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트르」는 『모두가 헤어지는 하루』에 수록되어 있는 첫 번째 단편이다.
‘나’는 백화점 지하에 있는 ‘에트르’에서 일하고 있다. ‘언제까지나 일할 수 있는 곳’이 아니라 ‘언제까지 일할 수 있는 곳’으로 끝나는 아르바이트다. ‘나’에게는 낮에는 변호사 사무실에서 사무 보조로 일하며 저녁에는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는 여동생이 있다. 여동생은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나’를 한심하게 생각한다. ‘나’도 그것을 모르지 않는다. 어쩌다 아르바이트로 먹고사는 인생이 됐지. 라며 자조하면서도 주 6일씩 일하면서 정신없이 사는데 낭비 같은 말을 들으면 억울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상황에서 두 자매에게 난처한 일이 생겼다.
집주인이 통보를 해온 것이다. 내년부터 보증금이나 월세를 올려달라고. 올려달라는 금액은 보증금 1,000만 원이나 월세 10만 원
12. 시간이 지날수록 집은 낡고 지저분해지는데 보증금이나 월세가 계속 오른다는 게 이상했다. 이사를 가고 싶은 것과 이사를 갈 수 있는 것은 다른 문제라 보증금을 올리려면 대출을 받아야 하고 월세를 더 내려면 수입이 늘어나거나 지출을 줄여야 했다. 현실적으로는 대출이 불가능하고 더 벌 수도 없으니까 쓰는 걸 줄여야 했다. 그동안 잠도 줄이고 게으름 피우는 시간도 줄이고 말도 줄이고 꿈과 기대와 감정까지 줄이며 살았는데 여전히 뭔가를 더 줄여야만 했다.
3포 세대, 5포 세대를 지나 이제는 n포 세대까지 왔다. 지금의 세대는 참 많은 것을 줄이고 버리고 포기해야만 한다. 그렇게 해도 줄일 것이 있고 버릴 것이 있고 포기해야 할 것이 있다는 건 참혹함을 넘어 난폭하고 폭력적이기까지 하다. 지금 세대만 그런 게 아니라 전의 세대도, 전전의 세대도 그랬다 - 라고 말을 해버리면 할 말은 없다. 세대마다 각기 다른 고충을 안고 산다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지금은 개천에서 용나는 시절이 아니다. 그럴 수도 없다. 세상이 바뀌고 있고, 호락호락하지 않은 시대를 살아가는 세대들을 우리는 안아줘야 한다. 바닥에 떨어트려 뭉개져버린 케이크를 ‘나’가 품에 꼭 안듯이 말이다.
20. 집에 대한 고민은 새해맞이 케이크로 어떤 걸 고를까, 처럼 간단하거나 달콤하지 않았다. 그대로 살겠다는 건 돈을 더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고 이사를 가겠다는 건 서울 밖으로 밀려나거나 큰 방 하나에 거실 겸 부엌이 딸린, 두 사람이 사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공간을 줄여야 할지도 모른다는 걸 의미했다. 휴가시간이 줄어들거나 휴식의 공간이 좁아지는 것, 둘 중에 어느 쪽이 더 견디기 쉬울지 선택하기 어려웠다.
조금 솔직해지자면, 나는 서른이 넘는 지금까지도 집에 대한 고민을 해본 적이 없다. 나는 집을 몇 채나 가지고 있을 정도로 부유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내 명의의 집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며 지금 당장 집을 매매하려고 마음먹으면 빚부터 져야 하는 신세에 놓여있다. 그럼에도 집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고 이제까지 살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운 때문이었다. 부모님의 집에서 살 때는 부모님의 보호 아래 있었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았고, 결혼한 지금은 배우자의 직업으로 사택이 나오기 때문에 집에 대해 깊이 고민할 것이 없었다.
하지만 위와 같은 상황은 익히 들었다. 전세 대란으로 인해 독립 이후에 원룸인데도 불구하고 지역의 격차 때문에 50만 원대의 월세를 살(수밖에 없)던 친구들이나 결혼해서도 반전세를 살던 지인 부부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마음이 쓰렸다. 그들은 내게 말했다. “나는 네가 부러워. 너는 집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잖아.” 하지만 나는 알고 그들은 모르는 것이 있었다. 퇴직 이후. 그때까지는 집을 매매할 수 있는 경제력과 집을 잘 선택할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그게 너무나도 막연하기만 한 것이다. 나도 내가 어떤 지역에 터를 잡아서 오랫동안 살 수 있는 것이었다면, 아마 고민도 않고 빚을 져서라도 집을 매매했을 거라는 것을 한 번도 의심한 적이 없다.
그렇듯 나는 그런 상황에 놓였던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발췌한 문장들에서 나는 가슴이 아렸다. 지금 나는 궤도에서 조금 벗어난 삶을 살고 있지만, 언젠가 그 궤도에 들어설지도 몰랐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17. 평소에는 끼니를 대신할 수 있는 종류의 빵만 샀다. 입가심이나 기분 전환용 혹은 커피의 맛을 더하기 위해 만들어진 디저트용 빵을 사는 일은 거의 없었다. 얼마나 맛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든든하냐,가 빵을 고르는 기준이었다. 에트르에서 일하는 동안 일곱시부터 시작되는 마감 행사 때 떨이로 파는 빵을 한봉지씩 사는 것은 일상의 큰 기쁨 중 하나였다. 일곱시 10분 전에 매니저는 남은 빵들을 섞어 한봉지씩 묶었다. 나는 하나를 선택하기 전에 투명한 봉투 안에 들어 있는 빵의 종류를 신중하게 살폈다. 엇비슷한 것 중에서 구성이 제일 괜찮은 것을 골라야 했다. 그 봉지 안에 에트르의 대표 메뉴나 평소 먹어보고 싶던 빵이 들어 있던 적은 없었다.
(어떤 것이든 그렇지 않겠냐마는) A와 B를 고르는 것이 둘 모두 흡족한 것 중에 고르는 것도 아니고, A와 B 중 나은 것에서 고르는 것도 아니고,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것을 골라야 한다는 점이 서러운 삶의 연장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그것은 ‘나’가 골랐던 빵에서도 알 수 있다. 디저트용 빵을 사는 일은 고사하고 내가 평소 먹고 싶던 빵이 들어 있던 적이 없다는 것. ‘나’가 어떤 빵을 골랐을지 짐작은 하지만 그 구성이 제일 괜찮은 것이라는 게 질보다 양일지도 몰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것에 대해 그래도 에뜨르의 빵이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는 것에 대해 위안을 삼는 것이었다.
15. 계획과 달리 아르바이트를 계속 하다보니 취업에서 멀어졌다. 여기가 아니라는 걸 알면서 달리 갈 곳을 알지 못해 여기로 떠밀려온 사람의 몸 안에는 낭패감이 두텁게 쌓였다.
19. “공부하고 싶은데…… 사는 게 마음대로 돼야 말이지.”
우리는 오늘의 메뉴 대신 새해의 아르바이트에 대해 얘기했다. 찡이나 나나 졸업 후 계속 놀 수 없어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케이스다. 3개월, 6개월 일하고 2주 정도 쉬는 생활을 하다 보니 서른살이 돼버렸다. 휴대폰 매장과 까페, 옷 가게에서 일했지만 명함 한 장 만들지 못했고 이력서에 적을 경력도 변변치 않다. 찡이나 나나 근면성실했지만 그건 자랑도 자부도 되지 못했다. 기본 중의 기본일 뿐이었다. 주위 사람들도 다 시간을 쪼개고 욕망을 유보하며 살았다. 정신없이 바쁘게 지내왔는데도 서른살의 겨울을 생각하면 인생을 대충 산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초라했다.
짧은 단편을 읽는 내내 이야기가 참 쓰다고만 느껴졌다. 회사를 퇴사하고 나서 바로 이직이 결정된 상태인 지금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다행으로 여기지 못했다. 어떤 불행을 읽거나 마주했을 때, 나의 상황과 맞닿아 동질감을 느끼는 것과 나도 함께 힘을 내는 것이 전부였다. 비교를 통해 위안을 받거나 나를 비하하지 않기로 매 순간순간 알아차리는 것이 내가 가진 최선인 것처럼 행동할 때가 있었고 그것을 잊지 않기 때문이기도 했다. 특히나 타인의 불행을 나의 위안으로 삼았을 때의 치욕은 나만이 알 수 있는 것이었다. 몇 년 전의 나는 쉽게 그런 인간이었기 때문에. 하지만 나에게는 그런 결핍이 없을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 교만이자 오만이라는 것을 지금은 안다. 내게는 그와 별개인 결핍이 매우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나 자신이 제일 잘 알기 때문에 나는 쉽게 타인의 결핍들을 통해 나를 채우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내 친구 중에는 생활하는 만큼만 돈을 버는 친구가 있었다. 당시에 현재를 살면서 미래를 바라보는 내게는 이해 못 할 일이어서 그것만 가지고도 그 친구를 남몰래 업신여겼던 적도 많았다. 그것이 누군가에게(가장 가까운 누군가에게라도) 피해를 주지 않는 선이라면(이게 제일 중요), 자신의 행복을 위해 사는 것도 좋겠다 싶은 생각이 든 것은 내가 내 삶을 더 주관적으로 바라보면서 오로지 나만 생각하며 명확히 설계할 때, 그때였다. 내가 조금 더 행복한 길을 찾는 것. 그 친구는 어떻게 보면 돈을 적게 버는 대신에 시간을 벌었던 것일지도 모르니까. 그렇다고 그 친구에게 “너 잘못 산 거야.”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 삶을 살고 난 이후에 그 삶을 살았던 자신이 판단해야 하는 것이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누군가에게 항상 평가를 받는다. 그럴 수밖에 없는 삶이다. 그렇기 때문에 근면 성실했던 찡이나 ‘나’는 그토록 초라해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에 대해 괜찮다는 위로를 감히 할 수가 없다. 주눅들 수밖에 없고 위축될 수밖에 없으며 스스로도 괜찮지 않으니까.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일로 나라가 떠들썩할 때가 있었다. 물론 지금도 시끌시끌하다. 지극히 개인적인 입장으로는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명확한 선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개인의 인격을 훼손하는 것에서가 아니라, 업무적인 면에서다. 시험을 합격해서 들어온 이와 그렇지 않은 이는 사뭇 다르다.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겠지만, 일부는 어떻게든 격차가 날 수밖에 없다. 내가 하는 업무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나뉘는 일을 하는 건 아니지만 업무를 처리할 때에 전공과 비전공이 업무를 흡수하는 시간이 다른 걸 생각해보면, 어떤 것인지 알 수도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에 무조건적으로 비정규직은 너무 불합리하다, 라고 말할 수만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뉴스를 볼 때마다 자주 혼란이 온다. 저건 아닌데, 싶으면서도 그렇다고 그것도 아니야. 라는 너무 애매한 사이를 나는 오가고 있으니까.
24. 연말연시 분위기가 백화점 안에 넘실댔다. 사람들은 한해가 저무는 것에 대한 아쉬움은 옷 안쪽에 숨기고 연휴와 새해에 대한 기대감을 꺼내 머플러처럼 둘렀다.
‘나’는 12월 31일에 살 케이크를 고민한다. 29일에는 티라미수 케이크가 좋겠다고 생각했고, 30일에는 딸기타르트가 어떨까 생각했다. 하지만 정작 ‘나’가 31일에 산 케이크는 30%의 할인이 붙어있는 블루베리요거트 케이크였다. 티라미수 케이크와 블루베리요거트 케이크 두 개가 남아있었는데, 직원가 할인인 10% 티라미수 케이크와 30% 할인이 붙은 블루베리요거트 케이크를 고민하는 사이에 티라미수 케이크가 팔렸기 때문이었다. 그 케이크를 들고 한 해의 마지막 날 밤, 집을 보러 간다. 하지만 집주인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케이크를 옮겨 잡으려다가 놓쳐버려 망가진 케이크를 품에 안고 자신의 집으로 돌아간다.
이야기 처음부터 끝까지 ‘나’는 담담하다. 담담할 수밖에 없어 담담한 것인지, 울 수는 없기 때문에 담담한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그런 ‘나’는 의연해 보이기까지 하다. 그러면서도 노파심에, 설마, 첫째라서, 장녀라서 그런 건 아니겠지- 라는 생각에 마음이 찡해져오는 것이다. 부디 그런 것은 아니기를 바란다. 책 밖의 ‘나’는 책 속의 ‘나’가 포기하지 않을 것임을 안다. 케이크를 품에 안았으니까,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버스를 탔으니까.
새로운 집에서 살기로 선택했거나 지금 살고 있는 집에 살기로 선택했거나 여전히 에뜨르에 아르바이트로 일을 하거나 새로운 곳에서의 아르바이트를 시작했거나 새로운 직장에 출근을 하게 되었거나…… 등등 어떤 경우의 것이라고 하더라도, 모든 것이 ‘나’의 선택이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 자신의 삶이 어떻든 선택이 되어지는 삶이 아니라 어떤 선택지 안에서 최선을 다해 선택을 하는 삶을 살 수 있게 되기를.
etre : 존재
우리의 존재가 타인에 의해서 훼손되지 않는 삶을 꿈꾸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