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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쉬러 나가다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 한겨레출판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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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는 참 묘한 것이다. 과거는 언제나 우리와 함께 있다. p46

 

난 현재 살고 있는 곳에서  이십사 년을 살고 있는 까닭에, 동네 주변 곳곳에 어린 시절의 추억들이 허공을 유영하는 것을 직접 볼 수 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때의 기억‘만’이 자리를 잡고 있을 뿐, 언니·오빠·친구들과 담을 넘었던 곳도, 여름이 되면 물놀이를 했었던 우리들만의 집이었던 폐가도, 지금의 우리집이 개조되기 전 신나게 아기사방을 했던 앞마당도, 한여름 어스름한 저녁빛이 세상을 감쌀 때 나타나던 모기차도, 그것을 신나게 따라다니던 어린 우리들도, 이젠 없다. 그것들은 거짓말처럼 사라져버렸고, 모든 것이 변했다. 추억할 수 있는 장소가 없다는 것이 그 얼마나 슬픈 일인가 말이다. 이런 글을 쓰고 있자니, 몇 달 전에 어느 책에서 (사실 그리 오래지 않은 것 같은데 어떤 책이었는지 도통 생각이 나질 않는다. 페이지마다 각 장이 있었던 에세이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장소를 두고 연인과 사랑의 맹세를 했는데, 후에 그 사랑은 깨어졌고, 장소는 변했다,고. 결론은 변하지 않을 것 같던 장소도 변하고 만다던. -

 

 

 

조지 볼링은 뚱보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패티’ 혹은 ‘터비’라는 별칭으로 불리고 있는 보험회사 외판원으로 친구의 권유로 경마 베팅에 10파운드의 돈을 내걸었다가 뜻밖에 17파운드(현재 시세는 파운드당 2,000원이지만 1938년에는 47.3배라고 한다. 따라서 17파운드는 1,608,200원이다.)라는 배당금을 쥐게 된다. 좋은 남편이자 아빠라면 그 돈으로 아내에게 옷을 사주고 아이들에게 부츠를 사주었겠지만, 15년동안 그 역할을 하던 그는 그것에 싫증을 느끼고 있던 중이었기에 본능적으로 그 돈을 은행에 넣어두고 아무에게도 말을 하지 않게 된다. 그리고, 그것으로 무엇을 할까, 하는 고민에 빠지다가 떠나게 된다. 그는 ‘숨’을 쉬러 나간다! 하지만 숨을 쉬러 나간 곳에서 할 말이라고는, 이제 과거로 돌아가 본다는 생각일랑은 끝이다. 소년시절 추억의 장소에 다시 가본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런 건 존재하지도 않는다. 숨 쉬러 나가다니! 숨 쉴 공기가 없는데. 우리가 살고 있는 쓰레기통 세상의 오염은 성층권에까지 도달해 있다.(p311) 왜? 그에겐 무슨 일이!

 

 

 

옛 시절 우리가 살던 모습이 어떤 것이었든 간에, 그것은 그림 같지 않았다. p302

 

숨 쉬러 나간 곳에서 숨 쉴 공기를 찾지 못하고 그 속에서 방황하는 조지 볼링. ‘현대’라는 괴물은 그의 유년시절이라는 못을 쓰레기매립장으로 변모시켜 버렸고, 더불어 그가 유년시절에 낚았던 고기는 알고 보니 쓰레기였던 것이고 그가 봤다던 정말정말정말(!) 큰 고기는 대용량의 쓰레기로 둔갑한 거다. 아, 이게 무슨 난리지. 그는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어쩔까, 어쩌면 좋을까, 이 불쌍한 중년 사내를. 그리고 다시 돌아온 그에게는 세 가지의 선택이 손에 쥐어졌다. 그는 그 중에서도 최소의 위험을 가져다 줄 선택을 하겠지. ㅡ 정치적인 성향이 강하다,는 것이 조지 오웰을 나타내주는 한 문장이어서, 이 작가를 잠시 미뤄뒀을런지도 모르겠다. 나에게는 나도 모르는 폐쇄적인 성향이 잠재되어 있어서 다른 누군가의 정치적 성향과 맞물려 굴러가지 못한다. 그렇게 되면 그 톱니바퀴는 자연스레 중간에 멈추게 되고, 끝내 그것은 고장난, 그래서 교체되어야만 하는 상태에 다다르게 되고, 따로 떨어져 분리가 되버리는 것이다. 거기에서 빠져나오는 것은 다름 아닌 ‘내’가 될 것이고. 그래서 난 고맙다. 이 책이 나에겐 그의 첫 번째 작품이라는 사실이. 이것으로 「동물농장」과 「1984」를 삼킬 듯 읽어보고 싶다,는 허기가 지려는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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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을 가지고 노는 소녀 1 ㅣ 밀레니엄 (뿔) 2
스티그 라르손 지음, 임호경 옮김 / 뿔(웅진)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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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1,2권을 다 읽었을 무렵, 주인공들의 매력을 찾아 방황했고, 책의 끝 페이지까지 다 덮고 나서까지도 ‘그냥….’이라는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에 대한 당혹스러움이 나를 삼켰었다. 사람들의 입에서 오르내리며 무서운 줄 모르고 하늘 높이, 더 높이 - 그네를 타는 이 밀레니엄이라는 이 이야기가, 또 인물들의 어떤 모습들이, 도대체 어디가 그렇게 매력이 있는가,라고까지 생각하게 됐었고, 급기야 이야기보다는 이야기 속에 녹아들어있는 스웨덴에 대한 나라의 숨겨진 뒷면을 보게 되었다,라고 1부 서평을 마무리한 바 있다. 그리고, 그렇게 2부를 시작했다. - 그녀는 강철 프레임의 좁다란 간이 침대에 묶여 있고, 온 몸을 옭아맨 가죽끈들로 옴짝달싹할 수 없는 상태를 43일 째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그가 다가온다. 그녀는 그의 냄새를, 침묵을, 목소리를, 그를, 자기 몸을 만지는 것을 증오했다. 휘발유통 하나, 성냥개비 한 개를 꿈꾸는 소녀. 휘발유에 흠뻑 젖은 그를 보고 있었다. 성냥 끝에 화염이 피어오르는 것을 보았다. 그녀가 만 열세 살 되던 밤. - 그것은 소녀의 희망을 등에 업은 환영일까.

 

 

 

어느 날, 잡지사 기자와 여성 범죄학자의 집에 두 발의 총성이 울리고, 그들은 그대로 살해당한다. 모범적인 부부였기에 원한을 살 만한 일을 한 적도 없는데 누굴까. - 그런데 뜻밖에도 그 용의자로 리스베트 살란데르가 지목된다. 그들을 쏘아죽였을 법한 총이 그들의 옆에 있었는데, 그 총의 소유주는 비우르만이었고, 그곳에서 그녀와 비우르만의 지문이 나오게 된 것이 까닭이 된다. 물론, 총의 소유주라는 이유로 비우르만도 용의자 선상에 잠깐 올라가긴 하지만, 사실 사회적 약자인(법적 무능력자) 살란데르를 중심으로 주변인들을 조사하기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비우르만 역시 살해당한다. 그 사건이 일어난 직후, 경찰의 판단 아래, 리스베트는 유.력.한 (하지만, 총에 남아있는 지문말고는 아무런 증거없이) 용의자 선상에 오르게 된다. 그리고 그녀를 싸이코패스 살인범으로 몰아간다. - 그런데 그녀는 어디에 있는가? 왜 아무런 반론도 하지 않고 있는가. 아니, 이 사실을 알고는 있는가 말이다. 또, 이 사건의 실마리가 될 것 같은 베일에 싸인 ‘살라’라 불리는 이는 도대체 누구인가.

 

 

 

2부 이야기는 왜 이렇게 지지부진한가, 했더니 총 449페이지에서 무려 삼 백 페이지가 넘는 분량이 몽땅 리스베트 살란데르의 현재 모습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돌아가고, 중간중간 그녀의 과거를 헤집는 데에 주력한 까닭이었다. 1부 역시 살란데르의 과거가 나오긴 했었지만, 감질맛나게 툭 던져주었기 때문에 복잡한 과거가 있는가 보다, 하고 생각하게 만들었었다. 하지만, 그 내면까지 속시원히 긁어주지는 않고 겉돌기만 했기 때문에 여전히 가려움을 앓고 있었는데, 그것을 조금씩 해소를 해주려는 모양인지, 2부에서는 그녀의 과거사가 주를 이룬다. 하지만, 아직 해소되지 않은 것들이 얹혀 내려가질 않으니, 1권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은 한계가 있음이 분명하기에 얼른 2권을 찾아 읽어야겠다, 생각한다. (ps. 1부, 2부, 3부는 연관이 되어있지 않다,라고 자신있게 말하는 서평을 보았었는데, 2부에서 미카엘이 지극히 사적이라 말할 수 없는 것,이 1부에서의 이야기이고, 비우르만의 전신에 쓰여있는 나는 가학증 걸린 돼지요, 개자식이요, 강간범입니다. 이라는 문장 역시 1부에서 만나볼 수 있는 내용들이다. 그렇기에, 1,2,3부에서 다루는 이야기는 전혀 다르겠지만, 결코 따로 국밥처럼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라는 것.)

 

 

 

오탈자 : 273p , 7번째 줄 : 가물에 콩나듯 섞여 있을 뿐이었다. → 가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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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분야의 주목할만한 신간 도서를 보내주세요

 

 

 

 

 

 

 

 

 

 

 

 

 

 

  

황석영 , 낯익은 세상 : 이 얼마 만에 보는 황석영 작가님의 신작이란 말입니까. 실은 저, 작년(2010)에 출간 되었던 「강남몽」은 읽지 않았습니다. 어찌 보면 강남의 꿈,이라는 해석때문이었는데, 아마 그 속에는 그것말고 다른 뜻이 숨겨있을거라 믿어 의심치는 않습니다. 물론, 책 내용을 찾아보았었고, 그 시대를 아우르는 것을 강남몽,이라는 것으로 단정짓는 것이 어쩌면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바리데기」는 수험생 시절, 언어영역에서 단골 문제라 굳이 찾아 읽어보진 않았지만,  전에 읽었던 (혹은, 가장 처음 읽었었던)  「개밥바라기별」을 읽으며 마음이 동하는 것을 느꼈더랬습니다. 몇 일 전, 공선옥 작가의 「꽃 피는 시절」을 읽었었습니다. 먼지로 뒤덮인 그곳에서 꽃을 피우는 사람들의 이야기였지요. 낯익은 세상의 이야기를 얼핏 보니, 그 역시 버려진 문명의 이면 위에서 성장을 하는 이 혹은 무엇,인 것 같습니다.

 

 

현길언 , 유리 벽 : 오월의 마지막 책으로, 하나의 단편을 읽었습니다. 단편이라 했을 때, 어떠한 연결고리가 있어 그 단편을 어우르는 무엇인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저는, 그 책을 읽을 때에는 재미있게 읽었으나, 생각할 무언가,가 없다,라는 까닭으로 별 점수를 최대한 (저로서는) 낮추었습니다. 책 소개를 보고 있노라니, 저 또한 어느 공간에 갇혀있는 기분이 듭니다. 이것은 저뿐만이 아닌, 각자 개개인 모두에게 해당되는 사항은 아닐까요. 작가는 혹은, 작가의 내면들은 유리 벽 혹은 또 다른 공간에서 나올 수 있을까요, 혹은 그곳에서 머물까요. 이 책 역시, 단편이라지만, 눈길이 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네요.

 

 

최인호 ,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 안타깝게도 최인호 작가의 작품은 에세이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덮어두었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다시는 작가의 에세이만큼은 읽지 않겠노라,고. 그것은 작가에 대한 실망이라거나 좌절이 아닌, 또 하나의 희망이었음이 명백합니다. 작가의 에세이는 그의 「인연」, 그것으로는 됐다고 생각했던 오만함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그의 책을 찾아보았으나, 당시 제가 읽기 꺼려했던 역사 소설이라던가, 종교 소설과 같은 책이었음에 내려두었었지요. 그러고서 작가의 신간이 나왔었습니다. 「산중 일기」 - 역시 에세이였기에 덮어두었습니다. 그러다가 이번에야 말로, 읽어야겠다, 생각한 소설이 나왔습니다. 제목에 마음이 이끌립니다. 나 그리고 타인들이 만들어가는 도시입니다. 그 속에서의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저에겐 언제나 어려운 숙제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작가가 들려주는 관게의 고리, 그것의 부조리함. 작가의 생각이 궁금해집니다.

 

 

야쿠마루 가쿠 , 어둠 아래 : 추리 소설이라 했을 때, 히가시노 게이고, 윌리엄 베이어(이 작가는 도대체 언제 책을 낼까요. 흑) 외에는 다른 작가의 책에는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이 작가 역시, 그대로 묻혀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성 범죄요. 하루에도 몇 건씩 발생하는 그것이요. 소녀를 대상으로 한 성범죄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과거 같은 죄를 저지른 전과자들이 목 없는 사체로 발견된다. 이 문장을 읽으며 정말 어떤 사람이든, 그런 짓을 저지른 사람이든 그랬으면 좋겠다, 생각해봅니다. 오랜만에 추리소설에 시선이 갑니다.

 

 

박진규 , 보광동 안개소년 : 도서관에서 「수상한 식모들」을 무려 세 번씩이나 대출한 기억이 있습니다. 쥐가 무언가를 갉아 먹는다 하였었나요.. 사실 제대로 생각나지도 않네요. 몇 번 씩이나 읽으려고 했지만, 결국 포기해버린 책 중 하나입니다. 이야기를 읽고 있는데 갑자기 급커브를 틀며 다른 길로 가버립니다. 그래서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그렇기에 작가의 신간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쳐다보지 않았던 것이. 학교 다닐 때에 그 책을 대출했었으니, 벌써 몇 년이란 세월이 흘렀음에도 사실 아직도 겁이 납니다. 작가는 아무래도 허구가 가득한 물방울같은 이야기를 그려내고 싶은지도 모릅니다. 그 속에서 현실이란 물방울을 찾아 색을 그려넣고 싶은 걸까요. 그 이야기들이 색색깔로 빛나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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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시오페아 공주 - 現 SBS <두시탈출 컬투쇼> 이재익 PD가 선사하는 새콤달콤한 이야기들
이재익 지음 / 황소북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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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익 작가의 「압구정 소년들」을 만난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다시 그의 책을 들었다. 가뜩이나 읽히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멀찌감치 떨어뜨린 책들에 대한 미안함,같은 것이 있어서 일지도 몰랐다. 그저, 이동하는 시간에 틈틈이 읽고자 고른 책이었는데, 전에 읽었던 「압구정 소년들」의 흡입력을 기억해내지 못한 것이 실수라면 실수였다. 하지만 그 실수가 다행으로 여겨지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그렇잖아도 요즘 재미있는 책을 읽고 싶다,며 노래를 부르고 있던 나였는데, 때마침 그 책을 찾은 거지, 싶은 것이다. 그것은 그가 이야기꾼,이라는 것보다는 (그는 내게 그런 호칭으로 불리지 않는다.) 애써 신경을 집중시키지 않아도, 좋아하는 이의 시선에 내 시선을 맞추는 것과 같은 유사한 느낌으로 그의 글을 읽어나갈 수 있는 까닭이리라. 그래서겠지.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가 몇 분 후 도착,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버스 기사님이 서 있지 않고 앉아 있던 나였기에 태우지 않고 떠나버렸음에도 억울한 느낌 없이 줄곧 책을 붙잡고 있을 수 있었던 것이.

 

 

 

책은 다섯 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카시오페아 공주」 , 「섬집 아기」 , 「레몬」 , 「좋은 사람」 , 「중독자의 키스」 - 

‘판타지+미스터리+공포+추리+로맨스’.. 쉿. - 우리 둘만 아는 비밀이에요. -) 첫 번째 단편,에서 자신이 외계인이라는 여자,를 보며 김영하 작가의 단편 「로봇」이 물방울처럼 톡톡 튀어올랐다. 혹시 그녀(카시오페아 공주)가 그(로봇)는 아닐까 하는, 그런 억지를 부리고 싶었는지도 모르지. 다섯 개의 단편들 중 가장 괜찮았던 것은, 단연 중독자의 키스 - 이별의 순간과 맞닥뜨린 순간에 비로소 사랑을 느끼게 되지만, 추억을 떠올릴 만한 사진 한 장조차 남아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장면에서 콧등이 시큰해진다. 하지만 일 년 동안 그녀를 따라다니던 그림자(스토커)가 찍은 사진에서 그녀와 그의 소중한 추억들을 만나게 된다. 그냥 예쁘다, 이야기 자체가. 투명하게 반짝반짝 빛나는, 그래서 눈이 부시다 못해 시린, 그럼에도 금방이라도 깨어질 것처럼 위태로워 손 안에 꼬옥 쥐고 있어야 할 것만 같은 그런 이야기.

 

 

 

하지만, 장르가 바뀌는 단편들을 만나며 작가가 조금 욕심을 내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는데, 그것은 싸하게 만드는 공포에서 상냥한 목소리를 내는 로맨스로 넘어가는 단편을 읽어내려 갈 때에는 약간의 텀이 필요했음이 그 까닭을 여실하게 보여준다. 또한, 다섯 편의 이야기를 만나며 문장의 가벼움,을 재었고, 그만큼 생각할 만한 것이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이 실로 민망스럽기까지 하다. 물론, 「압구정 소년들」 을 읽으며 느꼈었던 회상들을 하나 둘 꺼내어 어루만지기 위해 읽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책을 읽고 나서 생각할 거리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언제나 뒷맛을 떫게 만드는 감과도 같다. 떫은 감 - 문장의 가벼움, 하지만 이것을 달리 생각한다면, 군더더기를 쫙 뺀 하나의 요염한 몸매,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문장 자체는 까탈스럽기 그지없는 내 입맛에 맞진 않았을지언정 버릴 것 하나 없는 것들 뿐이었으니까. - 노곤한 주말에 똑똑, 노크를 하며 찾아온 손님. 이재익 작가가 먹기 좋게 차려놓은 다섯가지 반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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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라네 집
김옥곤 지음 / 책만드는집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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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두둑, 후두둑 .. 호젓한 새벽을 깨우는 소리로, (개인적으로) 잠자리에 들기 전 가장 좋아하는 소리. 그냥 자기가 못내 아쉬워, 읽고 있던 책을 집으려다 이미 다 읽은 것을 확인하고 다음 책을 고르려는데, ‘얼른, 얼른’ 하며 재촉하는 마음에 책을 고르는 손이 덩달아 바빠진다. 아직 읽지 못한 책들 몇 권이 뒤집어져 있지만, 눈에 띈 건 김옥곤 작가의  「미라네 집」 - 장르에 있어서 작가를 따지는 편은 아니나, 오밀조밀하게 모여 있는 틈, 그곳에서조차 섬세함을 엿볼 수 있다,는 까닭에 ‘사랑’에 관한 한 남성작가보다는 여성작가를 선호하게 된다. 사실, 남성작가라 하여 그런 면이 없는 것도 아닐테지만, 사랑에 있어 남성작가들의 남성인 척, 하려는 이유 때문에 묵직하게 다가오는 것이 알레르기처럼 거부반응을 일으킬 때도 있다는 점이 그들을 멀찌감치 떨어뜨려 놓는다. 이 역시 그럴 것 같았고, 인터넷에 떠도는 소개글 역시 ‘첫사랑’을 담담하게 그려낸 책,이라 적혀 있기에 약간은 부정적인 시선을 거둘 수 없었음이 사실이다. 예순,이라는 작가의 나이를 미루어 볼 때, 담담하게 그리는 것도 당연하지 않은가, 생각하지만 도대체 누가 사랑 앞에서 담담할 수 있는가, 말이다. 그것도 흘러간 세월때문,이라는 초라한 까닭으로. 그럼에도, 흘러간 노래 중 ‘남자의 첫사랑은 무덤까지 간다’는 유행 가사라던가, ‘남자는 첫사랑을 가슴에 묻고, 여자는 마지막 사랑을 가슴에 묻는다’라던가 하는 구절들이 있듯이, (물론, 개개인마다 다르겠지만) 남성작가가 그려내는 첫사랑은 그간 여성작가가 드러내 보여주었던 예쁘고 알싸함을 넘어 어떤 세계일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출사간 경주에서 아버지와의 비밀스러운 만남을 했었던 ‘그녀’를 만나게 되고, 그녀를 찍는다. 오래 전, 아버지가 그녀를 찍었듯이. 그리고 그 날, 역광이 비추는 회화나무 아래서 파나마모자를 비스듬히 쓰고 두눈박이 사진기를 내려다보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는 ‘나’ - <역광 속으로> , ‘운예 - 성자 - 금동’ 그들의 운명과 행적이, ‘나’를 통해 관찰되어 이야기되는 - <비천, 그 노을 속의 날갯짓> 그 외에 <신경초> , <미라네 집>, <해술이> , <목사와 고양이> , <슬픈 이중주> , <아버지의 선물> - 한 편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자면, 단연 <미라네 집>이다. 사실 난 이 이야기가 어떤 것을 말하고자 하는지를 모르겠고, 그로 인한 메스꺼움이 거북스럽기까지 하다. 화자는 오미라,라는 여자가 자신의 첫사랑이라 말하지만 책을 읽는 독자가 알 수 있는 것은 여자가 고향이 부안이고, 향수병으로 젊은 날에 죽었다는 것 말고도 화자는 우연치 않게 첫사랑의 이름을 딴 ‘미라네 집’이라는 카페에 가게 된 것, 그 뿐이다. 하다못해 첫사랑에 대한 어떤 감정도 글에서는 느낄 수 없다. 이것은 추리소설을 쓰겠다는 사람이 앞 뒤 설명하지 않고 범인은 -였다,라고 말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 말이다. 저자가 옆에 있었다면, 왜 하필 이 단편이 이 여덟 편을 아우르는 제목이 되었는지, 이것을 읽고 독자가 어떤 생각을 하길 바랬느냐,고 끈질기게 물었을지도 모르겠다, 생각한다.

 

 

 

난 결국 총 여덟 개의 단편 중, 가지런하게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는 작품은 단 한 작품도 없었음을 고백한다. 그것을 방해하는 것이 있었다기 보다는 단편이고, 단편이라서, 단편이기에 그들이 쳐둔 프레임의 영역이 명확하게 구분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무너졌기 때문이리라. 여덟 개의 단편 속 화자는 모두 중년의 남성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작가의 고집스러울 정도로 비슷한 문체들때문인지 그들의 상황과 그들이 추억하는 것만 다르다 뿐, 그들에게서 개성을 찾아볼 수는 없었는데, 그로 인해 인물이 주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가 주체가 되는 기분이었달까. 그것이 작가의 의도인지 아닌지는 분명치 않으나, 풍경 앞에 인물이 있는 것이 아닌, 인물 뒤에 풍경이 있다고 생각하며 책을 읽는 나로서는 작가에 대한 괴리감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 한 가지 더,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이 작품은 첫사랑,이 아니라 ‘추억’이었다. 작품 마다 마다에 발담금 되어 있는 추억들이 저마다의 깊이에서 물장구를 쳐댔다. 그것으로 튀어오르는 물방울들이 각기 다른 빛깔을 뽐내지만, 그것이 내 눈에 비치지 않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따라서 그의 다음 작품이 단편이 아닌 장편이라면, 다시 만나보고 싶다는 소망을 안은 채, 여운도 남기지 못하고 덮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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