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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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9일, 「헬로우 고스트」를 보기 전, 아이들… 포스트를 봤고, 그에게 우리 요거 나오면 꼭 보자! 했었더랬어요. 그러다가 이 영화가 드디어 나왔다며 요고 보자며, 언제 볼까? 하며 좋아했지요. 개봉한지 열흘이 넘었지만, 이 영화를 보겠다는 집념 하에 예매를 해두고는 마음 편하게 봤어요. 그러다가 시작된 영화,... 두둥.! 기대만큼 실망한 탓일까요. 실화를 밑바탕에 깔아두고 만든 영화이기에 실망을 했느니, 어쩌느니 말하는 것도 웃기네요. 그런데 영화를 보며 김승우·김남주 주연 「그놈 목소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어요. 똑같이 실화이고, 영화의 기본 구성 또한 비슷하긴 하지만, 너무 다른 두 작품이지요. 사실 「그놈 목소리」를 보면서는 실종 **일째,라는 그 밑에 뜨는 자막이 싫어서 언제쯤 십여일째가 되고, 사십여일째가 될까.- 그것만 기다리다 보니, 그 과정이 지루했더랬지요. 그런데 적어도 이 영화에서는 그러지 않아요. 헌데, 필요없는 부분들이 가미된 것도 이 영화가 별로,라고 말을 할 수 있게 만드는 까닭도 있겠지만, 낚시질이 너무 심해요... (-.-) 자칫하면 스포가 되니 말은 하지 못하겠지만, 후우 - 어찌됐든, 그래요. 또한, 「그놈 목소리」에서는 범인을 찾는 과정에서, 그리고 부모의 오열과 그 속에서 끓어오르는 눈물이 내 눈물샘을 터뜨렸다면, 이 곳에서는 그런 감정 개입이 조금 배제된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아마 컷트시킨 것이겠지요. 아비,어미된 도리로써 어찌 자식을 찾지 않았을까요. 그럼에도, 그래도, 라는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어요. 하지만 영화를 보기 전, 이웃분의 아이들… 포스팅을 보게 되었어요.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공소시효’라는 것,이라고. 영화를 다 보고 나서야, 그 부분이 떠올랐어요. 아, 그랬지...하며. 도대체 ‘공소시효’라는 것이 도대체 누구를 위한 법인가요. 한 명의 가해자도 잡지 못하고, 매일 헛스윙질하시는 경찰분들을 위해 내린 특권은 아닐까요. 씁.. 결말이 어찌됐든, 보고나서 마음이 편치 않은 영화인 것은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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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러브 - G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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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선수 '김상남' ㅡ 술먹고 야구방망이로 사람을 쳐서 이꼴을 하고 누워있는 그.

 
 




 

그런 그에게 매니저 철수 혹은 찰~스는 이미지 관리를 위해 반성의 기미를 보이라며

청각 장애인 야구단인 '충주성심학교'에 코치로 보낸다.





 

하지만 그는 그 상황이 그저 달가울 리만은 없다.

코치라는 사람의 복장이, 쩝….




 

 

 

투수를 하던 학생이 다쳐서 그만 두고 하지 않겠다,하며 나가는 바람에

투수의 자리는 공석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그는 후천성 청각 장애인인 차명재가 전의 학교에서 투수였다는 것을 알고

그에게 투수가 되어주길 요청한다.

 




 

 

 

어찌됐든 김상남은 마음을 채 열지 못한 채 훈련을 시작한다.

 



 






 

 

끌려서 보는 영화, 그리고 끌리지 않는 영화. 이 영화는 후자였다.

친구에게 공짜표가 생겼다며 보러가자는 것이 아니었다면 아마 보지 못했을 터.

영화가 끌리지 않았던 것은 야구의 '야'자도 모른다는 핑계도 작용했겠지만,

어쩌면 한 켠에 거부감이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아이들을 데리고 야구를 한다니, 이건 눈물 뽑자는 수작이 아닌가,

생각했고 역시나 그것은 딱 들어맞았다.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울었다 -.- 질질질.



 

 

그런데 영화를 다 보고 나오는데 '국가대표'가 생각나더라.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왜일까. 영화의 프로모션이 같았던 것도 아닌데 왜, 왜, 왜.

어쨌든 난 그들의 노력이 -이렇게 표현하면 안되지만- 가여웠다. 그리고 놀랍다. 원더풀이다.

요근래 주구장창 추리소설을 고집하던 내게 열정이라는 것을 맛보여준다.

삶의 동기부여를 탄탄하게 해준다. 참, 괜찮았다,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너희들이 흘린 땀만 믿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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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로우 고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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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심장이 뛴다」를 보기위해 들린 대전 아카데미. 인터넷에서 시간을 보고 간 우리는 16:10 영화를 보기 위해 갔는데, 인터넷과는 시간이 다를 수도 있다는 직원의 말에 조금 황당,하긴 했지만, 그 다음 영화는 17:40… 흑, 그래서 결국은 보게 된 「헬로우 고스트」 음, 글쎄. 강력 추천한다던 내동생의 말과 웃기고도 슬픈데, 반전까지 있다던 친구의 말. 그래서 전에 인터넷을 뒤져보니 슬프다는 내용이 줄을 이어 본 것인데, 보면서도 어디가 슬픈거야? 반문하게 되는. 결말에 다가가서 아, 이거 - 하게 만드는. 하지만 중요한건 웃음이 나오는 장면이 많지 않았다는 것 -.,- 내가 그 개그(?)를 이해하지 못한 탓일까. 특별히 하하호호 웃을만한 웃음코드를 찾지 못했을 뿐더러, 슬픔코드가 깊은 것도 아니었던 것 같다. 나는 감정이 메마른겐가요. 영화보면서 자는 것이 처음 있었던 일도 아니건만, 배우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잔 것은 또 처음. (-_-) 분명 난 상만과 꼴초귀신이 차를 훔치러(?) 갈 때 잠든 것 같은데, 어느 새 바다에 뛰어들고 있었다. 슬픔코드가 나는 다른 사람들의 반대편에 있는 것인지 영화보면서 쓸데없는 곳에서도 눈물을 흘린 경우가 많았는데, (국가대표를 보면서도 질질 짜댔던 나인데, 아직도 똑같은 곳에서 우는 나 -.,- ) 울라고 만든  영화에 울지 않은 적은 또 오랜만인 듯 싶다. 2011년 첫 영화였는데, 그는 영화표까지 버렸다. -_- (뭐, 사실 그 이유때문에 버린 것은 아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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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괴된 사나이 - a man of vende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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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수는 딸이 유괴되고 신들에 대한 믿음을 져버린 채,

걷고 있던 목사의 길을 박차고 나와버린다.

 





 

 

자신이 8년이나 키웠다는 범인 - 최병철

뭐가 그렇게 당당하신가.

 

 







오랜만에 영화나 볼까, 해서 기웃기웃거렸는데 마땅히 볼만한 영화가 없어서 친구에게 sos를 청했다. 친구에게 있는 영화가 몇 편 되는 모양인데 개중 가장 눈에 확연히 들어온 영화는 요것.! 그와 이 영화가 나올 때 즈음 영화 나오면 꼭 보자!했던 영화였는데, 바빴던 고새를 못참고 막을 확, 내려버린 요것. 아쉬움이 배로 남아 나중에라도 한번 봐야지, 하던 참이었다. 그렇지만 네이트온 전송은 무척이나 느렸고, 전송하는데 거의 하루를 다 써버린 듯한 -.,- 어찌됐든, 영화는 청소년 관람불가라는 타이틀에 걸맞춰 잔인했다. 잔인한 것을 못보는 나로서는 참 힘겨운 영화였지,싶다. 그것도 혼자였으니…. 영화를 보며, 누가 날 죽이려고 뒤에 있진 않을까, 뒤를 슬쩍슬쩍 돌아보며, 조이는 심장을 부여잡고 보았더랬다. 하지만 평은 그다지 좋지 않다. 각본때문이라는 평도 많으나, 결말이 밋밋하다는 평도 한 몫 하는 것 같다. 싸이코라는 이유만으로 아이들을 유괴하고, 납치한다는 설정은 좀 아니지 않은가, 싶으면서도 정말 저 사람 저런 사람 아니야? 싶을 정도로 능수능란함을 가감없이 보여준 최병철 역인 엄기준의 연기에 혼이 쏙 빠지도록 보았던 것 같다. 각본은 그렇게 배우의 연기로 조금 묻어지나 싶었다. 하지만, 이 영화와 거의 비슷한 「세븐데이즈」와 같은 반전을 꿈꾸지 않았던 것도 아니었지만, 결말은 허무하게도 아 - 이게 끝이야? 라는 말이 절로 나오니, 재미있게 봐놓고서도 억울하다는 기분이 든달까. 다른 이들은 긴장감이라던가, 긴박감이 들지 않았다고 했지만, 나는 둘이 대화하는 부분에서 소름이 쫙 끼쳐서.. 특히 엄기준의 악의없는 듯한 웃음이 자꾸만 뇌리에 와서 박혀서 - 그래, 배우들의 연기는 참 좋았다. 김명민, 엄기준, 김명민의 딸 역할로 나온 아역의 연기까지. 누구 하나 모자름이 없는. (하지만 요즘 김명민의 영화선택이 참 -.,- 내사랑 내곁에도 그렇고, 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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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말했다 : 우리를 닮은 그녀의 이야기
김성원 지음, 김효정 사진 / 인디고(글담)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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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오랜만에 그를 만나러 가는 기차 안에서 읽을 만한 가벼운 책이 필요했다. 결코 소설이어서는 안되었다. 그것은 흔들리는 기차 안에서는 집중하기가 힘들다,라는 생각도 물론 있었지만, 난 집중을 못한 적이 없는 나로서는 소설은 내가 내릴 때의 역이 되어서도 끝까지 손에 놓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 까닭이다. 그럴 땐 역시 에세이가 최고지,하며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마음의 동반자로 데려갔던 책. 「그녀가 말했다」- 모든 감성 에세이가 그러하듯, 쫙 펴면 책 한 권이 손바닥에 견줄 만하고 두께는 감질맛날 만큼 얇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날 잡아끄는 것은 갈색 빛이 감도는 표지였는데, 이것은 스탠드를 켜고 봐도 예쁠 터인데 - 기차의 창문이 잔뜩 머금은 햇살에 갈색 빛이 더 영롱하게 비쳐져 한참을 쳐다보았다. 이토록 예쁜 책이 어떤 이야기들을 품고 있는지, 기차가 출발함과 동시에 이야기들이 오밀조밀하게 모여있는 것을 확인하고 그제서야 책을 펼친다.

 

 

 

쓰러졌지만 타는 가슴이 있던 하루, 일주일, 한 달, 그리고 몇 년간의 우리 청춘의 노래들’ 이라는 문장이 추천의 글로서 나를 맞이했는데, 사실 책을 다 읽고 난 뒤에 이 글을 보면 갸우뚱거리게 된다. 내가 마지막까지 읽은 것은 ‘사랑’이라는 것으로 국한되어 있지 않았던가. 간혹 ‘꿈(미래)‘에 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것은 ‘사랑’이라는 주제에서 완전히 어긋나지 못한다. ‘사랑’이란 추상적 대개념 속에서 꼼틀대는 소개념일 뿐, 철저히 분리되지 못하는 것이다. 그저 공감하고자 가볍게 읽은 감성 에세이에 이러쿵 저러쿵 논하고자 하는 내가 참 우습기 그지없다. 시각을 약간만 바꾸면, 위와 같은 문장은 청춘은 곧 사랑,이라는 것이고, 역으로 생각해보자면, 사랑없는 청춘이 가능한가 - 인데, 내 청춘의 모든 주소엔 사랑이 있었고, 그로 인해 나는 성장했고, 또 여전히 성장 중이기에, 그같은 물음엔 아니,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제서야 안 게다.

 

 

 

“몇 번이나 따라부르고 잊었어?” 그녀는 “이만큼. 더 이상 눈물이 나오지 않을 만큼.”하고 두 팔을 벌리면서 말하더니, 곧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 “이상해. 지금은 그 사람이 보고 싶지 않아. 내가 견딜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아팠거든. 그래서 잊었어. 그런데 가끔…… 목에 뭐가 걸린 것 같고, 심장에 가시가 돋는 것처럼, 아파.” (…) “노래를 들어서 그렇지. 나도 가끔 그래. 아무 일 없는데도, 슬픈 노래를 들으면 어제 헤어진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아무 일이 없는데도 슬픈 노래를 들으면 시선이 멈추는 곳에서 별안간 덜컹거리던 기차가 멈췄다. 광명역이라는 곳에서 기차에 문제가 생긴 것. 기차에서는 안내 방송으로 승객을 안심시키려 애쓰는 기관사가 있었다. 그리고 채 눈을 떼지 못한 책 속에는 수명이 다 한 사랑을 여전히 꼭 붙들고 있는 그녀를 위로하는 나(저자, 혹은 실재의 나)가 있었다. 나도 그런 적이 있노라고, 세상엔 잊을 수 없는 것 없고, 잊을 수 있는 것 없다고. 그저 무뎌지는 것이라며 책 속의 모든 것에 추억이 묻어 있었고 그래서 모든 것이 아팠던 것이다 ㅡ 그녀를 향해 날아드는 일만 개의 뾰족한 화살 는 말을 인용한다. 그리고 이제는 가물가물해진 오래 전의 그 기억들을 회상하고, 현재의 내 행복한 순간들에 감사하는 내가 있다.

 

 

 

“연애할 때 가장 안타까운 게 뭔지 알아? 처음 만난 날의 기억이 희미해진다는 거야.” ㅡ 기억은 희미해진다 이 말에 깊이 공감하고, 동감한다. 많진 않지만 나 역시 몇 번의 연애를 하면서 느낀 것 중 하나가 ‘처음’이라는 단어의 상실이었던 게다. 추억이 생길 때면, 그보다 전의 추억은 희미해지기 마련이고, 그것의 반복이다. 나는 그것이 늘 아쉽고, 또 그립다. 오래 전의 그런 아쉬움들로 점철되어진 그것들로 현재의 나는 지금 내 옆에 있는 그와 과거의 이야기를 자주, 또 오래 하게 된다. 그러면서 우리는 불과 일년 전의 그것들을 재연할 때면 “우와, 오랜만이다. 그치?” 라거나, 우연히 한 행동이 전의 기억을 회상하게 할 때면 “우리 예전엔 이런 것도 자주 했었는데….” 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데, 그것은 반가움을 동반한 기쁨으로 안면에 웃음을 띠게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나는 추억을 켜켜이 쌓아두는 것이 아닌, 옆에 나란히 놓아두는 법을 배우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기록한다. 행복을 다시 꺼내보기 위해, 행복했던 순간들을 다시 살기 위해. ㅡ 사라지지마, 내 곁에서

 

 

 

그를 만나고 즐거운 한때를 보낸 뒤 집으로 향하는 기차에서 책을 다시 펼쳤다. 이야기는 이어지지 않고, 또 새로운 이야기 시작이다. 기차에서 읽으면 이래서 좋다. 이게 무슨 내용이더라? 라며, 앞의 page를 넘겨보지 않아도 된다는 것. 그러다 핸드폰을 잡고 있는 내 손이 바빠지기 시작한다.  “그냥 이런 생각이 들었어. 만일 꼭 이루고 싶은 소원이 있다면, 항상 그 소원을 마음에 새기고 있어야 해.” 자신이 원하는 걸 정확히 알고 있을 것. 완전한 형태를 갖지 못한 소원은 이루어지기 힘들다. 기회는 별똥별처럼 나타나 안개처럼 사라지니까. ㅡ 별똥별이다 꿈을 닮아가기 위해 손을 뻗고 있는 그와 나, 그리고 나의 지인들 모두가 마음 속에 새겨두어야 할 문장이었다. 바셋 하운드, 엘비스를 읽으며 사냥개 엘비스처럼 나 역시도 안락한 생활 속에 녹아들어가 잊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 생각했고, 별은 별빛을 찾는 사람을 위해 빛난다를 읽으며 항상 꾸었던 꿈을 어느 순간 잊고 있었다는 질책을 나의 내면으로부터 받아야만 했다.

 

 

 

이렇듯 책 속의 그녀는 여전히 끊임없이 조잘조잘거리며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그녀 혹은 저자는 늘, ‘완전한, 완성된’이 아닌 ‘불완전한, 미완성된’ 것들만을 스스럼없이 내보여주고 있다. 불완전하고 미완성된 것을 완전하고 완성할 수 있는 방법으로 다가가는 해결책을 넌지시 제시해주지만, 그것 또한 결코 완전한 것이 아닐 터. 그녀 혹은 저자 역시 나와 같은 상태로 아직 불완전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일 것이라는 서투른 판단을 내려본다. 그저 나는 나보다 조금 더 폭 넓은 안목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고, 그 속에서 공감을 하고, 그것을 되새김질하며 또 하나의 책을 기억한다. 그리고 바래 본다. 책 속의 그녀들이, 그리고 그녀들을 똑 닮은 내가, 행복으로 번지기를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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