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아프리카에 펭귄이 찾아왔습니다
테오 글.사진 / 삼성출판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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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 현재 이 책은 품절상태입니다.

 

 

 

 

여행 에세이라면 관심도 없던 내가 여행 에세이를 단박에 좋아하게 만들어준 책인 까닭에, 내게 이 책은 참 특별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게 벌써 몇 년 전이다. 그때 그 책을 읽으며 느꼈던 감정이 지금 읽어도 비슷할까, 싶은데 다시 읽어도 읽어도 여전히 좋은 책이 있는 반면에, 조금 아쉬웠던 책도 분명 있었다. 그렇다면 <당신의 아프리카에 펭귄이 찾아왔습니다>는 어떨지, 돌연 궁금해졌다. 그래서 작년 <당신의 소금사막에 비가 내리면>이라는 책을 읽기에 앞서 이 책을 다시 찾았다. 그런데 책을 든 손이 무겁다. 나는 이 책을 통해 다른 여행 에세이도 이렇게 좋은 것이구나, 느꼈었고, 그 이후에는 같은 장르의 다른 작가의 책들도 이미 몇 권이나 읽은 지금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완벽하게 기우였다.

여전히 좋았으니까.

 

 

 

당시에 서평을 썼을 때도 이 문장을 발췌했었는데, 이번 역시 마찬가지다.

 

47. 바람이 하늘을 닮아 베일 듯 파랗습니다.

하늘이 바다를 닮아 시리게 파랗습니다.

 

 

읽으면서 한 번도 가볼 생각을 않던 아프리카를 가고 싶어졌다.

무작정.

 

남아프리카 케이프타운의 볼더스비치에 있는 펭귄을 만나러,

시그널 힐에서 먼 곳을 향해 시선을 놓으러,

메뉴가 없는 랑가방 비치 레스토랑에서 4시간 코스 요리를 먹으러,

특히 갈매기의 덩어리가 골고루 섞인 홍합 스튜를 보러,

(감히 맛보러 간다, 라고는 말하지 못하는 수줍은(?) 나)

케이프타운 안에 있는 사막인 아틀란티스 샌듄에 샌드보드를 타러,

진주를 닮은 팔락 마운틴에서 나도 바위처럼 단단해지기 위하여,

봉봉카의 드럼 연주를 구경하러,

브라이(남아공식 숯불구이)를 먹으러,

거구의 펭귄과 대결하여 승리하기 위하여,

(나는 테오 씨를 비웃었지만 나도 분명 도망칠 게 틀림없다.)

테이블 마운틴에서 구름 위의 휴식을 취하러,

그래서 일상의 심장 박동이 아닌, 느릿느릿한 심장을 느꼈으면,

한 봉지에 700원씩이나 하는 하라레 감귤을 기꺼이 사기 위해.

 

 

 

여행은 떠나는 것이 아니라 향하는 것입니다.

여행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여행에게로 향하는 것입니다.

그가 물으면 나는 대답합니다.

여행아, 네게로 갈게.

 

 

 

 

그렇지, 내가 이 여행 에세이를 좋아한 이유가 있지.

그게 무엇이라고 한 가지 콕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사람들의 냄새가 나는 여행이라는 점.

 

 

3월 즈음에는 <당신의 소금사막에 비가 내리면>을 읽을 예정인데, 편견이든 오해든 사실이든 아프리카는 위험하다는 것으로 인해 J의 직업적인 이유로 여행을 가기가 퍽 힘이 들겠지만, 나는 또 얼마나 가고 싶어 할까. 심지어 며칠 전에는 볼리비아 우유니 사막을 보며 우와우와 감탄사 열백 번을 외쳤던 나인데. 아마도 그 소금사막이겠지- 세상에나... 어쩐담-월 즈음에는 <당신의 소금사막에 비가 내리면>을 읽을 예정인데,편견이든 오해든 사실이든 아프리카는 위험하다는 것으로 인해 J의 직업적인 이유로 여행을 가기가 퍽 힘이 들겠지만, 나는 또 얼마나 가고 싶어 할까. 심지어 며칠 전에는 볼리비아 우유니 사막을 보며 우와우와 감탄사 열백 번을 외쳤던 나인데. 아마도 그 소금사막이겠지- 세상에나... 어쩐담-

 

 

 

/

밑줄을 그었던 부분

 

 

 

84. 우월이 아니라 다름의 차이.

돈을 많이 버는 것과 한가해지는 것과의 차이.

부자가 되는 것과 자유로워지는 것과의 차이.

과정을 견디고 미래를 즐길 것인가와 과정 자체를 즐길 것인가의 차이.

다름.

그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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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02-20 1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주 오래 전에 읽은 책인데 품절
아마도 절판인가 보네요.

아프리카의 펭귄이 있다 해서 아주
궁금해서 접하게 된 것 같습니다.
 
서른의 반격 - 2017년 제5회 제주 4.3 평화문학상 수상작
손원평 지음 / 은행나무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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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어본 손원평 작가님의 책은 <아몬드>가 유일했다. 꽤 괜찮게 읽었기에 다른 작품들도 읽어보고 싶었는데, 선뜻 손이 가질 않았다. 그 이유라는 것이 조금 시시한데, 단지 제목 때문이었다. <서른의 반격>이라니. 제목에 나이가 들어갈 이유가 무엇 때문이라지,라면서. 같은 맥락으로는 이십, 삼십, 마흔이라는 나이를 언급한 책들에 대해 영 관심이 가질 않는다. 까닭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런데도 불구하고 나는 이 책을 읽을 운명(거창하게 운명씩이나)이었는지 부여에서 개인이 운영하는 서점에 갔을 때에도 이 책을 손에 들고 고민했고, 이후에 회사일로 외근을 나갔을 때 시간이 남아 교육청에 있는 도서관에 들러 이 책을 잠시 읽기도 했었다. 당시에 읽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흥미는 있었지만 딱히 사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는데 그 이후에 중고서점에 들어갔다 나온 내 손에는 이 책이 들려있었다. 책의 뒤표지에 쓰여있는 문장 때문이었다.

가서 항의해요. 가만있으면 그게 당연한 줄 알아요. 가만있으면 그렇게 해도 되는 것처럼 대한다구요.

조금 다른 게 있다면 나는 타인에게 이 말을 듣는 사람이기보다는 내가 타인에게 이 말을 하는 사람에 속한다는 것이었다.

202. “(…) 난 그냥 없는 사람이라구요…….”

없는 사람.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뜨거운 뭔가가 치밀어 올랐다. 그래. 없는 사람이다. 늘 소리치고 있는데도 없는 사람이다. 수면 위에 올라있지 않으면 없는 사람이다. 반지하방에 살면 없는 사람이고, 문밖으로 나오지 않으면 없는 사람이고, 인생과의 게임에서 지면 없는 사람이다.

여담으로, 작가의 말에서 초고를 쓸 때의 제목은 <보통사람>이었는데 <1988년생>으로 상을 받았고 책의 출간은 <서른의 반격>이 되었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책을 읽으면서 내내 ‘없는 사람’이라는 단어가 뇌에 붙어 떨어지질 않았다. 없는 사람, 없는 사람, 없는 사람……. 이는 내가 자꾸만 책의 제목에 딴죽을 걸고 싶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김추봉이 될 운명이었던 ‘나’는 엄마의 활약으로 김지혜라는 이름으로 탄생할 수 있었다. 그녀는 1988년생으로, 꼰대들과의 친화력은 물론 텃새를 부리면서 자신의 입지와 공로를 세우는 기술이 교묘한 유 팀장과 트림, 방귀, 머리 긁기, 손톱에 낀 때를 빼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청소 아주머니에게 반말을 하며, 청소 중에도 소변을 보고, 누구에게나 성희롱을 하는 김 부장이 존재하는 대기업 산하의 디아망 아카데미의 계약직 인턴으로 일하고 있다.

어느 날 스타 강사의 박 교수의 심부름으로 외근을 나간 자리에서 박 교수가 알바생의 원고를 그대로 출판사에 넘겨놓고 알바비를 주지 않았다는 말을 다른 사람들 앞에서 박 교수에게 당당하게 말을 하는 청년을 만나게 되고, 그녀는 그런 그를 조금은 신기하게 생각하면서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넘기게 된다. 그러다가 회사에서는 개학을 맞이하여 뭔가를 배우려는 수강생들로 바빠지는 때에 인턴을 한 명 더 뽑기로 결정한다. 인턴이 뽑혔고 지혜에게 악수를 청한 또 다른 인턴의 손목 위에 뭐가 있다. 별 모양의 문신? 어? 당신-

인턴에게는 아카데미의 강좌를 공짜로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데, (물론 엄밀히 말하면 공짜는 아니지만) 지혜는 규옥의 권유로 우쿨렐레 강좌를 함께 듣게 된다. 우쿨렐레 수업을 두 번째 들었을 때 어른들끼리 뒤풀이는 어떠냐는 말에 자리를 가지게 되었고 그 자리에서 뜻하지 않은 말들이 오가게 된다.

68. “힘 있는 소수는 언제나 여유만만하고, 힘없는 다수는 자신들이 무언가를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으니까요.”

68. “그럼 댁이 말하는 전복이란 건 무슨 뜻인데? 가진 놈들을 상대로 싸움이라도 벌여? 맘 맞는 사람이라도 모아서 시위라도 나서? 아니, 난 내가 누굴 상대로 싸워야 되는지도 모르겠어. 설령 뭔갈 한다고 쳐요. 뭐가 바뀝니까. 당신이 말하는 힘 있는 소수가 가진 게 뭔 줄 알아? 결국 돈이야 돈. 우리나라만의 일도 아니고 전 세계가 자본에 놀아나고 있는데 뭘. 그건 신도 못 바꿔.”

“그렇게 생각하는 한 세상은 점점 나빠질걸요? 억울함에 대해 뒷얘기만 하지 말고 뭐라도 해야죠. 내가 말하는 전복은 그런 겁니다. 내가 세상 전체는 못 바꾸더라도, 작은 부당함 하나에 일침을 놓을 수는 있다고 믿는 것. 그런 가치의 전복이요.”

그들이 사회의 부당함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에 이야기는 두 방향으로 나뉘었다. 내가 어떻게 바꾸겠어, 와 뭐라도 해야 한다,의 방향. 나는 후자의 입장을 선호하지만 생활과 환경, 상황에 따라 충분히 달라질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에 둘의 극명한 입장 차이 모두 이해가 가는 부분이어서 시시비비를 가릴 수 없다.

“골탕 먹여볼까요.”

“한번 실험해보는 거예요. 부끄러움을 모를 것 같은 사람이 과연 부끄러움을 알게 될지.”

그들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확장시켜나가다가, 지혜와 규옥이 함께 일하는 김 부장에서 멈춘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인간인 걸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 뻔뻔하게 모든 생리현상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김 부장. 그를 한 번 골탕 먹여보는 거다.

방귀 좀 뀌지 마.

트림할 때 입 좀 다물어.

머리는 화장실 가서 긁어.

이 가엾은 돼지님아!

그 쪽지를 받은 김 부장의 반응은 책 속에서 직접 확인하는 게 좋겠다.

나의 이야기를 조금 해보자면,

바로 이전 회사‘들’에서 차장이라는 직함을 단 것들은 사무실에서 그렇게 손톱을 깎아댔다. 직장에서 손톱을 깎다니? 나는 그런 것들을 처음 경험했는데 문화적 충격과 함께 굉장히 미개하다는 생각 말고는 다른 감정이 치고 들어올 자리가 없었다. 그 부분에 대해 다른 직원들과 말을 한 결과, 차장의 그런 행동이 잘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잘못된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가 오갔다. 생각 차이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정말 놀란 부분이었다. 결국 손톱 깎는 소리에 대해 나만 불편하고 불쾌하게 느끼는 소음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에 당사자에게 대놓고 얘기하지는 않았지만, 그럴 때면 혼자서 속으로 얼마나 욕을 해댔는지 모르겠다. (거의 열흘에 한 번씩은 그랬으니까) 그래놓고 엉뚱하게 집에 와서는 J에게 당신은 절대 그러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를 해댔다.

그 부분에 대해 책에서 말한다.

“사실 그런 걸로 누군가를 혐오스러운 인간이라고 판단해버리는 건 좀 그래요. 불쾌하긴 하지만 에티켓 문제일 뿐이잖아요.”

그 말이 맞다 싶으면서도, 과연 그럴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공동체라는 크고 작은 생활에서 지켜야 하는 예의라는 게 있기 마련인데, 그걸 지켜주면 다행이고 아니어도 상관없는, 그런 예의 정도로만 규정지어도 된다는 것일까?

누가, 감히, 나에게.

그래봤자 너희들이, 어떻게.

근래에 나를 아는 직장 상사들은 내가 사회 혹은 회사에 바라는 게 많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사회에 바라는 바는 크게 많지 않다. 내가 사회를 바꿀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언감생심, 꿈도 꾼 적이 없다. 그런데 그들이 나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는 까닭은 나는 한 개인으로서 내가 아닌 개인에게 바라는 바는 많은 편이었기 때문이었다. 그건 바로 ‘인격 존중’이었다. 나의 인격이 침해되었다는 생각이 확실하게 들 때엔 나는 망설이지 않고 반기를 들었다. 그건 네가 틀렸어. 올바르지 못한 행동이야.라고 말을 했다. 그럴 때마다 그 사회에서 나는 점점 더 부적응자가 되어갔다.

꼰대들이 하는 육하원칙이 SNS에 떠돌고 있는 걸 본 적이 있다. 내가 누군지 알아, 뭘 안다고, 어딜 감히, 왕년에, 어떻게 나한테, 내가 그걸 왜 - 당시에는 그것을 보면서 마냥 웃기만 했는데, 지금은 씁쓸하게 웃는다.

소수의 동료들은 내가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을 하면서도 정작 그들은 행동에 옮기지 못했다. 그들은 그들이 하고 싶은 말들을 이미 집단에서 부적응자로 낙인찍힌 내가 대신해주기를 바랐지만, 나는 내가 침해당한 것 외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들의 문제는 그들이 알아서 처리를 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스물다섯에 함께 일했던 실장님은 40대의 남성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설거지나 청소는 남녀 구분 없이 같이 혹은 돌아가며 해야 하는 일이고, 자리는 각자의 자리만 정돈하면 된다고 일러주셨다. 이 규칙은 회사마다 정하기 나름이지만, 공용의 일에서부터 남녀 구분을 지어서 일을 해야 하는 회사는 다시 한 번 고민해보라고도 하셨다. 작은 것부터 남녀를 구분하기 시작하면 맡은 일에서도 남녀의 커트라인이 생길 수 있다고. 특히나 우리의 일은 남녀에 대한 시각이 편견이 아주 심하기 때문에 필요하다면 반발을 해야 한다고도 알려주셨다.

그 덕에 나는 여성이라고 설거지나 청소를 해야 하거나 팀의 막내이기 때문에 숟가락을 놔야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에 대한 존중의 표시라고 배웠다. 그리고 다른 대부분의 회사들은 처음에는 그것이 아니었을지언정 의견을 피력하면 수용했다. 계급과 지위가 나누어져 있기는 하지만, 그 안에서 인격은 존중되었다.

그런데,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동안 내가 당연하고 당당하게 요구하던 것들이, 부딪치고 깨어지고 산산조각이 났다.

83. “(…) 세상은 원래 그래요. 누군가가 행동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죠.”

“행동한다고 바뀌나요?”

“글쎄요. 확실한 건, 무언가가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면 그건 누구도 행동하지 않았다는 거죠.”

이 말이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했다. 맞는다면 사회 부적응자로서의 대접일 테고, 틀리다면 변한 것은 없다는 것일 테다. 내가 최근에 다닌 회사에서는 항거를 했을 당시에 그들은 모두 나에게 혀를 내두르며 화를 냈다. 나는 정정당당하게 내 권리를 주장한 것뿐인데, 내가 왜 그들의 화를 들어야 하는지가 의문이었다. 그 화는 바로 위와 같았다. 누가, 감히, 나에게. 그래봤자 너희들이, 어떻게. 내가 뭔가 요구를 하면, 너보다 부하직원이니 지위로 눌러라.라는 답변을 받았을 때부터 알아차렸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공생하는 법을 배우는 게 아니라, 누구의 줄을 잘 서야 한다는 말을 듣는 것도 우스웠다.

하지만 내가 그것들에 반발을 하자 우습게도, 나를 대할 때 어려움을 느낀다는 점이었다. 그게 그들이 그것을 인정해서가 아니라 앞서 말했던 것처럼 나를 사회 부적응자로서 대접을 하기로 결심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리 긍정적인 변화는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하는, 이 같은 상황을 경험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난 많이 당황했고 흔들렸으며 급기야 나를 자책하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니 그것에 대한 단단한 확신이 생기는 계기가 되었다. 나 참 잘 했다고-

132. 지환과 규옥이 던진 정반대의 명제들은 계속 나를 괴롭혔다. 지환은 현실을 영리하게 따르라고 강조했고 규옥은 현실에 균열을 일으킬 용기를 가져보자고 했다. 정반대에 놓인 두 개념에 공통점이 있다면, 어느 쪽이든 마주하긴 괴롭다는 것이었다.

맞다. 마주하기 괴롭다는 것. 나는 그중에서 나를 지키는 쪽을 선택했다. 결과가 어떻든.

101. “(…) 너 사람이 언제 어떻게 보수화되는지 알아? 명백한 자기 재신이 생길 때야. 절대 빼앗기거나 침해될 수 없는 것, 집이나 돈이나 그럴듯한 밥그릇이 생길 때.”

하지만 종종 생각한다. 내가 잘나서, 혹은 내 성격이 대담해서 말을 할 수 있었던 게 아니었다. 내가 나를 지키는 쪽을 선택할 수 있는 까닭.

내가 인격을 존중받는 것을 우선순위에 두어도, 일에 대한 자신감이 없으면 할 수 없던 선택이었고,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돈 앞에 무너지지 않을 장사 없다. 하지만 나는 일을 결코 잘 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내가 맡은 일에 대한 최선을 했었기에 가능했고, 이곳이 아니어도 충분히 이직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가능했으며, 경제적으로 풍족한 것도 아니지만 내가 몇 달 벌지 않아도 생활할 수 있었기에 가능했다. 모든 게 맞아떨어졌기에 나의 인격을 먼저 생각할 수 있을 수 있었다. 내가 일을 함으로써 지켜야 하는 것이 있었다면, 내가 내 목소리를 낼 수 있었을까- 생각해보면 사실 자신 없다.

책에서 다빈은 절대 빼앗기거나 침해될 수 없는 것,이 ‘아이’라고 하였다. 그것은 아마도 세상의 모든 가장에게 적용되는 것이 아닐까. 가족-

나는, 내가 노동력을 제공하고 임금을 받는 시점부터 나의 아빠가, 그리고 세상의 모든 가장이 가엾게 느껴졌다. 결혼하니, 나의 배우자 J씨 역시. 그들은 현실에 균열을 일으킬 용기를 가지는 것보다 현실을 따르는 혹은 순종하는 쪽을 택한다. 그런 선택을 했다고 해서 그것을 비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저 그들의 노고를 알아주고 다독거려주며 조용히 응원해줄 뿐이다.

각자가 삶의 애환이 어디쯤 가있는지 안다면, 책 속의 고무인의 선택 역시, 우리가 비판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고무인이 아니니까. 그래서 더 안타까웠던 부분이다.

187. 어쨌든 그 일은 내게 꽤 큰 교훈을 남겼다. 속내를 감추지 않고 겉으로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무언가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

싫은 소리 한 마디 못할 것 같은 지혜가, 학창시절의 공윤을 우연하게 만나면서 바뀌어간다. 폭발적이지는 않지만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힘을 내고 있었다. 그러면서 지혜는 또 다른 힘을 얻었다. 나는 그런 지혜가 내 친구인 듯, 힘차게 응원했다. 책 속의 누군가를 그렇게 응원해본 건 또 오랜만이었다.

이 책을 읽고 나서야, 내가 그동안 나를 지키기 위해 했던 노력들이 헛되이 되지 않았음을 확인하는 결과지를 받은 느낌이었다. 그 결과지에서 나는 꽤 많은 위로를 받았다. 실은 그동안 나, 너무 예민하게 군 거 아닐까, 나만 이러는 걸까, 나만 못 견뎌 하는 걸까 - 등등에 대해 수없이 회한이 서린 자책을 해댔다. 그러면서 마지막엔 합리화를 할 요량으로 당시엔 그게 최선이었어,라고 읊조리곤 했다. 그게 작년 7월이었는데, 올해 1월에도 한 번 더 발생하면서 나는 정말 사회 부적응자인가,하는 생각까지 했다. 하지만 그동안의 사회생활이 모조리 엉망인 것이 아니었고, 지금도 사회 생활을 하며 친분을 유지한 이들에게서 연락이 온다는 사실이 그동안의 나를 증명해주고 있었다. 누구나 견디지 못하는 것들이 하나씩 있기 마련인데, 적어도 내게는 그런 것이라고. 나는 자존감이 그렇게 높지 않은 편이기 때문에, 열등감이나 피해 의식을 배제시키려고 스스로 검열을 즐기는 편인데, 그 사건들은 나를 지켜야 하는 의무 중 하나였다고.

202. “가서 항의해요. 가만있으면 그게 당연한 줄 알아요. 가만있으면 그렇게 해도 되는 것처럼 대한다구요.”

203. “설령 지금 당장 뭔가가 바뀌지 않는다고 해도요. 가만히 있지 않는다는 걸 자꾸자꾸 보여줘야 해요.”

우리는 스스로가 반짝반짝 빛나는 존재라는 사실을 자주 잊는다. 그것을 매 순간 상기하며 살아가는 것은 힘들지언정 누구가 나에게 무례하게 군다면 그것에 대한 반기를 들어 나 자신의 뿌리를 더욱 공고하게 만들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게 말처럼 쉬운 일도 아니고 상대방에 따라서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우리는 결코 그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싶다. 인간으로서의 존중을 받기 위해서 그런 노력까지 해야 한다는 사실이 아주 우습기는 하지만, 맹수들이 득실거리는 세상에서 나를 지킬 것은 나 자신밖에 없으니까.라는 너무나도 원초적인 말로 대신해본다.

ps. 정진 씨,는 지혜가 답답한 도시생활에서 하나의 숨통을 마련하기 위해 만들어낸 가상의 인물이었다. 나도 그랬다. 바로 전의 회사에서. 이름을 붙이지는 않았지만, 혼자 점심을 먹고 싶거나 점심을 먹는 것 대신에 산책을 하고 싶거나 도서관을 가고 싶을 때에는 친구와 약속이 있다고 둘러댔다. 그래야만 길고 긴 회사에서 나를 재충전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으니까. 오롯하게 혼자만의 내 시간, 나는 그게 그렇게 소중했다. 그래서 정진 씨를 만들어낸 것에 대해 깊이 공감했다. 다만 그녀가 정진 씨를 너무 자주 만나지는 않기를 바랐다. 나의 경우에는 회사에서 지치는 일이 있을 때 자주 있지도 않은 친구를 찾았으니까. (여담으로 내 친구 김지혜는 실제로 정진이라는 이름을 가진 남편이 있어서 너무 놀랐다. 나중에 지혜한테 말해줘야지.)

나는 나와 당신들에게 묻고 싶었다. 어떤 어른이 되고 싶으냐고. 지금의 시간을 어떻게 기억하고 새길 것이냐고. 반격이 먹히지 않아도 마음속에 심지 하나쯤은 가지고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그런 질문과 상념이 모여 이 작품이 태어난 것 같다. - 작가의 말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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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을 그었던 부분들

12. 어쨌든 전국의 지혜들은 역시 전국에 만만찮게 포진해 있는 민지, 은지, 은정, 혜진이 들과, 양념처럼 한 반에 몇 명쯤은 포진한 보람, 아름, 슬기 들과 어울려 무럭무럭 커갔다.

103. “너는 시간 많아서 좋겠다. 너만 생각할 시간.”

좋겠다, 같은 말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니다. (…) 친구 사이에 공통화제의 간극이 생기고 그게 점점 멀어지면 평행선을 달린다. 언젠가 다빈이와도 그렇게 돌 수 있겠구나 생각하니 마음이 가볍지는 않았다. 그저 그 시간이 되도록 천천히 와주길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129. 부당한 권위를 이용해 세상을 뻣뻣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대상이었으며, 그들을 곤란하게 하고 면박을 주고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었다.

134. 생각 없이 걷다가 예기치 않은 타박을 들었다. 왜 거꾸로 돌고 그래, 부딪히잖아. 운동복을 빼입은 할머니가 눈을 흘긴 채 파워 워킹을 하며 사라진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만 반대 방향으로 걷고 있다. 이 작은 공원에도 돌아야 하는 방향이 있다. 그 방향을 어긋나면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생각 없는 사람이 되는 거다.

140. “(…) 웃긴 게, 잘하는 거랑 남들 눈에 잘 드는 거랑은 또 별개거든. 그게 바로 센스라는 건데 나는 센스가 없는 인간이었던 거지. (…)”

공윤의 커피를 사오게 된 지혜에게 유 팀장이,

173. “(…) 언제나 납득할 수 있는 일만 하는 직장이나 몇이나 된다고 생각해? 다들 그게 말이 안 되는 걸 몰라서 하나? 그래야 뭔가가 굴러가니까 하는 거거든.”

179. “존재를 어떻게 확인받아요. 내가 누군지도 모르겠는데 뭘 확인받느냐고요.”

“아마 그 고민은 죽을 때까지 하게 될 거예요. 백 살이 될 때까지 같은 생각할걸요. 외롭다고, 내가 누군지 모르겠다고. 내 인생은 어떤 의미가 있었느냐고.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괴롭고 끔찍하죠. 그런데 더 무서운 거는요, 그런 고민을 하지 않고 사는 거예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질문을 외면하죠. 마주하면 괴로운 데다 답도 없고, 의심하고 탐구하는 것만 반복이니까. 산다는 건 결국 존재를 의심하는 끝없는 과정일 뿐이에요. 스스로의 존재를 의심하는 게 얼마나 드물고 고통스러운지 알아가는…….”

221. 더 이상 함께할 이유가 없어지고 나서야 우리는 처음으로 서로를 조금쯤 이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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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귀자 지음 / 쓰다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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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서평에는 책에 대한 전체적인 이야기가 서술되어있지 않습니다.

 

 

 

 

 

 

이 책을 꼭 네 번째 읽는다. 이제 서평을 미룰 필요가 없다는 판단에 서평을 쓰려는데, 아직도 머리가 어지럽다. 어떤 확신도 없는데 내가 이 책에 대한 서평을 써도 되나- 싶은 생각 때문이다. 하지만 써야겠지. 그래야만 지금의 내 생각에 지금보다 더 큰 내가 아, 이때는 이런 생각이었구나- 하고 알 수 있게.

 

 

 

가장 최근, 그러니까 세 번째 이 책을 다시 읽었던 때는 2016년 1월이었다. 결혼 후 이 책을 처음 읽었다. ‘결혼 후’라는 사족이 들어가는 이유는, 그 이후에 내 선택이 조금 달라졌음을 말하고 싶어서이다. 나는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김장우쪽이 확실한 사랑이라고 믿었다. 사랑이라면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라고, 그것이 사랑이 아니라면 대체 무엇이 사랑이냐고- 안진진을 앞에 두고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하고 싶었다. 너무도 완벽하게 김장우였으니까.

 

 

 

 

그런데 2016년의 나는 좀 바뀌었다. 나영규쪽으로 노선을 튼 것이었다. 2011년 즈음에 J의 직업은 불분명했다. 있지만 없고 없지만 있는 것과도 같았다.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이라는 문턱을 넘을 준비를 하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그는 내게 날벼락 같은 이야기를 했다. “혹시라도 내가 정규직이 되지 않으면 너와 헤어질 거야.”

 

 

“그때 왜 그렇게 말을 했어?”라고 묻는 내게, “앞날이 불투명한데 내가 너를 놓지 않으면 네가 고생할 테니까.”라고 그는 말했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는 것도 사랑이라고 생각했다면, 그는 사랑하는 사람이 불행하지 않게 놔주어야 한다는 사람이었다. 나는 로망을 꿈꾸었다면, 그는 현실을 바라보았던 것이다. 나는 그의 논리를 비겁한 것이라고 일침을 가했고, 그는 침묵했다. 그렇게 우리는 그 주제에 대한 대화를 멈출 수 있었다. 그 침묵이 무엇을 뜻하는 것이었을지, 당시에도 나는 몰랐는데, 나는 그와 대화를 나누면서 그의 입장이 되어본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마 그가 그렇게 내게 직접 말을 한 것은 그렇게 되지 않게 되기를 소망하는 발악 같은 것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내가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전부 다 알지는 못하기에 어떤 삶을 살았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진심으로 필사적이었을 것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나영규라니-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만약 그가 정규직이 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어떻게 되었을까? 나는 정말 지켜주는 것도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논리로 그가 나를 계속해서 잡아주기를 바랐을까? 이제까지의 직업을 정리하고, 새 삶을 시작하는 그에게 응원‘만’ 해줄 수 있었을까? 당시에는 호기롭게 그에게 말했지만, 사실 자신 없다는 것이 나의 솔직한 심정이다. 우리가 헤어지는 이유는 분명하지만 구차하게 이런저런 핑계들을 대어가면서, 그렇게 끝을 맺었을지도 모른다.

 

 

 

 

누구에게도 쉽게 말할 성격의 것이 아니라 말은 못 했지만, 결혼 후 다른 것도 아닌 ‘돈’ 때문에 싸워본 적이 없다는 것은 두고두고 우리 부부 스스로에게 자랑거리가 되었다. 풍족하지는 않지만 모자람 없이 대체로 넉넉한 우리의 가계는 우리에게는 성실한 자본이 되어주고 있다.

나는 안다. 그깟 돈이라는 것이 영원할 것 같은 사랑을 망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돈 때문에 서로 으르렁거리며 다툴 수 있다는 것을. 실제로 나의 부모님이 그랬다. 특히나 가만히 조신하게 있으면 좋은 남자랑 결혼시켜줬을 엄마는, 사랑을 선택했다. 하지만 적지만 충분히 돈을 모을 수 있는 상황에서 엄마의 씀씀이와 만족하지 못하는 아빠의 급여가 엄마는 늘 불만이었다. “리라야, 나는 돈이 없으면 이렇게 힘든 건지를 몰랐어.”

세 번째 책을 읽었을 때에는 그래서였다. 나영규를 선택한 게. 251. 좋은 밤을 보내려면 확실한 예약 없이는 곤란해요. 나영규라면 가난의 늪으로 안진진을 데려가지는 않겠지. 라는 생각. 그 때문에 나영규를 선택했었다.

 

 

 

 

그런데 네 번째 읽었을 때에는 생각이 또 바뀌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영규였다.

 

 

 

 

193. “(…) 꽃을 사랑한다면, 당연히 그 이름을 자꾸 불러줘야 해. 이름도 불러주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냐.”

하지만 김장우를 완전하게 배제시킬 수 없는 까닭은, 그럼에도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단연 김장우였으니까.

 

 

 

 

194. 이것이 사랑인가. 서로가 서로에게 한쪽 어깨를 빌려주고 기대는 것, 이것이 사랑일까…….

나영규에게는 없는 것. 그것이 확실히 김장우에게는 있었다. 나영규와 만나면 현실이 있고, 김장우와 같이 있으면 몽상이 있었다. 사랑이라는 몽상 속에는 현실을 버리고 달아나고 싶은 아련한 유혹이 담겨있다. 끝까지 달려가고 싶은 무엇, 부딪쳐 깨지더라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무엇, 그렇게 죽어버려도 좋다고 생각하는 장렬한 무엇.

이것이 사랑이 아니면 무엇이 사랑이란 말이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영규였던 것은, 세 번째 이유에 더해져 진진이 누군가가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 그 까닭이었다. 265. 흑흑 흐느끼면서 그렇게 편안하게 울었다. 어떻게 할지 몰라서 쩔쩔매는 김장우 앞에서는 꼿꼿하기만 했는데, 자꾸 꼿꼿해지고 싶었는데, 정말 기이한 일이었다. 나영규를 시험하는 것일지도 몰랐다고는 하지만, 그에게는 솔직해질 수 있었다. 감추지 않아도 되었고, 자신을 그대로 보여줄 수도 있었다. 더 이상 이모가 엄마라고 말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것에 대한 핑계를 생각하지 않아도 되었다. 아버지가 온전치 못한 정신으로 돌아왔을 때, 그녀가 울 수 있는 대상은 김장우가 아니라 나영규였다. 그뿐이다.

 

 

 

 

하지만 나영규를 선택하기에는 너무나도 폭력적이지 않니. 사람은 몽상 속에서만 살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현실 속에서만도 살 수가 없는 걸.

 

 

 

 

몽상을 택하면 우리가 웃고 현실을 택하면 네가 웃는다는 가정이 있다면, 나는 어떤 것을 선택할까.

몽상을 택하면 우리가 울고 현실을 택하면 내가 운다는 가정이 있다면, 나는 어떤 것을 선택할까.

 

 

 

 

 

 

아니, 좀 더 간절하게는 -

활짝 웃음이 옆 사람까지도 웃게 만드는 전염성 강한 나영규와,

여운이 길어 웃음이 끝난 뒤에도 계속 생각나게 만드는 수채화 같은 묘한 웃음의 김장우.

 

 

 

 

누구에게나 선택은 어렵다.

그렇기에 진진도 3개월의 기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것을 이전까지는 사랑을 찾아내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며 읽었다면, 이번에는 진진, 자신의 삶을 조금 더 들여다보는 시간이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어떤 쪽도, 옳고 그름이 없었다. 누구도 그녀의 생을 살지 않으니까. 다만 그녀에게는 좋은 선생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187. 이 쌍둥이 자매들은 똑같이 책에 의지하는 경향이 강한 편이었지만, 선택하는 책은 이토록이나 정반대였던 것이다. 마치 그들의 삶처럼.

잠을 자다 일어날 때면 “왜 그래! 무슨 일이야!”라고 외치는 것이 생에 다채로운 일들이 굉장히 너저분하게 널려있다는 반증이 되는 엄마와, 모든 일에 예외가 없어서 언제라도 예측이 가능한, 몹시 심심한 사람인 이모부와 살고 있는 이모.

 

 

 

 

 

 

이모, 그래. 이모에 대해서 말을 좀 해야겠다.

남루한 일상의 고통에서 홀로 자유로운 이모를 보는 것이 안진진 삶의 큰 위안이었다. 마치 제목만 있고 본문이 없는, 텅텅 빈, 기이한 소설책을 펼치고 망연자실해 하는 소녀의 표정을 지은 이모를 보며 진진은 생각한다. 이모에게도 무슨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주리와 주혁이 유학을 가고 난 뒤에 허전해하는 진진의 이모를 보면서 사촌동생이 군대에 가고 나서 술을 배웠다는 나의 이모가 생각났다. 나의 이모부도 굉장히 심심한 사람이었는데, 나의 이모는 진진의 이모처럼 소녀 같은 사람이어서. 그래서 진진의 이모가, 첫눈을 보고 어린아이처럼 기뻐하던 이모가, 행복해지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진진의 이모가 행복하다는 것은, 나의 이모 행복과도 깊숙이 연관이 되어있을 것만 같았으니까. 그래서 꼭 그러기를 바랐다.

 

 

 

 

 

 

295. 인간에게는 행복만큼 불행도 필수적인 것이다. 에 대해 불행 후 찾아오는 평온함이 어떤 안식이 되는지 너무 잘 아는 나는, 여전히 납득할 수도 없고 인정하기도 싫지만 이모를 보면서 그 순간만큼은 그래, 그렇겠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엄마가 행복한 지옥을 살았다면, 이모는 불행한 천국을 살았던 거겠지. 하지만 결과는 배제하고서라도 여전히 둘 중 어떤 삶이 더 나아 보인다고 쉬이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렇게 말하는 까닭은 단 한 가지다.

안진진, 그래, 안진진 당신이 행복에 가까운 삶을 살기를.

 

 

 

 

 

 

 

 

 

 

 

 

덧. 김장우와 나영규를 사이에 두고 고민하는 안진진을 보면서,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서 로제와 시몽의 사이에서 고민하는 폴이 생각났고, <깊은 슬픔>에서 완과 세의 사이에서 어쩔 수 없었던 은서도 생각났다. (<깊은 슬픔>은 몇 달 전부터 눈에 밟혔는데, 이 책을 미룰 이유가 없어졌네.) 또 영화 <우리 사랑하는 동안>도 생각났는데, 그 중에서 영화의 결말이 제일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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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밑줄

 

 

11. 삶에서 발생하는 에피소드들에 대해서 사람들은 씹을 줄만 알았지 즐기는 법은 전혀 배우지 못한 것이었다. 에피소드란 맹랑한 것이 아니라 명랑한 것임에도.

 

17. 이십 대란 나이는 무언가에게 사로잡히기 위해서 존재하는 시간대다. 그것이 사랑이든, 일이든 하나씩은 필이 사로잡힐 수 있어야 인생의 부피가 급격히 늘어나는 것이다.

 

30. “진진이 너, 그런 일은 그냥 잊어버려. 아니면 나처럼 재미있었던 모험담 정도로만 생각하거나. 안 그래도 지루한 세상, 그땐 무지무지 아슬아슬했었는데. 하면서 말야.”

 

94. “해질 녘에는 절대 낯선 길에서 헤매면 안 돼. 그러다 하늘이 저켠부터 푸른 색으로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면 말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가슴이 아프거든. 가슴만 아픈 게 아냐. 왜 그렇게 눈물이 쏟아지는지 몰라. 안진진, 환한 낮이 가고 어둔 밤이 오는 그 중간 시간에 하늘을 떠도는 쌉싸름한 냄새를 혹시 맡아본 적 있니? 낮도 아니고 밤도 아닌 그 시간, 주위는 푸른 어둠에 물들고, 쌉싸름한 집 냄새는 어디선가 풍겨 오고. 그러면 그만 견딜 수 없을 만큼 돌아오고 싶어지거든. 거기가 어디든 달리고 달려서 마구 돌아오고 싶어지거든. 나는 끝내 지고 마는 거야…….”

 

106. ‘언제나 최고의 셔터 찬스는 한 번뿐. 두 번 다시는 오지 않는다. 좋다고 느껴지면 망설이지 말고 무조건 셔터를 누르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훌륭한 순간 포착. 그곳에 사진의 진가가 존재한다.’

 

114. 착하고 착한 우리 안진진…….

 

117. “너 때문에 나는 도시로 돌아와. 너를 생각하면 빨리 돌아오고 싶어.”

 

119. 착하고 착한 김장우.

 

120. 나는 왜 갑자기, 어딘가에서 그 남자의 냄새나는 양말을 깨끗이 빨아놓고 잠들 수도 있다고 생각했을까…….

 

173. 삶은 그렇게 간단히 말해지는 것이 아님을 정녕 주리는 모르고 있는 것일까. 인생이란 때때로 우리로 하여금 기꺼이 악을 선택하게 만들고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그 모순과 손잡으며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주리는 정말 조금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178. 그건 옳지 못한 거야,라는 주리의 관용구. 주리는 바로 그 관용구 밑에 숨어서 ㄷ더 이상은 세상 속으로 나오지 않을 모양이었다.

 

180. “진진아…….”

“응? 왜요?”

“진진아, 미안해. 너보다 우리 자식들을 더 사랑해서… 너한테 정말 미안해…….”

 

188. 나의 불행에 위로가 되는 것은 타인의 불행뿐이다. 그것이 인간이다.

 

229. 단조로운 삶은 역시 단조로운 행복만을 약속한다. 지난 늦여름 내가 만난 주리가 바로 이 진리의 표본이었다. 인생의 부피를 늘려주는 것은 행복이 아니고 오히려 우리가 그토록 피하려 애쓰는 불행이라는 중요한 교훈을 내게 가르쳐준 주리였다. 인간을 보고 배운다는 것은 언제라도 흥미가 있는 일이었다. 인간만큼 다양한 변주를 허락하는 주제가 또 어디 있으랴.

 

210. 사랑이란,

발견할 수 있는 모든 거울 앞에서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지 않고 무심히 지나칠 수 없게 만드는 무엇이다. 자신의 얼굴에 대해 생애 처음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나. 자신의 눈과 코와 입을 그윽하게 들여다보는 나. 한없이 들여다보는 나. 그리고 결론을 내린다. 이렇게 생긴 사람을 사랑해준 그가 고맙다고. 사랑하지 않고 스쳐갈 수도 있었는데, 사랑일지도 모른다고 걸음을 멈춰준 그 사람이 정녕 고맙다고.

 

261. 야윈 살가죽을 뚫고 돌출한 광대뼈, 늘어진 주름살 사이사이로 번지고 있는 거뭇거뭇한 반점, 수세미처럼 헝클어진 반백의 머리칼

 

278. 착하고 착한 우리 안진진. 정말 착하고 착한 내 안진진.

 

293. 어머니는 더욱 바빠졌고 나날이 생기를 더해갔다.

아, 어머니의 불행하고도 행복한 삶…….

 

296. 마지막으로 한 마디.

일 년쯤 전, 내가 한 말을 수정한다.

인생은 탐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것이다.

실수는 되풀이된다. 그것이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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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남의 집 귀한 딸인데요
악아 지음 / 봄름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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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123. 시가에 가면 내 자리가 없다.

 

식사를 하고 나서 다른 식구들은 돌아갈 각자의 방과 정해진 자리가 있었다. 아버님은 소파 한가운데 앉아 리모컨을 돌리고, 어머님은 안방에 누워 휴식을 취했다. 시누이와 남편도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 뭔가에 몰두했다 나만 내 자리를 찾지 못하고 하릴없이 거실과 주방을 오갔다. 어딜 가도 불편하긴 마찬가지였다.

 

겨우 내 자리인가 싶어 들어간 화장실에서 마주한 것은 나란히 꽂혀 있는 시가 식구들의 칫솔이었다. 나는 한참을 고민하다 집에서 챙겨온 칫솔을 칫솔꽂이 대신 세면대 한 귀퉁이에 조심스럽게 올려두었다.

 

밖에서는 떵떵거리며 큰소리를 치다가도 '며느리' 자리에만 서면 이상하게 작아졌다. 남의 집 주방에 들어가 쭈뼛쭈뼛 설거지하고, 시어머니의 차 별 대우에도 반박하지 못했다. 눈치를 보고 희생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이런 나의 처지를 푸념하면 모두가 며느리는 '원래' 그런 거라며 그냥 받아들이라 했다.

 

마치 시가의 비정규직이 된 느낌이었다. 막말과 차별 대우가 만연하고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을 수 없는, 이 열악한 근무 환경에서 고군분투 중인 서러운 비정규직.

 

 

 

 

 

출퇴근을 현장으로 했을 때, 어린 여자애라는 이유만으로 면죄부가 되는 걸 느꼈다. 당시에 나는 그것이 기분이 좋다거나 나쁘다거나 하는 기분을 느꼈다기보다는 다행이라 여겼던 것 같다. 적어도 불합리한 일은 생기지 않겠지,라는 안일한 생각.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내가 그들에게 업무를 지시하는 순간, 그들은 나이 어린 여자애인 나를 만만하게 생각하고 언어를 내뱉었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쌍욕을 듣고서도 , ooo.”라고 대꾸를 할 만큼 씩씩했다. 이후에도 처음 낯선 지역에서 터전을 잡고 일을 하게 되었을 때에 그들이 쓰는 언어의 온도와는 다른 것이 이유였는지 싸가지가 없는 말투라는 말도 들은 적 있는데 그 지역 특유의 억양을 스스로 배울 만큼 융통성도 있었(), (생각한다.) 가장 최근에도 회사에서 불합리한 일들을 당하면 그것에 대해 기꺼이 부당함을 당당하게 말하며 나는 타인에게 니가 생각하는 것처럼 나의 존재는 결코 하찮지 않다는 점을 명시하곤 했다.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기꺼이 나는 선을 긋고 더 나아가 그것과의 인연을 끊기도 했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으니까.

 

 

 

 

그런데 나의 말문을 틀어막은 일들이 생겨났다. 정말 이해할 수 없고 존중할 수 없는 문화라고 생각하는, 남성과 여성이 결혼하기로 마음먹은 이후부터 '며느리'라는 역할을 부여받는 그 순간이다. 나는 결혼 전까지 부모님께, 특히 엄마에게서 남동생과의 차별을 꽤 자주 받아왔다. 나는 그때마다 열렬하게 저항했으나 어떻게 된 일인지 지는 쪽은 항상 나였다. 그럼에도 변치 않는 것은 어쨌든 엄마니까. 였다. 언제든지 말을 할 수 있었다. 싫어!!!라는 말도 할 수 있었고, 왜 차별해!!!!!!라고도 소리칠 수 있었다. 하지만 결혼을 하기로 마음먹으면서는 내게 며느리라는 역할이 부여됐고, 그 때문에 위축되는 것을 느끼지 않을 도리가 없는 것이었다. 그것은 나뿐만이 아니라 나의 부모님도 마찬가지였는지, 결혼한다고 했을 때에도 음식 하는 방법을 알려달라는 내게, “어차피 결혼하면 다 하게 되는데 뭘 벌써부터 알려달라고 하냐. 닥치면 다 하게 된다.”라고 말씀하셨으면서 상견례 때는 우리 애가 밥도 잘 못한다."라며 잘 봐달라.”라는 뉘앙스로 말씀하셨는데, 별거 아닌 그 일이 나는 기억에 남는다. 내가 밥 못하는 게 죄송할 일은 아니지 않나. 밥을 할 줄 알아야 한다면 부모님과 함께 사는 내가 할 줄 알아야 하는 게 아니라, 혼자 살고 있는 J가 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말하곤 한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겪는 불평등에 대해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내게 주어진 일들을 쳐내기에도 힘들었으니까. 그것에 대해 항거함으로써 불합리함을 줄일 수 있었다. 항거를 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였지만. 실제로 말을 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내가 겪은 일에 연관된 대다수의 사람들은, 말을 하지 않으면 그게 당연한 줄로만 알고 사람을 대했다.

 

 

 

 

또 다른 이유는 결혼해서 생기는 불평등은 결코 여성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까닭이다. 결혼을 함으로써 남성들은 '가장'이라는 무게를 어깨에 짊어지고 살아야 하는 숙명이 되는 것. 부끄럽게도 그전까지는 모르고 살다가, 내가 스스로 사회생활에 뛰어든 시점부터 나는 나의 아빠를 가엾이 생각했다. 그리고 그 외에 몇 년 전 회사에서 50대 중반의 소장님과 함께 일을 한 적이 있었는데, 본인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들에게 입에 발린 말을 해야 했고 본인의 책임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억울한 상황들도 겪는 것도 가까이에서 보았다. 그게 결혼의 유무와 무슨 상관이냐, 그렇지 않은 남자도 있다, 다 인정하지만 가정을 가지고 있는 남성들에게는 '책임감'이라는 결코 가벼이 생각하지 못할 것이 가중된다는 점은 참 가엾은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결혼을 함으로써 개인과 개인 간에 누가 더 손해다-라는 말은 있을 수도 있겠지만, 여성이 더 손해다-라는 말은 거리를 두고 생각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주변 페미니스트라는 사람의 말을 들어보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도 아니고 '내가 받는 것은 부당, 너는 당연한 것',이라는 마인드가 깔려있었다. 그외에 할 말은 많지만 어쨌든 그런 게 페미니스트라면 나는 절대 그 명칭을 갖고 싶지 않다.

 

 

 

5년의 결혼생활 중에는 참 많은 일이 있었다. 다행히 큰일이라고 말할 수 없는 일들이 자잘자잘하게 있었다. 누구 하나 싫은 소리 하시는 분 없었지만 며느리라는 자리에만 앉게 되면 나는 자주 눈치를 보았다. 그렇다고 내가 명절에 가서 찬밥 신세가 되는 것도 아니었고, 명절 당일에 나의 부모님댁으로 가는 내게 네 덕에 편하게 했다. 고생 많았다."라고 나의 노고를 인정해주시는 어머니였다. 그거면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자꾸만 마음이 이상했다. 결혼을 하고 나서 명절을 보내고 내가 J에게 제일 많이 한 말은, “생신에 부모님댁 가는 것과 명절에 부모님댁 가는 것과는 천지차이야.”였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나는 명절 때마다 사소한 행동 하나, 말투 하나에도 너무나도 쉽게 마음이 구겨졌다. 구겨진 마음을 J에게 전부 털어놓을 수는 없었다. 그의 부모님이었으니까. 하지만 아예 말을 하지 않고는 견뎌낼 도리가 없었다. 타인에게 말을 하느니, 차라리 J에게 말을 해야지 했다. 나는 나름대로 필터링을 했고, 다행히 그는 잘 들어주었으며 내 입장에서 생각해주는 능력까지 선보였다.

 

 

 

하지만 있었던 것이 어떻게 없던 일이 될까. 자잘자잘한 일들 속에서 여전히 남는 응어리들이 있었다. 어쩔 수가 없기에 깊은 곳에 넣어두고 모른체하며 지내는 것뿐이지. 그렇기에 <저도 남의 집 귀한 딸인데요>라는 문장만 보고서도 나직한 한숨이 나오는 것이었다. 책 속의 이야기에는 모양과 크기가 각기 달라도 우리는 '악아'가 겪은 일들에 대해 공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근래에 이 이야기를 두어 번 정도 한 것 같은데, 2014년에 함께 일한 실장님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외손주가 아프면 내 딸이 힘들까 봐 걱정인데, 친손주가 아프면 내 새끼(손주) 아파서 어떡하나.” 한다고. 그러면서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자신에 대해 정말 놀랐다면서. 실장님은 며느리가 불편해할까, 힘들어할까 전전긍긍하시는 분이었는데 너무나도 솔직한 말을 듣고 나도 정말 놀랐다.

 

J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을 때, 나는 그에게서 남들과 다를 바 없는 말을 들었다. “우리 엄마는 안 그래.” . 어떻게 그렇게 똑같은 말을 하는지.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당신의 부모님이라는 것은 영원하겠지만, 당신과 나는 결혼을 함으로써 부모에게서는 완전한 독립이 된 것이고, 우리는 새로운 가족을 꾸린 것이라고. 그리고 완벽한 가족이 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도 솔직하게 말했다. 나한테 가족이라는 것은 싫으면 싫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어야 가족인 건데, 나는 부천 부모님께 그럴 수가 없다고. 다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부모님이니 그것에 대한 예의는 갖추겠다고 말이다. 나는 그런 말을 오랫동안, 자주 말했다. 그리고 그가 본인 입으로 스스로 그 말을 하게 되었을 때 나는 그에게 하던 말들을 멈출 수 있었다.

 

그런데 지내다 보니, 정말 그랬다. 딸 같은 며느리는 존재하지 않았고 아들 같은 사위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우리 모두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부모님' '내가 사랑하는 자식의 배우자'까지인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에게 조금 더 예의를 갖추고 존중을 해주어야 하는 건 아닐지 생각해봐야 할 일이다.

 

 

 

 

 

139. 혼자가 아니라 둘이 됐는데, 둘이라서 느끼는 외로움의 깊이는 아득하다.

 

 

143. 외로움이라는 낯선 감정을 결혼 후에야 비로소 알게 되어버린 이 미스터리한 상황은 기대 심리 때문이었다. 결혼을 하면 언제나 함께할 것이라는 어리석은 기대감.

 

 

144. 어릴 적 동화를 너무 많이 봤다. 동화 작가들은 '그렇게 둘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는 무책임한 해피 엔딩으로 나를 세뇌시켰다. 둘이 오래오래 행복하게 사는 방법이 무엇인지는 가르쳐주지 않고 말이다.

 

'따로 또 같이'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결혼해도 여전히 내게는 혼자인 시간이 있고, 또 다른 외로움과 쓸쓸함을 마주하기도 한다. 그 시간을 그대로 인정하는 과정이 요즘 내겐 필요하다.

 

 

 

책은 고부갈등 말고도 배우자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작은 지분을 차지했는데, 결혼을 해도 외롭다는 건 나는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느꼈던 감정이었다. 정확히는 혼자일 때 느끼는 외로움과 둘일 때 느끼는 외로움은 온도 자체가 확연하게 다른데, 둘일 때 느끼는 외로움은 정말 처연하다. 내 결혼생활이 불행하다거나 한 게 아니었는데도 외롭다고 느끼다니-라면서, 처음에 잘못된 감정인 줄 알고 바르게 고치려고 노력도 많이 했었다. 그러다가 당시에 김재용 님의 <엄마의 주례사>를 읽으며 나의 감정이 유별난 게 아니구나, 하며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됐었다. 그것을 다 풀어서 말하기에는 너무 구구절절하니, 결혼해도 외롭다.고 뭉툭하게 말을 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외로움에서 도망쳐 결혼을 하다고 해서 외로움이 없어지는 게 아니에요. 느닷없이 찾아오는 온도가 다른 외로움이 뼛속을 시리게 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것은 나의 잘못도, 배우자의 잘못도 아니에요. 우리에게는 '부부'라는 역할보다 ''라는 역할이 인생에 있어 기본 바탕이기 때문일 거예요. 두 외로움을 적절히 섞어 쓸 수 있는 적당한 융통성이 필요할 거예요. -지금의 내가 5년 전의 나에게.

 

 

 

 

 

+어쩌다 보니 명절에 이 책 서평을 쓰고 있네. 이번 명절 역시 아무 데도 가지 않아서 감정을 바닥까지 내려다보지 않게 되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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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헤어지는 하루
서유미 지음 / 창비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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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트르」는 『모두가 헤어지는 하루』에 수록되어 있는 첫 번째 단편이다.

본 서평은 「에트르」에 관한 서평이다.

‘나’는 백화점 지하에 있는 ‘에트르’에서 일하고 있다. ‘언제까지나 일할 수 있는 곳’이 아니라 ‘언제까지 일할 수 있는 곳’으로 끝나는 아르바이트다. ‘나’에게는 낮에는 변호사 사무실에서 사무 보조로 일하며 저녁에는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는 여동생이 있다. 여동생은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나’를 한심하게 생각한다. ‘나’도 그것을 모르지 않는다. 어쩌다 아르바이트로 먹고사는 인생이 됐지. 라며 자조하면서도 주 6일씩 일하면서 정신없이 사는데 낭비 같은 말을 들으면 억울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상황에서 두 자매에게 난처한 일이 생겼다.

집주인이 통보를 해온 것이다. 내년부터 보증금이나 월세를 올려달라고. 올려달라는 금액은 보증금 1,000만 원이나 월세 10만 원

12. 시간이 지날수록 집은 낡고 지저분해지는데 보증금이나 월세가 계속 오른다는 게 이상했다. 이사를 가고 싶은 것과 이사를 갈 수 있는 것은 다른 문제라 보증금을 올리려면 대출을 받아야 하고 월세를 더 내려면 수입이 늘어나거나 지출을 줄여야 했다. 현실적으로는 대출이 불가능하고 더 벌 수도 없으니까 쓰는 걸 줄여야 했다. 그동안 잠도 줄이고 게으름 피우는 시간도 줄이고 말도 줄이고 꿈과 기대와 감정까지 줄이며 살았는데 여전히 뭔가를 더 줄여야만 했다.

3포 세대, 5포 세대를 지나 이제는 n포 세대까지 왔다. 지금의 세대는 참 많은 것을 줄이고 버리고 포기해야만 한다. 그렇게 해도 줄일 것이 있고 버릴 것이 있고 포기해야 할 것이 있다는 건 참혹함을 넘어 난폭하고 폭력적이기까지 하다. 지금 세대만 그런 게 아니라 전의 세대도, 전전의 세대도 그랬다 - 라고 말을 해버리면 할 말은 없다. 세대마다 각기 다른 고충을 안고 산다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지금은 개천에서 용나는 시절이 아니다. 그럴 수도 없다. 세상이 바뀌고 있고, 호락호락하지 않은 시대를 살아가는 세대들을 우리는 안아줘야 한다. 바닥에 떨어트려 뭉개져버린 케이크를 ‘나’가 품에 꼭 안듯이 말이다.

20. 집에 대한 고민은 새해맞이 케이크로 어떤 걸 고를까, 처럼 간단하거나 달콤하지 않았다. 그대로 살겠다는 건 돈을 더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고 이사를 가겠다는 건 서울 밖으로 밀려나거나 큰 방 하나에 거실 겸 부엌이 딸린, 두 사람이 사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공간을 줄여야 할지도 모른다는 걸 의미했다. 휴가시간이 줄어들거나 휴식의 공간이 좁아지는 것, 둘 중에 어느 쪽이 더 견디기 쉬울지 선택하기 어려웠다.

조금 솔직해지자면, 나는 서른이 넘는 지금까지도 집에 대한 고민을 해본 적이 없다. 나는 집을 몇 채나 가지고 있을 정도로 부유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내 명의의 집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며 지금 당장 집을 매매하려고 마음먹으면 빚부터 져야 하는 신세에 놓여있다. 그럼에도 집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고 이제까지 살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운 때문이었다. 부모님의 집에서 살 때는 부모님의 보호 아래 있었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았고, 결혼한 지금은 배우자의 직업으로 사택이 나오기 때문에 집에 대해 깊이 고민할 것이 없었다.

하지만 위와 같은 상황은 익히 들었다. 전세 대란으로 인해 독립 이후에 원룸인데도 불구하고 지역의 격차 때문에 50만 원대의 월세를 살(수밖에 없)던 친구들이나 결혼해서도 반전세를 살던 지인 부부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마음이 쓰렸다. 그들은 내게 말했다. “나는 네가 부러워. 너는 집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잖아.” 하지만 나는 알고 그들은 모르는 것이 있었다. 퇴직 이후. 그때까지는 집을 매매할 수 있는 경제력과 집을 잘 선택할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그게 너무나도 막연하기만 한 것이다. 나도 내가 어떤 지역에 터를 잡아서 오랫동안 살 수 있는 것이었다면, 아마 고민도 않고 빚을 져서라도 집을 매매했을 거라는 것을 한 번도 의심한 적이 없다.

그렇듯 나는 그런 상황에 놓였던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발췌한 문장들에서 나는 가슴이 아렸다. 지금 나는 궤도에서 조금 벗어난 삶을 살고 있지만, 언젠가 그 궤도에 들어설지도 몰랐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17. 평소에는 끼니를 대신할 수 있는 종류의 빵만 샀다. 입가심이나 기분 전환용 혹은 커피의 맛을 더하기 위해 만들어진 디저트용 빵을 사는 일은 거의 없었다. 얼마나 맛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든든하냐,가 빵을 고르는 기준이었다. 에트르에서 일하는 동안 일곱시부터 시작되는 마감 행사 때 떨이로 파는 빵을 한봉지씩 사는 것은 일상의 큰 기쁨 중 하나였다. 일곱시 10분 전에 매니저는 남은 빵들을 섞어 한봉지씩 묶었다. 나는 하나를 선택하기 전에 투명한 봉투 안에 들어 있는 빵의 종류를 신중하게 살폈다. 엇비슷한 것 중에서 구성이 제일 괜찮은 것을 골라야 했다. 그 봉지 안에 에트르의 대표 메뉴나 평소 먹어보고 싶던 빵이 들어 있던 적은 없었다.

(어떤 것이든 그렇지 않겠냐마는) A와 B를 고르는 것이 둘 모두 흡족한 것 중에 고르는 것도 아니고, A와 B 중 나은 것에서 고르는 것도 아니고,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것을 골라야 한다는 점이 서러운 삶의 연장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그것은 ‘나’가 골랐던 빵에서도 알 수 있다. 디저트용 빵을 사는 일은 고사하고 내가 평소 먹고 싶던 빵이 들어 있던 적이 없다는 것. ‘나’가 어떤 빵을 골랐을지 짐작은 하지만 그 구성이 제일 괜찮은 것이라는 게 질보다 양일지도 몰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것에 대해 그래도 에뜨르의 빵이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는 것에 대해 위안을 삼는 것이었다.

15. 계획과 달리 아르바이트를 계속 하다보니 취업에서 멀어졌다. 여기가 아니라는 걸 알면서 달리 갈 곳을 알지 못해 여기로 떠밀려온 사람의 몸 안에는 낭패감이 두텁게 쌓였다.

19. “공부하고 싶은데…… 사는 게 마음대로 돼야 말이지.”

우리는 오늘의 메뉴 대신 새해의 아르바이트에 대해 얘기했다. 찡이나 나나 졸업 후 계속 놀 수 없어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케이스다. 3개월, 6개월 일하고 2주 정도 쉬는 생활을 하다 보니 서른살이 돼버렸다. 휴대폰 매장과 까페, 옷 가게에서 일했지만 명함 한 장 만들지 못했고 이력서에 적을 경력도 변변치 않다. 찡이나 나나 근면성실했지만 그건 자랑도 자부도 되지 못했다. 기본 중의 기본일 뿐이었다. 주위 사람들도 다 시간을 쪼개고 욕망을 유보하며 살았다. 정신없이 바쁘게 지내왔는데도 서른살의 겨울을 생각하면 인생을 대충 산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초라했다.

짧은 단편을 읽는 내내 이야기가 참 쓰다고만 느껴졌다. 회사를 퇴사하고 나서 바로 이직이 결정된 상태인 지금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다행으로 여기지 못했다. 어떤 불행을 읽거나 마주했을 때, 나의 상황과 맞닿아 동질감을 느끼는 것과 나도 함께 힘을 내는 것이 전부였다. 비교를 통해 위안을 받거나 나를 비하하지 않기로 매 순간순간 알아차리는 것이 내가 가진 최선인 것처럼 행동할 때가 있었고 그것을 잊지 않기 때문이기도 했다. 특히나 타인의 불행을 나의 위안으로 삼았을 때의 치욕은 나만이 알 수 있는 것이었다. 몇 년 전의 나는 쉽게 그런 인간이었기 때문에. 하지만 나에게는 그런 결핍이 없을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 교만이자 오만이라는 것을 지금은 안다. 내게는 그와 별개인 결핍이 매우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나 자신이 제일 잘 알기 때문에 나는 쉽게 타인의 결핍들을 통해 나를 채우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내 친구 중에는 생활하는 만큼만 돈을 버는 친구가 있었다. 당시에 현재를 살면서 미래를 바라보는 내게는 이해 못 할 일이어서 그것만 가지고도 그 친구를 남몰래 업신여겼던 적도 많았다. 그것이 누군가에게(가장 가까운 누군가에게라도) 피해를 주지 않는 선이라면(이게 제일 중요), 자신의 행복을 위해 사는 것도 좋겠다 싶은 생각이 든 것은 내가 내 삶을 더 주관적으로 바라보면서 오로지 나만 생각하며 명확히 설계할 때, 그때였다. 내가 조금 더 행복한 길을 찾는 것. 그 친구는 어떻게 보면 돈을 적게 버는 대신에 시간을 벌었던 것일지도 모르니까. 그렇다고 그 친구에게 “너 잘못 산 거야.”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 삶을 살고 난 이후에 그 삶을 살았던 자신이 판단해야 하는 것이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누군가에게 항상 평가를 받는다. 그럴 수밖에 없는 삶이다. 그렇기 때문에 근면 성실했던 찡이나 ‘나’는 그토록 초라해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에 대해 괜찮다는 위로를 감히 할 수가 없다. 주눅들 수밖에 없고 위축될 수밖에 없으며 스스로도 괜찮지 않으니까.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일로 나라가 떠들썩할 때가 있었다. 물론 지금도 시끌시끌하다. 지극히 개인적인 입장으로는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명확한 선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개인의 인격을 훼손하는 것에서가 아니라, 업무적인 면에서다. 시험을 합격해서 들어온 이와 그렇지 않은 이는 사뭇 다르다.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겠지만, 일부는 어떻게든 격차가 날 수밖에 없다. 내가 하는 업무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나뉘는 일을 하는 건 아니지만 업무를 처리할 때에 전공과 비전공이 업무를 흡수하는 시간이 다른 걸 생각해보면, 어떤 것인지 알 수도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에 무조건적으로 비정규직은 너무 불합리하다, 라고 말할 수만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뉴스를 볼 때마다 자주 혼란이 온다. 저건 아닌데, 싶으면서도 그렇다고 그것도 아니야. 라는 너무 애매한 사이를 나는 오가고 있으니까.

24. 연말연시 분위기가 백화점 안에 넘실댔다. 사람들은 한해가 저무는 것에 대한 아쉬움은 옷 안쪽에 숨기고 연휴와 새해에 대한 기대감을 꺼내 머플러처럼 둘렀다.

‘나’는 12월 31일에 살 케이크를 고민한다. 29일에는 티라미수 케이크가 좋겠다고 생각했고, 30일에는 딸기타르트가 어떨까 생각했다. 하지만 정작 ‘나’가 31일에 산 케이크는 30%의 할인이 붙어있는 블루베리요거트 케이크였다. 티라미수 케이크와 블루베리요거트 케이크 두 개가 남아있었는데, 직원가 할인인 10% 티라미수 케이크와 30% 할인이 붙은 블루베리요거트 케이크를 고민하는 사이에 티라미수 케이크가 팔렸기 때문이었다. 그 케이크를 들고 한 해의 마지막 날 밤, 집을 보러 간다. 하지만 집주인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케이크를 옮겨 잡으려다가 놓쳐버려 망가진 케이크를 품에 안고 자신의 집으로 돌아간다.

이야기 처음부터 끝까지 ‘나’는 담담하다. 담담할 수밖에 없어 담담한 것인지, 울 수는 없기 때문에 담담한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그런 ‘나’는 의연해 보이기까지 하다. 그러면서도 노파심에, 설마, 첫째라서, 장녀라서 그런 건 아니겠지- 라는 생각에 마음이 찡해져오는 것이다. 부디 그런 것은 아니기를 바란다. 책 밖의 ‘나’는 책 속의 ‘나’가 포기하지 않을 것임을 안다. 케이크를 품에 안았으니까,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버스를 탔으니까.

새로운 집에서 살기로 선택했거나 지금 살고 있는 집에 살기로 선택했거나 여전히 에뜨르에 아르바이트로 일을 하거나 새로운 곳에서의 아르바이트를 시작했거나 새로운 직장에 출근을 하게 되었거나…… 등등 어떤 경우의 것이라고 하더라도, 모든 것이 ‘나’의 선택이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 자신의 삶이 어떻든 선택이 되어지는 삶이 아니라 어떤 선택지 안에서 최선을 다해 선택을 하는 삶을 살 수 있게 되기를.

etre : 존재

우리의 존재가 타인에 의해서 훼손되지 않는 삶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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