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랫동안 그녀를 꿈꾸었다
티에리 코엔 지음, 박명숙 옮김 / 밝은세상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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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 로맨스가 참 그립다. 며칠 전, “나 연애해.”라는 친구의 말 한 마디에 “좋겠다, 설레임.”이라는 말이 불쑥 튀어나왔다. 그 자리에는 연애 삼 년 반인 나와, 각각 연애 삼 년과 이 년을 껴안은 친구 둘도 함께 있었는데, 우습게도 그 말에 모두 공감 백배. 말은 이렇게 하지만 설레임, 물론 지금도 여전히 남아있다. 하지만 아주 가끔은, 연애 초창기의 설레임이 그렇게 그리울 수가 없을 때가 더러 있다. 그를 만나러 대전역에 도착할 때 즈음- 한껏 달뜬 목소리, 신나보이는 표정, 두근두근대던 심장을 감출 길이 없어 발개지던 얼굴. 그리고, 어색한 웃음을 안면에 띄워 나를 향해 쭈뼛쭈뼛 걸어오던 그를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그런 그가 지금은, 신난 어린아이같은 표정을 하며 다가오거나, 장난을 치려고 몰래몰래 다가오거나. 또 다퉈서 말도 하기 싫을 때에는, 현재 기억하고 있는 오래 전의 그 설레임으로, ‘그래, 그랬던 때가 있었지.’ 라며 나 스스로를 릴렉스시키기도 했었다. 그리고 요즘, 자주 만나지도 못하는데, 통화할 때마다 주를 이루는 건 결혼이야기. 이러기 싫은데...라면서도 어쩔 수 없는 게 그것. 그래서 일까? 달달한 연애소설이 자꾸만 마음을 뒤흔드는 이유가. 요즘은 부쩍 - 연애소설이, 자신을 읽으라며 나를 종용한다.

 

 

 

 

 

꿈 속에 자주 등장하는 여자를 사랑하게 된 남자, 요나. 어느 날, 꿈에 찾아온 여인에게서 ‘글을 써요.’라는 나직한 한 마디에 글을 쓰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에 사로잡혀 그 자리에서 소설을 한- 권 쓰게 된다. 그 소설은 우연찮게 베스트셀러에 오르게 되고, 곧이어 출판사로부터 강요받다시피 쓴 두 번째 소설에 혹평을 받아 글쓰기를 포기하게 되고, 생활고에 시달리던 중, 힐렐이 운영하는 서점에 취직하게 된다. 그리고- 번번이 믿었던 사랑에 배신을 거듭 당해 사랑에 대해서라면 마음에 철벽을 세운 여자, 리오르가 병원의 간호사직을 그만두고 개인 간호사이자 친구로 환자 세레나를 돌보며 그녀에게 읽어줄 책을 고르러 요나가 일하고 있는 서점에 발걸음을 내딛게 되며 둘의 만남을 암시한다. 하지만 운명적 사랑을 믿는 남자와 사랑에 곪을 대로 곪은 여자의 사랑은 참 어렵고, 힘들고, 더디기만 하다. 다가오는 남자와 뒷걸음질치는 여자. 포기하는 남자와 마음이 열리는 여자.

 

 

 

 

 

사랑은 존재 이유와는 상관없이 그 자체로 절대적 감성이다. 모순과 반론, 논쟁 따위를 허용하지 않는다. 그저 우리에게 그 법칙을 따를 것을 요구하며 지식이나 이성을 파스텔 톤의 이미지 뒤로 넣어둘 것을 요구한다. 사랑은 절대적인 예속을 요구하는 대신 그 보답으로 맹목적인 행복을 선사해 주는 것이다. p152 나도 그와의 만남에서 책이 매개체가 되어서일까? 개인적으로 책,이라는 것이 사랑의 매개체가 됐다는 것이 매우 흥미롭고 반갑게만 느껴진다. 티에리 코엔, 이 작가는 책을 읽기 시작한 즈음 「살았더라면」을 읽고 호기가 가던 작가였는데, 사실 프랑스 작가라는 것을 알기 전부터 기욤 뮈소와 문체가 많이 닮아있구나, 생각했다. (나라는 사람은 뭐든 잘 잊는 게 특기라서, 책을 읽고 돌아서면 그 사람 이름이 뭐였더라?며 책을 다시 뒤적이곤 했는데 어찌된 일인지 그때 주인공 이름은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당시 크레미가 먹고 싶었던 것도 아닐텐데. 음, 이건 쓰잘떼기없는 농담.) 그런데 연애소설을 썼다니 소재를 ‘사랑’으로만 쓰는 기욤 뮈소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싶기도 했다. 그런데 참 의외다. 연애소설치고는 생각만큼 진중한 언어와 어휘 선택에 조금 낯설기도 했지만, 사랑을 이야기하며 그 틀에 벗어나지 않는 한에서 책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힐렐을 통해 꾸준하게 발설하고 있었다. 작품은 사랑과 책의 배함 5:5를 섞어놓아, 단순히 연애소설만을 생각했던 사람이라면 전개방식에 조금 지루할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 하지만 작가 티에리 코엔의 사랑과 책의 사상이 궁금하다면, 그것에 고개를 주억거리며 공감하기도 싶다면 - 나와 같은 만족감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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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인 내가 혼자인 너에게 - 밑줄 긋는 여자의 토닥토닥 에세이
성수선 지음 / 알투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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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왠지 모를 공허감에 마음이 허공에 유영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날이 있다. 연례행사이기라도 한 듯, 유독 십이월은 나에게 그런 달이다. 고등학생 때는 얼른 스무 살이 되었으면 좋겠다, 했지만 스무 살하고도 다섯 해가 지난 지금, 나는 그 때 했던 생각들만큼 행복하지는 않다. 오히려 지금은 한 해가 저물어 십이월이 되면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지나친 날들을 후회하느라 마음이 바빠진다. 올해가 가기 전에 뭐라도 해야하는데, 하면서. 재작년 이맘 때 즈음에 성수선 작가의 「밑줄 긋는 여자」를 만났었고, 올해 같은 시기에 「혼자인 내가 혼자인 너에게」를 품에 안았다. 혼자,라는 단어가 내게 주는 인상은 쓸쓸, 처량, 고요, 적요, 고독 등의 단어뿐이다. 함께인 줄 알았는데 혼자였고, 혼자인 줄 알았는데 함께였다는 그런 괴상한 논리에 긍정하고 싶지 않지만, 그것이 현 내 마음 상태라는 것을 부정할 수가 없다. 혼자,이고 싶을 때도 많지만 사소한 일까지 시시콜콜 공유할 수 있게끔 되어있는 생활 속에서 오롯하게 혼자,라는 것은 어쩌면, 막연히 좇는 환상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그런지 책의 제목에서 느껴지는 알싸함에 코 끝이 시렵다.

 

 

 

 

마법의 질문이 있어요. 그게 뭐냐 하면 우리가, 나 연극을 좀 해볼까 봐. 뭐 구청에서 하는 연극학교가 있는데 가볼까 봐, 라든가 이탈리아 가곡을 배울까 봐 그러면, 어 그래? 연극? 그거 해서 뭐 하려고 그래? 마법의 질문이에요. 해서 뭐 하려고 그래? 이렇게 물어봅니다. 그런데 예술이라는 것은 뭘 해서 뭘 하려는 게 아니죠. 예술은 최종의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그것은 우리 영혼을 구원하고 우리가 즐겁게 살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거예요. 술과 약물의 도움 없이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자기표현을 하도록 도와주는 것이죠. 그래서 이런 질문에 대해서, 이런 실용주의자들의 질문에 대해서 우리는 담대하게 대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 그냥 즐거워서 하는 거야, 재밌어서 하는 거야. 미안해 나만 재밌어서, 내가 좀 먼저 할게, 라고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겁니다. (p124 :: 김영하의 강연 中) 사실 직장을 다니고부터는 재미있는 일이 극히 드물었다. 그러던 중 올해 오월에 스포츠댄스와 벨리댄스를 겸해서 배웠던 적이 있었는데, 몇몇 친구들은 그런거 왜 배워? 살 빼려고? 차라리 다른 거 하는 게 나을껄? 이라고 얘기했고, 나 역시도 처음 목적은 그것이었지만 재미에 푹 빠져서 퇴근하고 배우러 가는 발걸음 또한 가벼웠었다. (나는 꽤 심각한 몸치였지만!) 하지만 그때마다 내 대답은 “어쨌든 끊어놨으니까.”라며 얼렁뚱땅 넘기기도 했었다. 그래서 성수선 그녀가 ‘서구 정치사상 고전 읽기’라는 강좌를 들으면서 타인에게 얼렁뚱땅 넘겼다는 대목에서 허허 웃어버렸다. 그때의 내 모습과 같아서. 자아를 확장하고 타인과 교감한다는 목적의식을 가지고 연애를 하는 게 아니듯이, 좋아하는 일은 좋아한다는 이유 하나로 일단 시작하면 되지 않을까? 모든 일에 목적이 있고 수량화된 목표가 있어야 하는 건 아니니까. (p124) 그리고 난 그동안 미뤄왔던 헬스를 그 다음 주에 당장 등록했다. 이번 역시 목표는 건강해지기,이지만 퇴근 후에 느낄 수 있는 소소한 행복을 다시금 느껴보고 싶어서. 그리고 나는 요즘, 전보다는 약간의 피곤함이 있지만 매일매일 신나는 퇴근길을 만끽하고 있는 중이다. 미안해요, 나만 신나서.

 

 

 

 

안나 가발다의 「나는 그녀를 사랑했네」를 소개해주는 글 중, 마틸다의 리스트를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급작스레 울컥했다. 그러고 보면, 나도 그와의 미래를 떠올리며 이야기를 나누던 것 중에서도 특별한 것은 없다. 개월 혹은 년 단위로 소액의 적금을 들어 여행가기, 작은 어항에 물고기 키우기 (이건 그가 약간의 반대를 한다.), 매년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나도록 작은 트리사기, 먼저 퇴근하는 사람이 상대방의 회사 근처로 와서 저녁 먹기 등등. 하지만 마틸다의 리스트는 너무도, (정말이지 너무나도) 소소한 일들뿐이었으니 울컥한 것이 이상할 일이 아니다. 신문 읽기, 시장 보러 가기, 슈퍼마켓에 가기, 동시에 양치질하기, 당신이 땅콩을 너무 많이 먹지 못하게 하기, 그리고 당신이 날 여전히 사랑하는지 물어보기. 연애란 게 이런 거다. 밀고 당기고, 고백도 주고받고, 더러 이벤트가 있기도 하지만, 연애도 결국은 일상이다. 생활인으로서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는 것. 서로의 일상을 걱정하고 챙겨주는 것. 서로의 일상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 하는 것. 그래서 나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일상이 되는 것. (p82) 일상이 된,다고. 그렇지. 일상이지. 굿모닝, 아침은 먹었는지, 점심은 무엇을 먹을 건지, 추운데 옷은 잘 입고 갔는지, 길이 미끄럽던데 삐끗한 곳은 없는지, 오늘 일은 많이 바쁜지, 퇴근 후 스케줄은 어떻게 되는지, 버스에서 앉아서 가는지, 서서 가는지, 서서 간다면 다리가 아프진 않은지, 피곤하진 않은지, 몇 시에 잘 예정인지, 발은 씻었는지, 전기장판은 따뜻한지, 그리고 굿나잇. 늘 똑같은 일상 속에서 느끼는 소소한 행복, 그것이 서로의 일상이 되는 것. 맞다, 연애.

 

 

 

 

밤이 오고 계절이 바뀌듯이, 그렇게 슬럼프도 오는 게 오히려 당연한 것 아닐까? 내가 무슨 로봇도 아닌데, 일정한 작업속도와 생산성이 일관되게 유지된다면 그게 더 이상한 것 아닐까? 감기에 걸리면 며칠 잘 먹고 잘 자고 푹 쉬어야 되는 것처럼, 슬럼프가 오면 팔를 잡듯 때려잡는 대신 그냥 좀 쉬어줘야 되는 것 아닐까? 오죽하면, 정말 오죽하면 슬럼프가 날 찾아왔겠어, 하고 보듬어줘야 하는 것 아닐까? 그냥 감기처럼 슬럼프를 편하게 받아들이면 안 될까? 살아 있는 모든 생명에게는 사이클이 있으니까. (…) 핸드폰을 많이 쓰면 배터리가 금방 다는 게 당연한 것처럼, 앞뒤 안 보고 죽어라 달리면 사람도 금방 방전된다. 슬럼프는 ‘배터리가 10퍼센트 미만입니다’ 같은 경고 메시지 아닐까? 위험하니 충전하라는, 스스로를 좀 돌봐주라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제목에 ‘슬럼프’가 들어간 온갖 책을 읽으며 고민해봐도, 슬럼프를 극보가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는 것 같다. 그건 바로, 그냥 슬럼프를 받아들이는 것. ‘슬럼프는 어쩔 수 없이 온다’는 것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것. 사람은 로봇이 아니라는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의식적으로 자각하는 것. 이러다 조만간 또 상승곡선을 타리라는 것을, 아니 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망각하지 않는 것. 그리하여, 안달복달하는 대신 스스로에게 쿨하게 말해주는 것. “이것도 곧 지나가리라.” (p92-93) 내게도 슬럼프가 찾아오는 것처럼 그에게도 슬럼프가 찾아오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 그때문에 무기력한 그의 행동과 말투에 화가 났다. 말할 타이밍이 맞지 않았을 뿐이고, 단어 선택이 잘못됐던 것 뿐인데, 나는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며 일방적으로 쏘아붙였다. 서평을 쓰려고 책을 뒤적거리다가 핸드폰 카메라를 켜서 두 페이지를 찰칵, 찰칵 찍어댔다. 그리고 그에게 보내주었다. 성수선 그녀의 글들이 부디, 그에게 힘이 되어 주기를. 그리고, 이것을 보내주는 내 마음도 함께 전달되기를.

 

 

 

 

전작인 「밑줄 긋는 여자」는 오롯하게 독서에세이였다면(혹은 독서일기), 이번 「혼자인 내가 혼자인 너에게」는 성수선, 자신의 일상 한 조각에 책 한 권이 차곡차곡 얹혀지는 기분이랄까? 전작에서 그녀의 이야기를 들을 시간이 많지 않음에 아쉬웠다는 사실을 이번 작품을 읽으면서 깨달았고, 작게나마 그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음에 전보다 좀 더 그녀를 알게 된 기분이랄까. (개인적으로, 어떤 책이든 작가를 알아야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것은 하다못해 아는 사람이 쓴 것은 아무리 재미가 없는 글이어도 끝까지 읽을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조금은 편협한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서 말이다.) 오랜만에 만난 그녀가 들려주는 일상이야기는, 뭐라도 더 해야겠다,며 바쁘기만 했던 내 마음에 휴식을 주기에 충분했다. 충,전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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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사랑받는 건 네가 너이기 때문이야. 뭐를 잘해서도, 좋은 회사를 다녀서도 아니야. 아무 일 안 하고 이렇게 잠만 자도 아무 상관 없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돼. 적어도 여기 있을 때만큼은.” (p20)

 

 

행복은 얼마나 많이 가졌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행복을 느낄 줄 아는 능력의 문제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행복을 느낄 줄 아는 것도, 그 느낌을 오래오래 지속시킬 수 있는 것도 능력이다. 인생을 관통하는 아주 핵심적이고 중요한 능력! 아무리 많이 가져도 더 많이 가진 사람과 비교하면 박탈감이 느껴질 뿐이고, 아무리 많은 것을 가졌어도 자신의 결핍에 집중하면 자기연민에 빠질 뿐이고, 아무리 돈이 많아도 쓸 시간이 없다면 남 좋은 일만 시킬 뿐이고, 아무리 잘나도 행복하지 못하면 재미없는 소풍처럼 쓸쓸한 삶을 살다가 떠날 뿐이다. (p27)

 

 

우리는 모두 사랑하는 사람을 온전히 이해하기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온전히 이해받기를 원하지만, 누군가를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그저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무엇 하나 확실한 것은 없다. (p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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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에겐 일생에 한 번 냉정해야 할 순간이 온다
한상복 지음 / 예담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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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에겐 일생에 한 번 냉정해야 할 순간이 온다」 실은 처음에 제목만 보고서는 자기계발서겠거니, 슬쩍 넘기려고 했는데 지은이가 한상복 작가란다. 「배려」의 그 작가라고? 그 책은 정말이지, 아직까지 부정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또, 그렇게 살고 있는 내게 가끔씩 따끔한 일침을 가하는, 그래서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을 때에 다시 한 번 펼쳐보며 마음을 동요케하고 다음 날을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시작하게 만드는 그 책, 그 책의 작가가 「여자에겐 일생에 한 번 냉정해야 할 순간이 온다」라는 자기계발서 폴폴 풍기는 이 책을 썼다고? :: “이 남자, 같이 살아도 될까?” - 로맨스의 정점에서, 선택의 순간이 온다. - 올해로 3년째 연애 중. (기차로 한 시간 남짓 걸리는 거리라서 그는 장거리라고 말하는 것을 마음에 안 들어하지만, 어쨌든) 장거리 연애라서 만나는 날을 제외하고는 충실하게 각자의 생활을 해 나가는 커플이다. 그런데 만난 시간이 있어서 그런지 내 나이가 올해 아직 스물다섯, 어림에도 불구하고 “너희는 언제 결혼해?”라는 질문을 그렇게도 많이 받았다. 우리도 계획이 있어 언제쯤이면 딱 좋겠다, 생각은 하고 있고 언제부터 준비를 해야지,라고 생각을 하고 있기도 하고, 가끔은 구체적인 이야기가 나오기도 한다. (그나저나 어쩌다가 서평에 아주 사적인, 비밀적인 글을 끄적여대고 있는건지 모르겠다.) 암튼 그래서 요즘 내 관심사는 자연히 그쪽으로 쏠릴 수밖에 없다. (물론 식장을 들어서기 전까지 내 옆에 어떤 남자가 있을지는 모르는 것!)

 

 

 

 

결혼은 서로의 이질성을 받아들이고 섞어가며, 둘만의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이다. 어느 정도 충돌과 상처는 각오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런 우여곡절을 통해 사랑하는 두 사람은 이전과 다른 ‘책임지는 사랑을 할 줄 아는 성인’으로 우뚝 서게 되는 것이다. (p64) 어쩌면, 이 책은 누구보다 (결혼을 결심해야 하는 때가 된) 나와 그에게 적절한 타이밍의 책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참 고마운 책이었다. 요즘 부쩍 관심거리가 그쪽에 쏠려있다보니, 자연스럽게 듣기만 하던 것들을 겪을 것에 대한 걱정이 생기기 마련인데, 그에게 이 부분에 대해선 어떤 식으로 말해야하나, 생각하다가 ‘네이트판에서 봤는데-’ 혹은 ‘네이버 신문에서 봤는데-’ 라고 말하며 운을 뗀다. (물론 그곳에서 본 것이 사실이긴 하지만, 절대 내가 걱정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면서, 여기에서 이렇게 얘기를 하더라,라며 내 주관적 의견은 약간 떨어뜨려 놓은 채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걱정인 것을 알고 있는 그는, 그런 나에게 걱정도 팔자,라는 별명까지 붙여주었다. 걱정도 팔자라니. 언젠가는 다 닥쳐올 일인데 너무 안일하게만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반면에, 올해 그에게는 레퍼토리가 하나 생겼다. “그때 상황봐서-” 물론, 그의 행동거지 전체에 (불시착한 결과라는) 직업이 깊숙이 배어있어서 그럴 수 있다손 치지만, 미래를 앞에 두고 상황을 봐서라니, 그때 심정은, 뭐라 형언할 수가 없다. 친구 몇몇과 이야기를 나누며, 남자 입장에서는 아직 그게 현실로 다가오지 않아서 그래, 라는 결론을 냈다. 특히나 현실적인 그에게 그게 얼마나 먼 미래 이야기 같을 텐가, 생각하며, 그때 다시 얘기하지 뭐.라고 생각하고 넘길 수 있게 되었다. 아주 가끔은 그게 참 힘들 때가 더러 있지만.

 

 

 

 

거리 두기의 바탕은 자신과 상대에 대한 존중이다. 양쪽 모두 소중하기 때문에 조심하려는 의도에서 출발한다. 건강한 거리 두기는 적당히 물러섬으로써 먼저 자신을 지켜낼 수 있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과 적절한 거리를 유지할 때, ‘상대에게 거는 기대’를 줄여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것이다. 기대한다는 것은 곧 ‘상처받을 준비’를 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거리 두기는 또한 ‘나의 가시’로부터 사랑하는 사람을 보호하기 위한 배려이기도 하다. 누구에게나 날카로운 가시가 하나쯤 있기 때문에 가까이 다가서는 이가 상처를 입는 경우가 있다. (p111) 남자들은 여자의 언어를 모른다는 불만이 많은데, 그는 너무 잘 안다. 그래서 언젠가 그런 얘길했었다. “난 배보리씨의 말을 다 해석해야 할거야.”라고. 가끔은 그에게 거는 나의 기대치가 너무 높아 트러블이 잦았는데, 그때마다 그는 나에게, “기대치를 조금만 낮춰줘.”라고 말했지만, 당시에는 내가 당연한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지금도 내가 그에게 툴툴거리는 모든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까닭일런지도 모른다. 사실상 연인이란 이름으로 당연하게 요구할 수 있는 권리는 없다. 내가 요구하는 것을 상대방이 포용해주느냐, 포용해주지 않느냐,가 남아있을 뿐. 그래서, 그가 포용해주는 내 모든 것들을 감당하게 해 미안하다,생각했고, 그럼에도 내 옆에 있어주는 그에게 감사하다,생각했으며, 한편으로는 내가 그것을 깨닫고 있어 다행이다,생각하기도 했다.

 

 

 

 

온갖 뜻밖의 일들로 점철되는 긴 인생조차도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서로를 이해하기에는 충분히 긴 시간이 아니다 :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부쩍 그에게 부리는 어리광이 심해졌다는 것을 느낀다. 요즘 당신, 나한테 소홀하지 않냐며, 어쩜 그럴 수 있냐는 둥 - 볼멘소리로 말하기도 하고, 별 거 아닌 말에도 틱틱거리기 일쑤에, 징징거리고. 그는 전에 이런 상황을 가장 힘들어했었다. (물론 지금도 그럴테지만_) 특히나, 내가 어린애처럼 징징거리는 것을.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컨디션이 바닥에 떨어지고 나면 그 날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말하면서도 징징징징, 좋은 걸 말할 때도, 나쁜 걸 말할 때도 징징징징. (그러면서 나는 그가 내 흉내를 낸답시고 나에게 그러는 걸 아주 못 견뎌한다.) 얼마나 짜증날까, 싶으면서도 그에게 ‘그랬구나. 에이, 나쁜놈. 오늘도 수고했어요.’라는 말을 들으면 금세 풀리는 단순한 여자다. 찡얼찡얼거리는 내 말을 다 들어주고, 나보다 앞서 욕을 한 바가지 먼저 푸기도 하고, 결국은 그런 나를 위로해주는 것. (그것은 아마 그가 3년 동안 터득한 해결책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요즘 몸도 마음도 안정되질 못하고 컨디션도 좋지 않은데 그까지 속을 몰라주니 또 시작된 거다. (일주일에 한 번, 적어도 이 주에 한 번은 봤던 우리였는데, 어쩜 이번엔 삼 주를 보지 못할 것 같다,는 것이 화근이었을 거다.) 그가 어떤 말을 해주어도 좀처럼 마음이 너그러워 지지가 않아 틱틱대는 폼이 영 - 오랫동안 풀리지 않을 것 같았다. 오늘, 말 그대로 만신창이가 된 몸을 이끌고 집에 와서 씻기 전, 보일러를 올려놓고, 그 보일러가 달구어질 때까지 따뜻하게 데펴진 거실 전기장판에서 책을 읽는다는 게, 얼마 남지 않은 페이지를 다 넘기고야 말았다. (사실 오래도록 읽고 싶어 한 챕터씩 아껴 읽기도 했는데 말이다.) 하루종일 뭔가에 심통난 아이처럼 툴툴거리는 목소리는 여전했지만, 꼭 할 말이 있어, 지인들과 저녁을 먹고 있다던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꼭 지금 말해야만 할 것 같았다. 그 날 하루 동안 그에게 한 번도 해주지 않은 말, 사랑한다고. (그리고 이 책은 그에게 슬몃 건네질 예정이다. 연애고, 결혼이고, 일방통행이 아니라 쌍방통행이니까. 그리고 책을 건넨 자리에서 내가 가장 공감하며 읽었던 한 챕터를 그에게 읽혀야겠다.)

 

 

 

 

20분짜리, 남들한테 보여주는 결혼식에 매달려 전전긍긍했을 뿐 40만 시간, 결혼식 이후의 우리 둘의 삶에 대해서는 막연하게만 ‘두 사람의 알콩달콩’을 동경해왔으니 그게 얼마나 바보짓이야? (p39)

 

연애라는 비행이 원래 그렇다고 한다. 초기에는 짜릿하게 상승해 오금이 저릴 정도의 쾌감을 안겨준다. 위태로워서 더 즐겁다. 금방이라도 추락할 것처럼 마구 흔들리고 요동을 치는 가운데서도 들뜨고 소름 돋는 감동을 찾아낸다. 하지만 두 사람은 결혼이라는 현실을 위해 땅으로 내려와야만 한다.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루는 것은 땅에서의 일이기 때문이다. ‘결혼 후 3년’은 착륙 과정으로도 비유할 수 있다. 모든 연인이 결혼을 통해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와 착륙을 한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어떤 커플은 부드럽게 내려앉는 반면, 또 어떤 커플은 와장창 시끄러운 소음을 내며 불시착한다는 정도일 것이다. (p173)

 

“당신이 원한다면 어떤 면에선 그의 엄마가 되어주는 것도 나쁠 건 없겠죠. 만일 그렇다면 좋은 엄마가 되어주세요. 좋은 엄마는 아이를 방 안에 가둬놓지 않아요. 방문을 가둬놓지 않아요. 방문을 조금 열어주는 것이 어떨까요? 그가 당신에게 마음의 문을 활짝 열 수 있게 말이죠.” (p245)

 

“결혼하고 나서는 이 사람을 바꾸려고 해본 적이 없지. 이 사람한테는 이 사람 방식이 좋을 테니까.” (p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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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오랜만이다. 나만의 애칭, 귀여운 미소씨. 책의 재미를 직·간접적으로 표현하는 수단 중 하나인 가속도가 빠르고, 흡입력도 있으며, 이야기의 전개도 빨라 호평을 받고 있지만, 동시에 이야기 소재가 거기서 거기-라는 혹평을 받고 있기도 한 귀여운 미소씨. 사실 그 말이 틀린 이야기는 아니어서 그를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굳이 그 혹평에 완강히 부정하거나 하고 싶지는 않다. 난 가끔 그의 작품에 퐁-당 빠지고 싶을 때가 있다. 책을 읽으며 두근두근 설레이게 하는 그런 특유의 마법같은 그의 이야기에. 아, 물론 그러려면 뻔히 보이는 결말에도 ‘에이, 이게 뭐야. 이럴 줄 알았어!’라며 실망하기보다는, ‘이럴 줄 알았지만, 그래도 재미있었어. 역시 당신이야.’라는 포용력[?]같은 게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사실 나는 책과는 거리가 먼 학생이었는데, 내가 제대로 책을 읽게 된 것은 - 고등학교 때, 내가 속한 문학동아리 때문이기도 했다. 내가 원해서 들기는 했지만, 그 계기가 책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수능과목 중 언어 점수를 좀 더 높이기 위해서 였을 것이다. 책은 내게 좋아해서 읽는 것이 아니라, 읽는 도중에 이 문맥에서 어떤 단어가 어색하고, 어떤 연결어미가 와야하며, 이 문장이 여기에 알맞은지, 마지막에 다다라서는 결국 작가의 의도는 이것이었다 따위로 해석을 해야하는 공부였다. 그리고 나에게 책이 재미있을 수 있다,는 것을 처음 느끼게 해주었던 책이 기욤 뮈소의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 - 그것이 어떤 것이었어도 상관은 없었겠지만, 기욤 뮈소의 책을 처음으로 시작했다는 것이 아마 그를 늘 한결같이 지지할 수 있는 이유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런 그의 새 작품이 나왔다. 또 한 번 두근거릴 수 있는 여유를 선물 받은 것과도 같다,며 기분좋게 싱긋 웃어보인다.

 

 

 

 

 

첫 눈에 반해 결혼까지 골인한 세바스찬과 니키는 슬하에 쌍둥이 남매를 두었지만 성격 차이로 이혼을 하게 되고, 각자 자신을 닮은 아이를 한 명씩 맡아 키우고 있다. 다른 방식으로 키워진 아이들은 어느새, 열다섯 살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세바스찬은 니키에게서 제레미가 사흘 째 행방불명이 되었다는 연락을 받게 되고, 그렇게 그들은 7년 만에 해후한다. 부부는 제레미의 방을 뒤지다가, 대량의 코카인과 도박에 빠져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들은 아들의 행방을 찾기 위해 드레이커 데커의 선술집을 찾아 가고, 그곳에서 괴한의 습격을 받아 정당방위로 그 괴한을 살인하는 지경에 이른다. 하지만 살인이 정당방위라는 것을 알리는 것보다 아들의 행방을 찾는 것이 급선무였던 부부는 선술집을 나오고, 아들 제레미가 폭행을 당하는 의문의 동영상을 수신하게 되는데, 폭행을 당하는 장소가 파리의 한 전철역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그들은 파리로 향하지만, 설상가상으로 지명수배가 되어버려서 그들은 그들을 좇는 경찰의 눈을 피해 움직여야한다. ㅡ 책을 읽으며 퍼즐이 하나씩 맞추어지며, 분명 이것일거야! 했던 것이 정말 그것이었을 땐, 왠지 모르게 맥이 빠지는 기분이었다. 그럼에도 이야기 전개에 카미유의 행방불명과 여형사 콩스탕스의 추적, 힌트를 통해 얻게 되는 단서, 그리고 종종 세바스찬과 니키 부부의 로맨스 등이 책의 가속도를 높였다. 누가 뭐래도, 그의 작품은 사랑으로 시작해서 사랑으로 끝나는 - 그는 역시 귀여운 미소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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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박 향기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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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칠월. 잠 못 이루는 열대야의 시작에서 한 권의 책을 집었었다. 「수박 향기」 - 입 안에서 수박이 아그작, 아그작 으깨어지며 수박 특유의 향이 퍼지는 달콤한 상상을 하며, 자기 전, 한 단 편씩을 꼬박 읽고 잤었다. 그리고 유난히 일찍 첫 눈을 본 십일월에, 다시 열 한 명의, 어쩌면 에쿠니 가오리, 오롯한 그녀 한 명일 수도 있는 어린 그녀들을 찾았다. 입동이 지나 초겨울의 바람이 불고 있는 오늘에도 그녀들은, 여전히 자신들이 서 있던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빵을 굽는 냄새 때문인지 공장 부지 안은 바깥세상보다 온도가 조금 높게 느껴졌고, 그 온도 차만큼 현실이 주위와 어긋나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석류나무에 기대어 발치를 내려다보면서 -짙은 하늘색의, 그 당시 제일 싸구려였던 운동화 코와 바람에 흔들리는 방동사니와 초롱꽃- 그저 멍하니 있었다. 벽에 금이 간 희끄무레한 건물과 굴뚝, 시간이 멈춘 듯한, 무언가가 조금 틀어진 듯한 공간. 그곳은 기묘하면서도 아주 편안하고 기분 좋은 장소였다. [p54 ::바닷가 마을]

 

 

 

 

수박에 새까만 개미들이 잔뜩 줄지어 꼬여 있었던 것도, 거북이는 등딱지 속에 사는 게 아니라 몸 자체가 등딱지라는 사실도, 깊은 구덩이를 파고 사라진 후키코씨도, 비가 오는 날이면 장화를 신고 장화 밑바닥에 아작 뭉개지는 가볍고 상쾌한 감촉을 느끼며 달팽이 살육을 즐겼던 것도, 죽은 매미를 손바닥에 놓고 ‘주거주거주거주거’라고 말하던 야마다 타로도, 빵 공장에서 만난 아줌마에게 금붕어 같은 유리구슬을 준 것도, 하늘나라로 가버린 -나방은 친절하다며 좋아했던- 남동생도, 허벅지에 호랑나비 스티커를 붙였던 신칸센에서 만난 여자도, -그의 손바닥을 주욱 그었던- 소각로에 버려진 면도칼도, 바람이 잘 통해서 시원하다며 속옷을 입지 않았던 엄마도, 교문을 둥그렇게 꾸미고 있는 장미 아치를 상상하며 이야기를 지어낸 것도, 돌봐야하는 여동생과 -망가진- 남동생을 가졌던 하루카나, 불쑥 연락을 취해오는 M도.

 

 

 

 

그것들의 기억,과 그들,은 모두 온전하게 에쿠니 가오리 그녀의 것이거나 그녀인 것만 같다. 그것을 가와카미 히로미는 색깔도 예쁘고 모양도 고운 에쿠니 가오리의 비밀,이라 칭하며, 그 무엇보다 소중할 자신의 비밀,은 에쿠니 가오리의 비밀에 비하면 시덥잖다,라고 이야길한다. 사실 그렇게 보인다. 무심한 듯, 툭툭 내던져놓는 에쿠니의 문장들은 섬세하고, 긴밀한 까닭이다. 오랜만에 읽은 에쿠니 가오리의 이야기는 - 몸통을 관통하듯 싸하게 부는 초겨울 바람이 무색하게, 깊은 우물의 물을 퍼올리며 먼 곳에서부터 찬 바람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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