전과 세계에서 가장 잘 팔리는 영화의 창작 원리가 만난 것이다. 스토리 애널리스트이기도 한 작가가 책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은 플롯의 일관됨과, 군더더기 없는 에피소드이다. 군데 군데 ’헐리우드 진출’이라는 문구가 좀 거슬리긴 하지만 충분히 공감하며 동의하는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하나의 플롯을 완강하게 끌고 가는 것. 끌고가는 동안 보는 사람들이 눈치 채지 못하게 하면서, 지리해서 시선을 돌리게 해서도 안 되며,  플롯의 잔가지가 너무 많아서 주된 플롯이 희미해져서도 안 되며, 플롯을 강조하느라 덧붙인 장식이 너무 화려하고 요란하여 깊이를 잃어버려서도 안 된다는 얘기이다. 그 외에도 여러가지가 있지만, 플롯과 관련해 내게 남는 이야기이다. 
강의 교안을 쓰든지, 시나리오를 쓰든지, 책의 원고를 쓰든지, 작품을 창작하든지, 이 플롯과 싸우는 일은 시작부터 끝까지 정해진 싸움이다. 자기 머리속에 무언가를 정돈했다가 풀어내는 일을 해본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원칙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적용하기는 쉽지가 않다는 데 그 비애가 있다. "하고자 하는 얘기만 선명하게 감동적으로 전하는 것." 이야말로 누구나 원하는 것 아니겠는가 말이다. 그러나 쓰는 내내, 창작하는 내내 잊지 않고 적용해가느냐가 관건인 것은 분명하다. 어쩌면 마이클 티어노 역시 알고는 있지만, 많은 작가들에게 인이 박히지는 않았다는 생각에 <스토리텔링의 비밀>을 통해 강조하고 또 강조하는 지 모르겠다.

다음으로 강조하는 것 역시 알고 있으나 놓치는 것이다. 바로 에피소드의 과잉과 에피소드의 진실성이다. 또, 무엇보다 에피소드를 통해서 보여주라는 것이다. 
행위와 행동, 사건을 통해 드러나는 에피소드. 이것은 글과 영화와 작품에서 맛을 느끼게 만들어주는 감각’소’라고 할 수 있겠다. 에피소드를 통해 비로소 플롯이 사람들에게 감각된다는 얘기이다. 그러니 에피소드를 요리하는 것이야 말로 작품의 맛을 요리하는 것과 직결되는 문제이겠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에피소드를 식별할 눈이 낮거나, 에피소드만 잔뜩 집어넣어 결국 이맛도 저맛도 아닌 것들을 내어 놓곤 한다. 

이 외에도 창작의 출발에서 마무리까지 놓치 말아야 할 것을 작가의 머리속 동선을 따라 서술한 <스토리텔링의 비밀>은 읽기 쉽게 씌여졌으면서도, 놓치거나 넘치거나 하는 것 없이 스토리텔링의 원칙을 담고 있다.

앙상한 가지로만 받아 읽으면 좀 상업적인 냄새가 나긴 하지만, 조금씩 씹어서 읽으면 많은 득이 되는 책. 나 역시 잘 소화시키기 위한 노력을 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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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메이드 라이프 - 손으로 만드는 기쁨, 자연에서 누리는 평화
윌리엄 코퍼스웨이트 지음, 이한중 옮김, 피터 포브스 사진 / 돌베개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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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데 마음이 흠뻑 가지 않는 책들 중 하나다. 세상이 이렇게 살게 내버려두지 않으니까...
세상하고 다 끊고 자연 속으로 들어가 사는 삶은 개인에게는 더없는 축복이며 평화겠으나, 자연 밖에 구질구질하게 펼쳐지는 것들, 결국은 그 자연과 평화를 압박해 오고야 말 것들을 그냥 뒤로 하고 그저 그렇게 지내도 되는가 하는 생각 때문이다.

언젠가, 니어링 부부가 쓴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란 책을 읽으면서, 나도 그들처럼 자연속에서 노동하며 늙고 자연 속으로 들어가기를 바랬고, 삶의 어떤 한 끝이라도 탐욕에 물든 세상에 놓아두지 않으려는 결결한 마음에 감동했다.

조병준의 <제 친구들하고 인사하실래요?>를 읽으면서는 어떤 편견도, 제도나 이념이나 물질과 문명으로 쌓은 어떤 벽도 없이 사람들을 끌어 안는 그 마음씨 하나만으로도 풍요롭고 따스함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뒤에 남는 생각은 그것이 과연 세상과 소통하는 것일까? 그가 만나는 하나의 자연인도 결국 사회 안에 있으며, 사회와 관계 맺고 영향받는 사람인데, 그저 따뜻이 손잡고 안는 것으로 진정 그들과 안았다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남았다.

피터 포브스의 <핸드 메이드 라이프>도 내겐 그런 책이었다. 살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내가 노동한 자연에서 찾고, 길을 내고 집을 짓고 내게 필요한 먹거리와 생필품을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것을 전제로 구하는 삶. 자연이 내어줄 수 있는 만큼을 받아서 쓰며, 그 자연을 함께 나누어 쓰는 사람들과 어떤 격의도 없이 마음을 내어주며 사는 삶. 손으로 만들고 노동으로 만들어 쓰는 삶을 사는 코퍼스웨이트의 삶은 그윽한 감동을 준다. 하지만, 내 머리속 무엇이 흠뻑 빠져들지 못하게 견제해 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자라난 나의 해석력이 그냥 마음 평화롭게 읽도록 놓아두기도 한다. 그 마음에 귀 기울이며 읽어내렸다.

생각해 본다.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일이란 얼마나 많은 품과 사람과 시간을 필요로 하는지를.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가기 위해 땀 흘리는 그 과정에 얼마나 많은 ’아름다운 것들’이 또 소리없이 소멸해가는지를 말이다. 결국 코퍼스웨이트 같은 사람이 아주 미미하고 작은 영역 안에서라도 ’이것이 아름다운 것입니다.’하며 삶으로 입증해내지 않는다면, 정말 많은 사람들은 소박하고 투박한 작은 것이 지니는 아름다움의 가치를 잊게되지는 않을까? 
물론, 중뿔나게 혼자만이 세상을 벗어나 자연 속에 묻히지 않아도, 이미 삶에서 그렇게 사는 사람들이 곳곳에 있으니 그들의 삶의 방식을 보호하고 배우고 따라살기 위한 노력을 더 경주하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나는 한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한편 코퍼스웨이트 같은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그저 방어하면서 소박한 아름다움을 지켜내기에 세상은 미친 속도로 달리고 있다. 언제 파괴될 지 모르는 생태주의적인 삶은 온실이나 박물관 안에서라도 보호하며 누군가 치열하게 살아내지 않으면 안될만큼 위태롭다. 난 그 가치를 내 혼자의 힘으로라도 아주 작은 부분이나마 지켜내겠다.’ 라는 사람이 꼭 필요할런지도 모르겠다.

아직은 아주 적은 수의 사람들만이 살아가는 길이 언젠가 많은 사람들이 따라 걷게되는 길일 수 있다. 지금의 판단으로는 그 무엇을 진단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다만,  자신의 자유로운 의지에 따라 자신에게 명령하며, 자신이 가치롭게 여기는 그 무엇을 세상과 조화를 이루어 실현해가는 삶은 아름답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이들을 만날 때면 늘 가슴에 작은 파동이 일며 출렁인다는 것이다.

작지만 고요하고 평화로운 세상, 내 안에 있는 또 다른 세상을 만나게 한 <핸드 메이드 라이프>는 인간미 없는 시대를 살면서 한번쯤 읽어볼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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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 시나리오집
장진 지음 / 열음사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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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무대를 연출해온 그의 경력이 작용한 걸까? 어떤 영화가 안그럴까마는 그의 영화를 보면 프레임 안으로 드나들고 프레임 안에서 움직이는 인물들이 더욱 공간감 있게 다가온다. 
장진 감독이 꼼꼼하기로 정평이 났다는 얘기는 이전부터 들어왔었다. 그의 시나리오집을 보면서 과연 그런 감독이었구나 새삼 깨닫는다. 더하고 빼고 없이 영화를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은 시나리오. 만일 다른 작가의 시나리오였다면, 어떤 게 먼저였을지 따지고들만큼 딱 영화 그대로이다. 마지막에 실린 강철중을 본 후에 영화를 보는데 "어, 이거 본 영환데, 어디서 봤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장면 안에 든 세부까지도 생생하게 시나리오에 담겨 있었다.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작지 않은 문제를 특유의 해학으로 풀어낼 줄 아는 천상 이야기꾼, 장진. 그의 시나리오 안에서도 미려하게 피어나는 작품들은 시나리오만으로도 이미 완성도를 갖고 있다. 그의 영화를 만났든지 그러지 않았든지, 그의 시나리오가 펼치는 공간 안에서 영화와는 조금 다른 질감의 세계를 만나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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