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영의 화해 - 상처받은 내면의 ‘나’와 마주하는 용기
오은영 지음 / 코리아닷컴(Korea.com)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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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를 시청한 적 있었다. 아이들에게서 보이던 문제의 양상들은 결국 부모의 잘못된 행동이나 언어에 있음을 알고는 신선한 충격을 받기도 했다. 그 프로그램을 통해 오은영 박사를 처음 알게 되었는데, 어떻게 저렇게 세심한 부분까지 다 알까- 하는 생각에 참 대단하게 느껴졌다. 아이를 훈육하는 부분에 있어서 특히나 그랬는데, 당시 미혼이었던 내 입장에서는 부모와 자식을 벗어나서 정말 사람을 질리게 만드는 행동들에 대해 부모라는 이름으로 다양하게 훈육을 시도하고 바르게 고쳐줘야 한다는 게 내가 범접할 수 없는 세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와 생각해보면 내가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지금의 생각이 정립된 것 같다. 아이를 낳는 것이 단순하게 아이를 낳아 기른다는 것이 아니고, 아무것도 모르는 동물을 인간으로 만드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게 된 계기가.

가끔 나는 오은영 박사의 칼럼을 읽는다. 그러면서 나와 비슷한 상황에 있는 타인의 이야기를 읽고 오은영 박사의 답변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끼기도 한다. 그런데 요즘 내 마음이 정서적으로 괜찮아서인지, 칼럼을 전보다 자주 챙겨 보지는 않게 되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오은영의 화해>는 꼭 읽어야지, 했다. 다른 게 아니라, 상처받은 내면의 '나'와 마주하는 용기라는 부제 때문이었다.

내가 아주 어릴 적부터 (단지 화가 나서라는 것도 알지만) '네가 종이라면 찢어내버리고 싶다.'라고 누누이 말했던 엄마를, 나는 더 이상 만나지 않는다. 엄마를 만나지 않게 된 계기는 다른 이유지만, 엄마를 만나지 않는 동안 곰곰이 생각해본 결과 나는 엄마를 오래전부터 아주 많이 미워하고 있었던 것을 깨달았다. 그전에 내가 겪어야 했던 엄마라는 한 개인이 나에게 영향을 준 것은 지대했다. 지금도 여전히 엄마에게 쌓인 서운함과 서러움은 내가 생을 살면서도 잊을 수 없는 종류의 것이라는 건 분명하다.

어릴 적 나는 나름대로 잘 성장을 했다고 생각하며 지냈는데, 내가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나의 성격이나 가치관 등의 근원지가 어디인가-를 고민하다 보면, 대부분 어린 시절에 상처를 받았던 것들로부터 이어지게 되었다. 언젠가 한 번은 엄마에게 어릴 적 내가 상처받은 일들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엄마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거나 그것이 왜 잘못되었는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았고 나는 그런 부분에 대해 다시 한 번 상처를 받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엄마의 입장에서 더 생각해보려고 애를 썼다. 특히 그 나이가 스물다섯이었다. 철이 없던 내 나이 스물다섯과 나를 낳아 기르고 있던 엄마의 스물다섯은 동일한 나이를 통과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엄마도 많이 힘들었겠지.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니까. 하면서 이해를 하다가, 그래도 그렇게 할 것까지는 없었잖아. 라면서 미워하다가 그래도 엄마는 나를 사랑했으니까 하면서 이내 아무것도 얻지 못한 상태가 되어버리는 것이었다

그런 의미로 <오은영의 화해>는 내게 참 특별한 책이 되었다. 나는 이 책을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집에서, 카페에서 읽었는데 수시로 울컥하는 마음이 생겨서 이 책을 연달아 읽을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단지 조금 위로를 받을 요량이었는데, 나는 내 마음을 알고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같은 오은영 박사의 글에서 펑펑 울어버리기 일쑤였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며 가장 많이 울컥했던 부분은 '허구의 독립성(pseudo-independence)'에 관련해서 쓰인 글들이었다.

213. 인간에게는 꼭 채워져야 하는 의존 욕구라는 것이 있습니다. 독립적이냐, 의존적이냐 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예요. 중요한 사람에게 조건 없이 가장 소중한 존재로 여겨지는 경험, 사랑이 필요할 때는 사랑을, 위로가 필요할 때는 위로를, 보호가 필요할 때는 보호를 받아야 하는 기본적이고 생존적인 욕구가 바로 의존 욕구입니다. 그런데 이 의존 욕구를 채우지 못하고 어른스러워야 했던 아이들은 '허구의 독립성'을 갖게 됩니다. 실은 의존적인데 겉으로는 독립적인 것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어린 시절에 허구의 독립성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사람은, 인생의 모든 것이 일처럼 느껴질 수 있어요. 삶의 모든 것이 다 내가 해내야 하는 책임들인 것만 같죠. 고통이 끝이 없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216. 여러 가지 이유로 어린 시절 아이로 살지 못했다면, 지금이라도 다시 자식의 자리로 내려오는 경험을 해야 합니다. 부모가 들어 주든 아니든, 부모에게 힘들었다고 말하세요. 그리고 부모의 부모가 되려는 행동은 이제 그만하세요. 허구의 독립성을 가진 분들 중에는 마음 깊은 곳에 언젠가는 나를 인정해 주겠지 하는 마음에, 미움이 크면서도 부모를 가장 가까이에서 챙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좀 멀어지세요. 어린 시절 채우지 못한 의존 욕구는 배우자가 채워 줄 수도 있습니다. 배우자는 너무나 소중하고 중요한 관계예요. 진지하게 자신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정서적 보호와 위로를 받으면 많은 부분이 채워집니다.



216. '허구의 독립성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분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정말 최선을 다해서 살았을 거예요. 죽을힘을 다했을겁니다. 당신의 삶에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너무 힘들었죠. 지금도 무척 힘들 겁니다. 이제는 내려놔도 괜찮아요. 좀 허점을 보여도 괜찮습니다. 좀 게으를 정도로 내려놔도 돼요. 열심히 안 하고 쉬어도 괜찮습니다. 이 세상에서, 이 우주에서 제일 소중한 사람은 '나'입니다. 내가 없으면 세상도 없어요. 그걸 잊지 마세요.

이 부분을 읽으며, 카페에서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모르겠다. 다행한 것은 나의 배우자 J는 내가 결핍되어 있는 것들을 채워주고 있었다. 내가 무리하게 요구하는 것일 수도 있는 것들에 대해서도 본인이 감당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면 나의 편에 서서 생각해준다. 2019년 1월 1일이 되자 그는 내게 말했다. "편하게 살아, 편하게." 그것으로 모든 말을 일축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지지를 아끼지 않고, 지원 역시 마다하지 않는다. "내가 뭐 하면서 살아야 하지? 나 앞으로 어떻게 살면 될까?" 하는 말에도 "하긴 뭘 하면서 살아, 그냥 앞으로도 '벨라'해."라고 말해주는 고마운 그이다.

하지만 그에게도 내가 겪었던 모든 일들을 다 말할 수도 없고 말하기 싫은 것들도 존재했다. 그런데 오은영 박사의 글을 읽으면서 내가 어릴 적 느꼈던 복잡 미묘했던 감정들이 그대로 되살아나며 지금의 나를 어린 시절의 나에게로 데려다주었다. 내게는 아파서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과거도 있었는데, 오은영 박사는 용서가 되지 않으면 용서하지 않고 그대로 살아가도 된다고 이야기하기도 하고, 내려놔도 괜찮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부모에게서 상처를 받은 자식들은 부모에게 당시의 상처를 내보이고 달래주었으면 하지만 사과가 인색한 부모들에게 또다시 상처받을 수 있는 자식들을 걱정한다.

257. 화해는 '내'가 '나'와 하는 겁니다. 부모는 죽을 때까지 '나'에게 사과하지 않을 수 있어요. 우리는 죽을 때까지 부모를 용서하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그 마음, 그냥 그대로 두세요. 누구도 나 아닌 남을 어쩌지 못해요. 부모도 내가 아닌 이상 납입니다. 결국 '내'가 화해해야 하는 것은 '나'예요.

속절없이 당했던 '나'와 화해하고, 이 사람들이 나를 망치면 어떻게 하지 했던 '나'와도 화해해야 합니다. 자신을 형편없이 생각했던 '나'와 화해하고, 자신을 비난했던 '나'와 화해하고, 자신의 나쁜 면에 진저리를 쳤던 '나'와 화해해야 합니다. '나' 자신을 세상의 가장 초라하고 작은 존재라고 여겼던, 그래서 '나'는 어떤 것도 가질 수 없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느꼈던 '나'와 화해해야 합니다.

결국 내가 화해를 해야 하는 대상은 부모가 아닌 '나'였구나. 본질은 '나'를 들여다보는 것에 있구나. '나'의 감정을 들여다보고, '나'의 내면과 좀 더 깊숙이 소통하는 것. '나'에 대한 관찰을 게을리하지 않는 것.



38. 가슴 아프지만 부모님이 이제 와서 진심 어린 사과를 할 거라고 기대하지 마세요. 대부분 사과하지 않습니다. 사과를 받아야만 나의 상처가 치유되고 마음이 편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사과받는 데 매달리면 부모가 끝내 그 기대를 저버리고 떠날 경우에 더 큰 상처를 받을 겁니다. 부모에게 사과를 받는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지금 당신에게는 자신의 마음을, 자신의 오랜 아픔을 부모에게 털어놓는 그 시도 자체가 중요해요.

41. 많은 부모가 자식의 고백에 "그랬다면 미안하다"가 아니라 "그랬다면 이해해라"라고 합니다. 이들이 정말 자식 걱정을 한 번도 안 했을까요? 저는 그렇게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걱정했을 것입니다. "미안했다. 나는 그런 뜻이 아니었는데 사느라 바빠서 못 챙겼어. 네가 그렇게 받아들였다면 마음이 생했겠구나. 미안하다." 이렇게 말해 주면 그 엉킨 실타래가 조금은 풀릴 텐데, 우리 부모들은 끝끝내 그렇게 말하는 것에 인색합니다.

47. 부모가 준 상처들은 영영 아물지 못할지도 몰라요. 이해가 안 되면 안 되는 채로, 용서가 안 되면 안 되는 채로 있어도 괜찮아요. 그렇게 살아도 괜찮습니다. 그것이 당신의 감정에 대한 존중입니다.

207. 자식도 탯줄이 끊기는 순간 '남'이에요. 생판 모르는 '남'이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아닌 '남'이라는 의미입니다.

211. 아이가 내 말을 잘 들을 거라는 전제 자체가 육아를 힘들게 합니다. 매일매일 말 안 듣는 아이 앞에서 그럼 어떻게 할까요? 답은 하나입니다. 그냥 새날이 밝았다고 생각하세요. 우리는 어제 세수하고 오늘 도 세수해요. 새날이 밝았으니까요. 우리는 어제 양치하고 오늘 또 양치합니다. 새날이 밝았기 때문입니다. 30분 전에 해 줬던 말, 아이가 못 지켰습니다. 새날이 밝은 겁니다. 또 세수하듯이 또 양치하듯이 새날이 밝은 겁니다. 아이의 행동에 의미를 부여하지 말고 그냥 또 말해주세요. 육아는 상황 상황마다 새날이 밝은 거라고 생각해야 마음이 좀 낫습니다 아이가 또 말을 안 들으면 '아, 또 새날이 밝았구나' 생각하세요. 새날이 너무너무 자주 오더라도 눈 한번 질끈 감고, 심호흡 한번 크게 하고 '새날이 밝았구나' 생각하세요. 저도요, 그렇게 키웠습니다.

<오은영의 화해>는 부모에게 받은 상처를 깊이 간직하고 있는 사람 외에도, 아이를 키우고 있는 부모가 읽기에도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이를 키우고 있었다면 나는 이 책에서 아이의 발달상황에 조금 더 여유로워질 수 있었을 것이고, 새날이 밝았구나-를 되뇌고 있을 것 같으니까. 그리고 여러 상황에서 아이의 입장을 조금 더 들여다볼 수 있게 해주는 사연들이 있어서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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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에게 아침달 시집 9
김소연 지음 / 아침달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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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언젠가, 김소연 님의 <시옷의 세계>를 읽으려고 시도했던 적이 있다. 당시에 내 마음의 상태가 어땠는지는 기억하지 못해도 글을 읽는 게 아니라 글자 자체로만 읽고 발음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어서 도서관에서 빌렸던 그 책을 얼마 읽지 못하고 반납을 했었다. 아마 네 장 남짓 읽었겠지, 싶다. 시집을 읽고 싶은 건지, 시집을 읽는 척을 하고 싶었던 건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제 정말 시를 읽어봐야지 - 생각했던 시기가 2018년 하반기였다. 시기적절하게 어느 날 블로그 이웃님의 글에서 김소연 님의 <i에게>라는 시집을 알게 되었다.

 

 

 

 

 

 

 

시집 <i에게> 속에 들어있는 대부분의 시를, 나는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내가 시를 이렇게 오래도록 마주했던 순간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나는 1월의 며칠 동안 시를 반복해서 읽으며 나를 잃었고, 나를 잊었다. 그리고 다시 나를 꺼내고, 너를 꺼내고, 우리를 꺼내고, 그러다가 다시 넣고... 그럴 리 없겠지만 닳아서 없어지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유별나게 나는 많은 것들을 꺼내어 돌보고 닦았고 다시 넣는 행위들을 반복했다. 그동안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괴이한 감정이었다.

 

 

 

 

 

 

 

<다른 이야기>

 

 

 

 

 

처음 만났던 날에 대해 너는 매일매일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우리가 어떤 용기를 내어 서로 손을 잡았는지 손을 꼭 잡고 혹한의 공원의 앉아 밤을 지샜는지. 나는 다소곳이 그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가 우리가 우리를 우리를 되뇌고 되뇌며 그때의 표정이 되어서. 나는 언제고 듣고 또 들었다. 곰을 무서워하면서도 곰인형을 안고 좋아했듯이. 그 얘기가 좋았다. 그 얘기를 하는 그 표정이 좋았다. 그 얘기가 조금씩 달라지는 게 좋았다. 그날의 이야기에 그날이 감금되는 게 좋았다. 그날을 여기에 데려다 놓느라 오늘이 한없이 보류되고 내일이 한없이 도래하지 않는 게 너무나도 좋았다. 처음 만났던 날이 그리하여 우리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는 게 좋았다. 처음 만났던 날이 처음 만났던 날로부터 그렇게나 멀리 떠나가는 게 좋았다. 귀여운 병아리들이 무서운 닭이 되어 제멋대로 마당을 뛰어다니다 도살되는 것처럼. 그날의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때마다 우리가 없어져 버리는 게 좋았다. 먹다 남은 케이크처럼 바글대는 불개미처럼. 그날의 이야기가 처음 만났던 날을 깨끗하게 먹어치우는 게 좋았다. 처음 만났던 날이 아직도 혹한의 공원에 앉아 떨고 있을 것이 좋았다. 우리가 그곳에서 손을 꼭 잡은 채로 영원히 삭아갈 것이 좋았다.

 

 

 

 

 

 

 

 

 

 

<경배>

 

 

 

 

 

나쁜 짓을 이제는 하지 않아

 

나쁜 생각을 너무 많이 하기 때문이지

 

 

 

(...)

 

 

 

병이 멈추었니

비명이 사라졌니

 

 

 

나의 병으로 너의 병을 만들던 짓을 더 해주길 바라니

예의를 다해 평범해지는 일을 너는 경배하게 된 거니

 

 

 

(...)

 

 

 

모든 게 끔찍한데

가장 끔찍한 게 너라는 사실 때문에

너는 누워 잠을 자버리지

다음 생에 깨어날 수 있도록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는데

모든 것에 익숙해져버렸지

익숙해져버린 나를 적응하지 못한 채 절절매지

젓가락을 들어 올려

전을 다 먹을 뿐

 

 

만약 이 세상이 대답이었던 것이라면

그 질문은 무엇이었을까

더 강하고 더 짙은 이 부추였을까

병이 멈추어버린 병은 어떻게 아픈 척을 해야 할까

 

 

 

 

 

 

 

 

<우리 바깥의 우리>

 

 

 

-이제 전부 죄인이 되었는데 앞으로 벌은 누구에게 받나

 

추위 때문에 소름이 돋는 건지

소름이 돋기 때문에 춥다고 느끼는 건지

 

(내가 알던 나에 대한 (내가 알던 나에 대한 (내가 알던 너에 대한) 내가 알던 나에 대한) 내가 알던 나에 대한)

 

우리 바깥에는 우리가

우리로부터 바깥으로 우리에게로

우리 바깥의 우리를

 

 

 

 

 

 

 

 

<방법들>

 

 

 

방법들을 읽으며 픽 - 웃었다. 너무 그럴싸해서.

 

 

 

 

 

 

 

 

 

 

 

 

 

<바깥>

 

 

 

얼굴은 어째서 사람의 바깥이 되어버렸을까

 

창문에 낀 성에 같은 표정을 짓고

당신은 당신의 얼굴에게 안부를 물었다

 

안에 있어도

바깥에 있는 것 같아 바깥으로 나와버릴 때마다

안쪽은 먼 곳에 있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

 

당신은 다시 잠이 들었다

얼굴을 벗어

창문 바깥에 어른대던 저 나뭇가지에다

걸어둔 채로

 

당신의 바깥은 이제 당신의 얼굴을 쓰고 있다

안으로 들어오겠다고 당신의 방을 밤새

 

부수고 있다

 

 

 

 

 

<i에게>

 

 

밥만 먹어도 내가 참 모질다고 느껴진다 너는 어떠니.

 

 

 

 

 

 

 

<편향나무>

 

 

 

한 번도 원한 적 없는 이 세계에서

백년은 살아야겠지

미치지 않고서 그럴 자신이 있겠니

 

용기라는 말을 자주 쓰는 자는 모두 비겁한 사람이 되었다

내 생각을 나보다 더 잘 읽는 자는 모두 적이 되어 있었다

아침마다 나는 고쳐 말하고만 싶었고

 

작년의 감이 새까맣게 매달려 있는 사월의 감나무를

빨랫줄을 꽉 물고 있는 빨래집게들을

 

등에 난 흉터를

아까 본 그 사람을

거북이처럼 걷던 그 사람을

거북이는 등이 있어서 다행이고

 

같은 맥락에서

거북이 등 뒤에는 아무것도 없어서 다행이고

 

배낭을 메고 내가 나를 거듭 떠났다

나를 배웅하기 위하여 나는 또다시 어딘가로 떠났다

한 번도 살아본 적 없는 곳으로 가서

 

얼굴을 버리고 돌아와 얌전하게

생활을 거머쥐는 나에게로 벚꽃잎들이 달라붙을 때

얇이라는 말을 깊이 생각했다

 

자기자신이 자기자신에게 가장 거대한 흉터라는 걸 알아챈다면

진짜로 미칠 수 있겠니

 

 

 

 

 

 

 

고작 책 한 권을 읽었을 뿐이라 조금 속단하는 게 아닌가 싶지만, 김소연 시인은,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만나고 싶은 '사람'이 되었다. 시를 읽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 내가, 참 오래도 시인의 시들을 하나하나 고이 끌어안고 있었다. 난 아마 앞으로 시인의 시에 조금 더 깊숙이 관심을 가지게 될 것만 같다. 다 읽어두고도 아직 반납을 못했는데, 다시 한 번 스-윽 훑어보고 반납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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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작은 순간들 - 카타나 코믹스
카타나 쳇윈드 지음, 그레고리 이브스 외 옮김 / 북레시피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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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랑을 말하기도 하고 사랑을 내뱉기도 하고 사랑을 읊조리기도 하고 사랑을 속삭이기도 하고 사랑을 갈구하기도 하며 사랑을 기다리고 사랑을 훔치고 사랑을 (...) 개개인이 가진 수많은 사랑은, 사랑을 ~한다. 사랑에는 어떤 수식어를 붙여도 어쨌든 그대로 사랑,이다. 그 유치한 사랑이라는 단어가, 나는 그렇게나 좋다. 결혼의 이유에는 당연히 사랑이 전제가 되고 뒤에 수많은 조건들이 붙어있다지만, 나의 경우에는 사랑이 첫 번째부터 열 번째를 아우를 정도로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 내가 이 사람을 몇 십 년 동안 /사랑할 수 있는 노력/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도 기꺼이 가졌던 시간들이 떠오른다. 결국 내가 결혼을 결심하게 만들었던 말은, 여자는 나이가 어떻든 사랑을 줘야 하는 동물이야. 라는 말 한마디였다. 그걸 아는 사람이라니! 라면서.

 

 

 

 

내가 되고 싶은 나의 모습은 수만 가지 정도인데, 좋은 사람, 다정한 사람, 현명한 사람이 되고 싶은 내면에는, 사랑이 늘 존재했다. 사랑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들. 그러니까, 사랑이 많고 사랑을 주고 사랑을 하는 사람. 나는 사랑에 결핍된 인간이어서 더욱 동경했던 모습이기도 했다. 나는 내가 원하는 이상향에 절대로 도달할 수 없을 것처럼 보였는데, 조금씩 마음이 열릴 때를 목격하는 순간이 있다.

 

 

 

 

나의 삶에 사랑이 없었더라면, 나는 지금과 같은 만족스러운 생활은 할 수 없었을 거야- 라고 생각하면서도, 특별한 삶을 사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말하는 게 우스운 거 아닌가- 하고 흠칫 놀라게 된다. 하지만 사랑 역시 행복과 마찬가지로 느끼는 순간이 짧기 때문에 사랑이 과할 때와 사랑이 결핍될 때, 사랑을 할 때와 사랑을 받을 때를 인지하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늘 순간순간이 사랑이다. 그 순간을 충분히 향유해야 한다.

 

 

 

 

 

이 책이 그 순간들을 모아두었다. 기록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사랑의 작은 순간들

 

 

 

 

 

 

 

 

 

 

 

꼭 나와 J씨 같아서 이 부분들은 따로 찍어두었다. 사진에는 없지만 J씨의 관심을 받기 위해 몸부림치는 내 모습과 흡사한 것도 있었는데, J씨에게 그 부분을 보여주니 “아... 벨라... 하......” 하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한숨 뭐... 도대체 왜... 무엇 때문이야?...) 첫 번째 사진도 마찬가지. (여보 내가 싫으니?... 사랑해서 그래...... 내 사랑 표현의 방법이야... 존중해줘-)

 

 

J는 출근 전에 급하게 나가는 게 아니라면 꼭 자고 있는 내게 와서 안아주고 뽀뽀를 해주고 출근하는데, 나는 그걸 모르고 잘 때가 조금씩 많아지고 있다. (잠이 많아져서가 아니라 단지 겨울이라고 핑계 대고 싶다...) 그래도 열에 여덟 번 정도는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잘 다녀오라며 그를 배웅한다. (예전에는 현관문까지 배웅 나갔는데 이 역시도 겨울이니까 추워서 이불 밖은 북극이라며...) 그리고 또 잠에 빠져든다. (겨울이니까... 지겨운 겨울 타령)

 

 

그리고 세 번째 사진은, 너무나도 J씨 같아서 찍어두었는데, 아 - 정말로 엄살이 왜 이렇게 심한지! 나는 내 남자만 그런 줄 알았는데, 존의 코드를 뽑으라는 말에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내 남자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J씨는 “내가 죽으면 연금도 타먹고 재혼도 하고 어쩌고 블라블라-” ...

 

 

짤막한 그림들과 글들을 보면서, 일상에서 사소하게 일어날 수 있는 사랑의 순간들을 그려두었는데 공감이 되는 부분도 많았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도 많았다. 사랑의 모양이 꼭 같지만은 않으니까 당연한 일이겠다. 나도 우리의 사랑의 순간들을 더욱 기록해야지. 싸운 것도 아주 자.세.하.게 일기에(무지막지한 욕을 써놓으며) 기록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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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캐럴 - 크리스마스의 유령 이야기 새움 세계문학 10
찰스 디킨스 지음, 박경서 옮김 / 새움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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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어쩐지 별이 반짝 반짝이고 딸랑딸랑거리는 책을 읽어야 할 것만 같은 의무감이 들게 된다. 크리스마스라는 것을 제대로 느껴본 적이 있었나, 있었다면 언제인가 싶으면서도 과감하게 동심의 세계로 흠뻑 빠지고 싶은 그런 날이기 때문에. 그래서 선택한 책은 호프만의 <호두까기 인형>과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이었다.



<크리스마스 캐럴>의 배경은 1940년대 런던의 크리스마스이브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돈돈돈, 돈밖에 모르는 구두쇠이면서 타인에게 베풀 줄 모르고 오로지 자신의 이익만을 계산하면서 삶을 살고 있는 스크루지가 등장한다. 쥐어짜고, 비틀고, 움켜쥐고, 긁어모으고, 잡아채는 탐욕이 가득한 저 늙은이!


크리스마스이브에 스크루지를 찾아온 조카, 스크루지는 “전 아저씨한테 원하는 게 없고 부탁도 안 하는데, 왜 우린 사이좋게 지낼 수 없어요?”라고 말하는 조카를 가난뱅이라고 무시하며 냉담하게 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카는 크리스마스에 자신의 집으로 스크루지를 초대한다. 거절당할 것을 알면서도 매해 초대를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언젠가 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하지만 이번 역시 실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카는,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는 인사도 꼬박 전해주는 것이다.



서기 봅 크래칫에게도 크리스마스에 쉬게 해주는 것에 대해 생색을 얼마나 내는지 원-


“내일 하루 종일 놀고 싶겠지, 아마도?”

“사정이 괜찮다면요, 선생님.”

“사정이 괜찮질 않아. 게다가 공평하지도 않아. 하루를 쉬었다고 내가 반 크리운을 깎으면, 자넨 아마도 혹사당한다고 생각하겠지. 그렇지?”

“그러나, 일은 하지 않으면서 하루치 일당을 자네에게 줘야 하는 내 쪽은 손해 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겠지.”

서기는 그런 경우는 1년에 단 한 번뿐이지 않으냐고 말했다.

“매년 12월 25일마다 남의 호주머니를 털어 가려고 하는 허울뿐인 핑계지! 아무튼 하루 종일 쉬고 싶겠지. 모레 아침에는 일찍 출근해야 해.”


스크루지를 보면서, 어쩐지 <오베라는 남자>의 오베가 떠오른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투덜투덜, 보는 내내 미간이 찌푸려질 정도.


어쨌든, 그는 음침한 선술집에서 우울한 저녁을 먹고 신문을 죄다 읽고 나서, 자신의 은행 통장을 들춰 보며 나머지 저녁 시간을 보낸 후 잠자리에 들기 위해 집으로 갔다. 그런데 그런 그에게 말리가 찾아왔다. 말리가 찾아오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말리는 죽었기 때문이다. 그는 공포심이 극에 달아 덜덜 떨면서도 말리의 유령과 대화를 한다. 말리의 유령은 쇠사슬에 묶여 있었는데, 그것은 생전에 본인이 만든 쇠사슬을 걸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스크루지, 당신은 더더욱 무거워졌을 것이라고. 하지만 쇠사슬을 감고 살아야 하는 것을 피하게 할 수가 있다고 하며, 자신을 제외한 세 유령이 찾아올 것이라고 일러준다. 그러면서 스크루지에게 차례로 과거의 크리스마스 유령, 현재의 크리스마스 유령, 미래의 크리스마스 유령 - 세 유령이 찾아오게 된다. 스크루지는 세 유령을 따라다니며 변해간다. 놀라울 정도로.




어젯밤 내 집 문 앞에서 크리스마스 캐럴을 부르던 아이가 있었소. 걔한테 뭘 좀 주었으면 좋았을걸요.

지금 내 서기한테 한두 마디 따뜻한 말이라도 해줄 수 있으면 좋겠소!




자본주의의 사회에서 스크루지와 같은 유형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어쩌면 스크루지와 정도가 다른 것뿐이지, 나 역시도 얼마든지 스크루지가 되어있을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며칠 전 나보다 직급이 낮은 직원과 면담을 가지는 시간을 가진 적이 있다. 혹시라도 나에게 불만이 있으면 이야기하라는 내 말에 직원은 답했다. “대리님은 개인주의적인 것 같아요. 피해만 주지 않으면 된다는 식이요. 그러면서 저희에게 정을 주지 않으려는 것 같아요.” 직원이 개인주의적이라는 점을 인지한 상황이 조금 얼토당토 하지 않아서 조금 황당했지만, 그가 하는 말이 완전하게 틀린 말도 아니어서 일단은 수긍했다. 그런 일화가 떠오르며, 스크루지가 과연 타인에게 피해를 준 적이 있을까. 스크루지가 자신의 재산을 증식하는데 타인의 기여가 있었을까.라며 다시 생각해보게 되는 것도 있었다. 내가 너무 부정적인가 -



그와 별개로, 오가는 말이 다정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굉장히 동의하는 바이다. 스크루지가 기부를 하는 건 자유겠지만, 말하는 게 너무 못돼처먹었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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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 - 2018 제12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한강 외 지음 / 은행나무 / 2018년 10월
평점 :
절판


난처한 일이 그녀에게 생겼다. 벤치에 앉아 깜박 잠들었다가 깨어났는데, 그녀의 몸이 눈사람이 되어 있었다.

처음에 쓰여있는 이 문장이 이 책 내용의 전부다. 눈사람이 된 여자. 그것도 갑작스럽게. 雪.

눈사람이 되었다는 건 어떤 상태를 뜻하는 말일까. 정말 내가 생각하는 동글동글한 눈사람이 되었다는 건가, 아니면 단박에 보아도 눈사람임을 알아챌 수는 있지만 거부감이 없는 사람의 형체를 가지고 있다는 건가. 어떤 형태이든 그녀는 꽤나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그녀의 담담함이 나는 슬펐다. 어떻게 저렇게 차분할 수가 있지. 언젠가 눈사람이 될 줄 알았다는 듯이, 혹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렇게. 눈사람이라고 했을 때, 까불랑 거리는 올라프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이렇게까지 슬픈 눈사람일 줄은 몰랐다.


 

 

 

17. 이게 혹시 마지막인가.

그녀는 문득 의문했고, 살아오는 동안 두어 차례 같은 의문을 가졌던 순간들을 기억했다. 그때마다 짐작이 비껴가곤 했는데, 기어이 오늘인가.


 

나는 이 책의 제목이 왜 이별이 아니고 작별일까 생각했다. 급기야 작별의 사전적 의미를 찾기에 이르렀는데, 인사를 나누고 헤어짐이었다.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아마 사전적 의미의 작별이 와닿지 않았을 터였다. 여자는 아들 윤을 거쳐 엄마, 아빠, 남동생을 지나 그리고 남자친구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다 보니 작별이 가진 단어를 입에서 공글리며 오물거렸을 때 눈물이 차오르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46. 내가 널 원망할 거라고 생각해왔을지 모르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야. 네가 윤이와 나에게서 멀어져 가는 매 순간을 난 명백히 이해했어. 자신을 건설하기 위해 가깝고 어두운 이들에게서 등을 돌리는 사람의 용기를. 정말이야, 조금도 서운하지 않았어. 같은 방식으로 윤이가 나를 떠났다 해도 난 서슴없이 이해했을 거야. 다만 분명히 알 수 없는 건 이것뿐이야. 먼지투성이 창을 내다보는 것처럼, 아니, 얼음 낀 더러운 물 아랠 들여다보는 것처럼 말이야, 그러니까 어디까지가 한계인지. 얼마나 사랑해야 우리가 인간인 건지.

 



내가 이 세상을 떠날 때에 작별을 할 시간이 주어진다면, 누구와 할 수 있을까 - 생각해보면 J씨 말고는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J씨는 첫 번째요, 엄마가 마지막이 될 거였다. 아마도,라고 말은 하지만 명백히, 그러할 것임을 안다. 엄마를 많이 미워했지만 생각처럼 많이 미워하지 못했다고, 사실 엄마를 미워한 만큼 엄마를 사랑하고도 싶었다고. 꼭 그렇게 이야기하고 싶다. 모든 것을 그때 내려놓을 수 있겠지. 생의 끝에서는 하지 못할 것이 없을 테니까. ​

하지만 내게 작별할 시간이 주어질까. 나는 이 책을 다섯 번째 결혼기념일로 여행을 간 글램핑장에서 아침에 읽었는데, 씻기 위해 비운 짧은 시간 동안에 J씨가 보고 싶어졌었다. 갑작스럽더라도 J씨에게만은 꼭 작별할 시간이 주어지면 참 좋겠다. 지금 나의 곁에 있는 사람은 그이니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당신 덕분에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많이 행복했다고, 고마웠다고. 그런 말을 하고 싶다.

이 부분을 쓰다가 나는 차마 다 쓰지 못하고 엉엉 울어버렸다. 울다가 오늘도 근무인 그이의 전화를 받고 조금 정신을 차렸다. 그럼 뭐 해, 책에 대해 하려고 했던 말을 다 까먹었잖아...

 




43. 하지만 무서울 게 뭐야, 문득 소리 내어 그녀는 스스로를 향해 중얼거렸다.

늑골이 무너지고 옆구리가 부스러지면 어때, 뒤이어 생각했다. 이렇게 아무런 통증도 느껴지지 않는다면.

좀 전보다 또렷하게 목소리를 내어 그녀는 중얼거렸다.

고통이 없다면 두려움도 없지.

 

 

53. 비록 눈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아직 그녀는 사람이다. 하지만 언제까지일까, 그녀는 다시 스스로에게 물었다. 눈과 귀와 입술이 녹으면 어떻게 될까. 정수리부터 녹은 머리가, 눈 녹은 물이 되어 가슴으로 흘러내리면? 심장부터 발끝까지 형상이 남김없이 사라지면? 이 층계참에 흥건한 물웅덩이만 남으면.
그냥 끝이야.
소리 없이 입술을 달싹여 그녀는 자신을 향해 말했다. 홀가분했다. 미치도록 후련했다. 아니, 억울했다. 이가 갈리게 분했다. 아니, 아무것도 후회하고 싶지 않았다. 생각을, 제발 더 생각을 해야 했다. 가능한 시간만큼, 조금만 더.

 

 

55. 무엇을 돌아보는지 알지 못한 채 사력을 다해, 그녀는 가까스로 뒤를 돌아보았다.

 

이 부분을 몇 번이고 곱씹으며 나는 오래도록 먹먹해진 가슴을 끌어안았다. 눈사람이 된 자신을 담담하게 표현할 때, 아, 마지막을 기다린 사람 같다. 라는 느낌을 받았는데... 삶이란 그런 걸까. 언제라도 마지막을 기꺼이 받아들일 준비를 했으면서도, 다시 뒤를 돌아볼 수밖에 없는 것. ​홀가분함과 후련함과 억울함과 분함의 감정들이 뒤섞인 것, 그러면서도 후회하고 싶지 않은 것. 후회 없는 인생이 어디 있으랴 싶지만, 그럼에도 최선을 다해 후회하고 싶지 않을 것 같다, 나도. 끝인 걸 알잖아. 잘 살았다고 끝내야지, 잘 살고 싶었어라고 끝내면 너무 슬프잖아.

 


​사실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엔 한강 특유의 힘이 강하지 않아서 아쉽다고 생각했는데, 독서노트를 통해 책을 정리하고 서평을 쓰기 위해 책을 한 번 더 들여다보니 한심해서 웃음이 났다. 이렇게 좋았으면서. 왜 좋았던 것을 숨기고 있었나. 나는 괜한 고집을 부리고 있지는 않았나. 때에 따라 변화했고 변화하고 변화하고 싶어하고 변화할 수밖에 없는 것들이 세상에 무수히 많은데, 나는 무슨 자격으로 꾸준함을 작가에게 들이댔나. 혹은 이 책을 서너 번 더 읽으면서 나는 이 책을 이제야 이해하게 된 걸까. 읽을 때마다 비슷하지만 새로운 느낌이다. 책장에 고이 꽂아두어야지.

 

 

PS1. 이 책을 읽고 나서 단편집 《노랑무늬영원》 속에 실려있는 <노랑무늬영원>이 읽고 싶어졌는데, 이 책, 도서관에서 빌려읽었던 책이었네. 딱 그 단편만 다시 읽고 싶은데.

PS2. 나는 올라프를 본떠, 나는 벨라프야! 라는 말을 자주 하곤 했는데, 이 책의 여파로 나는 더 이상 내가 벨라프라는 말을 하지 않게 되었다. 눈사람이라니, 너무 슬프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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