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말했다 : 우리를 닮은 그녀의 이야기
김성원 지음, 김효정 사진 / 인디고(글담) / 2011년 1월
평점 :
절판


 

 

오랜만에 그를 만나러 가는 기차 안에서 읽을 만한 가벼운 책이 필요했다. 결코 소설이어서는 안되었다. 그것은 흔들리는 기차 안에서는 집중하기가 힘들다,라는 생각도 물론 있었지만, 난 집중을 못한 적이 없는 나로서는 소설은 내가 내릴 때의 역이 되어서도 끝까지 손에 놓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 까닭이다. 그럴 땐 역시 에세이가 최고지,하며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마음의 동반자로 데려갔던 책. 「그녀가 말했다」- 모든 감성 에세이가 그러하듯, 쫙 펴면 책 한 권이 손바닥에 견줄 만하고 두께는 감질맛날 만큼 얇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날 잡아끄는 것은 갈색 빛이 감도는 표지였는데, 이것은 스탠드를 켜고 봐도 예쁠 터인데 - 기차의 창문이 잔뜩 머금은 햇살에 갈색 빛이 더 영롱하게 비쳐져 한참을 쳐다보았다. 이토록 예쁜 책이 어떤 이야기들을 품고 있는지, 기차가 출발함과 동시에 이야기들이 오밀조밀하게 모여있는 것을 확인하고 그제서야 책을 펼친다.

 

 

 

쓰러졌지만 타는 가슴이 있던 하루, 일주일, 한 달, 그리고 몇 년간의 우리 청춘의 노래들’ 이라는 문장이 추천의 글로서 나를 맞이했는데, 사실 책을 다 읽고 난 뒤에 이 글을 보면 갸우뚱거리게 된다. 내가 마지막까지 읽은 것은 ‘사랑’이라는 것으로 국한되어 있지 않았던가. 간혹 ‘꿈(미래)‘에 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것은 ‘사랑’이라는 주제에서 완전히 어긋나지 못한다. ‘사랑’이란 추상적 대개념 속에서 꼼틀대는 소개념일 뿐, 철저히 분리되지 못하는 것이다. 그저 공감하고자 가볍게 읽은 감성 에세이에 이러쿵 저러쿵 논하고자 하는 내가 참 우습기 그지없다. 시각을 약간만 바꾸면, 위와 같은 문장은 청춘은 곧 사랑,이라는 것이고, 역으로 생각해보자면, 사랑없는 청춘이 가능한가 - 인데, 내 청춘의 모든 주소엔 사랑이 있었고, 그로 인해 나는 성장했고, 또 여전히 성장 중이기에, 그같은 물음엔 아니,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제서야 안 게다.

 

 

 

“몇 번이나 따라부르고 잊었어?” 그녀는 “이만큼. 더 이상 눈물이 나오지 않을 만큼.”하고 두 팔을 벌리면서 말하더니, 곧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 “이상해. 지금은 그 사람이 보고 싶지 않아. 내가 견딜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아팠거든. 그래서 잊었어. 그런데 가끔…… 목에 뭐가 걸린 것 같고, 심장에 가시가 돋는 것처럼, 아파.” (…) “노래를 들어서 그렇지. 나도 가끔 그래. 아무 일 없는데도, 슬픈 노래를 들으면 어제 헤어진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아무 일이 없는데도 슬픈 노래를 들으면 시선이 멈추는 곳에서 별안간 덜컹거리던 기차가 멈췄다. 광명역이라는 곳에서 기차에 문제가 생긴 것. 기차에서는 안내 방송으로 승객을 안심시키려 애쓰는 기관사가 있었다. 그리고 채 눈을 떼지 못한 책 속에는 수명이 다 한 사랑을 여전히 꼭 붙들고 있는 그녀를 위로하는 나(저자, 혹은 실재의 나)가 있었다. 나도 그런 적이 있노라고, 세상엔 잊을 수 없는 것 없고, 잊을 수 있는 것 없다고. 그저 무뎌지는 것이라며 책 속의 모든 것에 추억이 묻어 있었고 그래서 모든 것이 아팠던 것이다 ㅡ 그녀를 향해 날아드는 일만 개의 뾰족한 화살 는 말을 인용한다. 그리고 이제는 가물가물해진 오래 전의 그 기억들을 회상하고, 현재의 내 행복한 순간들에 감사하는 내가 있다.

 

 

 

“연애할 때 가장 안타까운 게 뭔지 알아? 처음 만난 날의 기억이 희미해진다는 거야.” ㅡ 기억은 희미해진다 이 말에 깊이 공감하고, 동감한다. 많진 않지만 나 역시 몇 번의 연애를 하면서 느낀 것 중 하나가 ‘처음’이라는 단어의 상실이었던 게다. 추억이 생길 때면, 그보다 전의 추억은 희미해지기 마련이고, 그것의 반복이다. 나는 그것이 늘 아쉽고, 또 그립다. 오래 전의 그런 아쉬움들로 점철되어진 그것들로 현재의 나는 지금 내 옆에 있는 그와 과거의 이야기를 자주, 또 오래 하게 된다. 그러면서 우리는 불과 일년 전의 그것들을 재연할 때면 “우와, 오랜만이다. 그치?” 라거나, 우연히 한 행동이 전의 기억을 회상하게 할 때면 “우리 예전엔 이런 것도 자주 했었는데….” 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데, 그것은 반가움을 동반한 기쁨으로 안면에 웃음을 띠게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나는 추억을 켜켜이 쌓아두는 것이 아닌, 옆에 나란히 놓아두는 법을 배우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기록한다. 행복을 다시 꺼내보기 위해, 행복했던 순간들을 다시 살기 위해. ㅡ 사라지지마, 내 곁에서

 

 

 

그를 만나고 즐거운 한때를 보낸 뒤 집으로 향하는 기차에서 책을 다시 펼쳤다. 이야기는 이어지지 않고, 또 새로운 이야기 시작이다. 기차에서 읽으면 이래서 좋다. 이게 무슨 내용이더라? 라며, 앞의 page를 넘겨보지 않아도 된다는 것. 그러다 핸드폰을 잡고 있는 내 손이 바빠지기 시작한다.  “그냥 이런 생각이 들었어. 만일 꼭 이루고 싶은 소원이 있다면, 항상 그 소원을 마음에 새기고 있어야 해.” 자신이 원하는 걸 정확히 알고 있을 것. 완전한 형태를 갖지 못한 소원은 이루어지기 힘들다. 기회는 별똥별처럼 나타나 안개처럼 사라지니까. ㅡ 별똥별이다 꿈을 닮아가기 위해 손을 뻗고 있는 그와 나, 그리고 나의 지인들 모두가 마음 속에 새겨두어야 할 문장이었다. 바셋 하운드, 엘비스를 읽으며 사냥개 엘비스처럼 나 역시도 안락한 생활 속에 녹아들어가 잊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 생각했고, 별은 별빛을 찾는 사람을 위해 빛난다를 읽으며 항상 꾸었던 꿈을 어느 순간 잊고 있었다는 질책을 나의 내면으로부터 받아야만 했다.

 

 

 

이렇듯 책 속의 그녀는 여전히 끊임없이 조잘조잘거리며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그녀 혹은 저자는 늘, ‘완전한, 완성된’이 아닌 ‘불완전한, 미완성된’ 것들만을 스스럼없이 내보여주고 있다. 불완전하고 미완성된 것을 완전하고 완성할 수 있는 방법으로 다가가는 해결책을 넌지시 제시해주지만, 그것 또한 결코 완전한 것이 아닐 터. 그녀 혹은 저자 역시 나와 같은 상태로 아직 불완전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일 것이라는 서투른 판단을 내려본다. 그저 나는 나보다 조금 더 폭 넓은 안목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고, 그 속에서 공감을 하고, 그것을 되새김질하며 또 하나의 책을 기억한다. 그리고 바래 본다. 책 속의 그녀들이, 그리고 그녀들을 똑 닮은 내가, 행복으로 번지기를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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