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의 마음을 산책 중 - 따뜻한 신혼의 기록, 유부의 마음
자토 지음 / 시공사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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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책이 증~~~~말루 안 읽힌다. 시험 본다고 근 몇 주 동안 글자들이랑 전쟁을 했더니 더 그런가 싶기도 하고. 시험이 끝나고 바로 읽었던 책들이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과 <카탈루냐의 찬가>를 차례로 읽었더니 더 그런가 싶기도 하다. 그래서 집에 읽지 않은 책은 많지만 도서관에 방문해서 10권이 맥스라는데 나는 9권을 빌려오는 호기를 부렸다. 차도 안 가지고 지하철을 타고 갔더니 집에 올 때는 죽을 맛... 책을 짊어지고 왔다고 한다(...)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은 고전, 소설, 에세이 등등의 구성으로 되어있는데 이들의 공통점은 그저 ‘내가 고른 책’이라는 기준이 전부다. 공통점이 없음.

그중에 한 권이었던 <서로의 마음을 산책 중>이라는 책을 읽기로 했다. 사실 이 책은 전에 인스타를 할 때 몇 번 광고를 보기도 했었는데 나는 인스타의 과대광고를 결코 믿지 않으니까 (혹은 거르니까) 그냥 한 장면들을 보기만 했지, 읽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근데 너무 방심했다.

책을 집 앞 무료인 독서실에서 독서노트를 정리하다가 팔이 아파서 읽기 시작한 것이었는데... 읽으면서 얼마나 낄낄 킥킥 크크큭 대며 웃었는지 모른다. 장소가 장소이니만큼 얼마나 숨죽여 킥킥댔던지. 너무나도 우리의 모습 같아서. 단편적으로 비슷한 부부들을 많이 봐서 그리 놀라울 것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건 닮아도 너무 닮았다.

마스다 미리의 <치에코 씨의 소소한 행복>을 보면서는 (치에코=나)였다면, <서로의 마음을 산책 중>의 자토와 코기는 그냥 우리 부부였다. 물론 전부는 아니지만 80~90%가 우리 부부의 모습과 너무 닮아있는 까닭에 ‘세상에, 이런 부부가 또 있어?’ 라고 생각할 정도였으니까. 그래서 이 부부를 만나보고 싶어지기도 했다(;;;)

자토는 ‘자취 토끼’의 준말이고, 코기는 ‘웰시코기’의 준말로 서로를(?) 그렇게 부르고 있었다.

여기서 자토가 아내고, 코기가 남편이다.

 

 

 

 

이건 자토가 퇴근했을 때 코기님이 하는 행동인데, 흡사 강아지(...) 아니 개(...)

J가 퇴근할 때 꽃게춤을 추고, 죽어있는 놀이를 하고, 방방방 뛰는 나와 너무 닮아서 웃으면서 J한테 보여줘야지! 라고 생각하고 페이지를 적어뒀는데, 어느 순간부터 책 페이지를 쓰는 것을 멈췄다. 그냥 이 책을 J한테 보여줘야 할 것만 같아서(;)

 

 

 

 

풉, J도 라면을 매우 좋아합니다.

 

 

 

며칠 전에는 이마트에 갔는데 “우리 원마트(집 근처 슈퍼)는 김치라면이 1,800원이라구~”

우리 원마트? ㅎㅎㅎㅎ라며 웃었는데, 이마트는 1,500원이었다.

J는 우리 원마트를 잠시 버려두고 우리 이마트로 바꿔 갈아탄 것 같다.

그리고 바로 어제도 나는 스팸 하나랑 참치캔 하나를 사러 마트를 갔는데,

그는 라면 코너에 가서 신라면 2봉지, 안성탕면 2봉지, 너구리 5봉지를 떡 하니 바구니에 넣고 있었다.

“여보?” 하고 불렀더니, “너구리는 여보가 좋아하는 거” 아니, 여보.. 사람은 라면만 먹고 살 순 없다구.

 

 

 

 

내가 라면을 싫어하는 건 아니다. 나는 결혼 전에는 일주일에 한 번, 꼭 주말 아침에 라면을 하나씩 먹을 정도로 라면을 좋아했는데, 결혼하고 나니 J의 라면 사랑은 대단한 것이었다. 비단 라면뿐일까. 라면, 쫄면, 냉면, 스파게티 - 아주 면 파티다.

J도 그렇지만 나도 베이직한 라면을 좋아하기 때문에 라면에 계란이나 파 외에는 뭔가를 더 넣지는 않지만, J가 “오늘 라면 먹자!” 하면 “아니야, 다른 거 먹자.”하고 내가 우회한다. 하지만 내가 라면을 먹자고 할 때 그는 본인이 정~~말 밥을 먹고 싶은 경우가 아니라면 열이면 열, 거절하는 법이 없다. 크크크.

 

 

J는 정말 피곤한 것이 아니면 코를 골지 않는 사람이었고, 코골이가 심하다는 친구 남편 이야기를 들으며 “코골이를 어떻게 참아내냐.”라고 했던 말이 무색하게 몇 년이 지나자 J는 코를 골기 시작했다. 세상에, 내가 코골이를 참아내는(!) 사람이 되었다니. 심지어 코기님의 코골이를 멈추게 하려는 자토님의 노력들도 나와 똑같아서 웃었다. ㅎㅎ 코를 막는 건 나도 잘 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숨이 안 쉬어지면 어쩌나 무서워서. (코를 막으면 입으로 숨을 쉬어야 하는데 입을 안 열어서... 자면서도 숨을 참니?)

가장 쉬운 방법은 자는 J를 깨우는 것인데, 술은 안 먹은 J는 여보? 하고 부르기만 해도 혹은 손잡고 손에 힘만 줘도 깬다. 하지만 다시 드르렁~

술 먹은 J는 흔들어 깨워야 깬다. 이때는 정말 방법이 없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나도 잠에 들어있는데 사진 찍은 장면이랑 나랑 너무 흡사해서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ㅎㅎㅎㅎㅎㅎㅎㅎㅎ (혹시 자토님도 앉아서 주무시나요? 자토님도 자다가 꺄르르 웃기도 하시나요? 자토님도 혹시... 침대 위에서 영토를 확장하려는 광개토대왕인가요?...)

 

 

 

 

그 코골이라는 게 술을 먹으면 더 심한데, 그는 내가 그 코골이 때문에 잠을 못 자는 것을 알기에 술을 먹으면 거실로 나가서 잔다. 근데 코골이 때문에 못 자나, J가 옆에 없어서 못 자나, 못 자는 건 매한가지이기 때문에 방에 들어와서 자라고 한다. 나도 자토님의 생각과 같다. 코를 고는 것은 내가 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생각 때문에 화가 날 수 없는 것. 내가 싫은 것은 ‘코를 곤다’ 는 사실이 아니라, ‘늦게 들어온다’ 는 사실이라는 것을 그는 왜 모를까!

그리고 그 밑에 나와있는, 자기 전에 어깨를 주물러주기도 하고, 팔베개도 해주고, 차가운 발을 기꺼이 허벅지에 껴주는 등 -의 글을 보면서 J와도 같다고 생각했다. 그는 자기 전에 나는 머리를 만져주면 잠이 금방 들기 때문에 미용사가 되어주기도 하고, 6년째 빼놓지 않고 팔베개도 해주고, 손과 발을 자신의 손과 허벅지에 대어도 싫은 내색을 하지 않고 기꺼이 다 받아준다.

어떤 날은 운동을 했다며 팔이 아프다고 하길래 “팔이 아프면 빼도 돼.”라고 했더니, “하는 데까지 해보고~”라는 귀여운 말을 하기도 하는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우리의 일상생활이라서 웃지 않을 수 없는 부분

코기님은 자토님이 간지럼을 태울 수 있도록 팔을 벌리고 있다고도 하는데, 정말 흔치 않다. J는 그랬던 적이 딱 한 번 있는데, 내가 채칼에 손이 심하게 베어 피가 철철 날 때 내가 불쌍하다며 그런 나를 위로해주겠다고 본인을 간지럼 태워도 된다고 정식으로 허락을 해주었던 날이다. ㅎㅎㅎ 그날을 잊을 수 없지.

 

생각해보면 나는 J랑 외출을 할 때면 하나부터 열까지 통제를 받는다.

길을 걸을 때도, 횡단보도를 건널 때도, 내가 마트에서 걸을 때 앞에 사람이 있다는 것도 알려준다(;;;)

“여보는 이래서 어떻게 나를 밖으로 내보내?”라고 말할 정도로 나를 과잉(?)보호한다.

자토님은 소중해지는 기분이라고 했는데 나는 너무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부분이기도 하고,

가끔은 귀찮다는 느낌(;;)도 드는 때가 없지 않아 있어서 갑자기 그런 나를 반성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일부러 노력하는 게 아니라 몸에 배어있는 것들이라 더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지.

참고로 이 자세 무지무지 편하다.

진주에 있을 때에는 티비를 보든 침대에 누워있든 항상 이 자세를 유지했었는데,

지금은 내가 J를 괴롭히는 것으로 좀 더 쏠린 것 같다.

결혼한 지 1년 정도는 J가 내 몸 위로 쓰러져(?) 있는 포즈를 좋아했는데, 점점 무거워져서...

반성의 시간. 2

결혼하고 나서 설렘이 없어졌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연애 때의 그 특정한 설렘이 많지는 않은 편이기도 하고.

어떤 날은 “이따 집에서 봐~”라고 말하는 J에게 “왜 나한테 만나자고 안 하고 보자고 해?”라고 투정을 부리기도 했다.

가장 최근 내가 설렘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시간과 장소를 정해 그곳에서 만나는 것.이었다.

그런데 책을 보면서 내가 정말 잘못 생각하고 있었네. 라고 생각했다.

너무 당연한 것들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던 것들이 도처에 널려있었다.

흡사 화장실에 휴지가 가득 채워져있는 일,

겨울에는 내가 집에 오는 시간에 맞춰 보일러를 틀어두는 일,

대용량 섬유 유연제가 자주 쓰는 통에 담겨있는 일,

쌀통에 쌀이 채워져 있는 일,

재활용 분리수거를 해놓는 일,

화분에 물을 주는 일, 등등

역시 모든 일은 마음먹기 나름이다.

당연한 게 아니라, 다정함과 상냥함이 공존하는 설렘이지.

또 다른 설렘-

찾아보면 무궁무진하게 많을 텐데,

연애 때의 설렘이라는 협소함만을 고집하고 있으니 보이지 않을 수밖에.

덕분에 배웁니다 :)

 

아, 공감 백 개-

소소한 행복이란 생각보다 어마어마하다는 것.

 

 

이건 내가 J한테 원하는 것이지만,

J는 절대 이럴 사람이 아니다.

화가 나서 내가 산책 겸 밖에 나가면 그는 나를 절대 찾지 않고 연락도 하지 않음.

1. 본인이 화가 났기 때문도 있고,

2. 본인이 화가 났을 때 본인에게 해주었으면 하는 행동이기도 하기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나를 좀 찾으러 와줬으면 좋겠는데,

J는 그런 사람이 아니니까 어쩔 수 없지.

 

 

우리의 모습과 똑같은 것

지금은 집에 전단지나 배달 책자가 붙어있을 수 없지만,

진주에 살 땐 종종 붙어있던 배달 책자.

J는 현관문에 붙어있던 배달 책자를 그렇게 즐거워했다.

“오늘도 재미있는 책이 왔네~”

물론 배달을 시키는 일은 많이 없었지만.

 

 

이건 너무나도 나의 모습

매일이 그렇지만,

특히나 요즘 취약한 부분이 발가락이라 더 그렇다. ㅎㅎ

 

 

가 이걸 보면서 그렇게나 웃었다.

이것도 나의 모습이라서(;)

일하는 자토님은 J씨, 옆에 앉아있는 코기님은 나.

 

 

이 부분을 보고는 닭살이 돋기까지 했다.

우리 집에는 ‘당근시로’님과 ‘벌레시로’님이 산다.

‘당근시로’님은 나고, ‘벌레시로’님은 J다.

나는 ‘벌레시로’님을 위해서 자주 벌레를 잡아준다.

괜찮아, 벌레를 무서워할 수도 있지......

/

내 친구들이 J에 대해 신기하게 생각하는 것은,

고소공포증이 있다는 것과

벌레를 싫어, 아니 무서워한다는 것이다.

 

 

정말! 공감!

차라리 일찍 들어온다고 하지 말든가~

/

서평을 쓰는 오늘도 회식이 있는데,

1차만 끝내고 온다고 하였습니다.

이런 경우 늦으면 어떻게 하나요, 자토님?

/

내 친구는 J한테 “오빠는 정말 사랑꾼이야~”라고 하는데,

나는 대답한다.

“응~ 술 약속이 잦고, 늦게 들어오는 것만 빼면 완벽한 사람이야.”라고.

ㅎㅎㅎㅎ 기필코 이 문제는 그가 좀 반성해야 한다.

 

 

 

자기 전에 우리의 모습 ;)

자기 전에 하는 이야기들은 평소보다 진솔되고 솔직한 것들이 많다.

그리고 평소보다 더 우리의 이야기를 많이 하고.

첫 신혼집에서는 안방에 작은 TV가 있었다.

이건 J가 원한 것이었는데, 이후에 이사할 땐 안방에 TV 자체를 놓지 않았다.

근데 그게 얼마나 좋은 것인지!

자기 전에 종알종알 이야기를 하다가 잠에 들고,

일어나서도 서로를(거의 내가) 괴롭히는 일상들.

그 이유로 TV를 안방에 절대 들이고 싶지 않다. 무슨 일이 있어도!

 

 

 

왜 생강일까, 궁금하다.

하긴.

나는 어느 날 출근하기 전에 자고 있는 J의 옆에 가서 누워있었더니,

“여보 이렇게 보니까 여보 공룡같이 생겼다.”

...?

그래 여보는 내가 공룡 닮아서 좋겠다..

 

 

 

 

 

정말 공감했던 부분이었다.

누군가와 함께 나이 먹고 있으니 한결 마음이 편하다. 둘이 붙어 있으면 온종일 유치한 장난의 연속인데(서로의 콧구멍을 손가락으로 막거나, 무반주로 말도 안 되는 춤을 추거나, 아무도 못 알아듣는 성대모사로 상황극을 하면서 논다) 가끔 우리가 언제까지 이렇게 천진난만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느 순간 우리가 시답지 않은 장난을 더는 치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어떨까? 안 돼! 그건 너무너무 슬퍼. 코기도 그럴까. 그래서 열받게 자꾸 내 머리를 통통 치고 장난을 거는 걸까. 하하.

그래, 우리 얼굴은 쭈글쭈글해져도 허파는 쭈글쭈글해지지 말자. 평생 허파에 바람 들어간 것처럼 실없는 일에도 웃으며 살고 싶으니까.

자토님과 코기님의 결혼생활이 시답지 않은 농담과 장난으로 알록달록한 하루들이기를, 그리고 더불어 우리도 ;-)

 

 

받는 사랑에 감사하며 지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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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바로 통하는 실무 엑셀 - 모든 버전 사용 가능 170여 개 실무 템플릿 무료 제공 회사통 현장밀착형 입문서 시리즈
한은숙 지음 / 한빛미디어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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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셀을 배워야겠다는 혹은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기본만 알면 되지,라는 생각이 강했고, 실제로도 기본만으로도 일은 어렵지 않게 진행되니까 더욱 그랬다. (여기에서 내가 말하는 기본은 저장하고 수정하는 기본적인 단축키 정도) 하지만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 직접 원가 계산서를 작성해야 하고, 견적서를 작성해야 하는 입장에서 엑셀의 기본만으로는 조금 귀찮은 일이 많았다. 조금 배우면 이보다는 좀 수월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고 그 때문에 학원을 다녀야 하나 싶었지만 아무래도 그건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나는 엑셀을 전문적으로 다룰 수 있는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필요한 것들을 적재적소에 맞게 캐치해서 적용시키고 싶었을 뿐이니까.

내가 엑셀에 대해 얼마나 모르고 있었냐면, 시트 이동하는 법이 ctrl + page up or dn이라는 사실을 며칠 전에 알았다는 점이다. 하지만 습관이 덜 되어서 나도 모르게 ctrl + tab을 자꾸 누른다는 게 함정;;

 

 

 

에이~ 나 이 정도는 알고 있어! 하면서 책장을 쉽게 넘기고 있었는데, 순간적으로 흠칫 멈추게 된 부분이다. 나는 엑셀을 PDF로 저장할 때는 아크로뱃 편집 기능으로 사용했었는데 아크로뱃 편집 기능이 없어서 알PDF를 다운로드해서 사용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게 너무 불편해서 아~ 이게 뭐야. 너무 불편하잖아.라면서 볼멘소리를 내고 있었는데, 모든 프로그램에서 공통적으로 적용하고 있던 [다른 이름으로 저장하기]를 눌러 PDF로 저장하는 방식을 나는 엑셀에서는 적용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진짜 웃긴다.

 

 

<회사에서 바로 통하는 실무 엑셀>은 2007~2019까지 모든 버전이 사용이 가능하다고 한다. 나의 엑셀 수준은 "하"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책이 내게는 조금 어렵지 않을까 했던 마음이 있었다. 작년에 <회사에서 바로 통하는~>으로 공부했었던 게 하나 더 있는데, 그건 좀 복잡해서 아는 것도 이게 뭐야!? 라면서 책장을 완전히 덮어버렸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책은 나와 같은 입문자도 따라 할 수 있을 만큼 설명이 간결하게 되어있어서 실제로 엑셀을 켜놓고 따라 해보기도 했다. 내가 엑셀의 기본을 할 수 있다고 한 것은 단지 단축키였을 뿐이고, 실제로 내가 아는 함수는 "SUM"뿐이었으니 엑셀에 관한 지식은 전무하다고 할 수 있다. 엑셀을 전문적으로 공부해야지, 라는 생각이 아니니 아마도 더 재미있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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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해지는 연습을 해요
나토리 호겐 지음, 네코마키 그림, 강수연 옮김 / 양파(도서출판)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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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 사람이 있어서도 힘이 들고 사람이 없어서도 힘이 든다면 차라리 사람이 없는 게 나은 거 아닐까, 하고 생각해본 적이 있다. 그렇게 살 수는 있겠으나, 그게 옳은 판단은 아닐 성싶었다. 단지 심심하다거나 외롭다거나 하는 이유가 아니라,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사실을 나는 너무나도 확실하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은 사회 없이는 존재할 수 없고, 사회 역시 마찬가지로 개인 없이 존재할 수 없다.

왜 나한테 저런 식으로 말을 하지?

왜 나한테 저렇게 행동하지?

뭐지?

뭐 때문이지?

왜?

인간이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상호간의 긴밀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가치관이 충돌하거나 무례함을 보인다거나 불편하다거나 불쾌하다거나 등등등(...)의 아주 많은 경우의 수 가운데 어떠한 조건이 하나라도 부합이 되면 우리는 그 사람과의 관계를 계속 이어나갈지 말지에 대해서도 고민한다. 그뿐이랴, 어떤 일이 발생하지 않더라도 서로가 소홀해져 관계에 노화가 오는 경우도 무시하지 못한다.

반대로 우리는 원치 않는 관계를 이어나갈 때도 많다. 가족이니까, 친구니까, 전에 나한테 이렇게 해주었으니까, 정 때문에 등등등(...)의 무수히 많은 이유로 말이다. 그런데 그 원치 않는 관계를 이어나갈 때 우리는 자주 스트레스를 받는다. 우리는 좋든 싫든 매 순간 인간관계에 깊은 고뇌를 안고 살아간다. 그 고뇌들을 조금 주물러 말랑하게 만들어주는 책을 만났다.

<편해지는 연습을 해요>라는 책은 아주 짧은 챕터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읽기에 부담이 없다. 물론 갸우뚱해지는 부분도 없잖아있었지만, 대부분은 가볍게 읽기 좋았다고 생각한다. 어떤 책을 읽든 실천으로 옮기는 건 언제나 어려운 일이므로, 실천력의 여부는 본인에게 달려있는 문제이지 않을까.

1. 나는 남에 대한 배려가 강한 편이다. 분명하게 내가 싫은 것을 제외한 것들에는 대부분 배려를 한다. 그런데 문제는 배려를 하다가 지칠 때가 많고, 나는 배려를 했는데 왜 쟤는 저렇게 행동하지? 할 때도 많았다. 그런 부분에 대해 그릇이 작은 나는, 배려를 하지 말아야겠다.라고 생각하기도 하는데, 그게 실천이 되는 대상이 있고 전혀 안 되는 대상이 있다. 후자의 경우, 대부분 그 상대는 나의 배우자가 된다. 배려를 하지 말아야지! 해놓고도 아, 그가 힘들 텐데. 그냥 내가 하지 뭐. 라고 생각하게 돼버리는 것이다.

가장 최근에는 나의 배우자가 열흘을 넘게 일을 하느라 제대로 쉬지 못한 적이 있었다. 호기롭게 나는 내가 당신을 챙겨줄 수 있어서 참 좋아,라고 말했고 실제로 모든 끼니를 차려내고 모든 잡다한 일도 내가 도맡아 했지만, 시간이 가면 갈수록 내가 원해서 한 일인데도 불구하고 불만이 쌓여갔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쉬지도 못하고 일하느라 많이 힘들잖아. 라는 마음과 충돌해서 꽤 난감했던 적이 있었다.

책에서는 말한다. 티 나지 않는 배려를 해야 한다고.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나. 하며 읽을 때 즈음 처방이 참 마음에 들었다.

남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시간과 공간을 가져야 한다.

생각해보니 그랬다. 퇴사를 하고 나서는, 특히나 배우자가 바쁜 그 시간 동안에는 오롯한 내 시간이 없었다. 모든 것이 그의 위주로 돌아갔으니까. 내 시간들을 확보한 뒤에야 나는 그런 불편함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되었다. 혹시라도 다음에 또 그런 마음이 생기면 생각해볼 일이다. 나만 생각할 수 있는 내 시간이 없는 것은 아닌지.

2. 마음의 날씨는 스스로 청명하게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이다. 내 마음의 상태가 좋지 않다고 하여 타인에게 화풀이하는 행동은 내가 참 싫어하는 행동인데, 그것을 잊고 나 역시도 화풀이를 할 때가 많다. 미안하게도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에게 특히 더 그러하다. 자주 되뇌어야지.

3. 악담의 폭풍이 불어오면 피난한다. 한쪽으로 치우친 험담은 듣지 말고 그 자리를 벗어나는 편이 좋다.

이건 굉장히 모순된 말인데- 나는 험담을 곧잘 하기는 하지만, 잘 듣지 못하는 편이다. 나는 험담을 하려면 그 대상에게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내가 들어본 험담들은 대상에게 닿지 않는 혹은 못하는 것들일 경우가 많았다. 그러니까 아무런 구체적인 해결 방법도 없이 욕만 하는 것을 나는 듣기가 힘들었다. 그 자리가 차라리 소수의 사람이 모여있는 자리라면 나도 책에서 말한 것처럼 자리를 벗어나서 관찰자의 입장으로 볼 때가 많있다. 깊이 관여된 사람이 아니라, 구경하는 사람의 입장이랄까. 하지만 단둘이 있을 경우에는 그게 힘들었다. 어디 도망갈 수도 없고. 음... 이건 아무래도 좀 힘들다.

4. 그렇게 일방적으로 평가하다니 당신답지 않네요?

이 말도 꼭 마음에 새겨둬야지. 나는 피해 의식이 있나 싶을 정도로 근 1년 동안 어떤 말을 들을 때 곱게 듣지 못했다. 그런 상황들이 연달아 일어났기 때문일까. 어쨌든 점점 더 내 말은 날아다니는 칼처럼 공격성이 짙었다. 그래서 말한 것 자체를 후회하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감정적으로는 말하지 말걸, 하면서 후회한 적도 있다.

5. 아이 혼내지 마라, 온 길이잖아. 노인 비웃지 마라. 갈 길이잖아.

자주 잊고 지내지만 정말 맞는 말이다. 하지만 한 번씩 나는 저렇게 되지는 말아야지! 하는 사람들을 보면 화가 날 때가 많다. 그런데 나는 저렇지 않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사는 내내 부단한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6. good old days <<<<< brand new days

마냥 좋던 옛 시절을 그리워할 게 아니라 지금과 이제부터를 기대하며 살아갑시다.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을 입증하는게, 과거를 그리워한다는 거라던데 - 꼭 내가 그렇다. 그렇다고 이전의 생활들에 굉장히 만족하며 살았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 살면서 적응이 되고 현실과 타협하면서 내 자리를 찾아갔던 것을 잊고 그때가 좋았지, 라고 말하고 있다. 지금에 좀 더 애정을 주며 지내보기. 아마 내게 주어진 가장 큰 과제가 아닐까 싶다.

-1. 책에서 공감할 수 없었던 부분들이 더러 있었지만, 이건 정말 아니다 싶은 게 있었다.

충고를 해준다는 생각으로 참견하는 사람의 심정을 살펴라.

참견하는 사람은 그 방법이 좋으리라 생각해서 참견한다고 했는데 실제로 들어보면 A와 B 중 A로 해! 왜 B를 선택해? 라고 말하는 사람은, B를 가져보지 않은 사람인 경우가 많았다. 충고라는 명목으로 하는 참견을 들었을 때, 비난과 질타가 섞여있는 것이 많았다. 다르다가 아니라 틀렸다로 말하고 싶어 근질근질해죽겠다는 식의 말들.

게다가 충고의 단어 의미를 찾아보면 /남의 결함이나 잘못을 진심으로 타이름/이라고 사전에 나와있는데, 충고보다는 조언= /말로 거들거나 깨우쳐 주어서 도움/이 더 낫지 않겠나. 하지만 충고든 조언이든 듣고 싶어 할 때만 해주면 됩니다... 제발요.

책을 읽다 보면 나도 알고 있지만 실천하지 못하는 방안이 많이 나오기는 한다. 하지만 그것들에 좀 힘을 빼서 말을 하고 있기 때문에 조금은 편하게 읽을 수 있었다. 점점 더 편해지는 연습, 그러니까 내가 편해지는 그런 연습을 좀 더 해야지. 그러려면 많은 시행착오가 필요하겠지만, 우리는 스스로를 편하게 할 의무가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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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 지음 / 창비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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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쓰는 아버지와 실질적으로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의 모습인 어머니, 언니 정숙과 주인공 미숙.

오래 전에 자신의 꿈을 좇는 가장의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당시에 나도 만화로 보았으니 읽었다고 해야 하나, 보았다고 해야 하나. 암튼, 그랬다. 그런데 그것을 보면서 사람은 누구나 꿈이 있고 꿈을 향해 가는 거지,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책임져야 하는 대상이 있으니까,라는 너무나도 원론적인 것이 그 이유였다. 사람은 누구나 ‘책임’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데 그 대상이 ‘가족’이라면 꿈만 좇기에는 너무 이기적이지 않나. 또한 곤고한 가정 형편이라면 더더욱 염치없는 행동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지금도 여전히. 꿈이 없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지만, 마음에 품었던 꿈이 없는 사람도 있나. 다만 나의 처지와 현실과의 중간에서 타협하는 것이지.

 

 

 

언니… 내 이름이 미숙이잖아.

근데 학교 애들이 야 미숙아, 라고 불러.

미숙이나 야, 하면… 괜찮은데

야 미숙아, 꼭 이렇게 불러.

야, 미숙아.

역시나 그 사이에서 힘들어하는 것은 배우자와 그 자녀들이다. 심지어 잔혹한 아버지의 폭력성은 물건을 던지는 것을 넘어 급기야 어머니에게까지 손이 뻗치고 만다. 경제적으로 무능한데, 폭력까지 휘두르는 아버지. 집은 점점 도망치고 싶은 공간이 되었고, 가족은 점점 모르고 싶어지는 대상이 되었다. 그런 환경 속에서 성숙은커녕 성장(成長)이나 할 수는 있을까.

언니는 내 우상이었고 인내였다.

그런 언니가 변하기 시작했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면 무너지고 있었다.

눈에 띄게.

그렇게 희망이 절망하고 있었다.

미숙이 의지할 수 있었던 대상은 바쁜 어머니를 대신해서 언니 정숙이 되었다. 정숙이 등을 돌리는 순간부터 정숙도 미숙이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게 되었고, 그 빈자리를 전학을 오게 된 김재이가 채워주게 된다.

하지만 모든 것을 스스럼없이 보여준 미숙의 마음을 이용한 재이로 인해, 미숙은 큰 상처를 받게 되고 학교를 자퇴하기에 이른다. 미숙은 그렇게 마음의 문을 닫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송겸재, 그가 곁에 서는 순간 그 틈으로는 빛이 새어 나왔다. 하지만 겸재에게 마음을 다 주는 것 같지는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다시 상처를 받게 될까 봐 미리 마음에 벽을 두는 것처럼 보였는데 그게 미숙이뿐만이 아니라, 겸재에게도 느낄 수 있는 부분이기도 했다. 섹스는 내게 숙제 같았다.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지만 겸재 씨도 마찬가지처럼 보였다. 라는 부분이 연인 관계에서 으레 있을 수 있는 권태나 허무로 느껴지지 않은 것을 보면.

사실 나는 많이 걱정이 되었다. 미숙이의 마음에서 없어지지 않고 그대로 고여있는 것들 때문에 감정둔마, 그러니까 손원평 작가의 <아몬드>의 윤재처럼 되어버릴까 싶은 오지랖에 뒷목이 서늘해지기까지 했다.

/

미숙의 삶을 내밀하게 들여다보는 동시에 타인의 삶을 관조하게 되는데, 나 같은 경우에는 정숙에게 모든 초점이 맞춰졌다. 아버지께 인정받고 싶지만 인정받지 못하고 허벅지를 꼬집으며 모든 걸 인내하는 모습에서 정숙의 황량하고 피폐한 감정을 조금이라도 전달받을 수 있어 그랬을까. 결국 정숙은 자신의 고름을 짜내기는커녕 점점 고름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상황은 많이 달랐지만, 정숙이 꼭 나의 모습 같아서 더 곤혹스러웠다. 정숙이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은 누구였을까.

그러면 가족이란 결국 무거운 부담과 막대한 담보 및 거미줄 같은 채무로 연결된, 서로가 서로에 대한 인질인가. (…) 가족이 휴식이나 피난처가 아니라 피로와 염증을 유발하는 일거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둘러선 구성원의 표정이 상기시킨다.

위는 몇 년 전에 읽은 책인, 구병모 님의 <한 스푼의 시간>에서 발췌한 문장이다. 나는 당시에 내가 가족에 대해 생각하는 것과 매우 유사한 그 문장을 오래도록, 마음에 담았다. 매번 꺼내어보아서 이미 너덜너덜해진 그 문장을, 다시금 상기했다.

책을 읽으면서 내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생각이 지배했다. 가족이란 뭘까. 도대체 가족이라는 존재는, 어떤 걸까. 왜 가족이라는 관계는 어쩔 수밖에 없는 것인가.에 대한 물음에 나는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폭력을 당했음에도 아버지의 병을 간호했던 것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스스로 바보가 되기를 자처했던 것도, 자신을 때린 언니와 멀어지기는 했지만 미워하지 못했던 것도, 너무 한심하게도 - 가족이기 때문이었다. 가족이 왜? 가족이 어떻다고? 라고 나 대신에 반발해주었으면 했는데, 결국 ‘가족이니까’라는 문장 앞에서 나는 고개를 처박고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아마도 그렇기 때문에, 미숙은 기쁘게 받았다. 아버지가 던진 <무소유>에 맞아 생긴 흉터를 치료하라고 어머니가 그동안 모아둔 돈 봉투를. 이미 그 흉터는 영영 지울 수 없을테지만, 뒤늦게라도 내민 어머니의 손이 있었으니까.

결말에 대해서는 열린 결말인지 닫힌 결말인지 판단이 어렵겠다는 생각이 든다. 여러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우리는 여전히 미숙아이기 때문에. 그저 자신의 미숙함을 목격했을 때 부끄러워하거나 밀어내지 않고 담담하게, 넉넉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미숙이가 아닌 나도, 너도, 우리도. 우린 모두 미숙한 세상에 던져져 미숙한 사람들에게 미숙하게 자라날 수밖에 없으니까. 비단 나만 그런 것이 아니니까, 그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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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슬픔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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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이 시간에 읽는 게 아니었다.

아주 천천히, 더욱 천천히 읽을걸 그랬다.

그게 아니라면, 잠시 멈추었어야했다.

그게 실수였다.

이 책을 이른 오전에, 혹은 늦은 오전에, 이른 오후에 다 읽었더라면 동네라도 한 바퀴 돌며 은서를 생각했을텐데.

참 모진 새벽이다.

 

 

 

 

내가 이전의 서평보다 더 잘 쓸 것 같지는 않지만, 용기를 내어 한 번 써본다. 다시.

이건 서평이라는 말보다는 독서의 기록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겠지.

뭐라도 쓰지 않으면 응어리가 진 것 같은데,

그것을 글로 풀어낼 수 없다는 건 아주 가혹하고 참혹하며 난폭하다.

 

 

오은서, 이세, 서완 -

그들의 이야기.

 

 

 

그 여자 이야기를 쓰려 한다.

이름을 은서(恩瑞)라 짓는다. 사랑이 불가능하다면 살아서 무엇 하나, 가끔 우는 여자. 언젠가부턴가 내 속에 내가 먹이를 주어 기른 여자.

 

 

기억해야지.

은서.

恩瑞 (은혜 은, 상서로울 서)

 

 

 

 

 

그 여자, 사랑의 등만 봤던 여자, 어쩌면 삶 바깥의 여자, 저런, 사로잡힌 여자.

가끔, 그 여자, 내 안에서 바느질을 한다. 그 여자가 바느질하는 옆에서 나, 그 여자의 순해서 슬픈 목덜미를…… 그래, 목덜미 이야기를 하자, 나는 가끔 사람의 목덜미에서 그 사람의 앞날을 느낀다.

뒷모습의 중심을 이루는 목덜미의 선.

혼자 있어도 고개를 자주 숙이는 목선은 그 사람의 운명도 고개 숙이게 하는 건 아닌지. 여럿 속에서 고개를 한껏 쳐드는 목선은 그 주인의 운명을 고개 들게 하는 건 아닌지. 숙임과 듦 사이엔 무엇이 있는지, 나아감과 물러섬 중 무엇이 더 적극적인지. 가질 수 있는데도 놓기란, 나아갈 수 있는데도 물러서기란 힘겨워, 나, 그 여자 목선을 손가락으로 따라가본다.

사랑의 등만 보았던 그녀,

그녀가 가여웠다.

깊은 우물에 빠져있는 그녀.

 

아니, 아니다.

그보다 세가 가여웠다.

그는 어땠나.

그를 보며 은서를 미워했다.

하지만,

미워하지 말걸 그랬다.

정말 그럴 것을 그랬다.

그럴 것을.

 

 

존재를 견딘다는 건 시간을 견딘다는 게 아닌지, 존재는 어느 만큼 운명적이 아닌지.

 

 

울지 마, 은서야. 울지 마.

 

하지만,

 

116. 이 사람이었던가. 나를 그리워하고 안타까워하고, 나에게 물잠자리를 잡아주던 세를 곤두박질치게 하곤 대신 저가 병으로 가득 물잠자리를 잡아주던 사람이, 이슬어지를 떠나던 날 밤 숨차하며 뛰어와 내게 입술을 댔던 그 사람이 이 사람 맞는가. 이슬어지는 다 잊어버리고 너만 기억하고 싶다던 그 사람, 세 사람이 모두 우정을 나누길 바란다고 말했던 내 얼굴을 끌어안아버렸던 그 사람이 이 사람 맞나, 너만이 나를 사나움 속에서 건져내 줄 거라고 하던 그 사람이 저이던가.

 

 

말린다고 막아지는 것이 사랑이라는 감정이던가.

울지 말란다고 눈물이 흐르지 않던가.

 

당신은 그게 사랑 앞에서 가능한 것이었나.

 

 

 

130. “나는 사랑해. 네 예측할 수 없음, 네 조심성, 네 단호함. 내 눈에 이제 너보다 더 아름다운 건 없어. 이렇게 말하면 안 되겠지. 그러면 너는 저만큼 더 물러서겠지. 너의 마음을 내게 붙들어놓으려면 너를 사랑한다고 말할 게 아니라 세를 사랑한다고 말해야 될 거야. 그게 너의 마음을 얻어내는 길일 거야.”

 

 

어쩌겠어요, 사랑인걸.

 

 

 

137. 네 속눈썹을 세어봤는데 마흔두 개야, 했던 말이 생각나면 그 생각 하나로 세상을 다 얻은 듯이 살아가지. 그걸 세어볼 정도면 너는 틀림없이 나를 사랑한다 여겨지기에.

 

 

너무도 분명하게 사랑이었으니까,

사랑이니까.

 

 

양귀자의 <모순>에서 썼던,

이게 사랑이 아니면 무어가 사랑이야.라는 말을,

여기에 다시 한번 붙여 넣는다.

 

 

 

410. “오래도록 완을 기다리고 서 있는 널 보며 느꼈지. 너를 사랑하는 일이 나를 무너지게 할 거라는걸.”

너는 모르지. 너는 달라졌어. 옛날 같아졌어. 다시 옛날 같아져 버린 네가 나의 무엇을 이해하겠어, 무엇을.

 

 

세가 가여워 눈물이 났다.

그런데 나 왜,

전에 세가 은서를 모질게 대했다고만 기억하고 있나.

내가 당시에

세를 이해하지 못했던 까닭인가.

혹은 은서에 너무 집중해있었나.

 

미안해요.

그러려던 것은 아니었는데.

 

 

 

580. 너는 너 이외의 다른 것에 닿으려고 하지 말아라. 오로제 너에게로 가는 일에 길을 내렴. 큰 길로 못 가면 작은 길로, 그것도 안 되면 그 밑으로라도 가서 너를 믿고 살 거라. 누군가를 사랑한다 해도 그가 떠나기를 원하면 손을 놓아주렴.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는 것, 그것을 받아들여. 돌아오지 않으면 그건 처음부터 너의 것이 아니었다고 잊어버리며 살 거라.

 

 

이수의 한번,이라는 말의 습기는 꽉 찼다.

누나, 한번 와.

 

이수야, 이수야 -

제일 걱정되는 이수야.

 

우리 이수, 잘 지내지?

 

 

581. 나, 그들을 만나 불행했다.

그리고 그 불행으로 시절을 견뎠다.

 

 

자꾸만 은서가 아스라해진다.

 

결국은 울어버렸다.

나는 은서가 아니었는데, 나는 은서가 되었다며 출근하려는 그이 앞에서 그렇게 울어버렸다.

그이가 있었다면 나는 아마 그의 품에서 훌쩍이며 잠에 들었을 텐데,

분명 그랬을 텐데,

그렇지 못해서 이 새벽에 나는 책과 책 속에서 방황을 한다.

 

 

이렇게 깊을 줄 알면서도 빠져버린 나는,

며칠이고 우울에 갉혀도 좋다고 생각했던 나는,

이제 없다.

 

 

얼른, 빠져나와야겠다.

너무 깊어져서

두통을 겪을 때의 은서처럼 세면대에 얼굴을 담그기 전에.

그전에.

 

 

 

 

/

도도록이라는 단어가 자주 나온다.

도도록 : 가운데가 조금 솟아서 볼록하게

 

 

완, 내게 이슬어지란 곧 너거든.

세, 너는 내 고향이야.

 

아무래도 그들은 서로에게 도도록이었다.

보이지 않으려 해도,

깊숙이 숨겨도,

도도록 티가 날 수밖에 없는,

서로가 서로에게,

고향 같은 존재들.

 

 

 

 

오로지 ‘너’에 그토록 집중할 수 있었다니, 아, 그때는 ‘너’만 있으면 되어서, ‘너’만 아름다워서, 어떤 식으로든 ‘너’의 곁에 존재하고 싶었기에.

-작가의 말.

 

 

신경숙 작가의 글은 매번 이렇게나 아프다.

특히나 <깊은 슬픔>은 더욱 그렇다.

 

내가 이 책을 좋아한다고 말을 하는 것은 상관이 없었지만,

선물을 하기 전에는 꼭 물어야 했다.

내가 이 책을, 선물해도 괜찮겠느냐고.

 

이렇게 좋은 책을,

타인에게 좋은 책이라고 선뜻 건네는 것이 무척 어려워지게 만든,

신경숙 작가가 아주 많이, 너무너무, 미워졌다.

 

 

 

다정한 불빛이 그리워지는 오늘 밤,

나는 노오란 불을 켜두고 잠을 자야겠다.

은서가 나의 집을 보고,

슬몃 미소 지을 수 있게.

 

 

그리고 은서가 오면 따듯한 밥 한 끼, 먹여주고 싶다.

 

 

 

 

 

/

밑줄을 그었던 부분

(하지만 미처 다 쓰지 못한 다른 밑줄들이 얼마나 많은지.)

 

 

18. 슬픔에는 더 큰 슬픔을 부어넣어야 한다. 그래야 넘쳐흘러 덜어진다. 가득 찬 물잔에 물을 더 부으면 넘쳐흐르듯이, 그러듯이. 이 괴로움은 더 큰 저 괴로움이 치유하고, 열풍은 더 큰 열풍만이 잠재울 수 있고.

 

19. 우리는 태어나서부터 뭔가를 기다리지. 받아들이기 위해서 죽음까지도 기다리지. 떠날 땐 돌아오기를, 오늘은 내일을, 넘어져서는 일어서기를, 나는 너를.

 

36. “누나.”

“응.”

우울할 때 이수는 하염없이 누나, 하고 불렀다. 하고 싶은 모든 말을 다 뭉뚱그려서 거기에 실어놓은 듯. 은서는 입술을 깨물었다. 저 소리에 응, 이라는 대답밖에 달리 뭐랄 수 없는 이 대책없음이라니.

 

39. 은행잎은 예쁘지 않은 적이 없다. 돋아서 질 때까지 내내 눈길을 끌었다. 손톱만하게 순이 돋을 때는 연둣빛의 고움이, 자라 넓어지면 짙푸름의 시림이, 물이 들면 노랑빛의 투명이, 떨어질 때조차 수북이 쌓이는 모양새가.

 

127. 이 남자도 내게 맹세하듯 말했었지. 너 때문에 살고 싶다고. 나 때문에 살고 싶은 사람이 있다니 완의 그 말은 너무나 커서 내 가슴이 옹이져버렸지.

 

186.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었는데도 완에게 하고 싶은 가장 간절한 말을 하다 보면 그건 세가 자신에게 했던 말이었다.

 

191. 불빛은 가라앉아 있는 그리움을 일으켜세우고, 먼지의 더께가 내려앉아 있는 자신의 속을 투명히 들여다보게 하지.

 

192. 세상은 밤이 오는 순간과 새벽이 오는 순간 빛깔이 똑같구나.

 

195. 그래, 투명해.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물 속처럼 다 보이지. 그리운 얼굴이 불의 일렁거림 속에 비치고, 외롭게 한 것들, 자꾸만 밀어내기만 하는 것들이 다 비치지. 불 앞에 오래 있으면 마음이 솔직해져. 밑바닥이 다 보여.

 

233. 이해하고 싶지만 삶은 이해하는 게 아닌지 모른다. 그냥 살아가야 하는 건지도. 그렇기 때문에 아픔이 이렇게 멈추지 않는 건지도.

 

306. 빨랫줄을 보다가 세는 운전하는 은서의 옆모습을 쳐다봤다. 희망이 지나가버린 얼굴. 은서의 얼굴에서 그런 적요를 봐야할 때마다 세는 아득해졌다. 은서에게서 저 표정을 지우고 예전의 표정을 회복시켜줄 수 있다면 그 자신 그림을 다시 그릴 수도 있을 것 같다.

 

313. 단 한 번도 세가 자신에게서 멀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은서는 해본 적이 없다. 언제나 세는 거기 있었고, 거기 있을 것이라고 왜 그렇게 확신을 갖고 있었을까.

 

430. 나는 이제야 알게 됐어요. 내가 얼마나 그이를 믿어왔는지, 얼마나 사랑하는지.

 

492. “나는 그냥 한꺼번에 이해가 돼버리던데. 다시 볼 수 있을까, 생각하면 죽어도 이해 못 하겠는 것도 이해가 돼버리던데.”

 

538. 나, 태어나지 말았기를.

 

573. 불을 끄지 마. 불을 끄면 네 얼굴이 안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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