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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폴 오스터 지음, 이종인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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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속의 이야기’ , ‘소설 속의 소설’이라 불리는 액자소설을 나는, 오래전 중·고등교를 다닐 때에 구운몽이라던가, 무녀도, 배따라기 등을 통해 이미 접한 바 있고, 가장 최근에는 치트라 바네르지 디바카루니의 「마지막 고백」에서 만나본 적 있다. 가장 최근에 만나보았던 그 책은 하나의 이야기에 국한되어 있는 것에서 벗어나 또 다른 이야기를 추구하는 것은 분명 매혹적으로 다가오는데도 불구하고 무려 아홉 명의 생을 어루어 만지려니 조금은 벅차게 전개되는 이야기였기에 여운을 느끼기 보다는 그저 활자를 따라가기에 바빴었음이 매우 아쉽게 느껴졌었던 작품이었다. 그럼에도 그것은 베일에 쌓인 이야기를 풀어헤쳐 보는 것과 같은 비밀스러움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는데, 이번에 내가 접한 작품 폴 오스터의 「보이지 않는」 역시, 앞서 말한 액자식 구성으로 한 사람의 회고록을 읽어나가게 된다. 시대는 1967년과 2007년. 40년의 간극에 나는 그 속에서 제대로 유영할 수 있을 것인가.

 

 

 

나는 1967년 봄에 그와 처음으로 악수를 했다. 당시 나는 컬럼비아 대학 2년생이었고 책만 좋아할 뿐 아무것도 모르는 숙맥이었다. 하지만 언젠가 훌륭한 시인으로 이름을 날려 보겠다는 믿음 (혹은 망상) 하나만은 굳건했다. 애덤 워커, ‘’는 기억이 증발되어 누군지 모를 누군가에 의해 어느 파티에서 어울리지 않는 커플처럼 보이는 루돌프 보른과 마고를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지만, 어떻게 그 파티장을 빠져나왔는지, 그들에게 작별인사는 했는지조차 모르는 그 이야기가 시발점이 된다. 그러던 어느 날, bar에서 우연치않게 만난 나에게 보른은 문학잡지 창간에 참여를 제안하고, 나는 잠시 주춤,하지만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에 수락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이야기에 발동이 걸리게 된다. 보른의 집에 초대를 받은 나는 마고에게 매혹되었느냐, 어느 정도로 매혹되었느냐, 안아보고 싶을 만큼? 동침하고 싶을 만큼? 이라고 묻는 보른에게 이상한 점을 느끼지만, 이내 술에 많이 취했을거라는 판단 아래 가벼이 무시한다. 하지만 나는 보른의 수법에라도 말린 듯 른이 집을 비운 닷새동안 마고와 쾌락을 즐기고, 마고는 결국 보른에 의해 프랑스로 쫓겨나지만, 보른은 그런 나에게 화를 내기는커녕 귀찮은 존재를 정리하게 해줘서 고맙다고 이야기한다. 잡지 제작에 앞서 저녁을 먹기 전, 가볍게 산책을 하던 도중 어린 강도를 보른은 칼로 찔러 죽이는(정확한 것은 아무도 모르지만)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나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는 사건이었고, 그 사건으로 결국 수표를 찢어 보른에게 우편으로 보내는 것으로 문학잡지 창간은 물거품이 된다.  여기까지가 제 1장 ‘’이다.

 

 

 

나는 나의 접근 방법이 틀렸음을 알았다. 나 자신을 1인칭으로 서술함으로써, 나는 나 자신을 질식시켰고 <보이지 않는> 존재로 만들었다. 그리하여 내가 찾고 있던 것을 찾는 게 불가능해졌다. 나를 나 자신으로부터 떨어트릴 필요가 있었고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나 자신과 나의 주제 (바로 나 자신) 사이에 약간의 공간을 두는 것이 필요했다. p96 보른을 떠나보낸 봄의 자리에 나뭇잎이 푸르딩딩한 여름이 차지했다. 현재 ‘’는 <하품의 성>에서 지루한 작업들을 하고 있고, 웨스트 107번가에선 누이 그윈과 함께 살고 있으며 부모님의 차가운 관계에 대해서, 남동생 앤디의 죽음에 대해서, 여러 해 전 봄 방학 때 함께 쓴 희곡에 대해서 얘기를 한다. 그러나 금지된 동거는 근친상간을 불러 일으키게 된다. 1장에서 이야기의 축이 보른이었다면, 2장에서는 그윈이 된다. 3장, 가을. 교환학생으로 파리에 간 ‘’는 노천카페에서 우연하게 보른과 재회하면서 봄에 있었던 살인을 보른과 결혼할 여인인 엘렌 쥐앵과 세실 쥐앵을 이용하여 퍼뜨리려 한다. 하지만…, , 여름, 가을,까지 왔으면 겨울도 당연히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라는 반응은 지극히 정상적이다. 겨울은, 애석하게도 ‘, , ’ 가 아닌 타자에 의해 완성된다.

 

 

 

이야기는 위와 같이 봄, 여름, 가을로 갈수록 나, 너, 그 (1인칭,2인칭,3인칭)으로 변화된다. 애초에 그 시점 변화를 알고 있던 난 그것이 복잡하고 산만할 것이라고 추측했고, 그것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출근해야지,라고 생각하는 것 만큼이나 따분한 생각이었음을 밝히는 바이다. 시점 변화는 출근해야지, 생각했던 그 날이 바로 일요일인 것 만큼의 흥미로움을 주는 것이다. ‘내’가 ‘그’가 될수록 이야기는 조금 더 객관적이고 세밀해지는데, 그것은 내가 움직이는 것,을 쓰는 것이 아닌, 내가 움직이고 있는 것을 보고 있는 것,을 쓰는 것인 까닭이다. 그렇기에 2장에 나왔던 근친상간도 그렇게까지 세밀해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것이 나,너,그의 현실이든, 허구이든-. 그런데 서평을 쓰다보니, 이건 액자식 구성이 아니다, 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것은 전적으로 액자식 구성의 핵이 되는 짐이 빠진 것이 원인인데, 사실 나는 이 서평에 그의 존재가 부재하길 원했다. 물론 그 인물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아니, 짐,은 이 책을 세상에 태동케 만든 가장 중요한 인물이다,라고 볼 수 있겠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 「보이지 않는」이라는 이 작품은 순전히 애덤 워커의 중심인 까닭이리라.

 

 

 

오랜만에 참 재미있는 책을 만났음이 실로 반갑다. 실은, 누군가의 블로그에서 ‘폴 오스터’라는 작가의 책은 어려워서 이해할 수 없다,라는 말을 보아서 나 역시도 지레 겁먹고 책을 펴기조차 두려워했음이 책을 붙잡고 있었던 일주일이라는 긴긴 시간이라는 증거에 여실히 드러난다. 그래서 재미있게 읽고 있는 동안에도 내가 읽고 있는 이 내용이 맞는 것인가, 자문하고 또 자문해야만 했다. 그렇다. 나는 이 책을 읽을 때, 나는 그런 재미없는 글읽기를 했던 게다. 그래서 책의 2장인 여름을 막 끝냈을 때, 과감히 덮고 새로이 1장의 봄으로 돌아가 시작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나 역시 이 책을 오롯하게 이해했다, 말할 수 없는 것이 결말에서 숨이 턱, 막혀버린 까닭이다. 아직도 나는 그 결말에 서서 그들이 망치로 돌들을 내리찍는 걸 보고 있다. 언젠가는 무릎을 탁 치며, 아! 하는 순간을 기다리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지금은 멈추어 서서 이렇게 바라볼 수밖에 없음을 안다. (역자의 해설은 언제나 이런 아이러니한 부작용을 낳는다. 그럼에도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에 대한 궁금증은 참을 수 없기에 들여다 보는데, 또 긴 한숨이 흘러나온다. 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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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행관람차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27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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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토 가나에의 신작 소식은 언제나 가슴 두근거림을 유발한다. 그녀의 작품을 읽어보세요,라고 이야기 한다면, 구태여 까닭을 설명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지만, 그 식상한 까닭이라함은 아마 프레임 자체에서 풍기는 흥미로움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실은 나, 시점이 시시각각 달라지는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것은 다른 시점에서는 조연이라 하더라도, 각자의 시점에선 그 각자가 주연이 되어야한다고 생각하는데, 그 인물 자체가 주연이 아닌, 그저 그를 통해 주변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 집어넣는 식이 많은 것도 한 몫한다. 게다가 이야기의 동선이 교차하는 시점에서 작가가 어떻게 끌어내느냐 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이야기가 신선하리만큼 새롭게 시작되는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이중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스토리를 원한다는 것인데, 이중적인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설명하는 식의 이야기는 사실 짜증이 나리만큼 진부하고 그보다 지루한 이야기는 없을거란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애초에 그런 식이라면 3인칭으로 가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작가가 이끌어내는 이야기에 독자들이 완전히 동화되어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어야 하는데, 이야기가 똑같은 부분만 반복되면 주춤주춤할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다보면 결국 활자들만 따라가게 되는 경향을 낳는다. 그런데 미나토 가나에의 전작인 「고백」을 읽고 그런 구성에 있어서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고, 곧이어 「속죄」와 「소녀」를 읽었었다. 점점 갈수록 처음과 같은 신선한 충격은 없었지만, 새로운 작가에 대한 눈이 트였고, 이번 신간 소식에도 미나토 가나에의 책이라면… 이라는 말 줄임표에 긍정적인 향내가 퍼졌다.

 

 

 

엔도 가족, 다카하시 가족, 고지마 사토코 - 이렇게 세 개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맞물리는데, 세 개,라는 단어의 표현은 단순히 세 명의 인물이 아닌 엔도 가족이나 다카하시 가족같은 경우에 가족의 구성원의 일원으로서의(개개인의) 시점으로 풀어나가는 까닭이다. 오늘도 엔도 가족의 집에서는 짐승과의 레슬링 한판이 벌어지고 있다. 아니, 일방적인 공격, 아야카의 ‘꺼져, 빌어먹을 할망구야!’의 주체는 엄마인 마유미 -. 그렇게 한바탕 난리가 끝나고 난 뒤, 앞집인 다카하시 가족 중 일원인 막내아들 신지의 고함과 아름다운 미모를 자랑하는 엄마인 준코의 비명이 울려퍼진다. 차가 우리 집 앞에 서 있다. 아니, 다카하시 씨 댁이다. (중략) 대체 그림처럼 행복한 그 집에 무슨 일이 생긴걸까? p33 (중략) 47

 

 

 

책에서는 결코 아버지를 죽인 사람이 어머니가 맞느냐,라는 것에 맞춰져 있지 않다. 간혹, 의구심을 제시한다. 정말? 정말 준코가 그랬어? 신지가 아니고? - 하지만, 저자는는 이야기를 그렇게 진행시키지 않는다. 애초에 잡혀져 있는 포커싱이 아닌, 흐릿한 그 뒤의 세계를, 미나토 가나에는 바라보고 있었다. 첫째, 우리는 모두 책을 읽으며 함께 아웃사이더의 입장이었다. 누구나 나, 혹은 가족,이 아니라면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남 때문에 내가 귀찮아지는 것을 감당해낼 수가 없어서,가 아니라, 단지 싫어서,인 것이 그 까닭이다. 반면에 다카하시 가족은 인사이더였다. 처음부터 누구의 잘못은 없었다. 사람 욕심이 잘못으로 치부될 수 있는 것이라면, 그래, 그것이 잘못이다. 그 욕심이 남이 아닌 가족에게 고스란히 물려져 결국 그것이 짐이 되어버리는 순간에 충돌이 일어나는 것이다. 물론 엔도 가족은 살인 사건과 통틀어 보았을 때 우리와 같은 입장에서 서있었을 수는 있었으나, 완벽한 아웃사이더였던 인물은, 독자 말고는 아무도 없다. 아웃사이더로 보였던 엔도 가족도 실은, ‘히바리가오카’에서 ‘언덕길 병’을 앓고 있는 인사이더였던 것이다.

 

 

둘째, 첫째에서 말한 그 욕심이란 것. 는 그리고 우리는 누구보다 더, 어디보다 더, 라는 말을 수없이 듣고 살아왔다. 주체는 ‘나’ 혹은 ‘우리’보다 잘난 사람,이었기에 그 말이 습관처럼 입에 들러붙어 있는 것이다. 완전한 생각이 자립되지 못했을 정도로 어렸던 나이부터 시작하여 특히 학교 입시 준비를 할 때 가장 두드러졌는데, 그런데 그것은 시간이 점점 더 지날 수록 물러지지 않고 단단해지는 것이 심지어 우리가 스스로와 대화를 할 때조차도 ‘나’ 하나의 주체임을 인식하지 못한 상태로 ‘나’와 남’을 숱하게 비교해오며, 스스로에게 압박을 주고, 프레임에 갇혀 두게 되는 것이다. 그것을 생각하고 있노라니, 가노 도모코의 작품, 「유리기린」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예쁜 외모에, 우수한 성적에, 좋은 가정까지 삼종세트를 두루 갖춘 ‘안도 마이코’. 하지만 유리기린처럼 깨지기 쉬운 여리디 여린 하나의 여고생이었던 것. 우리가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한 대 때려주고 싶은 아야카도 아직은 유리기린에 불과한 여중생이라는 것과, 이야기 속에서 부유층의 상징이었던 ‘히바리가오카’에 사는 인물들도 나름대로의 애로사항을 가지고 있다는 것.

 

 

셋째, 가족 - 가족이었다. 나는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 앞에 나열한 모든 것들을 다 버려서라도 이것이길 바라고, 또 그렇다고 믿고 있다. 나는 내 가족이 짐처럼 여겨지던 때가 있었다,는 무척 부끄러운 고백을 한다. 위에서 말한 남들보다 좋은 대학이 그랬고, 남들보다 좋은 직장이 그랬으며, 나아가 미래에서는 남들보다 좋은 신랑감이 그럴 것임에 틀림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아마, 맏딸이라서 그런 기대가 더 컸고, 현재도 크지 않나, 생각해보지만, 그럴 수록 내가 매고 있는 가방은 점점 무거워지고, 결국은 내팽개 쳐 버리고 싶었고 결국 신지와 같은 상황이 되고 만 것. 그래서 앞으로의 1년 계획을 세워 미래의 발돋움이 되어줄 고등학교 3학년의 생활인 수 개월을 자포자기한 듯 살아갔었다. 짐이라고 생각했던 가족이었는데, 그때마다 토닥거려준 것은 역시 가족이었고, 그때문에 다시 처음부터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가족’이라는 공동체가 가지고 있는 성향은 물론 조금씩은 다르겠지만, 그것은 결코 다른 무엇과 비교할 수 있는 대상이 되지 못하며, 그가 주는 위력 또한 다르지 않다. 진상은 단 하나. 애도할 상대도, 책망할 상대도, 위로할 상대도 전부 가족이라는 사실. 그뿐이다. p326

 

 

 

「야행관람차」라는 제목이 내게 주는 어떤 신비로움은 여느 책들의 제목을 접할 때의 어떤 면에서도 색다르지 않았다. 그러니까, 어떤 은유법을 써놓은 제목은 아니었을 거다, 라는 막연한 생각만이 자리잡았었더란 말이다. 사실 난 제목을 접하고 기노시타 한타의 「악몽의 관람차」를 가장 먼저 떠올렸고, 「악몽의 관람차」와 같은 밀실은 아니겠지만, 「야행관람차」 역시, 그 제목과 부합한 이야기를 가지고 추리 소설을 썼겠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이야기는 추리 소설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아니, 추리 소설이라기엔 어정쩡한 부분이 없지 않아 있지만-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을 방망이로 맞은 듯한 기분으로 책을 덮었다. 야행관람차가 완공되는 날에 탑승하여 지상을 내려다 보면, 다른 곳보다 높게만 보이는 ‘히바리가오카’도, 아래에 있는 동네들도, 어우러져 있음을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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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스트레스에 마침표를 찍다
데비 맨델 지음, 김혜숙 옮김 / 팜파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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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책이 내게로 왔을 그 당시에, 나는 무척이나 흥미진진한 소설책을 손에 들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 책에 자꾸만 눈에 밟힌 까닭은, 그동안 나도 모르게 차곡차곡 쌓인 스트레스와 내가 충돌한 상태에서 내가 먼저 더 이상 버틸 힘도 없이 나자빠져있던 참이었으니까. 스트레스와의 정면 충돌은 결국 무력감과 나태함, 권태를 가져옴과 동시에 자존감을 낮추는 기능까지도 하더라, 그 말이다. 나의 스트레스는 주로 직장 생활이 요인이 되지만, 때때로 득과 실로 연결된 인간관계에서 오는 혐오스러움과 자연스레 맺은 인간관계에서 오는 불충분함,과 가정에서는 맏딸이라는 책임감 등등이 있겠지만, 내 자신에게서 오는 스트레스도 빼놓을 수는 없다. 긍정적 마인드가 있을까, 싶을 만큼 부정적 마인드가 가득 들어앉아서 그것들이 내 모든 생각들이 횡단하는 것에 장애물이 되는 것부터 시작하여, 쉽게 짜증을 냄으로 인해서 내 몸에 독기처럼 퍼지는 우울함. - 이 모든 것은 나에게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누군가에게 떠미는 것이 전부,였다. 그랬기에 지금 나는 미처 성장하지 못한 채, 사춘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때때로 그와 비슷한 성향을 띤 것이 내게 찾아오는 날이면 오춘기, 육춘기를 겪고 있다,고 자연스레 생각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본론으로 채 들어가기도 전에 프롤로그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스트레스 중독은 주체성을 빼앗긴 상태와 같다. 우리는 스스로 즐거움과 자발성을 강탈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잊은 지 이미 오래다.’ - 이것이 핵심이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책의 p256 모두가 이 문장에 모두 들어앉아 있는 모양새를 보인다. 자아를 찾으라는 것. 그것이다. ‘스트레스 중독은 주체성을 빼앗긴 상태와 같다. 우리는 스스로 즐거움과 자발성을 강탈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의 펜 끝에서 응어리지는 글자들을 따라가며 우리는, 자아를 찾는 일 중 (단지) 몇 가지만 배울 것이다.

 

 

 

책을 다 읽었던 장소는 기차. 승차하기 15분이라는 시간이 남았고, 그 시간동안 나에게 반문했다. 자신이 언제 가장 자랑스러웠는가, 라는 물음에 내가 한 대답은 침묵, 침묵, 침묵이었다. ‘가장’이라는 부사가 앞에 붙어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던 것도 하나의 생각할 거리였을 테지만,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했던 적은 극히 드문 것이 나를 돌아보게 하더란 것이다. 내가 나를 자랑스러워 했던 적 모두에는 ‘누군가’라는 대명사가 있었다는 것에 부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들이 지인이든, 타인이든.- 그러면서 인정받던 그때를 생각하다가, 바로 그때, 내가 저자의 레이더망에 걸렸다는 것을 눈치챘다. 인정받는 그 순간 모두에 나는 저자의 말처럼 ‘예, 감사합니다.’라는 그 말 대신 ‘아닙니다. 별 말씀을요.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일인걸요. 덕분입니다.’라고 답하며 나 자신의 가치를 깎아내리기에 여념이 없었던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자기 비하를 미덕으로 배운 것이지 무엇이겠느냐는 것이다. 가면을 벗어라. 우리는 ‘아니오’라고 말하고 싶을 때도 ‘예’라고 말한다. 남이 좋아하기를 바라고 남을 기쁘게 하려고 노력한다. 진짜 내 모습을 숨기고 있다. p63 가면을 벗으면 얼마나 편안한가-. 남들의 잣대에서 휘청거리며 살 필요가 전혀 없다고, 우리는 자아를 확립해야할 필요가 있다고 그렇게 저자는 강력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거울은 남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보는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에게 잘 보이기 위해 보는 것이라는 것과 직결되는 것이 그 말일 게다.

 

 

 

무엇보다 chapter 7에 ‘나화나게 하는 것은 나 자신뿐’이라는 문구는 멈칫,하기에 충분했는데, 그것은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말과 접목되고, 그것은 곧 부정적 성향과도 일치한다, 얘기하는 것과 같은 까닭이다. 그 예로 저자는 추월을 꼽는다저런 식으로 추월을 한다 이거지? 어떻게 하는 게 제대로 추월하는 건지 보여주겠어!’ → 내가 왜 이렇게 화가 났지? 아무도 나한테 해를 입히지 않았잖아. 저 운전자는 나를 알지도 못하는데.’ - 여러가지의 상황을 예로 들고, 그것들이 곧바로 스트레스로 변모되지 않을 수 있게 생각의 전환을 하도록 도와준다. 그것들을 읽으며 렇게도 생각할 수 있구나, 싶은 것이 나의 부정적 성향이 심하다는 것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근거들이어서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스트레스 거리를 다름아닌 내가 찾아다니고 있었구나, 라는 생각에 씁쓸함이 가득 메워져왔다. 늘 ‘긍정적 마인드’를 갖자,라며 포괄적으로 생각하기만 했지, 마음 속에 담아두고 있지 않아서 아차, 싶었을 때가 한 두번이 아닌걸. 또 다시 잊어버릴 다짐을 해본다. ‘긍정적 마인드’라는 것이 내 삶에 태동한다면 지금보다 더 예쁜 미소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지 않겠냐고. 이 책 한 권으로 나를 억압하고 있는 트레스에 마침표를 찍었으면 좋겠다, 간절히 바랐지만, 내 삶에 접목시키지 않는 이상 마침표는 끝끝내 찍히지 않을 거라는거. 그래도 이 책을 읽음으로 해서 비로소 여유라고 칭해지는 쉼표가 만들어졌음에 안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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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숨 - 「간과 쓸개」 - “내가 우는 건 울 시간이 되었기 때문에 우는 거예요” - 김 숨의 눈 꼬투리에 매달려 있는 삶은 어떤 덩어리로 얼룩져 있을까요. 며칠 전 김애현 작가의 「오후의 문장」이라는 시니컬한 작품을 만났었더랬지요. 아마 이 작품도 그와 같은 비슷한 느낌을 풍길까요. 혹은, 조금 더할까요, 조금 덜할까요.

 

 

박범신 - 「외등」,「빈방」 - 「외등」은 2001년에 나와 이번에 다시 개정되어 나왔네요. 박범신 작가의
책은 한번도 접한 적이 없어요. 하지만 작품의 평은 늘 섬세하더라구요, 책이 아닌 평일 뿐인데, 다른 평을 보다가 그의 작품의 평만 보면 어쩜 그렇게 그 책을 읽은 독자들이 섬세하고 유리알같은 글재주를 지니고 있는지요. 개정판이라 이미 읽은 분들도 있겠지만, 2월달엔 이 개정판마저 빼버린다면, 읽고 싶은 책은.. 드물어요.

 

 

 

알라딘 마지막 신간 추천 _ 그동안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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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의 문장
김애현 지음 / 은행나무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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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다. 봄, 봄, 봄. 차가운 바람에 몸이 오들오들 오한이 이는 것이 완연한 봄이라고 명백하게 말할 순 없지만, 지상으로 내리는 햇빛이 이토록 찬란하니, 영락없는 봄이 찾아오려는가 보다. 햇빛이 내리쬐어야 비로소 마음에 따뜻한 온기가 머금어지는 나로서는 그런 날이 반갑기만 하다. 햇빛이 가장 찬란하다 생각되는 시간인 오후 1시에서 3시 사이. 운 좋게 그 날은 토요일이었고, 오전근무에 퇴근하는 길, 공원 벤치에 앉아 읽던 책을 펼쳐든다. 「오후의 문장」 -. 참 예쁘기도 하지. 그 날 오후의 문장은 〈백야〉 , 〈래퍼K〉 , 〈빠삐루파, 빠삐루파〉 , 〈오후의 문장〉 , 〈K블로그〉 , 〈푸른 수조〉 , 〈화이트 아웃〉 , 〈실러캔스〉 , 〈카리스마스탭〉 이라는 각기 다른 제목이 햇빛에 반사되어서 책 속의 활자들이 반짝거리며 내 동공 속에서 너울너울 춤추며 반짝인다.

 

 

 

언제부터 내 몸에서 빛이 나기 시작한거죠? / 몰라. 그냥 해가 져도 어둡지 않았어. 그래서 불을 켜지 않은 거다. 그게 다야.광채’라는 이름을 가진 사내,의 몸에서는 빛이 나고 그런 그가 이목을 끌며 팬카페가 형성된다. 정모라는 이름으로 모인 자리에 (친절한) 금자(씨)라는 여인 한명만이 나왔는데, 그 여인은 외출할 때마다 커다란 선글라스를 껴야하는 감수를 치러야 할 뿐만 아니라, 영화의 눈부신 햇빛마저도 그녀에겐 No, thank you.인 게다. 그런 그녀가 그에게 선글라스를 벗으며 말을 건넨다. 당신의 빛은 은은해요. 두 눈을 찡그리지 않아도 되겠어요. -

 

다리도 없고, 아내도 없이 친척들에게 고기 대접을 하며 푼돈을 얻어내는 아버지를 가진 키가 작은 사내. 그는 방송국에서 NG! 카메라에 나뭇잎이 잡혀, 누가 좀 떼어 내. / NG! 책상 좀 치워봐, 그림이 안 좋잖아. 라는 소리가 들리는 즉시 총알같이 스튜디오를 향해 뛰어나가 그 잡다한 일들을 해결하는 일을 한다. 그러던 중, 빠삐루파의 역을 맡고 있어서 일명 ‘빠삐’라고 불리는 사내가 어느 날부터인가 나오지 않아 그가 그 역을 맡게 된다. 신나는 빠삐루파, 행복한 빠삐루파…… 나를 짓누르는 빠삐루파. 내 키는 자라지 않을 것이다. -

 

이사를 한 집에 한 여자가 찾아와서 미르, 헤르 어딨어? 라는 문장이 쓰인 신발장의 낙서가 그녀의 잃어버린 아이의 마지막 흔적이라는 이야길하며, 가끔, 절대 자주는 아니고요, 아주 가끔 와서 저걸 보면 안 될까요? 마음이, 그러니까 제 마음이 아주 너덜거릴 때만……. 이라며 부탁한 뒤에 찾아오게 된다. 마음이 너덜거리는 간격은 일정치 않다. 일주일, 이틀, 하루……. 그와 동시에 책 속의 ‘나’의 일상도 함께 흘러간다. 현재 불륜을 저지르고 있는 그녀. 그리고 모래그림… 해가 지고 있다. 추장 딸이 그렇게 말했을 때 난 좀 의아했어요. 왜냐면 그 모래그림에는 해처럼 보이는 것도 있고 산처럼 보이는 것도 있고 바다처럼 보이는 것도 있길래 그날 아침, 바닷가풍경을 그렸겠거니 생각하던 참이었거든. 하지만 그건 그림이기 이전에 하나의 문장이었던 거요. -

 

이 말고도 여섯 편의 이야기에는 상처받은 이들의 마음에 씨앗을 심어준 ‘래퍼K’ , 동성동본을 가진 부모를 가진 딸, 드라마 제작을 위해 희생된 물고기, 201호에 이사온 가정을 부러워하는 이혼남, 안락하게 살기 위해 간 실버타운에서 온갖 일을 맡아서 하는 노인, 그런 노인이 마땅찮은 실버타운 직원들, 완판이라는 실적을 올리기 위해 날씬하고 볼륨감있는 몸매를 가꾸지만, 도리어 자신의 건강은 챙기지 못하는 ‘바비’ -

 

 

 

 삭막한 현실에서 따뜻한 이야기를 쓰고자 하는 이가 있다. 그가 쓰는 이야기엔 우리의 이상의 혹은 이하의 사람들이 있다. 그들을 응원하는 이들이 있지만, 살아내는 것조차 버거워한다. 하지만 그들은 각자의 소리를 낸다. 그것은 조화를 이루고 결국 그것이 우리의 마음에 불어닥칠 것이다. 그것이 지금도 무표정한 얼굴로 타이핑을 써내는 내 얼굴에 웃음을 짓게 만들어줄지, 누가 알랴.’ 라는 생각으로 이 책을 읽길 원했었다. 하지만, 내가 읽은 이 책은 나의 안면에 미소짓게 하기는커녕, 미간이 찌푸려지기에 충분했다. 충분히 그렇게 끝낼 수 있는 책이었다. 하지만 작가가 원하는 바를 알아차리지 못한 거겠지, 라는 생각으로 두번 째 책을 폈고, 〈K블로그〉,〈푸른 수조〉,〈실러캔스〉같은 경우는 서너 번 반복하여 읽은 것 같다. 곱씹으면 곱씹을 수록 문장의 행간이 좁혀짐을 느낀다. 분명 이는 첫번 째 읽을 땐 감지하지 못했던 무언가였다. 그제야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단편이라고 치부하고 쉬이 읽어내리기엔 (확실히) 무리가 있는 작품임엔 틀림이 없다. 그렇게나마 현실에 타협하며 살아가는 그들을 보며, 오늘 내 하루를 손가락으로 되짚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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